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의 의 문제점을 말한다. (2)
바리톤 고성진교수의 예배음악 7-2
지난주에 이어 <새통일찬송가>의 문제점을 지적해 보겠다.
둘째, 찬송을 목적하여 작곡되지 않은 곡이 너무 많다는 점이다.
54장 ‘주여 복을 구하오니’와 곡조가 같은 96장 ‘예수님은 누구신가’-이곡은 프랑스의 철학자 루소가 작곡하였는데, 그는 무신론자였다. 이곡은 아이들이 부르는 "주먹 쥐고 손을 펴서"인데 단지 부르기 쉽다고 가사만 바꾸어 부른 것 이다. 또 64장 ‘기뻐하며 경배하세’와 605장 ‘오늘모여 찬송함은’은 베토벤의 교향곡 9번(합창)에 나오는 ‘환희의 송가’를 가사만 바꾸어 부른 것이다. 그리고 210장 ‘시온성과 같은 교회’도 하이든이 작곡한 오스트리아 국가이다. 아마 그 나라 사람들은 우리가 그들의 식민지이거나 자기를 환영해 준다고 생각 할 것이다. 549장 ‘내 주여 뜻대로’는 독일 작곡가 베버의 오페라 ‘마탄의 사수’ 서곡에 나오는 멜로디에 찬송 가사만 붙여 부른 것이다. 이렇듯 아무런 문제 제기나 이의 없이 지금까지 불려 져오고 있는 현상은 초창기 찬송가의 전래 과정에서의 영향이 절대적이지만, 교회음악의 무지와 무관심, 경배와 찬송 보다는 말씀 위주로 드려지는 예배와도 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셋째, <찬송가 마지막 가사 끝에 있는 ‘아멘’에 관하여>이다.
찬송가의 학문적 측면에서 말하면 가사 내용이 성삼위 하나님께로 향하여 말하는 내용-즉 ‘찬송’이라면 ‘아멘’을 하고 하나님 외에 우리 인간이든 피조물들을 향하여 말하는 내용 즉 ‘복음성가’라고 하면 ‘아멘’을 하지 않아야 한다. 찬송가책의 1장부터 50장까지는 예배에 많이 사용되는 찬송가이지만, 2장의 ‘영광을 돌리세’, 3장의 ‘영광을 돌려보내세’, 5장의 ‘찬송하세’,등 이러한 노랫말 가사는 찬송이 아니고 복음성가로 보아야한다. 엄격하게 적용하면 이러한 찬송에는 ‘아멘’을 하지 않아야 한다. 369장 ‘죄 짐 맡은 우리 구주’에서는 주님을 친구로 말한다. 친구는 수평적으로 동등한 관계이다. 이런 노랫말 가사에는 ‘아멘’을 하지 않아야한다. 이렇듯이 ‘아멘’이 ‘붙이고 안 붙이고’에는 기준이 있는데 우리 찬송가에는 기준이 없어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찬송가는 작곡 할 때부터 아멘 코드를 작곡하기도 하지만, 후에 찬송가학 기준으로 아멘 코드를 붙이게 된다. 64장 ‘기뻐하며 경배하세’의 끝에는 ‘아멘’이 있다. 이 찬송 작곡가는 베토벤이다. 베토벤이 아멘 코드 작곡 하지 않았다. 진정 이것만은 유념해야 한다. 노랫말 가사가 성삼위 하나님께로 향하여 말하는 찬송은 ‘아멘’을 하고 그 외의 찬송가는 ‘아멘’을 하지 않아야한다./한서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