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김병로의 장편소설 〈산촌의 소리〉를 읽고 나서 필자는 G. 타이센의 〈갈릴래아 사람의 그림자〉라는 소설을 떠올리게 되었다.
전혀 이질적인 것 같은 이 두 작품들을 서로 연관시켜 생각하게 된 것은 독일 신학자 타이센이 그의 신학적 연구 결과를 소설로 형상화했듯이 우리 목회자 김병로도 그의 목회 체험을 같은 소설로 형상화했기 때문이다.
타이센은 그의 소설을 통해 예수 시대의 사회정치적 배경을 적나라하게 그려냈는데, 예수 시대에 관한 오랜 연구를 거친 사람이 아니고서는 쓸 수 없는 그런 소설을 그가 써 냈던 것이다. 그 원리가 서로 비슷한 것으로 보인다.
오랫동안의 목회 경험을 쌓은 사람이 아니고서는 결코 써 내기 힘든 작품을 김병로 작가는 그의 나이 회갑을 넘긴 때 써낼 수 있었다.
그의 노련한 목회 경험에 의해 수집된 각종의 소재(또는 에피소드)들이 이 작품 속에는 허다히 담겨 있다. 그리고 그런 소재들은 생경한 자료들로 나열돼있지 않고 살아 움직이는 것으로 실감 있게 묘사되어 있다.
기독교 실천문학 작품답게 등장인물의 실천적 삶의 모습이 생생하게(사실적으로) 그려질 수 있었던 것은 작가의 오랜 목회체험이 그대로 반영된 결과이리라. 소설 작품 속에서 ‘묘사’가 큰 구실을 한다는 것은 확실하지만 엄밀한 의미의 묘사(‘보여주기’showing) 같은 것은 이 작품 속에는 나타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서간체 소설의 형식이므로 단순한 서술(‘말하기’telling)이 있을 뿐이다.
서술 일변도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의 경지가 거의 묘사의 수준으로까지 독자에게 인식되고 있는 것의 근원은 아무래도 작가의 실제적 체험의 반영이라는 특성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소설에서는 성직자이건 평신도이건, 사이비 그리스도인은 모두 작가의 준엄한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고태삼 목사나 한용범 장로 같은 분들이 그 대표적인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용범 장로를 위시해서 장도환 장로, 김상수 장로와 같이 그들은 후에 대부분이 회개하고 새사람으로 변화된다. 특히 한 회장(한 장로)의 변화된 모습은 놀랄 만한 정도이다. 그리스도의 은총이 아니고서는 가히 이런 변화가 일어나기는 힘들 것이다.
특히 이 작품의 마지막은 한국 교회의 한 치부라고도 할 수 있는 성직자들의 노년 결혼에 대하여 신랄한 비판을 가하고 있어서 독자들의 흥미를 자아내고 있다. 이런 장면 설정은 이 작품의 초반에 이미 설정해 놓은 처녀 여전도사들의 독신 생활 중도 포기에 대한 풍자와 수미상응(首尾相應)한 구성법으로 주목할 만하다고 하겠다.
신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민 교수(목사)의 이야기를 통하여 작가는 한국교회의 병폐 한 가지를 고발하고 있다. 그러나 민 목사(교수) 자신은 이런 교계의 치부에 자기가 한 사건을 더 보태 줄지도 모를 ‘성직자의 노년 결혼’에 대하여 스스로 회개(포기)하고 결연히 제 길을 찾아 떨쳐나서는 것이다. 민 목사의 ‘마음 비우기’ 결단에 우리의 머리가 수그러지지 않을 수 없다.
작품의 마지막은 주인공 송상희 전도사가 몸담고 있는 기도원의 공석 중인 원장 자리를 그녀 자신이 취하지 않고 선배인 하 전도사에게 양보하기 위해 편지를 띄우는 것으로 끝나지만, 짐작건대 하 전도사 역시 그 청을 흔쾌히 수락할 것으로는 예상되지 않는다. 그리스도인들의 ‘바른 마음가짐’이 이 작품 속에서는 크게 강조되고 있다. /문학평론가, 조선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