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자의 희생양(속죄양) 의식(1) -김은국의 〈순교자〉
임영천의 '한국 기독교소설 산책 (20)
순교 또는 배교의 문제는 문학의 영원한 주제가 아닌가 싶다. 이 문제를 주제로 삼아 쓴 소설들이 상당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가장 잘 알려진 외국의 작품들로는 아무래도 일본 작가 엔도 슈사쿠의 〈침묵〉, 〈위대한 몰락〉, 〈여자의 일생〉 등을 들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국내 작품으로는 서기원의 〈조선백자 마리아상〉과 김성일의 〈제국과 천국〉 등을 들 수 있을 것으로 보는데, 이 대열에 좀 애매한 위치로 서게 될 김은국의 〈순교자〉도 한 몫 끼게 될는지 모른다. 이 말은 〈순교자〉가 국내 작품으로 인정되기가 어려울지도 모른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 이유는 생존 시에 김은국 작가가 미국 국적을 가졌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김은국의 〈순교자〉는 국내 작품으로 거론하기도 애매하고, 그렇다고 외국(미국) 작품으로 치기도 석연찮은, 참으로 국적 미명의 작품으로 우리에게 인상 지어져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여기서 그(김 작가)를 제쳐놓고 한국 기독교소설을 운위하기가 매우 궁색하다는 이유로 그를 끌어안기로 한 것이다. 이유는 이렇다. 어떻든 그는 한국 혈통의 작가요, 한국인의 숨결과 정신이 강하게 느껴지는 그의 작품 세계, 그리고 한국적 배경을 떠나서 그의 소설 세계가 성립되기 어려웠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 등에 불가피하게 끌렸기 때문이다.
1964년에 나온 이 작품(원작)은 그 2년 뒤(1966)에 나온 일본 작가 엔도 슈사쿠의 〈침묵〉과 많은 면에서 비교되어야 할 점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교회가 극도의 정치적 탄압을 받게 될 때 거기서 순교와 배교의 문제가 발생하며, 자동적으로 순교자와 배교자의 출현도 있게 된다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초대교회 시절의 노바티아누스파와 도나투스파가 겪었던 일들이 이의 가장 고전적인 사례가 된다고 보겠지만, 그 후 교회의 역사에서 이런 일들은 무수히 반복됐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 순교와 배교의 문제를 공통적으로 다루었다는 면에서(만) 〈순교자〉와 〈침묵〉이 유사하다는 것은 아니다. 1960년대 중반에 나온 이 소설들은 그 공통의 주제, 곧 순교와 배교의 문제를 다루되 앞서 프랑스 문학에서 유행하던 일종의 ‘신 부재의 문학’, 또는 ‘신 침묵의 문학’이라고 할 수 있는 문학 정신에 기초하여 작품들을 생산해 냈다고 하는 면에서 두 작품은 상호 크게 유사한 데가 있다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학은 역시 당대에 유행하던 ‘신 부재(침묵)’의 사상이나 ‘신 죽음의 신학’이라고 할 기독교 신학운동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었다는 점에서 그런 유(類)의 문학 작품들이 다분히 종교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수긍하게 만든다고 하겠다. 슈사쿠의 작품 〈침묵〉은 그러니까 ‘신의 침묵’이라고 할 때의 그 ‘침묵’의 의미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게 아니라고 할 것이다.
그리고 김은국은 그의 〈순교자〉 속에서 주인공 신 목사의 입을 통하여, 전통적 사고방식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신성 모독적 발언을 해 대는 것이다. 말하자면 목사 신분인 사람에게서 저런 발언이 다 나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일반 독자들이 할 수밖에 없는 그런 치명적 발언을 해 댄다는 것이다. 이는 신 목사에 의해서 신은 인간의 영역에 개입할 수 있는 면적을 거의 잃어가는 대신, 그만큼 그 잃어진 자리를 ‘인간’ 스스로가 메꾸고 들어간다는 이야기가 될 수 있다. 신의 침묵의 시대에, 또는 신 부재(내지는 죽음)의 시대에 할 수 있는 인간의 일이란, 그 부재(또는 죽음)의 신의 영역을 인간 스스로 보완하고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신 목사는 그의 실천행위로써 보여주고 있다 할 것이다. 그 때문에 신 목사의 언어나 행동이 초월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조선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