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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최 선 행복칼럼-62

한 알의 밀알이 된 토머스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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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1.08.02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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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가 손에 들고 읽으며 묵상 할 수 있는 성경은 우연히 내려온 것이 절대 아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와 19세기 중, 하반기에 활동을 하였던 선교사들의 헌신과 순교의 희생이 있었기에 한국교회의 성도들이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카를 귀츨라프(Karl F. Gutzlaff, 1803-1851), 존 리빙스턴 네비우스(John Livingston Nevius, 1829-1893), 알렉산더 월리암슨(Alexander Williamson, 1829-1890), 로버트 저메인 토머스(Robert Jermain Thomas, 1840-1866), 존 로스(John Ross, 1842-1915) 등 선교사들의 헌신이 있었기에 성경이 국내에 들어 왔고 여러 번에 걸쳐 번역이 되어 지금까지 한국교회의 성도들이 예배와 신앙생활에서 진리의 말씀인 생명,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며 복음을 전하고 있는 것이다.

 

초대교부 터툴리안(Tertullian)<순교는 교회의 씨앗이다>, 신학자 데이비드 보쉬(David Bosch)<선교는 제물이다>라고 하였다. 오늘은 한 알의 밀알 된 한국 개신교 최초로 순교의 피를 흘렸던 토머스 선교사의 삶과 선교사역에 대하여 살펴보면서 그가 조선인을 얼마나 사랑했으며 영혼 구원을 위해 최후의 순간에도 성경을 전해 준 소중한 복음 전파의 삶에서 교훈을 얻고자 한다.

 

로버트 저메인 토머스(Robert Jermain Thomas, 1840-1866)184097일 영국 웨일즈 라드노주 라예다에서 회중교회(Congregation Church, Wales)의 사역자, 로버트 토마스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런던대학교 뉴대학(New College, London University)에서 신학을 전공하고 18635월에 졸업했다. 그 뒤 186364일에 고향인 하노버교회(Hanover Church)에서 목사안수(24)를 받았다. 청나라와 조선 선교에 뜻을 두고 런던선교회London Missionary Society, 倫敦傳道會)소속으로 중국선교사로 파송을 받아 상해 지역으로 18638월에 도착하여 부인과 함께 선교사역을 시작 하였다.

그러나 토마스 선교사는 조선 선교사역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된다. 몇 달 간의 여행 끝에 상하이에 도착한 토마스 선교사와 부인 케롤라인(Caroline)은 동료 선교사의 갑작스런 사망에 대한 소식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 후 토마스 선교사의 아내가 바이러스 감염으로 유산하였고 결국 병으로 죽음을 맞이했다. 너무나 큰 충격을 받은 토마스 선교사는 심적, 영적으로 고통에 잠기게 된다. 바로 이 때, 청나라 해상세관 통역으로 근무하던 조선인 가톨릭신자 두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하지만 그들은 묵주와 교리서만 가지고 있었지 성경은 없었다. 그래서 토머스 선교사는 1865년경에 조선에 성경이 필요함을 절실히 깨닫고 조선 선교를 결심하게 되었다.

 

그는 약 2개월 동안 한반도 서해안 지역 백령도, 연평도 등을 순회하는 동안 몇 백 권의 성경책을 나눠주면서 선교사역을 펼쳤다. 하지만 해상에서 폭풍우를 만나 표류하다가 겨우 목숨을 건지고 만주를 거쳐 청나라로 돌아갔다. 위와 같은 위험한 상황에서도 조선의 성경 보급과 영혼구원의 열정을 가지고 18651030일에 연평도로 다시 돌아와 선교를 하였다.

토머스 선교사는 1년 뒤 186689일에 미국 상선 제너럴 셔먼(General Sherman)호가 조선과의 무역을 열기 위해 안내자를 찾고 있던 중에 통역사의 신분으로 동승하고 2차 조선 선교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그 상선이 대동강을 타고 평양까지 가는 도중 조선 군대와 충돌로 인하여 무려 28일 이라는 짧지 않는 시일이 걸렸다. 그는 가는 곳마다 성경을 나눠주면서 <예수 믿으세요>라며 복음을 전하였다. 그러나 조선의 군대는 화공법으로 공격하여 제너럴 셔먼호를 화염에 휩싸이게 하였고 결국 침몰 시켰다. 당시 배와 함께 선원 23명 모두를 불로 참수하는 끔찍한 사건이 일어났다.

 

부인을 청나라에서 잃었음에도 선교의 열정을 안고 조선으로 향한 토머스 선교사는 예수를 외치면서 병졸 박춘권에게 성경을 던져 주고 이 땅에 한 알의 밀알이 되었다. 그의 나이 27세였다. 박춘권은 내가 오늘 서양사람 하나를 죽였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점이 있다. 내가 그를 찌르려고 할 때 그는 두 손을 마주잡고 무슨 말을 한 후에 웃으면서 책 한 권을 내밀며 받으라고 권했다. 결국 그를 죽이기는 했지만, 그 책을 받지 않을 수 없어서 가지고 왔다며 회고 했다. 성경을 받은 그는 예수를 믿고 장로가 되어 교회를 세웠다.

또한 박춘권의 조카 이영태는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 월리엄 레이놀즈(William Davis Reynolds, 1867-1951)의 조사가 되어 한국인 성경번역위원회의 한 사람으로 성경번역에 큰 공헌을 하였다. 뿐만 아니라 186692일경 제너럴 셔먼호 사건를 통해 성경을 읽고 예수를 만난 홍신길, 최치량, 김종권, 석종호, 김영섭 등은 한국 초대교회의 기초를 세우는 열매를 맺게 되었다.

 

이처럼 토머스 선교사의 피 흘림의 순교는 당시에는 열매가 없는 것처럼 보였으나 그의 희생은 성경책을 받은 사람들에 의하여 한국기독교 초대교회의 기둥과 뿌리가 되었던 점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성육신(incarnation)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한국 선교를 향한 토머스 선교사의 순교는 제물이 되어 선교의 열매요,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한국교회가 되었던 것이다.

지구촌 각 나라에 전파하는 선교사들의 소중한 사역은 영혼 구원을 위한 한 알의 밀알이 되어 복음의 터에 뿌려져서 썩어짐 같이 그의 삶과 선교사역은 한민족을 살리는 놀라운 결과를 맺게 되었고 지금 우리에게 큰 축복이 된 사실에 감사한다. 나의 사역이 현재는 가시적인 결과가 없다고 실망하거나 포기하지 말자. 미래를 향한 작은 초석은 반드시 아름다운 열매로 돌아온다는 것을 기억하며 사역의 현장에서 조금 더 힘을 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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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선(Ph.D., Th.D.)

smse21@hanmail.net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상담복지대학 사회복지학과 겸임교수

서울극동방송국(FM106.9MHZ)매주 수요일 오후 4시 30분 ‘5분 칼럼’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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