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한의 단편 〈바비도〉
화형에 처해진 독실한 기독 청년
김성한의 단편소설 〈바비도〉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하겠다. 1953년 장준하씨가 창간한 〈사상계〉 잡지에 발표되었던 〈바비도〉(1956)는 그 〈사상계〉지가 작가 김성한에게 제1회 동인문학상(1956)을 안겨준 작품이었다. 그만큼 문학계의 관심의 표적이 되었던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단편 역사소설 〈바비도〉는 15세기 초엽의 영국이 그 배경으로 되어 있는데, 이때의 영국 왕은 헨리4세였다. 그는 1399년 사촌형인 상왕 리처드2세를 쿠데타로 몰아내고 왕위를 찬탈한 악명 높은 임금이었다. 그는 왕좌에 오른 2년 뒤에 ‘이단분형령’(1401)이란 것을 통과시켰다.
기독교의 이단자들을 골라내어 불에 태워 죽여 버리라는 무서운 법령이었다. 1407년 이후엔 개혁자 위클리프의 영역 복음서 독회를 금지하였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바비도는 1410년 이런 조치에 의해 ‘이단 분형령’에 따라 화형을 당하게 된, 재봉직공 신분의 독실한 기독 청년이다. 그가 생각해 볼 때 소위 종교지도자들은 별 못된 일을 저지르고서도 아무 탈 없이 지내면서도 평신도들에게는 이래서는 안 된다, 이 일은 할 수 없다.
또는 이 사람을 추종해서는 안 된다느니 하는 번다한 규제들이 그들의 목을 조르는 것을 견디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종교지도자들과 세속권력자들이 합세하여 평신도들의 신앙생활을 규제하는 일에 대하여 저항하기 시작했다.
당시 종교지도자들의 행태가 어느 정도였는지는 다음 사실을 보아서도 쉽게 알 수 있다.
기독교계가 분열하여 교황청이 원래의 로마에도 있고, 또 새로 아비뇽이란 곳에도 세워졌다. 교황청이 두 군데나 있었다는 것은 그곳을 다스리는 교황이 각기 따로 있었다는 뜻이 된다. 교황이 둘이나 되는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1409년 피사종교회의에서 두 교황들의 신분을 박탈하고 새로운 제3의 교황을 선출했다.
그러나 앞서의 두 교황들이 그들의 자리를 절대 물러나려고 하지 않았으므로 이젠 교황이 셋으로 불어난 결과만을 초래하고 말았다.
이런 부조리한 현실을 보고 있었던 독실한 기독 청년 바비도가 기성 교회의 권위를 인정할 리 만무하고 또 그들의 지시를 고분고분 따를 리 만무했다. 그래서 그는 무슨 법이 만들어졌든 말든, 무슨 구실을 대어서 자기들을 규제하려고 하든 말든 자기의 신앙 노선만을 굳게 지키려고 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저런 법 때문에 제 신앙노선을 쉽게 버리는 것을 보면서도 자기는 결코 그럴 수 없다고 굳게 다짐하였다.
그 결과 그는 구속되어 재판에 회부되었다. 그는 재판을 앞두고 이것저것 따져 보았으나 자기는 역부족일 뿐이라 생각되었다. 위로 교황부터 아래로 사제에 이르기까지 거대한 조직체가 자기를 억누르고 목을 조르는 위압감을 느꼈다. 로마교회 전체와 일개 재봉직공과는 너무나 큰 대조가 아닐 수 없었다.
종교재판정에서 사교가 심문을 시작했다. “밤이면 몰래 영역복음서를 읽었다지? 무슨 마귀의 장난으로 영어복음서를 읽구 듣구 했지? 한마디 회개한다고 말할 수는 없느냐?” 무슨 물음에도 바비도는 사교의 뜻과는 반하는 말만 해댔다. 구제불능이라고 판단한 사교는 그에게 분형에 처하는 판결을 내리고, 그는 스미스필드 사형장으로 옮겨졌다. 헨리 태자가 나타나 그를 회유해 보았지만 그는 요지부동이었다.
바비도는 결국 한 줌의 재로 화해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그는 가장 훌륭한, 순교자의 모범을 보여준 인물이 아니었을까?
/문학평론가, 조선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