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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계종합 검색결과

  • 바른여성선교회서 생명기도회
    ◇바른여성선교회는 온누리교회에서 ‘돕스 판결의 의의와 교회의 사명’을 주제로 기도회를 가졌다.   미국 낙태권리 폐지 판결에 대한 법률적·성경적 이해를 제공 성경적 관점에서 태아는 수정된 순간부터 영혼 깃든 생명체     바른여성선교회(대표=이기복목사)는 지난 25일 용산 온누리교회에서 ‘미국 돕스 판결의 의의와 교회의 사명’을 주제로 특강과 특별기도회를 진행했다. 참가자들은 우리나라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입법공백 상태로 인해 여성들과 의료현장에서의 혼란은 증폭됐고, 그 사이 가장 보호받아야 할 엄마의 뱃속에서 태아들은 생명을 잃어가고 있음을 지적했다. 또 지난 6월미국 연방대법원의 낙태권리 폐지 판결과 함께, 사망이 드리워진 기류를 생명으로 바꾸고, 이를 위한대체 입법 제정을 위해 합심으로 기도했다.   특강에는 이상원교수(총신대)와 자유와 평등을 위한 법정책연구소의 전윤성변호사가 각각 「로 대 웨이드에서 돕스까지 미국교회와 크리스찬의 역할」, 「돕스 판결의 주요내용과 시사점」을 강의했다. 이후 이 선교회 대표인 이기복목사가 「낙태법 개정을 앞둔 한국교회의 사명」이란 제목으로 기도회를 인도했다.   이상원교수는 기도, 예배를 통한 개인의 성화운동과 더불어 기독교 악법에 저항하고자 기자회견·집회 등에 적극 참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교수는 “착한 소시민들이 악을 추구하는 집단에 속하게 되면, 대부분 악을 행하는 시민들로 변모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며, “즉 인간은 사회 구조에 의해 마음이 바뀌는 존재라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다. 만일 차별금지법이 통과되면 많은 기독교인들의 태도도 바뀔 것이다”고 했다. 또 “일단 특정한 제도나 법이 결정되면 이 법을 개정하는데도 시간이 걸린다”며 “특히 법이 개정된 후 권력을 쥔 이 법의 수혜자들의 방해 공작과, 대다수 사람의 침묵으로 인해 통과된 악법을 개정하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고 했다.   전윤성변호사는 미국 낙태법 판결에 대해 법률적인 이해를 제공하며, 사생활권·자기결정권은 도덕적 문제와 관련이 크지 않은 반면에, 낙태는 태아생명의 파괴 여부를 따지는 등 도덕적 문제와 연관이 깊다고 설명했다. 전변호사는 “로 대 웨이드판결은 당시 인간생명의 시작점은 태아부터 시작한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데 힘을 쏟아 낙태의 헌법적 권리를 도출했다”며, “반면에 돕스 대 잭슨 판결은 생명의 시작점이 착상부터 시작한다는 전제로 낙태의 헌법적 권리를 부정했다”고 했다. 이어 “로 대 판결의 원고인 노아 맥코비는 훗날 자신의 과거를 후회하고, 낙태반태 운동가로 전향했다”고 전했다.   이기복목사는 낙태법 개정을 앞둔 국내의 현실에서 올바른 입법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해야 하는 교회의 사명과 역할을 강조하며, “혼전성관계가 하나의 문화로서 퍼지지 않고 거룩한 성문화가 생성되도록 기도하자”고 말했다. 이어 “미국 크리스천과 낙태 반대론자들은 낙태 찬성론자로부터 계속 공격받고 조롱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적극 생명운동을 정진한 결과 ‘돕스 대 잭슨여성보건기구’ 판결을 이끌어 냈다”며, “이처럼 한국교회가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덧붙였다.   현재 국회는 임신중절 행위를 전면 자유화하는 개정안부터 심장박동을 기준으로 낙태를 제한하는 개정안을 상정했다. 2019년 4월,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 이후, 대체 입법이 마련되지 않아 지난해부터 낙태죄는 효력이 상실된 상태이다. 이런 상황 가운데 지난 6월 말, 미국 연방대법원은 돕스 판결로 낙태법을 폐기했다. 돕스 판결에 따라 미국 각 주에서 속속 낙태를 불법화하거나 임신 15주 이후 낙태금지법을 시행하는 등의 변화가 일고 있다. 49년만에 법이 뒤집힌 데에는 교회의 기도와 행동이 있었다.    워싱턴D.C.에서 진행되는 대규모 친생명 운동인 ‘생명을 위한 행진’이 바로 그것이다.     
    • 교계종합
    • 일반
    2022-08-29

오피니언 검색결과

  • 운동과 정신건강(2)
      신경세포 성장인자(BDNF)는 기억이나 학습에 관여하는 해마에 존재하며 신경세포 성장인자가 기억이나 학습과정에 필수적인 요소로 밝혀지고 있다.   운동은 3가지 면에서 학습능력을 높여준다. 운동으로 생기는 신경세포 성장인자는 뇌 발달에 좋고, 만성스트레스로 인한 뇌손상을 막아주기도 한다. 또 세포의 복구기전 활성과 동시에 코르티솔의 수위도 조절하고 조절신경전달 물질인 세로토닌과 노르에피네프린, 도파민의 수치도 높여준다.   운동은 인지기능의 유연성을 높여준다. 그리고 전전두피질의 기능을 즉시 향상시킨다. 심지어는 단 한 번의 운동조차도 최고 인지기능을 향상시키기에 충분하다. 이러한 사실은 2003년 독일의 신경과학자들이 항우울제를 복용하고 있으나 증세가 호전되지 않는 24명의 환자들을 10명의 비교집단과 실험한 결과인 것이다. 보통 달리기를 한 번만 해도 인지력과 유연성은 높아진다. 그러나 강도 높은 운동을 하는 동안에는 지식을 습득할 수 없다. 그 이유는 혈액이 운동하는 데 사용되느라 전전두피질에서 빠져 나가면서 인지기능이 둔화되기 때문이다.   규칙적인 운동은 우울증뿐만 아니라 치매예방에도 효과적이다. 치매는 뇌세포를 비정상적으로 빨리 파괴되면서 인지능력이나 정서, 성격의 변화가 나타나게 되는 노인성 정신질환이다.     
    • 오피니언
    • 칼럼
    2022-09-25
  • 행복신앙세미나 15
    (행복신앙연구소장 제임스강 목사 www.bog.or.kr)  죄악된 출생과 티끌로 돌아가는 회개   “지난해 중국에서 버려진 신생아수는 10만 명으로 1980년대초 5만 명에서 크게 늘어났다. 이에 당국은 지난 2013년 버려지는 영아수를 줄이기 위해 베이비박스 기능을 하는 영아 보호소인 ‘영아 안전섬’ 설치를 확대했다.”(뉴스핌, 2015.3.4)   많은 사람들이 아기의 탄생을 축하하지만, 위의 기사처럼 태어나면서부터 버려지는 신생아들에게는 출생 자체가 불행입니다. 모두가 알다시피 아기는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이기에 누군가 보살펴주지 않으면 생존 조차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대부분의 아기는 자신을 사랑하고 위해 주는 부모 밑에서 태어납니다.   그런데 부모 밑에서 태어나는 아기든, 버림받고 태어나는 아기든 모든 아기는 울면서 태어납니다. 세상에서의 탄생을 기뻐하며 웃는 얼굴로 태어나는 아기는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의학자들은 출산의 고통이나 세상을 처음 접했을 때 오는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하는데, 인간의 진정한 행복인 영혼의 축복에 대해 기록된 성경은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습니다.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시 51:5)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창 8:21)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았고”(사 59:2)   즉, 죄로 인해 그 영혼이 행복과 선(善)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분리된 채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된 행복을 누리지 못한 채 영혼의 공허를 느끼는 것이고, 성장하면서 악한 모습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마치 줄기에서 꺾여 꽃병에 담겨진 꽃은, 처음에는 아름답고 싱싱할지라도 시간이 지날수록 시든 모습이 나타나는 것처럼 말입니다.   인간이 성장할수록 악한 모습이 나타나는 것을 수없이 경험한 사람들은, 결국 통제를 위해 교육과 법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교육과 법을 통해 인간의 겉모습은 선해질지 몰라도 마음의 악은 여전하기에 영혼의 불행은 끝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모두가 다음과 같이 불행의 출생에서 벗어나 행복의 출생으로 거듭나야 됨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 3:3)   “타디그레이드(tardigrade)라는 생물이 있다. ... 크기는 현미경으로 봐야 할 정도로 작다. 하지만 수명은 무려 1,200년이나 되며, ... 영하 273도에서 영상 151까지 생존할 수 있으며, 진공 상태에서도 생존해 알을 낳고 번식까지 한다. 지구 최강의 생물이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니다.”(IT동아, 2013.9.6)   위와 같이 지구상 생존력이 가장 강한 생명체들은 미생물들입니다. 반면에 가장 큰 생명체인 공룡은 오래 전에 멸종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 또는 자신의 조건들을 더 좋고 더 크게 만들고자 하는 원함을 갖고 있습니다. 매일 거울을 들여다보며 자신이 가장 아름다운 존재여야지만 만족했던 백설공주의 계모처럼 말입니다.   즉, 자신이 잘 나고 큰 존재가 되어야지만 행복해질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종종 성형중독에 걸린 사람들에 대한 기사가 나오는데, 하나같이 불행했음을 보여줍니다. 성경은 아래와 같이 참된 행복의 방향은 티끌 같이 아무것도 아닌 존재를 향해 있으니 그 방향으로 돌이킬 것을 조언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시 90:3)   하나님은 티끌 곧 흙으로 인간의 몸을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몸의 성분과 흙의 성분이 일치한다고 합니다. 또한, 창조의 순서 중 가장 마지막의 위치에 인간을 두셨습니다. 인간이 아무것도 아닌 존재임을 깨우치고자 하신 것입니다.   자신을 어떻게 여기느냐는 매우 중요합니다. 입이 교만해지면 맛있는 음식이 적어지듯이 자신을 크게 여기고 마음이 교만해지면 기쁘고 감사할 일이 적어집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마음이 겸손해져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십니다. 특히, 영원한 축복의 세계인 천국의 입구는 바늘귀처럼 작습니다.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눅 18:25)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갈 수 없듯이, 마음의 부자 역시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마 5:3)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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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2022-09-21
  • 알고 믿었으니
     ‘믿고 알았다’에서 더 올라가면 알고 믿는 신앙의 수준에 이른다.(요일 4:16)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있는 것 중에 가장 근원적이고 가장 위대한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당초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알게 됐다. 즉 영적 차원에 이른 후에 그 다음에는 그 예수님이 우리에게 아버지를 더 깊이 계시해 주신다.     즉 생명의 아버지이심을 깨닫고 믿게 된다. 이는 영의 차원이 아닌 더 깊은 생명 세계를 보게 됨이다. 피조물이 전혀 없었던 창세전에 하나님이 우리를 생명을 낳으신 그것이 깨달아지고 믿어지는 것이다. 이것보다 더 큰 하나님의 사랑은 없다고 본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둔 그의 친 소생이니 이 얼마나 존귀한 존재인가? 그것을 알고 믿으면 하나님의 최고의 사랑을 받은 것이다.     이어서 이런 존재인 우리가 또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계속하여 깨닫게 한다. 이는 현재는 잘 느끼지 못하고 볼 수 없으나 우리가 장차 어떻게 될 것인가는 그분(재림 주)이 나타나면 우리가 그와 똑같이 되리라.(요일 3:2) 즉 영광의 재림 주님 같이 우리도 똑같이 영광 입게 될 것이다. 이 얼마나 크나큰 사랑이요, 축복이 아닌가? 또 하나님의 사랑은 계속된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자기 몸을 내어놓으셨으니 그러므로 우리도 형제를 위하여 우리 생명을 내어놓는 것이 마땅하도다’ 하신 것이 세 번째 크신 사랑이다.     하나님이 가장 사랑하는 독생자를 우리를 위하여 제물 되게 하셨다. 그 하나님의 사랑인 아가페 사랑으로 구원받은 우리들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마땅히 형제들을 위해 우리 목숨을 바치는 것, 즉 순교 제물로 드려져야 함이 마땅하다는 말씀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받은 표징이다. 순교신앙에 이르게 하시어 형제들을 위해 독생자 같이 목숨을 내어 놓는 것이 아주 마땅하다고 하신다.     이를 가리켜 ‘우리가 알았고 믿었나이다’ 라는 신앙이다. 우리는 이 하나님의 진리의 사랑을 증거해야 한다. 결국 악한 자 앞에서 증거 하다가 순교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어찌되나? 우리는 그분이 나타날 때 담대함과 수치를 당치 않으리라. 첫째부활의 영광을 입고 그리스도의 신부로 주님을 맞이하게 되리라. 할렐루야!/예장 진리측 총회장·주사랑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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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2022-09-17
  • 생태학적 관점에서 본 새 하늘과 새 땅
    생태학적 관점에서 본 새 하늘과 새 땅 김혜란 비블로스성경인문학연구소 연구원     COVID-19 팬더믹으로 인해 전 인류가 그동안 경험해 보지 못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동안 간과해 왔던 생태 문제와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상황이다. 이와 더불어 인간의 지식과 기술로 생태계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한계에 이르렀다. 그 이유는 인간의 이익과 탐욕을 버리고 얼마나 생태 위기를 위해 헌신할 수 있는가에 대해 회의적이기 때문이다. 생태학의 관점에서 우리가 딛고 있는 하늘과 땅에 대한 새로운 생태 신학적 논의가 필요한 시점에 와 있다. 이런 측면에서 마지막 때에 완성될 새 하늘과 새 땅을 묵시적 관점에서 다루는 일은 시의적절하다고 본다. 물론 “묵시문학을 생태학적 방법론으로 분석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필자는 요한계시록이 자주 사용한 구약의 본문과 1세기 로마제국이라는 시대적 배경을 가지고 분석할 때 가능하다고 본다. 그렇다면 생태학적 관점에서 바라본 새 하늘과 새 땅의 비전은 무엇인가?   첫째, 요한계시록은 재창조가 아닌 갱신의 비전을 던져준다.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계 21:1-5)”는 표현을 통해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요한은 이 구절의 배경이 되는 이사야 65:17절에 등장하지 않는 ‘만물’이라는 단어를 첨가한다. 즉 옛 하늘과 옛 땅이 불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시 새롭게 됨을 선언하여 새 창조의 질서를 부여한다. 물론 사본학적 논쟁이 있는 베드로후서 3장 12-13절의 언급대로 “마지막 날에 하늘이 불타 없어져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물에 녹아져, 새 하늘과 새 땅이 이루어진다”는 재창조의 견해들도 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은 재창조가 아닌 갱신의 관점에 서 있다. ‘새롭게’라는 의미로 사용된 헬라어 형용사 ‘카이노스’는 옛것에서 새것으로 대체하는 개념이 아니다. 오히려 옛 질서와 대조되는 본질적 변화를 의미하는 단어이다. 다시 말해 전혀 다른 형질의 세계로 변화한다는 의미이다. 지금 딛고 있는 하늘과 땅이 본질적 변화를 일으킨다는 개념은 사람들에게 낯설 수 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을 생각해 보면 이해가 된다. 예수님은 제자들 앞에 부활한 모습으로 나타나셨는데, 부활한 몸은 지금 세계와는 다른 형질의 몸이었다. 어떤 학자는 ‘어차피 불태우고 진멸할 세상을 왜 하나님이 창조하셨겠는가’라고 반문한다. 오히려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를 회복하시기 위해 성육신하셨다’는 주장이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옛 것과 새 것 사이에 불연속성도 있지만, 연속성의 측면도 있는 것이다. 이 갱신의 개념으로 종말을 바라본다면 어떤 차이가 있을까? 우리가 딛고 있는 하늘과 땅은 불타 없어지지 않고 다른 형질로 변한다면, 지금 우리를 둘러싼 자연을 함부로 훼손하고 파괴하는 행위는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가? 하나님의 창조 질서와 회복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일인 것이다. 둘째, 요한계시록은 에덴의 회복을 지향한다. 새 하늘과 새 땅의 환상에는 에덴을 연상시키는 표현들이 등장한다. 생명수 샘물(계 21:6)과 생명나무(계 22:2)가 이에 해당한다. 먼저 ‘생명수 샘물’은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어진다. 여기서 ‘값없이’라는 단어는 새 하늘과 새 땅의 독특한 생태학적 환경임을 암시한다. 우리가 들어갈 새 하늘과 새 땅은 세상의 경제법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물과 음식의 공급이 오직 하나님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새로운 경제 질서가 지배하는 세계이다. 인간의 탐욕을 위한 착취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값없이 누구에게나 주어지기 때문에 필요한 만큼만 사용하면 된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생명나무는 에덴동산의 생명나무와 다른 점이 있다. 새 하늘과 새 땅에 있는 생명나무의 잎들은 만국을 치료하는데 사용된다(계 22:2). 옛 땅에서는 인간이 질병과 죽음을 극복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살아간다. 질병을 예방하고 치료하기 위해 엄청난 많은 돈을 사용하지만 한계가 있다. 왜냐하면 인간이 아무리 90세, 100세를 산다고 해도 질병과 노화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반면 새 하늘과 새 땅에서는 생명나무가 있기에 아무도 늙거나 허약해지지 않는다. 그곳은 병과 죽음으로 고통 받지 않는 세계이다. 셋째, 요한계시록 21장 8절은 새 예루살렘에 들어갈 수 없는 자들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여 새로운 생태 윤리적 제안을 한다. 그들은 로마제국의 권력과 압제 앞에 두려워 황제숭배에 타협한 자들이다. 또한 황제숭배를 거부한 성도들을 핍박할 뿐만 아니라 로마라는 거대한 권력과 자본을 우상으로 섬기는 자들이다. 그들이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약자들을 착취하고 지배하는 로마제국의 질서에 서 있기 때문이다. 착취와 폭력 뒤에 작동하는 것은 인간의 탐욕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의 탐욕을 적절하게 제어하지 못하면 생태 위기는 고스란히 인간에게 고통으로 돌아올 것을 시사한다. 이러한 사례를 『기후정의』의 저자 이안 앵거스(Ian Angus)는 그의 책에서 소개한다. 그는 선진국의 소비문화를 위해 개발도상국의 농지를 함부로 점령하여 노동자들을 착취하여 생태계를 파괴하는 사례를 소개한다. 대표적인 예로, 인구의 13%가 영양실조에 걸린 콜롬비아가 농지를 없애고 미국에서 소비되는 자른 꽃의 62%를 수출하고 있다고 밝힌다. 또한 화석 연료와 대기로 배출되는 탄소 배출 문제는 심각한 국제문제가 되었다. 결국 인간의 과도한 탐욕은 돌이킬 수 없는 생태적 재앙을 불러온다. 이런 점에서 요한계시록 18:12-13절은 새로운 삶의 방식을 선언한다. 생태계를 파괴하는 세상의 질서에 서지 말고, 창조주 하나님의 편에 설 것을 요구한다. 종말을 살아가는 성도는 세속의 질서를 거부하고 새로운 창조 질서를 따르는 개척자로 부른 받은 자들이다. 새 하늘과 새 땅의 환상은 피조물이 더 이상 인간의 죄악으로 고통 받지 않는 새로운 희망을 제시한다. 현재 인류에게 닥친 생태 위기를 해결하려는 여러 대안들은 사실상 한계가 있다. 그 이유는 환경 보존을 위한 어떤 정책이나 전략들이 인간의 탐욕을 제어하기에는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지금 있는 땅과 거주자들을 포기하지 않으신다. 인간의 생각을 뛰어넘어 새 하늘과 새 땅이라는 전혀 다른 새 창조의 질서로 이 문제를 해결하신다. 이런 차원에서 요한계시록은 단순히 무서운 심판으로 인류를 파멸하는데 초점이 있지 않다. 오히려 인간의 탐욕으로 고통 받는 피조세계를 구원하는 새로운 희망을 지향한다. 하나님의 정의와 값없이 주는 선물 경제가 지배하는 새로운 세상을 바라보게 한다.     - 프로젝트: 기후 위기 시대의 기독교 ; 생태신학 녹색교회 생명목회를 위하여 -  - 공동주최: 기독인문학연구원-이음사회문화연구원 · 기독교환경교육센터 살림 · 에이치투그룹 주식회사 - 후원 및 연대기관: 주)천일식품 · 한국교회생명신학포럼 · 비블로스성경인문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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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뷰
    2022-09-16
  • 행복신앙세미나 14
    (행복신앙연구소장 제임스강 목사 www.bog.or.kr)  불행과 교만에서 자유케 하는 진리     ‘보이스피싱 피해는 꾸준한 예방 홍보에도 불구하고 끊이지 않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2014년부터 올해 6월까지 발생한 보이스피싱 범죄는 총 9만8391건, 피해금액은 9,661억원에 달한다. 연도별로 2014년 2만2205건에서 2015년 1만8549건, 2016년 1만7040건으로 줄었다가 지난 해 2만4259건으로 다시 증가세다.’(머니투데이, 2018.9.10)   최근 전화나 카카오톡 등 일상의 대화 매체를 통해 사기를 치는 보이스피싱이 기승하고 있습니다. 보이스피싱은 사기꾼이 가족이나 지인 또는 공무원 등 신뢰할 수 있는 대상으로 변장하여 접근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래서 이에 대한 대비책으로 금감원에서는 ‘누구나 당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고 상대방에 대해 항상 확인하는 습관을 가져야된다’고 조언을 하고 있습니다.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창 2:17)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창 3:4)   인류의 첫 터전인 에덴 동산에는 두 음성이 존재했습니다. 인류의 행복을 위하시는 하나님의 음성과 인류를 불행 속으로 이끌고자 하는 사탄의 음성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음성은 진실되고 그 안에서는 행복이 보장되지만, 사탄의 음성은 거짓되고 그 안에서는 불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인간의 선택입니다.   ‘진정한 사기꾼은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하도록 강요하지 않는다. 스스로 제 무덤을 파는 파멸에 이르는 공범자가 되게 만든다.’(The Confidence Game)   사기의 심리에 대해 연구하여 베스트셀러가 된 위의 서적에 언급되어 있듯, 사탄의 거짓된 음성을 받아들인 하와는 스스로 선악과를 따먹고 사망에 이르렀습니다. 이처럼 불행에 처한 사람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진리가 아닌 거짓에 속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자기를 불행하게 만드는 거짓된 속임수에 사로잡혀 있는 것입니다. 불행의 속임수에 갇혀 있는 동안에는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불행의 속임수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진리를 믿는 길뿐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 8:32)고 충고한 것입니다.   ‘이 시대 최고의 주식 투자자인 워런 버핏 회장은 최근 주주에게 보내는 서한에서 기업을 죽이는 세 가지 '암(癌)'적 요소를 언급했다. ... 거만과 관료주의, 그리고 자만으로 ... ‘기업 쇠퇴의 ABC’라 불렀다. ... 제라드 텔리스 경영학 교수도 1등 기업이 성공이 가져다 준 권태와 과신의 함정에 빠지게 되면 패망의 길을 걷게 된다고 경고한다.’(머니투데이, 2015.3.22)   코닥, 노키아, 제너럴모터스, US스틸 등은 한때 각 분야에서 세계 1등 기업으로 우뚝 서 있었지만, 위의 기사처럼 거만과 자만, 곧 교만에 빠짐으로 쇠퇴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교만은 역사적으로 기업뿐만 아니라, 각계각층에서 최고의 자리에 서 있던 개인들에게도 치명적인 타격을 주어 왔습니다. 아무리 크고 튼실한 무(Radish)일지라도 바람이 들면 쓸모가 없듯이, 아무리 좋은 마음도 교만이란 바람이 들면 정상적으로 사용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교만에 대해 아래와 같이 경고하고 있습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잠 16:18)   즉,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며 또한 불행의 선봉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만족과 감사를 할 수 없기에 결코 행복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교만함으로 불행했던 사람들의 사례가 많이 나옵니다.   ‘왕의 존귀를 받는 자가 나 외에 누구리요’ 했던 하만(에 3:5), 스스로를 신으로 자처했던 두로 왕(겔 28:2~9), 자신이 건설한 제국의 위용을 과시했던 느부갓네살 왕(단 4:30), 성전 기물로 유흥을 베풀면서 자신을 높였던 벨사살 왕(단 5:23), 자기 연설이 신의 소리라는 사람들의 아부에 빠져 있던 헤롯 왕(행 12:21~23) 등.   이들은 하나같이 아래의 언급처럼, 자신의 정확한 모습이 아닌 거짓된 자신의 모습에 취해 있었습니다.   ‘교만은 교만이라는 거울 외에 자신을 비춰 볼 수 있는 다른 거울을 지니고 있지 않다. 교만한 자들은 스스로 오만함과 건방짐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셰익스피어)   그래서 성경은 인류의 행복을 위해 인간의 근본 모습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모습을 아는 진리가 자신을 불행과 교만에서 자유케 하는 진리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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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9-13
  • 행복신앙세미나 13
    (행복신앙연구소장 제임스강 목사 www.bog.or.kr)  심판을 경고하신 예수님의 본심   ‘인간을 비롯하여 생명을 가진 모든 것은,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언젠가 죽을 것이라는 사실, 삶에 반드시 끝이 있다는 사실은 인생의 가장 심오하고 근원적인 진리이며, 어떤 모양으로든지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아무리 간절히 원해도 죽음은 피할 수가 없는 것이다.’(EBS 다큐프라임 죽음)   위의 언급처럼 죽음은 삶과 동일하게 인류에게 가장 중요하고 필연적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꺼립니다. 다만 막연하게 ‘죽음은 삶을 포함한 모든 것들의 끝’이란 인식이 팽배하여 불행을 겪는 사람들이 불행을 끝내는 방편으로 죽음을 택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죽음은 결코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닙니다.   ‘예나 지금이나 죽음은 무섭고 두려운 사건이며, 우리는 여러 면에서 죽음의 공포를 극복한 듯하면서도 죽음의 공포는 여전히 인류 공통의 것으로 남아 있다.’(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죽음에 대한 연구에 일생을 바쳐 ‘죽음’ 분야의 최고 전문가로서, <타임〉지 선정 ‘20세기 100대 사상가’ 중 한 명인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언급처럼, 죽음은 두려움과 공포를 수반한다. ‘죽으면 끝’이라는 인식이 사실이라면, 죽음으로서 불행도 끝이 나는데 왜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 두려움과 공포를 갖고 있는 것일까? 이는 죽음이 결코 불행의 끝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 9:27)   첫 사람 아담과 하와에게 죽음에 대해 경고하신 하나님은, 죽음이 필연이 된 모든 사람에게 위와 같이 경고하셨습니다. 즉, 죽음은 끝이 아니라 죽음 후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기에 죽음의 두려움과 공포는 이 심판에 대한 본능적 잠재의식 때문입니다.   마치 놀이동산에서 유령의 집에 들어간 후 문 뒤에 뭐가 있을지는 몰라도 뭔가 무서운 것이 있을 것이라는 잠재의식에 문을 열 때마다 두려움이 드는 것처럼 말입니다. 반면에 아름다운 요정의 집에서는 문을 열 때마다 기대감이 들 것입니다. 그렇기에 모든 사람은 자신이 죽음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를 돌아봐야 됩니다. 두려움과 공포인지, 아니면 기대감과 희망인지를 말입니다.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니 세계가 굳게 서고 흔들리지 않으리라. 그가 만민을 공평하게 심판하시리라.”(시 96:10)   성경은 창조주 하나님만이 공평한 판결을 내리는 공의로운 재판장임을 위와 같이 밝히고 있습니다. 지혜로운 판결의 대명사가 된 솔로몬의 판결은, 하나님의 지혜를 받아서 행했던 것으로 사실은 창조주 하나님의 판결이었던 것입니다. 즉, 하나님은 마지막 때에 모든 사람을 공평하게 심판하시는데, 심각한 것은 하나님의 심판은 영원한 심판 곧 지옥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불행한 사고나 큰 재난이 발생했을 때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생지옥’입니다. 사실 지옥은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죽음 이후 영원한 세계에서는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지옥을 “거기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막 9:48)고 미리 경고하셨습니다. 대개 죽은 사람이 세상에서 지은 죄로 인해 형벌을 받는 곳을 지옥으로 알고 있는데, 처음에는 사람을 벌하기 위해 존재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벧후 2:4) “그들을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니”(계 20:10)   위와 같이, 지옥은 범죄한 천사들 곧 마귀를 벌하는 곳이었습니다. 천사는 영원히 존재하는 영적 피조물이기에 형벌도 영원히 존재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지옥 곧 꺼지지 않는 불”(막 9:43)이 존재하게 된 것입니다. 즉, 지옥은 영원한 불행의 장소인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악령인 마귀가 지옥에 가야된다는 사실에는 동의하지만, 자신은 지옥에 갈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인류의 행복을 진정으로 위하시는 예수님은,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요 8:44)라고 분명히 밝혔습니다. 이는 인간의 영혼이 태어날 때부터 마귀로 말미암아 죄에 물든 채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영원한 불행의 장소인 지옥이 아닌, 영원한 행복의 장소인 천국에서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인간의 실상을 가르쳐준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경고를 받아들여 마귀의 자녀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야만 지옥이 아닌 천국에서 영원히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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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9-05
  • 교회와 그리스도 비밀의 관계 계시
      주를 사랑함이 성령의 내주로 이웃을 사랑하게 되는 두 계명의 하나 됨     서신서의 대략은 예수그리스도와 하나 된 사랑의 관계로 주의 제자화가 확장되도록 교훈과 신앙의 지침을 증거 한다. 무형의 교회 곧 그리스도의 영적 신부가 된 자들이 이방인을 크리스챤이 되도록 하는 성령의 본질적인 구속사역에 참예 시 지켜야 하는 진리의 복음과 지침들이다. 그 가운데 에베소서는 주로 인하여 거듭난 지체들이 거듭나야 할 이방인들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에 대한 증거와 듣는 자들이 거듭나 주의 자녀가 될 수 있는 지침과 그의 결과를 찾게 한다.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자를 남편과 부모 그리고 아비와 상전으로 들어서, 주의 말씀으로 바로 양육하여 주의 제자로 회복해야 하는 몫에 지침을 주셨다. 또한 말씀을 듣는 자들에게 부모를 공경하라 하시어 가르치는 자들의 복음에 순복함이 옳다고 증거 하셨다.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라고 하셨으며 그리하면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리라고 하셨다. 첫 계명이란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계명이다.   복음을 듣는 자들이 주의 백성이 되도록 주님의 멍에를 메고 주께 나와 배워 성령의 내주로 이웃을 사랑하게 되는 두 계명의 하나됨을 깨닫게 하신다. 곧 신본주의 자세를 갖추도록 하시어 두 계명의 지혜를 찾게 하셨다. 땅에서 잘됨이란 영이요 생명의 말씀으로 영혼이 잘되어 달란트를 남기게 될 구속사역에 선한 열매 맺힘을 일컫는다.   곧 주를 사랑하라는 것은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여 영혼을 살리는 일이기에 이 두 계명은 하나로써 하나님의 경륜을 이루시는 섭리임을 확증케 한다. 장수란 거듭나 영생의 복을 표현한 영이요 생명의 말씀이다.   더불어 이와같이 신앙의 지침들을 지키라고 하심은 심판을 피하도록 하심이다. 그러기에 너희가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고 하시어 성경기록목적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도록 하여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함이라는 결과를 얻도록 하심임을 확증케 한다. 주를 사랑하고 이웃에게 생명에 이르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말씀의 전신갑주를 입고 지체에 필요한 것들을 갖춰 주의 백성으로 회복 하도록 진리의 터 위에 세움이다. 그러기에 이들을 향해 “주께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보라”고 하시어 빛을 발하여 영적 마귀의 일을 멸하도록 전도에 존재의 목적을 갖고 구속사역에 힘쓰는 자들이어야 함을 강조함이다.   주의 뜻은 주를 경외하여 사람으로 생명을 얻게 하는 일이기에 가르침을 받는 자들이 그리스도를 경외하여 온전케 하기 위한 신앙의 지침이다. 이를 위해 본을 보이신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은 아버지를 사랑하여 이웃 사랑으로 새 생명을 얻게 하심임을 확증케 한다. 그러므로 이를 찬미하며 영생을 주신 주님의 사랑에 항상 감사하고 피차 주를 경외하여 사람으로 생명에 이르는 일에 합력하여 선을 이룰 수 있도록 지켜 본분을 하게 하심이다.   이 일이 주를 공경하는 자들의 일용할 양식이며 존재의 목적이다. 곧 주께서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일에 목숨을 다하여 순복하심과 같이 주님의 자취를 좇아 주를 사랑하는 것은 복음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일임을 확증케 한다. 이는 주를 사랑하는 일이 이웃을 사랑하여 제자화로 이루시는 선한 일이기에 말씀의 전신갑주를 입고 주를 섬길 수 있는 신앙의 지침을 주심이다. 이로써 교회와 그리스도의 관계의 계시로 주의 경륜을 이뤄가는 섭리임을 확증하는 바이다./오이코스대 교수·바이블아카데미 학장·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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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8-30

교회/목회 검색결과

  • 예수비전성결교회 안희환목사
    ◇예수비전교회는 최근 지자체와의 소송에서 승리해 주목을 끌고 있다. 방역지침 위반 혐의로 지자체에 고발당했으나 법원서 승소 지체장애와 가난이라는 고난을 극복하고 치유목회로 앞장     예수비전성결교회 안희환목사(사진. 우측)는 최근 지자체와의 소송에서 승리했다. 금천구청이 코로나 방역지침 위반으로 예수비전성결교회를 고발했고, 몇 번의 재판 끝에 결국 법원은 교회의 손을 들어줬다. 핵심은 교회가 집단감염의 진원지가 아니라는 것이다. 안목사는 “교회는 언제나 진리 편에 서야한다. 세상의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준에서 존재해야 한다. 그렇게 될 때 교회는 결국 승리한다”고 말했다. 이렇게 예수비전교회는 진리 편에 서야한다는 안목사의 확고부동한 목회철학 속에서 세상을 향한 선교적 도전에 나서고 있다.   거짓 선동의 공격에서 예수비전교회는 최근 몇 달 사이 고성방가에 시달려야 했다.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확성기로 무장한 사람들이 교회 건너편에 진을 치고 시위를 벌였다. 내용은 안목사를 인신공격하는 것이었다. 그러다 법원의 판결로 고성방가 시위는 그쳤고, 교회 주변은 다시 평온을 되찾았다. 안목사에 대한 전방위적 공격은 상상을 초월했다. 안목사가 포르노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는 등 페이스북에 음란물을 올리고 있다는 등의 공격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포르노 사이트 운영 목사’로 낙인찍힐 위기였다. 이에 대해 안목사는 “한때 유행했던 영화대사로 하자면 ‘어처구니가 없다’라 하겠다. 세상에 어떤 목사가 공개적인 온라인에 음란사진을 올리고 포르노 사이트를 운영하겠는가? 모두가 나와 우리교회를 무너뜨리려고 하는 불순세력의 거짓선동이다”고 잘라 말했다. 당연히 안목사는 인터넷에 음란물을 올린 사실이 없다. 그렇다면 누가 이렇게 안목사와 그가 섬기는 교회를 악의적으로 공격했을까? 놀랍게도 배후에 전광훈목사와 그의 추종자가 있다고 안목사는 확신했다. 놀랄만한 일이었다. 안희환목사와 전광훈목사는 흔히 말하는 ‘같은 편’이었는데,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전목사에 대한 안목사의 작심비판은 거침이 없었다. 안목사는 “처음에 전목사가 애국운동을 한다기에 적극 지지하고 전목사가 어려움을 당할 때는 나서서 도와줬다. 그러다 전목사가 주장하는 무슨 ‘선교은행’이니 하는 소리를 듣고는 이것은 아니다 싶어서 비판을 했는데, 그것이 결국 이번 전쟁의 도화선이 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더욱이 전목사의 설교에 보면 정통 기독교진리를 부정하는 너무나 많은 주장들이 난무하고 있다. 이것은 정치나 노선의 문제가 아니라 진리의 문제이다. 진리문제에 타협이나 양보는 있을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장애와 고난을 극복한 목회자 안목사는 지금도 팔 하나로 모든 것을 처리한다. 그가 중학교 1학년 때 교통사고로 팔을 하나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는 팔이 하나 없는 지체장애인이다. 그러나 그의 얼굴에는 언제나 미소와 기쁨이 넘친다. 아버지는 알콜중독자였고, 어머니는 4남매를 먹여 살리기 위해 고생을 마다하지 않았다. 장남이었던 안목사는 고생하는 어머니를 보며 새벽에 신문배달을 했다. 어떻게 해서든지 가족을 먹여살려야 한다는 책임감이 그를 짓눌렀다. 그래서 그가 간 곳이 교회였다. 교회 가서 펑펑 울었다. 알콜중독자 아버지, 4남매를 위해 뛰어다니는 어머니, 밤마다 엄습하는 악몽, 판자촌 단칸방 등 그를 둘러싼 모든 것이 기도제목이었다. 그러다 중학교 2학년 때 성령의 강한 역사를 체험했다. 이 영적인 불길 속에서 그의 모든 악몽과 절망이 타버리고 희망과 비전의 동이 터 올랐다. 그것은 바울이 다메섹에서 나사렛 예수의 음성을 듣는 순간이었고, 존 웨슬리가 폭풍 속에서 절대자의 세미한 음성을 듣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안목사가 학창시절 교회당에서 울며 기도했던 기도의 제목들은 다 이뤄졌다. 알콜중독자였던 그의 아버지는 이제 장로가 됐고, 어머니는 가장 소중한 기도의 후원자가 됐다. 그를 괴롭히던 악몽은 사라졌고, 아름다운 아내가 그의 곁을 지키고 있다. 안목사가 개척한 예수비전성결교회는 아름다운 성장을 계속하고 있다. 특히 코로나가 한참 위세를 떨치던 시기에 안목사는 중요한 결단을 내렸다. 모두가 코로나라는 괴물 앞에 전전긍긍하고 있을 때 안목사는 전도하기로 마음을 먹은 것이다. 그리고 주변을 돌며 복음을 전했다.   말씀과 치유의 목회 지향 예수비전교회는 말씀을 열심히 암송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안목사는 암송할 성경구절을 주보에 올린다. 그리고 교인들에게 말씀을 외도록 한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이제는 예수비전교회의 일상이 됐다. 안목사는 암송의 유익을 강조한다. 그는 “암송을 하면 묵상이 가능하다. 길을 걸으면서, 다른 일을 하면서, 암송한 말씀을 언제든지 묵상할 수 있다. 그러면 그 속에서 강력한 성령의 임재가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말씀을 집중적으로 가르치며, 4백독 대행진, 5백독 대행진 운동을 전개한다. 안목사는 성경을 읽지 않는 날은 밥도 먹지 않는다는 신념을 강조한다. 그래서 안목사의 설교는 성경을 집중적으로 강해하는 것이다. 간증, 예화, 유모보다 성경 그 자체로 말씀을 풀어주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에 집중할 때 놀라운 역사가 일어난다. 안목사는 치유사역도 강조했다. 그는 “초대교회에 치유의 역사가 많이 일어났다. 말씀 듣고 기도할 때 병이 났다. 이제 한국교회에 이런 초대교회의 능력이 나타나야 한다”며, “교회는 영적인 권세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세상이 교회를 업신여기지 못 한다. 영적 권세가 없을 때 한국교회는 어려움을 겪는 것이다.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예수비전교회에는 치유의 역사가 나타난다. 백반증이 심해서 찾아온 한 성도는 말씀과 기도 속에서 병이 낫는 역사를 체험했다.   언제나 진리 편에 서다 안희환목사는 진리 편에 서는 것을 강조했다. 그래서 NCC의 문제를 강하게 제기하는 일에 앞장 서고 있다. 안목사는 “WCC는 진리에서 멀어지고 있다. 타종교에도 궁극적 실재가 있다고 말한다. 타종교와도 예배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기독교는 삼위일체 하나님에게만 예배해야 한다. 구원은 오직 십자가의 피, 예수 외에 구원의 길이 없다”며, “바로 NCC가 이러한 진리의 문제에서 멀어질 때 누군가는 이를 비판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렇게 아무도 선뜻 나서려 하지 않는 일에 안목사는 앞장서고 있다. 안목사는 차별금지법 반대운동에도 앞장 선다. 그것은 단순한 정치문제가 아니라 진리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왜 이런 일에 앞장 서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안목사는 “정치나 노선이 아니고 진리의 문제이기에 나서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에 위배되면 거기에 반대해야 한다. 또 말씀에 맞으면 찬성하는 것이다”고 말한다. 일부에서는 이런 안목사의 성향을 두고 비판과 비난의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그러나 안목사는 극우 혹은 혐오라는 프레임이 아니라 ‘진리’라는 원칙 속에서 그가 섬기는 예수비전교회와 함께 세상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안희환목사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언제나 진리 편에 서는 것이 한국교회의 나갈 방향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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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목회
    2022-08-30
  • 조기노화장애인시설 교남시냇가
    ◇교남시냇가는 조기노화장애인이 여생을 행복하게 영위할 수 있도록 돕는다. ‘장애’와 ‘노화’를 극복할 사회적 가족으로서 돌봄 사명에 중점 단순돌봄에 그치지 않고 지역사회 정착해 자립하도록 지원         파주의 교남시냇가(원장=황규인·사진)는 장애인의 생애주기를 고려해 개인에게 가장 적합한 삶을 지원하고 있다. 이 시냇가는 지난 2010년 설립된, 전국 유일 ‘조기노화장애인’ 거주시설이다. 교남재단 설립자 전택보박사의 그리스도 사랑과 섬김의 삶을 기반으로 “장애인 한 사람의 삶을 소중하게” 여기며, 조기노화 발달장애인들에게 △가정생활 △노화에 따른 의료 △문화·여가 △호스피스·장례 등을 제공함으로 그들에게 있어 ‘황혼기’ 인생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이곳에 입주한 장애인들의 연령대는 주로 30대 후반부터 50대 사이로, 실제 연령보다 더 빠르게 노화를 겪고 있는 발달장애인 약 30명이 거주하고 있다. 특히 전체 입주자의 70% 이상이 다운증후군이며, 비장애인이나 또 다른 유형의 장애인에 비해 약 15~20년 빠른 노화를 겪고 있다. 또한 전체 입주자의 85% 가량이 무연고 장애인으로, ‘장애’와 ‘노화’라는 이중고를 안고 있는 이들에게 사회적 가족으로서 돌봄의 사명을 다하는 특수시설이다.   「좋은 가족·좋은 동반자」란 슬로건으로, 건강한 의·식·주에 자기가 선택한 삶을 향유하고 ‘사람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돕는다. 주력 사역은 크게 4가지로 나뉜다. 「몸과 마음, 영혼이 건강한 삶」, 「자연 속에서 평온한 일상과 리듬」, 「선택과 결정을 존중하여 생기있는 삶」, 「이웃과 더불어 즐거운 삶」이다.   40년간 장애인의 곁을 지켜 온 황규인원장은 선한 사마리아인의 역할을 강조하며 “우리의 미션은 어려움에 처한 이웃이 전인적 존재성을 회복하고 주체적 삶을 살아가도록 우리의 전문성과 사랑으로써 책임을 다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 “이들에게 일시적이고 부분적인 서비스가 아닌 보통사람들처럼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일반적인 서비스와 장애로 인한 특수 서비스를 포괄하는 지원을 한다”며, “우리는 이들이 어떻게 하면 사회에 융화되어, 가정과 같은 환경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고 설명했다.   황원장은 기관의 방향성에 대해 “이들을 지역사회 친화적으로 만드는 데 있다”며 “장애인 개개인이 보통사람들처럼 ‘이성교제-결혼-출산’과 같은 생애주기 속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우리의 목표이다”고 말했다. 실제로 교남재단의 시설과 기관들은 장애인들이 지역사회 구성원으로서 자립해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도록 ‘그룹홈’ 등으로 주거와 자립을 오랜 기간 지원하고 있다. 이에 대해 황원장은 “이러한 커뮤니티는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이 살 수 있는 주거형태의 모범적 모델로 설명된다”며, “한 사람의 역량과 삶의 형태는 기관의 목표와 방향에 달려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황원장은 “가장 가까워야 할 가족에게도 외면받아 갈 곳 없는 이들은 대다수가 마음의 병을 앓고 있다”며, “그런 환경과 조건 속에서도 현실을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모습, 오히려 자신의 것을 나눠주는 모습에 감동을 받는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황원장은 기억에 남는 일에 대해 “한 지적장애 친구가 자립해 직장을 다니고 저축도 하는 의젓한 모습에 많은 생각과 감정이 떠오른다”며, “그저 시설 안에서 지냈다면 볼 수 없었던 개인의 잠재능력과 달라진 삶의 모습을 발견한다. 그것으로 삶의 의미가 충분하다”고 전했다.   조기노화장애는 연구와 정보가 부족하고, 우리사회의 인식이 매우 저조한 실정이다. 황원장은 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촉구하며 “비장애인의 노인기에 필요한 것은 다 비슷해서 제도나 정책이 잘 마련돼 있다”며, “하지만 조기노화장애인들의 노화는 개인차가 커 돌봄에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끝으로 시설은 지금의 지역사회 주거지원 서비스 위주에서 더 나아가, 발달장애인 집중돌봄 공동주택뿐 아니라 ‘발달장애인 단기돌봄서비스기관’, ‘전담 노인요양센터’ 등을 설립할 장기 로드맵을 세우고 있다.  
    • 교회/목회
    • 사랑의 실천
    2022-08-29
  • 나는 존귀한 자다(창세기1:27~28)
      미국의 한 사회심리학자가 조사한 통계에 의하면 검사한 사람의 약 95%정도가 열등감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인생에 몇 번이 아니라 늘 지속적으로 심하게 열등감에 빠져 있는 사람들의 숫자도 상당합니다. 심한 열등감에 빠져 있는 사람은 늘 불행하다고 생각하고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 전혀 없습니다. 그래서 어떤 일에 노력해 보다가 안 되면 ‘역시 나는 안돼. 나는 무가치한 존재야’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모든 문제의 핵심은 자기 자신과의 관계에서 실패한데서 오는 것입니다. 즉, 자기 자신을 세상의 기준으로만 바라보고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데서 시작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에 대한 올바른 대처는 무엇일까요? 바로 성경적인 자아상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적인 자아상은 무엇일까요? 가장 중요한 점은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들어진 존귀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창1:27) 성경학자들은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셨다고 했을 때 그 의미를 두 가지로 이야기합니다. 첫째는 우리가 인격적인 존재가 될 수 있도록 우리에게 지, 정, 의를 주신 것입니다. 두번째는, 우리를 영적인 존재로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안에 영혼을 심겨 두심으로,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는 영적 통로를 만드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사모하는마음을주셨느니라”(전3:11)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은 우리의 눈에 보이는 것을 넘어서는 어떤 영적인 것을 추구할 수 있는 마음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인간에게만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요, 하나님의 형상인 것입니다.     그런데 큰 문제가 하나 생겼습니다. 그것은 아담과 하와의 죄로 인해, 인간들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이 왜곡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제일 처음에는 마음의 생각과 중심이 하나님 중심으로 있었던 모든 것들이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져서 진리로부터 멀어지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이 죄의 길을 따라가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헬라어로 죄를 뜻하는 ‘하말티아’는 과녁으로부터 벗어난 것을 뜻합니다. 즉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가장 깊은 곳에 위치한 우리의 마음이 왜곡되고 진리로부터 멀어지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 죄의 길을 따라가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습니다. 좋은 소식은 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게 되면서 우리들 안에 죄로 인해 왜곡되었던 하나님의 형상이 다시 한 번 새롭게 되어 새로운 마음으로 변화되는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해서 죄를 전혀 안짓는다는 말은 아닙니다. 우리는 여전히 죄를 짓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사실은 이제는 우리가 더 이상 죄의 노예상태에 있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주님 안에서 완전히 새로운 창조물이 된 것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5:17) 간절히 바라기는 세상의 눈으로만 우리를 평가하지 말고, 우리는 주님 안에서 존귀한 자라는 분명한 정체성을 가지고 늘 승리하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동안성결교회 목사
    • 교회/목회
    • 금주의 말씀
    2022-08-28

신학/선교 검색결과

  • 기독교학술원서 해외학자 초청강좌
      ◇기독교학술원은 「예수와 석가의 대화: 복음주의 종교학의 길」이란 주제로 해외학자 초청강좌를 진행했다.           기독교학술원(원장=김영한박사)은 지난 22일 해외학자 초청강좌를 「예수와 석가의 대화: 복음주의 종교학의 길」이란 주제로 온누리교회(담임=이재훈목사) 양재캠퍼스에서 진행했다. 강연자인 정성민박사(미국 드류대학교)는 기독교학술원 해외연구원이며, 현재 인도 마드라스 대학교에서 비교종교학을 전공하고 있다. 이번 강연을 통해 정박사는 예수와 석가모니 가르침의 공통점을 살피고, 석가모니의 가르침 중 기독교인이 배울 점도 살폈다. 정박사는 발제를 통해 예수와 석가모니의 가르침 중 공통점을 △마음속의 욕망이 고통의 원인이다 △마음속의 평안이 이 땅에서 성취될 수 있다 △도덕적이고 거룩한 삶은 인간이 지향해야 할 이상적인 삶이다 △예수와 석가가 지향하는 삶은 무욕과 무소유이다 △예수와 석가모니는 계급이나 차별이 없는 이상적인 세상을 추구했다 △예수와 석가모니는 비폭력 무저항주의를 가르쳤고 또한 몸소 실천했다로 제시했다. 정박사는 “예수와 석가는 여러 가지 면에서 공통적인 가르침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들이 꿈꾸는 세상은 마음속의 욕망 혹은 죄를 제거하여 개인적으로 평안한 삶을 누리며, 사회적으로는 서로가 착하고 거룩한 삶을 살아서 도덕적으로 청청한 세상이 되길 원했다”면서, “단지 예수와 석가의 차이는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가와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는가에 차이다. 즉 이 땅에서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할 이유와 어떻게 욕망을 제거하여 평안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가의 방법론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고 했다. 또한 정박사는 기독교인이 석가모니의 사상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점에 대해 △석가의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사고 △석가가 말하는 초인, 즉 주체적 인간이 될 필요성 △도덕적이고 거룩한 삶을 살기위해 필요한 이성적인 판단력과 제어능력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한 필사적이고 피나는 노력 △새로운 명상법을 찾다 등을 제시했다. 정박사는 “석가의 사상으로부터 배우려한 이유는 분명히 기독교신앙을 유익하게 할 부분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면서, “단지 기독교신앙을 악화시키지 않는 범위 내에서 그러한 유익한 것들로 기독교신앙을 약화시키지 않는 범위 내에서 그러한 유익한 것들로 기독교 신앙을 보완하고 보충하려는 것이다”고 했다. 그리고 “물론 석가의 사상으로부터의 배울 5가지 포인트들이 성경 안에 없는 것은 아니다. 단지 기독교 안에서 그것들이 부각되지 않았기 때문에 석가의 사상을 통해 새롭게 조명하려는 것이다”고 했다.   논평을 한 이상직박사(전 호서대 부총장)는 “정박사는 복음주의 기독교학자로서 진솔하게 불교연구의 모범을 보이셨으며 불교와의 협력과 대화를 통해 기독교의 자기개혁에도 도움이 될 있다는 훌륭한 강의를 해주었다”고 말했다.
    • 신학/선교
    • 신학
    2022-09-23
  • 행복신앙세미나 15
    (행복신앙연구소장 제임스강 목사 www.bog.or.kr)  죄악된 출생과 티끌로 돌아가는 회개   “지난해 중국에서 버려진 신생아수는 10만 명으로 1980년대초 5만 명에서 크게 늘어났다. 이에 당국은 지난 2013년 버려지는 영아수를 줄이기 위해 베이비박스 기능을 하는 영아 보호소인 ‘영아 안전섬’ 설치를 확대했다.”(뉴스핌, 2015.3.4)   많은 사람들이 아기의 탄생을 축하하지만, 위의 기사처럼 태어나면서부터 버려지는 신생아들에게는 출생 자체가 불행입니다. 모두가 알다시피 아기는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이기에 누군가 보살펴주지 않으면 생존 조차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대부분의 아기는 자신을 사랑하고 위해 주는 부모 밑에서 태어납니다.   그런데 부모 밑에서 태어나는 아기든, 버림받고 태어나는 아기든 모든 아기는 울면서 태어납니다. 세상에서의 탄생을 기뻐하며 웃는 얼굴로 태어나는 아기는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의학자들은 출산의 고통이나 세상을 처음 접했을 때 오는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하는데, 인간의 진정한 행복인 영혼의 축복에 대해 기록된 성경은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습니다.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시 51:5)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창 8:21)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았고”(사 59:2)   즉, 죄로 인해 그 영혼이 행복과 선(善)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분리된 채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된 행복을 누리지 못한 채 영혼의 공허를 느끼는 것이고, 성장하면서 악한 모습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마치 줄기에서 꺾여 꽃병에 담겨진 꽃은, 처음에는 아름답고 싱싱할지라도 시간이 지날수록 시든 모습이 나타나는 것처럼 말입니다.   인간이 성장할수록 악한 모습이 나타나는 것을 수없이 경험한 사람들은, 결국 통제를 위해 교육과 법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교육과 법을 통해 인간의 겉모습은 선해질지 몰라도 마음의 악은 여전하기에 영혼의 불행은 끝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모두가 다음과 같이 불행의 출생에서 벗어나 행복의 출생으로 거듭나야 됨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 3:3)   “타디그레이드(tardigrade)라는 생물이 있다. ... 크기는 현미경으로 봐야 할 정도로 작다. 하지만 수명은 무려 1,200년이나 되며, ... 영하 273도에서 영상 151까지 생존할 수 있으며, 진공 상태에서도 생존해 알을 낳고 번식까지 한다. 지구 최강의 생물이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니다.”(IT동아, 2013.9.6)   위와 같이 지구상 생존력이 가장 강한 생명체들은 미생물들입니다. 반면에 가장 큰 생명체인 공룡은 오래 전에 멸종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 또는 자신의 조건들을 더 좋고 더 크게 만들고자 하는 원함을 갖고 있습니다. 매일 거울을 들여다보며 자신이 가장 아름다운 존재여야지만 만족했던 백설공주의 계모처럼 말입니다.   즉, 자신이 잘 나고 큰 존재가 되어야지만 행복해질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종종 성형중독에 걸린 사람들에 대한 기사가 나오는데, 하나같이 불행했음을 보여줍니다. 성경은 아래와 같이 참된 행복의 방향은 티끌 같이 아무것도 아닌 존재를 향해 있으니 그 방향으로 돌이킬 것을 조언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시 90:3)   하나님은 티끌 곧 흙으로 인간의 몸을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몸의 성분과 흙의 성분이 일치한다고 합니다. 또한, 창조의 순서 중 가장 마지막의 위치에 인간을 두셨습니다. 인간이 아무것도 아닌 존재임을 깨우치고자 하신 것입니다.   자신을 어떻게 여기느냐는 매우 중요합니다. 입이 교만해지면 맛있는 음식이 적어지듯이 자신을 크게 여기고 마음이 교만해지면 기쁘고 감사할 일이 적어집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마음이 겸손해져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십니다. 특히, 영원한 축복의 세계인 천국의 입구는 바늘귀처럼 작습니다.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눅 18:25)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갈 수 없듯이, 마음의 부자 역시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마 5:3)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 오피니언
    • 칼럼
    2022-09-21
  • 행복신앙세미나 14
    (행복신앙연구소장 제임스강 목사 www.bog.or.kr)  불행과 교만에서 자유케 하는 진리     ‘보이스피싱 피해는 꾸준한 예방 홍보에도 불구하고 끊이지 않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2014년부터 올해 6월까지 발생한 보이스피싱 범죄는 총 9만8391건, 피해금액은 9,661억원에 달한다. 연도별로 2014년 2만2205건에서 2015년 1만8549건, 2016년 1만7040건으로 줄었다가 지난 해 2만4259건으로 다시 증가세다.’(머니투데이, 2018.9.10)   최근 전화나 카카오톡 등 일상의 대화 매체를 통해 사기를 치는 보이스피싱이 기승하고 있습니다. 보이스피싱은 사기꾼이 가족이나 지인 또는 공무원 등 신뢰할 수 있는 대상으로 변장하여 접근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래서 이에 대한 대비책으로 금감원에서는 ‘누구나 당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고 상대방에 대해 항상 확인하는 습관을 가져야된다’고 조언을 하고 있습니다.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창 2:17)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창 3:4)   인류의 첫 터전인 에덴 동산에는 두 음성이 존재했습니다. 인류의 행복을 위하시는 하나님의 음성과 인류를 불행 속으로 이끌고자 하는 사탄의 음성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음성은 진실되고 그 안에서는 행복이 보장되지만, 사탄의 음성은 거짓되고 그 안에서는 불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인간의 선택입니다.   ‘진정한 사기꾼은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하도록 강요하지 않는다. 스스로 제 무덤을 파는 파멸에 이르는 공범자가 되게 만든다.’(The Confidence Game)   사기의 심리에 대해 연구하여 베스트셀러가 된 위의 서적에 언급되어 있듯, 사탄의 거짓된 음성을 받아들인 하와는 스스로 선악과를 따먹고 사망에 이르렀습니다. 이처럼 불행에 처한 사람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진리가 아닌 거짓에 속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자기를 불행하게 만드는 거짓된 속임수에 사로잡혀 있는 것입니다. 불행의 속임수에 갇혀 있는 동안에는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불행의 속임수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진리를 믿는 길뿐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 8:32)고 충고한 것입니다.   ‘이 시대 최고의 주식 투자자인 워런 버핏 회장은 최근 주주에게 보내는 서한에서 기업을 죽이는 세 가지 '암(癌)'적 요소를 언급했다. ... 거만과 관료주의, 그리고 자만으로 ... ‘기업 쇠퇴의 ABC’라 불렀다. ... 제라드 텔리스 경영학 교수도 1등 기업이 성공이 가져다 준 권태와 과신의 함정에 빠지게 되면 패망의 길을 걷게 된다고 경고한다.’(머니투데이, 2015.3.22)   코닥, 노키아, 제너럴모터스, US스틸 등은 한때 각 분야에서 세계 1등 기업으로 우뚝 서 있었지만, 위의 기사처럼 거만과 자만, 곧 교만에 빠짐으로 쇠퇴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교만은 역사적으로 기업뿐만 아니라, 각계각층에서 최고의 자리에 서 있던 개인들에게도 치명적인 타격을 주어 왔습니다. 아무리 크고 튼실한 무(Radish)일지라도 바람이 들면 쓸모가 없듯이, 아무리 좋은 마음도 교만이란 바람이 들면 정상적으로 사용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교만에 대해 아래와 같이 경고하고 있습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잠 16:18)   즉,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며 또한 불행의 선봉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만족과 감사를 할 수 없기에 결코 행복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교만함으로 불행했던 사람들의 사례가 많이 나옵니다.   ‘왕의 존귀를 받는 자가 나 외에 누구리요’ 했던 하만(에 3:5), 스스로를 신으로 자처했던 두로 왕(겔 28:2~9), 자신이 건설한 제국의 위용을 과시했던 느부갓네살 왕(단 4:30), 성전 기물로 유흥을 베풀면서 자신을 높였던 벨사살 왕(단 5:23), 자기 연설이 신의 소리라는 사람들의 아부에 빠져 있던 헤롯 왕(행 12:21~23) 등.   이들은 하나같이 아래의 언급처럼, 자신의 정확한 모습이 아닌 거짓된 자신의 모습에 취해 있었습니다.   ‘교만은 교만이라는 거울 외에 자신을 비춰 볼 수 있는 다른 거울을 지니고 있지 않다. 교만한 자들은 스스로 오만함과 건방짐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셰익스피어)   그래서 성경은 인류의 행복을 위해 인간의 근본 모습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모습을 아는 진리가 자신을 불행과 교만에서 자유케 하는 진리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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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2022-09-13
  • 행복신앙세미나 13
    (행복신앙연구소장 제임스강 목사 www.bog.or.kr)  심판을 경고하신 예수님의 본심   ‘인간을 비롯하여 생명을 가진 모든 것은,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언젠가 죽을 것이라는 사실, 삶에 반드시 끝이 있다는 사실은 인생의 가장 심오하고 근원적인 진리이며, 어떤 모양으로든지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아무리 간절히 원해도 죽음은 피할 수가 없는 것이다.’(EBS 다큐프라임 죽음)   위의 언급처럼 죽음은 삶과 동일하게 인류에게 가장 중요하고 필연적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꺼립니다. 다만 막연하게 ‘죽음은 삶을 포함한 모든 것들의 끝’이란 인식이 팽배하여 불행을 겪는 사람들이 불행을 끝내는 방편으로 죽음을 택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죽음은 결코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닙니다.   ‘예나 지금이나 죽음은 무섭고 두려운 사건이며, 우리는 여러 면에서 죽음의 공포를 극복한 듯하면서도 죽음의 공포는 여전히 인류 공통의 것으로 남아 있다.’(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죽음에 대한 연구에 일생을 바쳐 ‘죽음’ 분야의 최고 전문가로서, <타임〉지 선정 ‘20세기 100대 사상가’ 중 한 명인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언급처럼, 죽음은 두려움과 공포를 수반한다. ‘죽으면 끝’이라는 인식이 사실이라면, 죽음으로서 불행도 끝이 나는데 왜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 두려움과 공포를 갖고 있는 것일까? 이는 죽음이 결코 불행의 끝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 9:27)   첫 사람 아담과 하와에게 죽음에 대해 경고하신 하나님은, 죽음이 필연이 된 모든 사람에게 위와 같이 경고하셨습니다. 즉, 죽음은 끝이 아니라 죽음 후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기에 죽음의 두려움과 공포는 이 심판에 대한 본능적 잠재의식 때문입니다.   마치 놀이동산에서 유령의 집에 들어간 후 문 뒤에 뭐가 있을지는 몰라도 뭔가 무서운 것이 있을 것이라는 잠재의식에 문을 열 때마다 두려움이 드는 것처럼 말입니다. 반면에 아름다운 요정의 집에서는 문을 열 때마다 기대감이 들 것입니다. 그렇기에 모든 사람은 자신이 죽음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를 돌아봐야 됩니다. 두려움과 공포인지, 아니면 기대감과 희망인지를 말입니다.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니 세계가 굳게 서고 흔들리지 않으리라. 그가 만민을 공평하게 심판하시리라.”(시 96:10)   성경은 창조주 하나님만이 공평한 판결을 내리는 공의로운 재판장임을 위와 같이 밝히고 있습니다. 지혜로운 판결의 대명사가 된 솔로몬의 판결은, 하나님의 지혜를 받아서 행했던 것으로 사실은 창조주 하나님의 판결이었던 것입니다. 즉, 하나님은 마지막 때에 모든 사람을 공평하게 심판하시는데, 심각한 것은 하나님의 심판은 영원한 심판 곧 지옥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불행한 사고나 큰 재난이 발생했을 때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생지옥’입니다. 사실 지옥은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죽음 이후 영원한 세계에서는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지옥을 “거기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막 9:48)고 미리 경고하셨습니다. 대개 죽은 사람이 세상에서 지은 죄로 인해 형벌을 받는 곳을 지옥으로 알고 있는데, 처음에는 사람을 벌하기 위해 존재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벧후 2:4) “그들을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니”(계 20:10)   위와 같이, 지옥은 범죄한 천사들 곧 마귀를 벌하는 곳이었습니다. 천사는 영원히 존재하는 영적 피조물이기에 형벌도 영원히 존재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지옥 곧 꺼지지 않는 불”(막 9:43)이 존재하게 된 것입니다. 즉, 지옥은 영원한 불행의 장소인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악령인 마귀가 지옥에 가야된다는 사실에는 동의하지만, 자신은 지옥에 갈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인류의 행복을 진정으로 위하시는 예수님은,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요 8:44)라고 분명히 밝혔습니다. 이는 인간의 영혼이 태어날 때부터 마귀로 말미암아 죄에 물든 채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영원한 불행의 장소인 지옥이 아닌, 영원한 행복의 장소인 천국에서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인간의 실상을 가르쳐준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경고를 받아들여 마귀의 자녀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야만 지옥이 아닌 천국에서 영원히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 오피니언
    • 칼럼
    2022-09-05
  • 열방대학 사역팀서 렛츠 고 코리아 집회
    한국교회가 복음의 불타는 사명으로 돌아와 헌신한 시간 하나님의 사랑 기억하면서 복음전파의 길을 추구하기로 국제 YWAM 하와이 코나 열방대학 동북아시아 사역팀은 지난 27일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렛츠 고 코리아 2022 집회를 개최했다. 이번 집회의 주제는 「다음세대의 부흥과 한국교회의 하나됨 그리고 복음통일과 세계선교로의 재헌신」이였다. 주최측은 이번 집회로 인해 다음세대의 회복이 일어나길 원하다고 전했다. 7시간 동안 이어진 집회에서 다음세대는 신앙의 회복을 추구하고, 세계선교의 헌신하길 다짐했다.     주최측은 “누가복음 15장 돌아온 탕자의 말씀처럼 아버지 집을 떠났던 다음세대가 하나님사랑의 품으로 돌아와 말씀을 통해 정체성을 회복하고 꿈을 꾸게 될 것이다”면서, “한국교회는 복음의 불타는 사명으로 일어나 헌신하는 은혜의 시간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란 제목으로 첫 번째 설교를 전한 마크조선교사(하와이코나열방대학 DTS학교장)는 “많은 다음세대가 하나님을 위해 드린 것이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하나님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행위를 통해 받는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우리 존재 자체를 사랑하신다.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의 아버지가 아들이 돌아온 것을 기뻐한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당신께로 돌아오는 것을 기뻐하신다” 면서, “많은 다음세대가 미래에 대해서 두려워하고 있다. 하지만 하나님의 완벽한 사랑이 두려움을 쫓아낸다. 미래에 대해서 두려워하지 말자 하니님께서 우리의 미래를 해결하셨다”고 말했다.    「십자가의 사랑」이란 제목으로 두 번째 설교를 전한 김형민목사(빛의자녀교회)는 “사단은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아가기에 너무 늦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의 비유는 아직 늦지 않았다고 말한다”면서, “하나님은 완벽하신 분이다. 그분이 깨끗하게 하셨다면 깨끗한 것이다. 우리도 우리 자신을 용서해야 한다. 우리도 우리 자신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 또한 “우리는 우리 자신을 바라보는 것을 멈추어야 한다. 과거의 발목 잡히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한다”면서, “우리는 십자가로 사랑 받았음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생명을 받았다”고 말했다.    공연과 함께 간증을 한 드러머 리노는 “어린시절 의료사고를 당하고 시력을 잃게 되었다. 시력을 잃은 후 어머니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실천에 옳겼다.”면서, “그때 어머니와 함께 울게 되었다. 그 순간이 행복했다. 그리고 하나님께도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때부터 시력이 돌아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이후 드러머로서 인기를 얻었으나 하나님을 떠나게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나의 다리가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긴 시간 동안 드럼을 온전히 치지 못했고 생을 마감하고자 생각했다”면서, “그 때 하나님께서 나를 만나주셨다. 하나님이 내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심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하나님에게만 초점을 맞추게 되면 우리의 모든 것이 바뀌고, 우리를 통해 복음을 전하신다. 이것은 성령님이 하시는 일이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대한민국의 비전선포 시간을 인도한 박호종목사(더크로스처치)는 “왜 하나님이 한국을 사용하고 계실까? 이유는 한 가지이다. 기도를 통해 바뀐 나라가 우리나라이기 때문이다”면서, “우리가 열방을 다니면서 기도와 예배를 하고, 말씀을 선포할 때 하나님께서 생기를 부으실 것이다”고 했다.     이번 예배에선 데이비드 가바목사(YWAM), 엘리야 한목사(수원하나교회), 권준목사(시애틀형제교회)도 설교를 전했으며, 빅콰이어 등의 찬양팀이 무대에 올랐다.
    • 신학/선교
    • 선교
    2022-08-29

출판/문화 검색결과

  • 11월,「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공연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가 11월부터 다음해 1월까지 공연한다.   인간적 면모 부각한 캐릭터들과 록 오페라 연상시키는 사운드 브로드웨이 초연 후 50년간 전세계서 사랑받은 걸작이란 평가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가 다음달 10일 광림아트센터 BBCH홀에서 열린다. 이 뮤지컬은 예수의 생애 중 그의 마지막 7일을 다루며 극중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들이 주어진 운명 앞에서 갈등하고 고뇌하는 인간적인 면모를 부각시키며 전개된다. 성경인물에 대한 재해석에 더해, 록 음악에 클래식을 결합한 사운드가 감상 포인트 중 하나이다.   극중 주요 캐릭터는 신의 아들과 인간의 삶 사이에서 하나님이 예언한 죽음의 길에 대해 고뇌를 겪는 예수 역 「지저스」를 비롯해, 유대의 독립을 원하지만 예수의 선택을 이해하지 못하고 배신의 길을 선택하는 「유다 이스카리옷」이 등장한다. 또한 예수를 만나 변화하는 삶을 마주하고, 또 예수에 유일한 위안이 되는 존재인 「마리아 막달레나」가 등장한다. 이외에도 유대의 왕 「헤롯」과 로마 총독 「빌라도」, 그리고 대제사장 「가야바」 등이 등장한다.   특히 작품에 깔린 유다의 시선이 주목된다. 극중 유다는 고뇌, 분노, 불안, 자책, 후회 등 큰 감정적 변화를 겪을 뿐 아니라, 이를 표현하기 위한 음악은 복잡하고 높은 난이도를 보인다. 마리아역도 주목할만하다.   이 뮤지컬은 「오페라의 유령」, 「캣츠」 등 세계적인 뮤지컬 작곡가 앤드루 로이드 웨버와 「라이온킹」, 「아이다」 등을 쓴 작사가 팀 라이스가 청년시절에 팀을 이뤄, 한 해 먼저 콘센트 음반으로 선보인 작품이다. 이 음반은 발매 직후 전 세계적으로 1,000만장 이상 판매고를 올리며 빌보드 팝, LP 차트 등에서 1위를 기록했었다.   1971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한 이후 프로덕션마다 선보인 다양한 연출과 리바이벌을 거치며 반세기 넘도록 관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번에 뮤지컬을 선보인지 50주년을 기념해 한국어 공연으로는 다섯 번째로, 7년 만에 귀환한 것이다.   정회진프로듀서는 “지금껏 많은 음악을 접했지만 이번 공연만큼 음악을 들으며 이렇게 자주 전율을 느낀 작품은 많지 않다”며 작품의 음악적 매력을 강조했다.   홍승희연출은 “이 뮤지컬은 센세이션 한 음악, 도전적이며 실험적인 면모로 관객들을 단숨에 매료시키기 충분한 작품이다”며, “새롭게 만드는 무대 세트와 '빛'이라는 콘셉트를 통해 작품이 전달하고자 하는 본질적인 메시지에 집중했다. 여기에 인간 내면을 표현한 앙상블들의 역동적인 안무가 더해져 좀 더 특별한 무대를 선사할 것이다”고 말했다.   설도윤예술감독은 “반세기가 넘는 역사와 정통성을 지닌 작품의 오리지널리티를 계승하면서도 한국 프로덕션만의 독자적인 기획으로 정체성을 강화할 것이다”고 전했다.   라인업은 지저스 역에 마이클리와 임태경, 유다 역에 한지상, 윤형렬, 백형훈, 서은광, 그리고 마리아 역에 김보경, 장은아, 제이민 등이다. 배우들은 극중 특유의 고난도 음악과 복잡한 캐릭터의 내면 연기를 소화할 예정이다. 공연 관계자는 “음악적 내공을 갖춘 뮤지컬 배우들이 독보적인 보이스 컬러로 관객들에게 진한 잔상을 남길 것이다”고 전했다.   국내에서는 1980년 극단 현대극장을 통해 이 뮤지컬이 처음 소개됐다. 그러다가 브로드웨이 리바이벌 버전으로 2004년 첫 정식 라이선스 공연을 가졌으며 이후 2006년, 2013년, 2015년 네 차례 공연됐다. 한국 프로덕션은 그 이후 다양한 변화를 꾀하며 매 시즌 새로운 무대를 선보였다.    
    • 출판/문화
    • 문화
    2022-09-25
  • 이해경시집 「사랑의 향기」 화제
      이해경시인(사진)의 시집 〈삶을 사랑하는 마음을 담은 사랑의 향기〉를 도서출판 사랑의 장막에서 펴내 화제가 되고 있다. 이시인은 2013년 〈사랑하는 사람들을 향한 사랑의 노래〉란 첫 시집과 함께 등단했다. 그러나 2018년 『시선』 신인추천으로 재 등단한 것이다. 그는 시인이면서 목사이며, 간호사와 상담사, 선교사란 직책을 지니고 있다.        세상 속에서 존재하는 것들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형상화 행복한 삶의 여정 위한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의 길로 인도      ‘끝없는 사랑’의 길   이해경시인은 우리의 삶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추구하고 있다. 그 사랑은 순수한 사랑으로 형상화되고 있다. 오늘의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사랑의 근원’인 아가페의 사랑이기 때문이다.       하늘은/산 너머 있는 것을/보라고 일러 준다//그 말이/너무도 어려워/깨닫지를 못한다//가보지 않았기에/그 곳을 상상할 수가 없다//하늘은/또다시산 너머 있는 것을/보라고 일러 준다//이제야/그 말의 의미를/조금씩 깨닫는 오늘이다 -「하늘의 사랑」의 전문     이 시에서는 ‘하늘’은 하나님을 상징하고, 하나님에 대한 화자의 깨달음을 표현했다. 첫연은 하나님의 ‘가르침’이다. 그 가르침은 “보라고 일러 준다”는 구절처럼 하나님의 사랑에서 비롯됨을 보여 준다. 제2연과 제3연은 첫 연의 가르침에 대한 깨닫지 못한 상황이다. 제4연은 하나님의 끝없는 사랑에 의한 가르침이다. 하나님은 그대로 방치해 두지 않고 또다시 가르쳐 주고, 제5연에서 이제야 깨닫는 것이다. 첫 연에서 “산 너머 있는 것을”이란 구절은 한마디로 ‘하나님의 세계’를 말한다. 화자가 위치한 바로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산 너머’란 장소를 지칭한 것은 ‘산’이 주는 신비스러움으로 ‘산 너머’를 신비스럽게 격상시켜 준다. 그 ‘산 너머’에는 하나님이 계신 곳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산 너머 있는 것을/보라고 일러 준다”란 구절은 제1연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연유한 가르침이다. 제2연과 3연은 결과이다. “그 말이/너무도 어려워/깨닫지를 못한다”(제2연)거나, “가보지 않았기에/그 곳을 상상할 수가 없다”(제3연)고 하나님을 향한 초보적인 신앙을 표현한 것이다.    행복한 삶을 위한 하나님의 축복   기독교인의 행복한 삶은 일반적으로 의에 대한 보상으로써 하나님의 축복과 함께 주어지는 즐겁고 복된 상태를 가리킨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으로 몸과 마음이 흐뭇하고 만족하여 부족이나 불만이 없는 삶이다. 성경에서 행복을 얻을 수 있는 조건은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를 지키는 것으로 나와 있다     다음의 시는 행복주의적인 삶을 볼수 있다. 행동과 행위에 의해 성취되는 삶이며, 윤리적 목적 및 궁극적 목표가 행복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대 앞에서/오늘의 무릎을 꿇는다/세상의 눈을 감고/세상의 귀를 닫고/빛의 음성을 듣는다//그의 앞에서/오늘의 무릎을 꿇는다/빛의 눈을 뜨고/빛의 귀를 열고/빛의 옷을 입는다.  - 「그대 곁에서」의 전문     이 시에서의 ‘그대’는 하나님을 가르킨다. 첫 연의 ‘빛’과 제2연의 ‘빛’의 의미가 다르다. 첫 연의 ‘빛’은 하나님을 지칭하고, 제2연의 ‘빛’은 화자의 ‘신앙’을 의미한다. 화자는 신앙적인 삶 속에서 행위의 옳고 그름의 판단기준을 신앙에 두고 실행하고 있다. 그것은 행복주의 자의 삶이다. 첫 연에서 하나님 앞에서 무릎을 꿇는 것이나, 세상의 눈을 감고 귀를 닫는 것,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다. 그리고 둘째 연에서 그대 앞에서 무릎을 꿇거나, 신앙의 눈을 뜨고 귀를 여는 것, 신앙의 옷을 입는 것이다.    어머니·아버지의 삶 속에 나타난 사랑   ‘어머니’와 ‘아버지’에 대한 시들은 ‘사랑’으로 귀결되고 있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삶, 그 자체가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고, 그것은 사랑에 연유한 것임을 보여 준다. 그 사랑은 아가페의 사랑임을 보여 준다.      「어머니의 하루」란 시는 어머니의 일상적인 삶을 간결하게 형상화했다. 오직 가족을 위한 삶이었음을 보여 준다. “차가운 하루의 문을 열고”란 구절의 ‘차가운 하루’는 어머니가 살아가고 있는 삶의 현장을 함축했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한 삶이다. 또한 “우리의 밭을 일구셨다”란 구절의 ‘우리’란 화자를 비롯한 가족을 의미하고, ‘밭’은 가족이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이다. 그리고 어머니는 “때로는 비바람이 되고”나, “때로는 햇빛이 되어”서 가족이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인 ‘밭’을 일구신 것이다. 이 ‘비바람’과 ‘햇빛’은 어머니의 희생에 대한 표현이다. 화자는 이러한 어머니의 사랑에 대한 희생을 떠올리는 오늘이다. “어머니의 의자에 앉아”란 구절은, 어머니의 삶을 돌아보고 있음을 보여 준다.      「아버지의 무게」란 시는 가정을 위한 아버지의 삶을 형상화했다. 아버지의 삶을 ‘무게’로 표현했다. 무거울수록 힘든 생활임을 보여 준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부터는 아버지가 가장(家長)이 되고, 가정을 이끌어 가기 때문에 아버지의 무게는 무거울 수밖에 없다. “세상의 세찬 비바람에”란 구절로 집약된 삶에 대한 어려운 환경이고, 그 어려움은 “쌓이고 쌓인 아픔의 세월”인 것이다. 그래서 밤마다 가족들 몰래 눈물을 흘린다. 주위 환경으로 인해 “날마다 무게를 더하고”란 구절을 반복함으로써, 가족을 위한 아버지의 삶을 극대화시켰다.   
    • 출판/문화
    • 문학
    2022-09-16
  • 기독교사상, 「한국사회의 빈곤」 특집
        <기독교사상>, 노인빈곤 문제와 교회가 감당해야 하는 사회적 책임을 제시 <창조문예>는 임원식시인 연구, <신앙계>는 이영훈목사의 조용기목사 추모글 <월간목회>, 가스라이팅과 그루밍을 분간할 건강한 비판의식 지녀야     9월호 기독교잡지들이 발행됐다. <기독교사상>은 「한국사회의 빈곤」, 그리고 <월간목회>는 「가스라이팅과 그루밍」이란 특집을 기획했다. <신앙계>는 여의도순복음교회 원로목사였던 고 조용기목사의 1주기 특집기사가 게재됐다. <창조문예>는 임원식시인의 대표작과 연보, 「나의 문학 나의 신앙」 등을 특집으로 실었다.   <기독교사상>은 「한국사회의 빈곤」이란 특집에서 한국사회의 불평등과 사회문제를 조명했다. 황정훈박사(호서대)는 소득불균형 현황을 자료에 근거하여 살펴본 후 그에 따른 개선 방안을 제안했다. 대안으로 민간복지체계를 강조하며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지역의 복지공동체 활성화를 제안했다. 특히 교회 공동체가 지방자치단체 및 지역 의료기관과 연계해 다양한 복지 서비스를 제공할 것을 당부했다.   성영태교수(계명대)는 노인빈곤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뤘다. 이에 실태와 원인을 다방면으로 살펴보고 그에 맞는 해결책을 제시했다. 국민연금의 사각지대 개선하는 시스템 구축 등을 권하고, 장기적 저성장에 돌입한 한국 경제의 심각성을 경고하면서 노인빈곤 문제 해결의 당위를 알렸다.   원용철목사(벧엘의집)는 노숙인 문제를 조명하며 노숙인을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의 변화를 촉구했다. 노숙인은 개인의 능력 문제가 아닌 사회구조적 결과로 나타나는 현상이므로, 이에 따른 사회 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월간목회>는 최근 타인의 마음을 지배함으로써 일어나는 범죄들이 사회적 이슈에 집중했다. 이를 ‘가스라이팅과 이단’, ‘그루밍과 목회’, ‘그루밍과 이단’이란 세부적 측면에서 살펴봤다.   탁지일소장(국제종교문제연구소)은 이단 관련 사회적 사건들의 경우, 가스라이팅 범죄가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말한다. 코로나19와 함께 온라인 활동이 생활화되면서 이를 포교와 영향력 강화의 호기로 생각하는 온라인 이단들이 경쟁적으로 사이버공간으로 뛰어들고 있음을 경계한다.   박성철소장(밀알디아코니아연구소)는 종교 중독이 종교의 형식적인 요소, 즉 종교행위, 종교집단, 종교지도자 등에 통제력을 상실할 정도로 강박적으로 집착하는 현상을 의미한다고 설명한다. 교회 지도자에 대한 맹신과 종교적 권위에 대한 무비판적인 복종이라는 종교 중독 현상이 종교적 위계나 권력이 남용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조믿음목사(바른미디어 대표)는 사이비 종교 신앙은 그릇된 가르침의 일방적 주입에 의한 결과이며, 그 결과의 배경에는 주변 환경을 이용한 길들이기, 즉 그루밍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이를 구별해낼 건강한 비판의식이 필요하다고 권면한다.     <신앙계>는 이영훈목사(여의도순복음교회)가 조용기목사를 추모하며 「메울 수 없는 조용기 목사님의 빈자리」란 제목으로 추모의 글을 기고했고 조용기목사의 마지막 설교도 함께 수록됐다.   또한 기획연재로 「우리가 잘 몰랐던 조용기목사님 이야기」가 시리즈로 연재 중이다. 「풀꽃」의 나태주 시인, 미스코리아 한의사인 김소형한의사의 건강칼럼, 노숙인자활쉼터 「소중한 사람들」을 운영하고 있는 유정옥사모, 통일을 준비하는 탈북민 이야기 등이 연재 중이다.   이밖에 비타민C박사 이왕재교수, 목회데이터연구소 지용근대표, 소설가 김성일장로의 간증, <연탄길>의 이철환작가 등의 글도 만나볼 수 있다. 그리고 책 후반부에 「일대일 소그룹모임 교재」가 제공된다. 이는 개 교회에서 구역 공과로 활용하거나 가정예배와 묵상에도 적용할 수 있도록 꾸며졌다.       <창조문예>는 특집으로 작가연구 서른여섯 번째로 임원식시인의 대표작 「나를 부르는 소리」 외 9편과 연보, 「나의 문학 나의 신앙」, 염창권시인의 「사랑을 향한 궁구, 혹은 그 변증법적 응답」을 수록했다. 이달의 시 총 14편도 실렸다. 신작시 다섯 편으로 홍금자시인과 허형만시인, 이현애시인과 엄창섭시인의 시가 실렸다. 젊은 작가의 작품 속에 나타난 언어 산책(1)으로 김다은작가의 「젠가」가 수록됐다.    현대소설과 한국사회의 문화(3)에는 김인경작가의 「이 시대 여성에 대한 몇 가지 접근」이 실렸고, 자연과 인간, 그리고 회복의 삶 마지막회로 박정미수필가의 「녹음 속에 깃든 시간의 차이」가 게재됐다. 
    • 출판/문화
    • 출판
    2022-08-30
  • 4일, 샹떼자듀 합창단 모차르트 연주
        ◇샹떼자듀 합창단은 아트센터인천에서 우크라이나를 위한 「2022 기획 연주회 모차르트 레퀴엠」을 공연한다.     재한 우크라이나인과 주한대사 초청해 모차르트 레퀴엠 연주 자유·평화향한 연주로 ‘전 인류적 연대’의 초석 마련을 기대     샹떼자듀 합창단(음악감독=김혜옥·사진)은 우크라이나를 위한 「2022 기획 연주회 모차르트 레퀴엠」을 4일 아트센터인천에서 공연한다. 이번 공연은 전쟁 중에 있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을 위로하기 위해 마련됐다. 주한 우크라이나 대사인 드미트로 포노마렌코를 비롯한 대사관 관계자들과, 재한 우크라이나인들을 초청해 모차르트의 레퀴엠을 통해 희망과 치유의 메시지를 함께 나눈다.   이번 공연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1756-1791)의 「레퀴엠」을 포함해, 「거룩한 성체」, 「환호하라, 기뻐하라」 등 고전시대 대표 작곡가 모차르트의 다양한 작품들의 공연 및 합창을 선보인다.   대표 프로그램인 「레퀴엠(Requiem, KV 626)」은 모차르트의 유작이다. 많은 음악인들에게 걸작으로 평가 받는 이 곡은 1791년 모차르트가 작곡을 하던 도중 세상을 떠나 미완성으로 남게 됐다. 그의 죽음 이후 모차르트의 제자인 쥐스마이어(1766~1803)가 뒤를 이어 최종적으로 작품을 완성했다.   레퀴엠은 ‘안식’을 의미하는 단어로, 이는 음악사에 있어 하나의 장르를 가리킨다. 안식이란의미에서 알 수 있듯, 레퀴엠은 죽은 이를 위로하기 위한 미사에 사용되던 기도문에 음악을 더한 ‘진혼곡’이다. 수많은 작곡가들의 레퀴엠이 존재하지만 그 중에 특히 모차르트의 레퀴엠은 그가 죽음을 직면하고 있었던 상황에서 정제되고 성숙해진 그의 음악성이 깊게 밴 작품이다. 장엄한 분위기의 합창과 간헐적으로 등장하는 유려한 4중창의 조화가 죽음의 절망 가운데서 피어나는 진정한 안식의 소망을 표현한다.   또한 「거룩한 성체(Ave Verum Corpus, KV 618)」는 모차르트의 종교음악 중 대중들에게 친숙한 곡 중 하나로, 혼성 4부의 짧고 간결한 작품이다. 가사 내용은 인간의 죄를 용서하기 위해 십자가를 져야만 했던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기억하며 경배하는 내용이다.   마지막으로, 협주곡이지만 오늘날 소프라노를 위한 곡으로 많이 연주되는 「환호하라, 기뻐하라(Exsultate Jubilate, KV 165)」는 1773년 모차르트가 밀라노를 여행하던 중 작곡된 곡이다. 신을 찬양하는 영혼의 기쁨을 기교적인 장식으로 표현하며, 특히 4악장이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지휘자인 김혜옥음악감독은 “음악을 통해 이웃에게 치유와 회복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은 음악인의 사명이다”며, “따뜻한 마음을 가진 젊은 음악가들이 만드는 이번 공연이 관객들에게 울림이 있는 연주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이어 “이번 연주회가 전쟁으로 고통받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에게는 희망과 소망이 되고, 전 세계에는 자유와 평화를 향한 전 인류적 연대의 초석이 되길 바란다”며 관객과 함께 뜻깊은 음악회를 만들어 갈 것임을 강조했다.   끝으로 동 단체는 “한국뿐 아니라 글로벌 사회와의 공통의 코드를 만들어 나가 우리의 음악으로 하나 되는 세상을 꿈꾸며, 무엇보다 찬양을 통해 하나님의 이름을 높여드리는 귀한 합창단이 되길 소망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이번 음악회의 모든 수익은 우크라이나 전쟁난민 지원과 전후복구를 위해 주한 우크라이나 대사관에 전액 기부될 예정이다. 재한 우크라이나인에게는 공연을 무료로 제공한다.   한편 ‘주님을 찬양하라’란 의미의 샹떼자듀 합창단은 김혜옥감독을 중심으로 성악, 기악, 작곡, 합창지휘 등 다양한 음악적 배경을 지닌 젊은이들이 모인 문화예술단체이다. 르네상스, 바로크, 고전, 낭만 시대 작품을 연구·토론해 콘서트로 선보인다. 바흐의 요한 수난곡, 크리스마스 칸타타와 같이 널리 알려진 합창 작품뿐 아니라, 근현대 창작 합창 연주를 통해 활동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2019년 유럽 순회 프로젝트를 비롯해,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등 7개 유럽국과 미국, 일본 등지에서 초청공연 및 유수 합창단과의 협연을 진행한 이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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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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