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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레모스 영성9] 광야를 길 삼아 (3)
    우리가 무심코 걷는 길이지만, 그 어떤 길이든 처음으로 길을 낸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30여 년 전에 장락산 기슭의 ‘가락재’라는 터를 구입했다. 평생 처음 내 이름으로 된 땅을 얻었을 때의 그 기분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그러나 지적도상으로도 맹지였기에 집을 지으려면 길을 넓혀야 했다. 몇 개의 개울에 건널 다리를 놓고 높은 구릉을 낮추고 낮은 골은 메우면서 길 닦는 그때의 경험은 그 이후 이어지는 수십 년의 가락재 세월을 암시하고 있었다. 아무리 산 좋고 물 좋고 정자 좋은 곳이라 하더라도 그곳까지 이르는 길이 없다면 무용지물이 되고 말 것이다.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사람에게 필요한 것들은 다 창조하셨으나 길은 예외였으며 그것은 우리의 몫이었다. 아니 하나님은 사람들과 함께 길을 내고 싶으셨을 것이라 생각해본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길은 여행이나 관광의 의미를 넘어서 인간의 삶과 죽음에 이르는 그 모든 과정을 예시하는 메타포(metaphor) 의 기능을 담당하게 되었다. 태어나면서 처음 숨길이 트여 인생이 시작되고 꿈길을 걸으며 내일을 준비하고 등판 길을 통해 그 꿈이 이루어진다. 그리고는 인생 다 살고 나면 저승길이다.   구약 성경의 출애굽기와 민수기와 신명기에 자주 나오는 ‘광야 이야기’는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 가운데 이루어진 구속사의 여정 곧 길 이야기이다. 그러나 이것은 선택된 어느 한 민족의 40년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들 이야기는 우리들 이야기이며 그들의 광야 여정은 우리 믿는 이들의 신앙 여정이며 그들의 순례기는 우리의 순례기이다. 우리가 그동안 살아오면서 걸었던 둘레길, 지름길, 덤불길, 벼랑길, 자드락길, 뒤안길, 벼룻길, 굽잇길, 샛길이 다 영성의 순례 길이었다. 시골의 오솔길, 고샅길, 논두렁길, 둑길 그리고 도시의 골목길, 가로수길, 가로등길 그리고 오대양을 넘나드는 항해로와 육대주를 가르는 육로, 우주를 달리는 항공로 또한 그렇다. 이 모든 길에 첫 발을 내딛은 사람이 있다. 길이 삶이고 길이 곧 영성이다. /가락재 영성원 원장·목사
    • 오피니언
    • 칼럼
    2024-04-09
  • [에레모스 영성7] 광야를 길 삼아
    산 좋고 물 좋고 풍치 좋은 자연 환경, 광야에는 그렇게 즐길만한 것들이 없다. 또한 광야를 간다 하더라도 쉽게 길을 찾을 수가 없다. 대부분의 넓은 길은 상인들의 무역 거래를 위해 생겨났거나 이웃 나라를 침략하기 위한 마찻길이었다. 또한 지속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다니면서 길의 품새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광야에는 그러한 길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넓은 길은 다 놔두고 길도 아닌 광야 길을 걷도록 하였다. 홍해를 길로 만들어 걷도록 하신 하나님은 그 다음은 광야를 길로 삼아 걷도록 하셨다. 그렇게 하신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 약속의 땅, 가나안 까지 열하루면 되는 지름길을 놔두고 40년의 세월 동안 광야를 걸어야했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광야 길은 어떤 의미일까? 모세는 이집트 왕 파라오를 찾아가서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자기 민족을 ‘광야로 내 보내라’(출애 5:1)는 말씀을 전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 만나와 메추라기는 광야가 아니면 얻을 수 없는 것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 조상의 이러한 광야 체험을 대를 이어 간직하고 기억하였다.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신명 8:2)는 말씀은 약속의 땅을 차지하고 왕국을 세운 뒤에도 줄곧 되뇌어지면서 마음 한복판에 새겨졌다. 그리고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도 이 말씀을 통해 우리의 인생 여정 그 자체가 순례자의 길이라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 이를 위해서 이집트의 시내 광야를 걸어야 할 필요까지는 없을 것이다. 홍해도 길이 되고 광야도 길이 될 수 있었다면 그런 점에서 광야는 길 그 자체가 아닐까. 광야 어느 한 쪽으로 길을 내지 않더라도 그 모두를 길로 삼을 수 있지 않을까. 그리하여 우리도 구름 기둥으로 또 불 기둥으로 고백되는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우리 모두는 이미 광야로 내 보내진 존재이니까. /가락재 영성원 원장·목사    
    • 오피니언
    • 칼럼
    2024-03-26

교회/목회 검색결과

  • [금주의 말씀] 하나님의 딜레마(호세아 6장 1~3절)
       몇해 전 바둑기사 이세돌와 AI 알파고의 세기의 바둑대결이 있은 후, 우리에게 이제 AI는 삶의 영역 깊숙히 들어와 있습니다. 이 AI와 관련된 매우 중요한 실험이 있었습니다. 바로 자율주행차로 하여금 피할 수 없는 기로에 서도록 하여 운전자나 보행자 간에 희생자가 발생하도록 가상의 상황을 연출하여 결정케하는 실험이었습니다. 이것을 ‘Trolley Dilemma’실험이라고 합니다. 성도분들께서는 이런 기로에 어떻게 선택하시겠습니까?    사실 ‘딜레마’라는 말을 우리는 자주 사용합니다. 딜레마의 뜻은 ‘진퇴양난에 빠지다’라는 뜻인데 조금 전 AI가 선택의 기로에 섰던 것처럼 어떠한 손해를 보더라도 결국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서는 것을 ‘딜레마’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는 딜레마가 있을까요? 물론 하나님도 딜레마에 빠지십니다. 그러나 그분이 우리와 다른 것은 딜레마의 해답을 아신다는 것입니다.    유난히도 호세아서에는 “벌하시겠다 용서하겠다, 죽이겠다 살리겠다, 심판하겠다 사랑하겠다”는 복잡한 심경의 변화가 드러나 있습니다. 이렇게 변화무쌍하신 하나님을 보면서 ‘하나님은 혹여나 변덕쟁이가 아니신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실 그러한 분이 아니십니다. 욥기 34장 23절을 보면 "하나님은 사람을 심판하시기에 오래 생각하실 것이 없으시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이 본문에서 갈팔질팡 하실까요?   그것은 그분의 위치와 마음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위치상 판결하시는 분입니다. 호세아 4장 1절에 "여호와께서 이 땅 주민과 논쟁하시나니"라고 말하는데, 여기에서 ‘논쟁’은 법정용어로 마치 검사가 피고의 죄를 나열하는 듯한 표현입니다. 하나님의 위치상 그분의 목소리를 불호령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딜레미가 발생합니다. 왜냐하면 그분의 마음은 다르기 때문입니다. 위치는 공의이신데 마음은 사랑이신 것입니다.   그 러한 의미에서 오늘 본문 1절은 이러한 주님의 심정이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우리를 찢으셨으나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바로 잘못된 행동을 하는 이에게 매를 드시지만, 다시 낫게 하신다는 것은 이들이 돌아오길 바라는 하나님의 완곡한 사랑의 표현인 것입니다.    성경은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을 자주 표현해주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애가 3장 33절을 보면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게 하시며 근심하게 하심은 본심이 아니시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바로 하나님의 본심을 일깨워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본심은 무엇일까요?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 말고 그분의 마음을 다른 어떤 단어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때리셨지만 때리고 싶어서 때린 것이 아닙니다. 찢으셨지만 함께 찢어진 것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마음이 함께 찢겨 나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무엇으로 싸매실까요? 2절은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성경학자들은 이를 부활의 예표로 보기도 합니다. 다시말해 무엇으로 싸매실까요? 아들을 내주시는 은혜로 우리를 싸매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들을 내주신 은혜에 어찌 감격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초등학교 시절 거짓말 안해본 분은 없을 것입니다. 저도 되도않는 거짓말을 해서 담임선생님이 시말서와 함께 부모님을 데려오라고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어머니에게 그 말을 전하는 것이 너무 부끄럽고 떨려서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을 때 어머니께서 함께 울어주시고 용서해주신 적이 있습니다.     저에게 십자가의 의미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아무말 없이 가장 귀한 존재를 주셔서 우리를 안아주시는 것이라 말하겠습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주신 복음입니다. 그런 사랑을 받은 우리가 이제 해야 할 것이 무엇일까요? 3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힘써 여호와를 알자." 생명주신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해야 할 바른 태도는 그분을 더욱 알고 갈망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이러한 모습이 넘쳐나길 축원합니다./일산하나교회 목사 
    • 교회/목회
    • 금주의 말씀
    2024-04-10
  • 예수님이 주시는 부활의 소망(고전15:1~58)
      “사셨네, 사셨네 예수 다시 사셨네" ‘무덤에 머물러 예수 내 구주 새벽 기다렸네. 예수 내 주 헛되이 지키네. 예수 내 구주 헛되이 봉하네. 예수 내 주 거기 못 가두네. 예수 내 구주 우리를 살리네 예수 내 주 원수를 다 이기고 무덤에서 살아나셨네. 어두움을 이기시고 나와서 성도 함께 길이 다스리시네. 사셨네 사셨네 예수 다시 사셨네.’ 예수께서 사망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셨습니다." 진리의 복음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것" 예수님의 부활은 마귀의 사망 권세에 영원히 갇혀서 소망을 잃어버린 모든 인류의 절대적이며 유일한 희망이다. 부활이 GOOD NEWS인 것은 사망권세를 이기지 못하고 꼼짝없이, 사망선고를 받은 사람들, 죽음의 그늘에서 신음하는 사람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서 죽은 예수님을 무덤에서 삼일만에 부활하게 하셨습니다.     이처럼 생명이 죽음을 삼키는 기적, 이것이 바로 부활입니다.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고전 15:55) 또한 부활은, 세상을 장악한 마귀권세와 그의 하수인들의 힘과 계획을 보기 좋게 무너뜨리는 퀘거이다. 예수님의 부활사건은 이 세상 神인 악한 영들에게 비참하게 모든 것을 강탈당한 것(질병, 불신앙, 우상섬기는 일, 미래의 소망까지 빼앗긴 인생들)을 다시 소망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부활의 복음은 하나님의 힘이 죽음을 넘어서 새로운 생명을 창조한 역전의 소식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타락한 세상의 힘과 질서를 거스르는 도전이며 이를 응징한 大事입니다.     주님의 부활은 성도에게 이 세상의 질서가 아닌 새로운 질서가 세워졌음을 알려주는 신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다시 살려 내실 것이라는 하나님의 의지를 드러낸 대사건이어서 부활 신앙은 역경을 감수하는 신앙이고, 역전을 기대하는 신앙입니다. 부활 신앙은 고통의 시간에도 절망하지 않는 신앙이며, 억울한 순간에도 괴로워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 신앙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믿는 부활입니다. 우리는 죽음 앞에서도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부활 신앙은 영성을 갖춘 영적인 존재, 즉, 새로운 존재로 다시 태어남이다. 진정한 부활신앙은 먼 미래의 그 종말적 재림의 그 날만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 이곳에서부터 새로운 존재로, 하나님의 형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과 인격을 닮은 사람으로, 하나님을 위하여 사는 존재로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새로운 피조물로 예수님께 연합되어 풍성한 열매를 맺는 삶을 살게되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날 교회들과 성도들이 부활의 큰 사건과 위대함을 너무 가벼운 일회성 행사로 전락시킨 면을 안타까워해야 할것이며 더 크고 위대하게 선포하며 전해야 할 것입니다. 안일하게 타협하며 내세지향적이고 개인적인 관점에서만 지켜져 온 것이 아닌가, 그저 나의 죽음 이후를 보장하고, 우리 성도들의 죽음에 조금의 위안을 주는 단순한 일회성 절기로 소홀이 취급한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재림의 그날의 부활, 나의 죽음 이후에 있을 부활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내가 다시 오늘 살아나는 새로운 존재로 다시 태어나는, 성경적인 부활은 변화된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인데 죄와 더불어 먹고 살았던 육적인 모습, 자신의 죄 된 자아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못박고 새로운 자아,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과 인격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 바로 부활입니다. 성도들이 부활에 참여하는 것은 부활을 기억하고 생각하는 차원을 넘어서서 새로운 존재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내 삶의 방향을 선하신 하나님께로 고정하고 나의 존재를 의의 도구로, 성품을 주님의 성품으로 바꾸는 것. 부활하신 예수님이 말씀.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기로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기 위하여 말하노라.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이김의 삼킨 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고전15::20~58)/유향교회 목사·예장 합동개혁측 대전광역노회장 
    • 교회/목회
    • 금주의 말씀
    2024-03-28

신학/선교/해외 검색결과

  • 강대흥선교사의 「더불어 사명대로 산다」 북토크쇼
      ◇ 한국세계선교협의회 사무총장 강대흥선교사의 <더불어 사명대로 산다> 출판감사회 및 북토크쇼가 진행됐다.   한국세계선교협의회 사무총장 강대흥선교사의 <복음에 빚진 선교사열전 8-더불어 사명대로 산다> 출판 감사예배 및 북토크쇼가 지난 9일 기독교TV 컨벤션홀에서 진행됐다. 참석자들은 선교사들의 사역과 정신을 알리고 계승하는 일에 주력하기로 다짐했다. 환영사를 전한 도서출판 사도행전 대표 이민교선교사는 “15년 전에 복음에 빛진 선교사열전 책이 출판되고 많은 초청을 받게 됐다. 책 한 권 나왔다고 한국교회가 사용해 주셔서 감사했다. 그래서 복음에 빚진 마음으로 출판사를 세우고 책도 내게 됐다”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가르치다 죽는 선교사가 되고 싶다. 이러한 선교사들의 이야기가 8권까지 나왔는데 20권까지 내는 것이 바램이다. 많은 분이 이 사역에 동참해 주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용미 아나운서가 진행한 북토크시간에는 강대흥선교사와 황정신선교사 부부, 태국에서 같이 사역한 장인식선교사, 도서출판 사도행전 이사 정혜순선교사가 함께했다. 강대흥선교사는 “대부분의 사역이 선교사들과 연합해서 할 수 있던 일이다. 그래서 선교초기부터 같이하는 것을 선교에 중요한 가치관으로 알고 모든 내용을 공유하면서 지내왔다. 같이 일하니까 모든 일을 감당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또한 “33년 동안 사역하면서 태국사람으로부터 상처받은 것은 없다. 많은 위로도 받았다. 그래서 사역을 할 수 있었다. 아들과 딸도 목회자가 됐는데 이도 상처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황정신선교사는 ”기도를 열심히 하는 태국인목사가 쉬는 시간에 게임하는 모습을 보았다. 이러한 모습도 포용할 수 있는 마음을 주님이 주셨다. 이러한 여유에 놀랐다“면서, ”음식을 주면서 그 목사를 섬겼다. 그분이 나중에 어려움이 있을 때 마음을 열고 대화하는 것을 보았다. 밥상공동체를 잘 마련했을 때 많은 사람의 마음이 열리는 것 같다. 앞으로도 그런 사역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장인식선교사는 ”강대흥선교사와 황정신선교사는 갈등을 지혜롭게 해결하는 능력이 있는 분이다.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해결하는 그런 능력들이 두 분 가운데 있는 것을 보았다. 큰 감동이 있었다“면서, ”또한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눈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KWMA에 사무총장으로 일할 수 있는 해안을 가질 수 있는 것은 남들보다 20년 앞서 보는 지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한국세계선교협의회 미래한국 선교개발센터장 정용구선교사의 사회로 진행된 감사예배에서 강선교사의 파송교회인 의정부 광명교회 최남수목사가 설교했다. 최목사는 “선교사열전을 많은 분이 봤으면 한다. 우리교회 주일학교 아이들에게도 이 책을 읽게 하려고 한다. 그리고 독후감을 쓰고 소감을 나누게 하고자 한다. 아이들의 인생이 바뀌기 때문이다. 선교사는 위대하다. 이 책의 후속작이 나오길 바란다”고 말했다.    축사시간에는 CTS최현탁사장이 감경철회장의 축사를 대독했으며, FMB 장인식선교사, GMS 전철영선교사,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측 사무총장인 김보현목사도 축사했다.
    • 신학/선교/해외
    • 선교
    2024-04-12

출판/문화/여성 검색결과

  • [한국기독교소설산책] 살신성인의 청년 기독자 상(2) - 김원일의
    엘리엇(T.S.Eliot)이 말한바 ‘무의식적으로 기독교적인’ 문학이란 바로 이런 작품(<마음의 감옥>)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확실히 이 소설은 기독교적 정신이 깊숙이 내장되어 있는 작품이라고 할 만하다. 그러나 작가 자신이 의도적으로 이 소설 속에 기독교적인 세계를 드러내 보이려고 노력한 작품으로는 결코 판단되지 않는다고 하겠다. 바로 이런 특성 때문에 이 소설은 ‘무의식적으로 기독교적인’ 문학 작품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가령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이나 톨스토이의 <부활>을 두고서 기독교소설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는가 생각해 보자. 마찬가지로 박영준의 <종각>이나 이청준의 <낮은 데로 임하소서>를 가리켜 기독교소설이 될 수 없다고 평가하는 일이 허용될 수 있겠는지 생각해 보라. 그 다음, 김원일의 중편 <마음의 감옥>도 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기독교소설이라고 단언할 수 있겠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그러나, 이 작품의 경우는 위 작품들의 경우처럼 자신 있게 “그렇다”라고 단언할 수 있지 못하다는 데 다시 생각해 볼 점이 있을 것 같다.   그 이유는, 이 소설이 기독교 세계관과 대척(對蹠)되는 테마를 드러내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의식적으로 기독교적인 제재 안[內]으로 서사를 수렴시키려고 노력한 작품은 못 된다는 판단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이 작품의 주인공이 영위하는 삶의 양식은 굳이 기독교도로서의 삶이 아니더라도 건전한 상식, 또는 소박한 양심의 소유자라면 능히 영위할 수 있는 그런 삶의 양식이라고 볼 수도 있으리란 것이다.   이제 다른 작품, 이기호의 <최순덕의 성령충만기>(2003)의 내용과 대비해 보면 그 차이가 확연히 드러나리라. 이 단편소설의 주인공 최순덕은 기독교도로서의 자의식이 강하고, 또한 자신이 기독교도일진대 비신자(非信者)인 변태의 남성(아담)을 어떻게 해서든지 회개시켜 하나님 앞과 교회당으로까지 인도해 보겠다고 부단히 노력한다.   기독교적 인생관에다 주제를 맞추고, 등장인물 역시 그런 세계관을 실현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또 성공하기까지 하는 그런 인물을 내세운 것이다. 이런 작품을 두고서 ‘무의식적으로 기독교적인’ 작품이라고 규정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이에 비할 때, <마음의 감옥>은 그 작품 세계가 판연히 다른 것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자신이 기독교도라고 하는 자의식이 결코 강하지 못하다.   객관적으로 볼 때 그가 분명히 훌륭한 일을 하고, 또 그 일이 하나님의 뜻에도 부합한 일임이 분명하지만, 그런 일에 매달리는 자신의 삶이 기독교 신자이기 때문이란 식으로 그 점을 표면적으로 드러내는 법이 결코 없다. 속된 말로 표현해, 그는 체하는 법이 전혀 없는 것이다. 기독교도임을 의도적으로 내세울 경우, 그것도 하나의 도덕적인 특권의식으로 오해될 수 있음을 그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고나 할까.   이 소설은 주인공 박현구의 형(兄)인 박윤구가 화자(話者)가 되어 그의 동생 현구의 파란만장한 삶의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 1인칭 관찰자 시점의 소설이다. 화자(형 윤구)의 ‘관찰’ 대상자인 아우(현구)가 이 소설의 주인공이므로 이런 서술 시점을 취하고 있는 이 작품은 곧 1인칭 관찰자 시점의 소설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관찰’이라 함은 단순히 현재의 관찰 사항만 말하는 게 아니라 과거에 있었던 일, 곧 회고의 사실을 동시에 뜻한다. 즉 현재 일의 관찰과 과거 일의 회고, 이 두 가지가 혼합돼 나타난다./조선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 출판/문화/여성
    • 문화
    2024-03-29
  • 미술인선교회, 「부활의 기쁨」 순회전
    ◇한국미술인선교회는 전국 순회전 「부활의 기쁨」을 진행 중이다.   한국미술인선교회(회장=신혜정)는 지난 1일부터 「부활의 기쁨」이란 주제로 전국 순회전을 진행 중이다. 임원들이 선보이는 작품 50여점은 각자의 인생이야기를 신앙으로 극복, 승화시켜 복음의 향기를 전하고 있다.   이번 순회전은 지난 1일부터 24일까지 춘천 오르갤러리에서부터 시작되어, 지난 25일부터 오는 1일까지 서울 인사동 마루아트센터를 거쳐, 오는  2일부터 13일까지 서울 서초 호민교회를 기점으로 마칠 예정이다.   동 선교회 임원 일동은 “부활절은 새롭게 꽃들이 피어나는 아름다운 계절, 생명이 약동하는 봄에 찾아온다. 이것은 반드시 다시 생명이 돋아나며 살아나는 희망을 보여주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이다”면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기후 위기, 전쟁과 분열, 갈등으로 신음한다. 모든 사람들이 희망과 평화를 그리워하고 있다. 주님은 우리의 삶을 뒤엎은 어둠가운데서 생명의 빛을 비추어 주셨다”고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이번 부활의 기쁨전은 매년 현 임원진들로 진행되는 전시이다. 최근에는 역대 회장들을 초대해 함께 전시를 이어오고 있다. 특별히 이번 순회전동안 회원들은 요한복음 필사를 함께 하는 등 영성을 성장시키기 위한 활동을 진행했다.   참여작가는 강진주, 계명혜, 곽병준, 구여혜, 김선경, 김용숙, 명정화, 방효성, 소희윤, 손윤선, 송미리, 송유리, 신혜정, 안광음, 안태이, 유명애, 이기선, 이민영, 이춘선, 전경선, 전노마, 전태영, 정두옥, 최 은, 하니프, 황수정 등 26명이다.   지난 26일 서울 인사동 마루아트센터에서 열린 개회예배는 미디어차장 곽병준작가의 찬양인도, 동 선교회 전 회장인 구여혜작가의 대표기도, 이사야 53장 1절에서 10절까지 다함께 말씀봉독, 이미현선교사(누르 프렌즈 대표)의 축사, 주기도문 등의 순서로 드렸다.   이미현선교사는 요르단에서 선교했던 이야기를 전하며, ‘부활의 기쁨’을 나누었다. 이선교사는 “그곳 사람들이 마음 속에 하나님이 아닌 우상을 찾으며, 평생 알라를 좇지만 결코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이 절망으로 느껴졌다. 지혜로운 자, 기술있는 자들을 통해 광야에서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나도록 하셨던 것 같이, 현시대에도 그러한 분들이 계심을 깨닫는다. 누구든 이 전시장에 들어왔을 때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였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한편, 동 선교회는 오는 8월 인사동에서 제32회 대한민국기독교미술대전을 연다. 재작년부터 새롭게 개편된 공모요강으로, 출품작 수는 1인당 7작품의 이미지 파일 접수와 서류 등을 통해 작가의 작품세계를 심도있게 심사한다. 수상 특전으로는 세 명의 골든십자가상 수상자들에게 개인부스전을 제공한다. 그리고 특선과 입선 수상작도 각 2점씩 선정하여 공모전 전시 기간 중 함께 전시하게 된다.     
    • 출판/문화/여성
    • 문화
    2024-03-29
  • 세종문화회관서 후지시로 세이지작가 100세 기념전
    ◇후지시로 세이지의 「겟세마네에서의 기도」   빛과 그림자를 이용한 ‘카게에’ 기법으로 성서이야기 표현 6가지 테마로 화려한 색채의 초대형 작품 등 200점 전시   ‘그림자 회화’로 자신의 작품세계를 구축한 후지시로 세이지작가(사진)의 100세 기념 「오사카 파노라마전」이 세종문화회관 세종미술관에서 7일까지 열린다. 그의 작품은 ‘빛’과 ‘어둠’의 음영 대비를 통해 ‘사랑·평화·공생’의 메시지를 투영해 내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의 80여년에 걸친 작품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는 작품 200여점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후지시로의 고유한 표현기법인 ‘카게에’는 빛을 투과해 완성시키는 작품이다. 여기서 ‘카게’는 일본어로 그림자, ‘에’는 그림을 뜻한다. 일반적인 유화, 수채화처럼 종이에 색채를 입힌 것과는 다르다. 종이에 밑그림을 그리고 면도날로 오려서, 반투명한 트레싱지 혹은 셀로판지를 덧대고, 조명을 스크린에 비춰 색감과 그림자로 표현하는 작품이다.   올해 100세를 맞은 후지시로는 1958년부터 조선 설화를 바탕으로 한 흑백의 모노크롬 ‘카게에’를 만들기 시작했다. 당시 작품에서부터, 6m가 넘는 화려한 색채의 초대형 작품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품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 특히 이번 한국 전시를 위해 후지시로가 조선 설화를 다시 읽고 재제작한 「선녀와 나무꾼」 시리즈 12점 등을 대중들에게 첫 선을 보인다.   이번 전시는 성서이야기를 비롯한 △빛과 그림자의 탄생 △빛의 파노라마 △열도를 그리다 △세계의 행복 △후지시로, 꿈이 날다 등의 6가지 테마로 진행된다. 특히 성서이야기 테마에서는 「바다를 건너는 모세」, 「노아의 방주」,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 「최후의 만찬」, 「십자가의 예수」, 「겟세마네에서의 기도」 등의 작품 15점을 볼 수 있다.   ◇후지시로 세이지작가의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   후지시로는 1980년부터 2016년까지 성화 작품만 100점 이상을 작업했다. 특히 창세기 1장부터 11장까지 작업을 한 「천지창조」 연작은 약 11년에 걸쳐 작업했다. 그는 “성서는 읽으면 읽을수록 그 크기와 무게에 압도되어 어떻게 시각적으로 호소할지 그 핵심을 파악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려 많은 고민을 하며 작업했다”고 말했다.   작가는 성화 작업을 통해 몸과 마음속에 서서히 성서의 메시지를 체화해 나갔다. 그는 “만물을 지배하는 하나님의 위대함, 성경이 지닌 깊은 의미와 인생의 지침, 경고와 희망을 느낄 수 있어 감사하다”고 덧붙였다.   또한 스웨덴의 여류작가인 셀마 라게를뢰프의 <진홍가슴새 이야기>를 모티프로 한 시리즈 작품 5점도 만나볼 수 있다.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의 이마에서 면류관 가시를 뽑는 순간, 잿빛의 새가 빨간 피로 물들어 진홍가슴새가 되었다는 내용이다. 이는 고통을 공감하는 사랑의 위대함, 기꺼이 자신을 내어놓는 희생은 보상을 받는다는 교훈을 담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성화 외에도, 일본의 국민 동화작가인 미야자와 겐지 동화를 소재로 한 「첼로 켜는 고슈」, 「은하철도의 밤」, 「구스코부도리 전기」 등을 소개한다. 또한 오사카, 교토, 나가사키 등 일본의 풍경을 담은 작품들도 만나볼 수 있다.   ◇「첼로 켜는 고슈」   후지시로는 “한·일 양국 간의 관계가 조금 더 가까워지길 기원한다고 말하며, 한 세기에 걸친 사랑·평화·공생의 메시지를 담은 작품들이 한국 관객들의 마음에 닿길 바란다”고 전했다.   강혜숙대표(케이아트커뮤니케이션)는 “모든 인류가 사랑과 평화 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세상은 그의 모든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이다”면서, “빛과 그림자로 완성하는 카게에의 상징성은 빛의 탄생으로부터 출발하는 성경 이야기를 통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다”고 말했다.   한편 그림자 회화 장르를 개척한 후지시로 세이지는 일본에서 100회 이상의 순회 전시를 개최하고, 그림자극 및 인형극을 2000회 이상 직접 연출해 상연했다. 그는 1981년에 카게에 화집 <예수>를 출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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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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