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교자의 역설적인 ‘적극적 순교’ 자세(중)
-서기원의 〈조선백자 마리아 상〉
여러 약점들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우리의 한 문제작임에는 틀림이 없다고 보겠다. 배교와 인간구원의 문제, 신으로부터 버림받은 나약한 인간이 공동체 구성원들 상호간의 심리적 갈등과 대립의 문제를 어떻게 풀어 가야 할 것인가 하는 강한 질문을 던지는 농도 짙은 주제의식을 보여주고 있는 이 작품이 우리의 관심거리가 되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그리고 비록 이 작품이 순교와 배교의 문제, 특히 그중에서도 배교의 문제에 더 주안점을 두고 있는 작품이라고 할지라도 다음의 문제, 곧 배교자가 되지 않으려고 극한의 고통을 참아내는 교도들의 극단적인 수난 사례들 앞에서는 어느 누구도 결코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는 조선교회 최고위 성직자요 교주 격인 권일신 사교(司敎)와, 작품상 그저 안가(安哥)라고만 알려진 평신도 등의 경우에서 확인되는 사례이다.
권일신은 실학자였던 안정복(安鼎福)의 사위요, 그 자신이 신분상으로도 양반인 지체 높은 분이었지만 격화된 당쟁의 와중에서 부풀려진 사교(邪敎) 분쟁 때문에 불가피하게 금부에 자진 출두했다. 국문이 시작되었다. “천주교란 나라의 임금도 모르고 부모도 모르는 무지막지한 미신인데, 네 어찌 양반으로서 그 같은 사교를 신봉하느냐.” 또 이어졌다. “너는 제사를 지내고 있는지 바른 대로 대어라.” “천주교에선 제사를 금하고 있습니다.” “짐승이나 다름없는 해괴한 짓이로군.” 둘 사이에 설왕설래가 있은 후 아래와 같은 주문과 응답이 서로 교환되었다. “천주교를 버리겠다고 선언만 하면 사형은 면할 수 있을 게야.” “백 번 죽어도 배교는 못합니다.” 이제 상황은 극한의 지경으로 바뀌어졌다.
다음날엔 그가 형틀에 묶이고, 고문을 당할 채비가 되었다. 고문하는 것도 유쾌한 일이 아니니 여기서 굴복함이 어떠냐는 제안이 들어왔지만 권일신은 “천주님을 저버릴 수 없습니다.”라고 단칼에 잘랐다. 이에 지체 없는 명령이 떨어진다. “무릎을 쳐라.” 곧 아랫도리는 온통 붉게 물들고 살점들이 해어졌다. 그래도 안 되겠는지 “정강이를 쳐라.” 명한다. 곧 뼈가 허옇게 드러나고 두부(頭部) 경련 현상도 일어났다. “아직도 개심할 생각이 없느냐?” 권일신은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자 금부도사가 또다시 다른 말로 달래본다. 그러나 권일신은 답한다. “천주님의 명이 더 소중하니 죽는 길밖엔 없을까 합니다.” 결국 국왕이 그의 목숨만은 다치지 말라고 해서 그를 예산으로 귀양 보냈다고 한다.
안가(安哥)의 이야기는 더 처절하다. 그는 군월(軍月)에서 아홉 친구들과 함께 붙잡혀 왔다. 한 차례 고문을 받고 나자 일곱 명이 배교를 선언하고 말았다. 옥사(獄事)가 시작된 지 닷새째, 남은 둘 중의 하나로 그가 심문을 받고 있다. 천주를 버리면 죄를 묻지 않겠다는 회유가 들어왔다. 그러나 그의 대답은 “사또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겠소이다.” 식이었다. “저놈을 쳐라.”는 명령과 함께 그의 엎어진 벌거숭이 등허리로 무자비한 곤장 세례가 떨어졌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사또가 “안 되겠다. 주리를 틀라.”고 더 무서운 형벌을 명했다. 처절한 비명이 긴 여운을 남긴다. 처음 정채가 넘쳐흐르던 그의 용모는 나날이 초췌해져 갔다. 다음에도 “어서 끌어내다 매를 쳐라.”는 분부였다. 지속적으로 고문을 당하던 마지막 날 그는 더 이상 버티기가 힘들었던 모양이다. 들것에 실려 나온 안가가 장판(杖板) 위에 엎어져 사지가 붙들려 매어있다. 그런데 이번엔 단 한 방의 곤장에 온몸이 뒤틀리고 거품마저 뿜더니 경련을 일으키며 축 늘어지고 말았다. 그는 그렇게 순교했던 것이다.
/문학평론가, 조선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