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교자의 역설적인 ‘적극적 순교’ 자세(상) -서기원의 〈조선백자 마리아 상〉
임영천의 '한국기독교소설 산책' (12)
서기원 작가의 장편소설 〈조선백자 마리아 상〉(1979)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서기원(1930-2005)은 〈암사지도〉(1956)로 등단한 후 1961년 〈이 성숙한 밤의 포옹〉으로 당시 사상계사가 주는 동인문학상 후보상을 받으면서 활발한 창작활동을 벌여 〈혁명〉이나 〈왕조의 제단〉과 같은 장편소설들을 통해 작가 특유의 정치의식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그의 정치의식은 또 다른 작품 〈조선백자 마리아 상〉에 이르러서는 ‘정치권력과 종교’에 관한 방면으로 그 영역을 넓히게 되었다.
본고와 관련하여 우리가 특별히 관심 두어야 할 부분은 국가권력과 기독교회와의 상호 대립관계이다. 때의 고금과 양(洋)의 동서를 막론하고, 국가권력이 교회에 집요한 탄압을 가할 때에는 기독교 신자들 중에 부득불 배교자가 생길 수밖에 없고, 한편 자랑스러운 순교자도 구별되어 나타나는 법이다. 그런 후에는 이들 배교자와 순교자 그룹 사이에 벌어지는 갈등과 내분이 또한 수반될 수밖에 없다는 교훈도 그 대립의 실상이 우리에게 남겨 주었다고 본다.
이와 유사한 일들이 한국의 천주교 전래 과정에서도 벌어지고 있었다. 이벽과 이승훈 등의 전도 사업으로 인해 우리나라의 천주교는 싹이 튼 지 겨우 5년 만에 약 4천 명을 헤아리는 신도수로 증가하였다. 이들의 영향을 받고 입교한 신도들 가운데에는 권일신·권철신 형제와 정약전·정약용 형제들도 끼여 있었다. 그러나 이들 중의 어느 누구도 닥쳐오는 정치 파쟁의 와중에서 수난과 희생을 겪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역사적 결과만을 이야기하면 이승훈, 정약종이 참수 당했고 권철신, 이가환 등이 혹형으로 옥사했으며 정약용, 김범우 등은 지방으로 유배당했던 것이다(김범우는 거기서 곧 죽었다). 전라도 진산 땅의 윤지충과 권상연 등이 또한 앞서 참형되었었다.
이런 인물들이 살아 있었던 당시를 그 시대적 배경으로 하여 써진 서기원의 〈조선백자 마리아 상〉은, 그러나 그들이 거의 생존해 있는 상태로 작품이 대미를 장식하는 것으로 보아서는 ‘순교’의 문제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고자 하는 작가의 애초의 의도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자연히 이 작품이 관심을 기울이는 분야가 ‘배교’의 문제일 수밖에 없게 되었다고 하겠다.
아마도 초기 천주교 전래시의 박해 문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서기원의 이 소설은 일본 작가 엔도 슈사쿠의 〈침묵〉에 비견될 수 있겠다. 같은 기독교 역사소설로서 순교와 배교의 면에(그중에서도 특히 배교의 면에) 더욱 작가의 주안점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도 두 작품은 상호 유사성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두 작품이 독자에게 주는 감동의 비중에 있어서 서기원의 것이 슈사쿠의 것을 따라잡기엔 다소 부족하지 않나 느껴진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지나친 간결체 문장의 연속이 오히려 중후한 감동을 감쇄시키는 역효과를 내지 않았나 생각되며, 동시에 등장인물들에 대한 성격묘사가 단순히 대화에 의해서만 간접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마치 소설이 아닌 희곡을 읽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기까지 하는데, 그러나 그 희곡적 구성이 가져다주어야 할 성격묘사나 긴박감 조성을 이 소설은 별로 형성해 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이래저래 평면적 인물설정이 되어버리지 않았나 싶다.
또한 이 소설이 너무 대화 중심으로만 전개됨으로써 당시의 시대적 배경이 효과적인 지문의 서술을 통해 독자들에게 충분히 전달되지 못하는 약점도 지니고 있으므로(즉 너무 압축적인 표현을 씀으로써) 사건의 실상이 난삽함을 느끼게 해 주는 결점이 보인다고도 할 수 있다. /문학평론가, 조선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