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받은 심령들을 보듬는 시골교회 교역자 -박혜원의
한국 기독교소설 산책(10)-임영천
고 박혜원 작가의 문단 데뷔작 <구만리 하늘>(2002)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이 단편소설은 강원도가 그 지역적 배경으로 되어 있다. 강원도 정선의 나전 마을에 세워진 한 시골교회에 새로 부임한 젊은 전도사가 신앙적으로, 또는 정신적으로 성장해 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는 이 소설은 단순한 내세지향적·보수적 신앙이 아닌, 하나님나라 지향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신앙에 새로이 눈을 떠가는 한 젊은 교역자의, 삶의 성장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는 데에서 2천 년대에 나온 기독교소설 가운데서는 보기 드문 작품이라고 할 만하다.
아직 목사 안수조차 받지 못한 전도사 신분에 머물러 있기는 하지만 이 작품의 주인공 건주는 상당한 영향력을 지금 그 지역 교회에 끼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그가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강원도 정선의 나전 주민들을 대상으로 목회하고 있는, 아직도 총각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교회 전도사 건주는 그 마을 교회에 부임한 후, 아직 음주의 타성을 버리지도 못한 처지였는데, 당시 그의 음주 사실을 안 그 교회 성가대의 이은희 반주자가 "말도 안 돼. 진짜 전도사 맞아요?"란 질문을 그에게 던졌으며, 또 이런 비판도 그에게 가해 건주를 곤혹스럽게 만든다. "그렇잖아도 전도사님의 설교에는 예수님을 향한 경외심이 빠져 있어요. 항상 조심하셔야 한다구요."
그런가 하면, 그로 하여금 신학 공부를 하게 한 그의 절친한 친구, 한의사 영빈이 그에게 각별한 충고를 한 일까지 있었다. 목사의 아들이기도 한 영빈이 그에게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힘들면 기도해라. 기왕지사 택한 길, 의심 없이 하나님을 받아들이면 안 되겠니? 자신의 맹목적인 믿음이 없이는 전도란 불가능한 거야."
이처럼 교역자로서의 자신의 내적인 부실과 허약성도 문제이지만, 시골 교회가 지니고 있는 시무 조건의 취약성 또한 그의 근무 의욕을 떨어드리는 요인이 아닐 수 없다. 끝없는 교회보수 공사, 교회기둥 역할을 해야 할 황 집사의 간암말기 확진, 첫 아이의 죽음으로 실성한 강릉댁의 정신이상 증세, 이미 헌금했던 패물을 되돌려 달라는 신도가정 내 불신자의 강압적 자세, 거기에다 군청에서 지시한 경로행사를 교회가 대행해 달라는 면사무소 직원의 청탁… 등 그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일들이 폭주하고 있었다.
그러면 이런 속에서 그가 목회하는 그 시골 교회의 교세나 재정 상태는 어떠했던가. "겨우 스무 명을 웃도는 신도들 중, 그나마 반은 폐광으로 직업을 잃고는 날품팔이로 가난했고, 반은 아무 능력도 없는 노인들이었다. 그들은 한 달에 만 원의 헌금도 벅차 보였다." 그러나 이런 열악한 목회 여건 속에서도, 하루하루 그 나름의 믿음의 성장을 보이는 건주의 건강한 교역자 상은 다음의 인용문이 확실하게 보증해 주는 것 같다. "(그는) 이곳의 가난한 신도들을 놔두고는 세상 어디를 가도 마음이 편치 않을 것 같았다."
이 시골 교회는 이제야 처음으로 목회자다운 목회자를 맞이하게 될 모양이다. 자기 출세(?)를 위해 이 시골 교회를 무슨 정거장마냥 가벼이 거쳐 가는 그런 목회자가 아니라, 상처받은 심령들이 신음하고 있는 이곳에다 뿌리를 든든히 박고 일생[종신]의 목회사역에 투신하기를 마음 다짐하는 젊은 목회자 건주의 앞날에 하나님의 은총이 임할 것을 우리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 일을 위해 그에게는 이은희와 같은 그 고장 출신 '토박이 처녀'가 또한 배우자로서 절실히 요구되었다. 그녀는 이제 이 교회 목회자의 '비판적 조력자'가 되어 이 시골 교회공동체가 건전하게 성장하도록 열심히 그를 도와나갈 것이다.
/문학평론가, 조선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