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영적 거장들의 기도

클레르보 버나드(Bernard of Clairvaux)의 기도. 이우금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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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1.10.20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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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나드의 생애와 신학

 

버나드는 1090년 프랑스 디용에서 가까운 폰테인에 있는 부르건디안 백작 가문에서 태어났다. 버나드의 아버지 테셀링은 1차 십자군 원정에서 출정하여 전사했고, 버나드가 17세 되는 해 그의 어머니도 세상을 떠났다. 영적인 후원자인 경건한 어머니의 죽음으로 버나드는 큰 충격을 받았고, 그 이후부터 더욱 세속적인 관심에서 떠나 영적인 것을 추구하게 되었다. 21세 때 어느 시골의 작은 교회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는 체험을 후에 버나드는 평생 하나님을 위한 헌신의 삶을 살기로 다짐한다. 그의 친구 윌리엄((William of St. Thierry)은 버나드가 세상과 결별하고 수도사가 된 것은 육체의 시험들을 피하고 영적인 온전함을 구하기 위함이었다고 보고한다. 버나드는 당시 수도원 개혁의 중심지였던 시토 수도회(The Cistercian Order)1111년에 가입을 했고, 2년 뒤 23세의 젊은 청년 버나드는 30여 명의 주변의 사람들과 함께 시스터시안 교단의 첫 번째 수도원이었던 시토에 입교함으로 구도자의 삶을 시작했다. 이때 시토 수도원은 수도원의 갱신과 회복을 위해 베네딕토 수도원 정신에 입각한 엄격한 규칙과 원칙과 금욕적인 삶을 토대로 초기 수도원 운동의 회복을 되찾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었다. 1115년 시토 수도원장이었던 스테벤 하딩에 의해 버나드는 클레르보에 파견되어 자신을 따르는 수도사들과 함께 수도원(Clairvaux)을 열고 원장이 되었다. 이 수도원에 38년 동안 평생 머무르면서 68개의 시토 수도원을 유럽 곳곳에 설립했다. 버나드가 설립한 수도원은 기존의 수도원들이 수사만을 위한 구별된 방식을 추구한 흑의 수도사(black monks) 방식을 버리고, 일반 백성들까지 가르치기 위한 백의 수도사(white monks) 방법을 채택한다.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는 데 있어서 수도사들뿐 아니라 일반 백성들에게도 동일한 만남과 경험을 이루게 하는 것이 그의 목적이었다. 버나드는 일반 평민들을 수도원으로 불러 모아 이들을 훈련 시켰고, 그들로 클레르보 수도원 운동의 중심이 되게 하였다.

버나드는 수도원에 머물면서 개혁 운동을 그 안에서 펼쳤지만 동시에 수도원 밖에서 일어나는 여러 신학 논쟁들과 교황의 직무와 역할 그리고 교권 정치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개혁 등을 위해 노력하였고,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사랑에 관한 많은 글을 썼다. 그중에서 버나드의 아가서는 버나드 신앙의 총체라고 할 수 있다.

버나드의 신학은 그리스도 중심적이고, 사랑, 의지, 실천적 경건을 강조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속에 깊이 담고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에게 자신의 의지를 일치시키는 신비적 연합을 그 핵심으로 한다. 특히 성 버나드는 인간의 전적 타락, 오로지 이신칭의 등 중심신학의 내용에서 개신교 종교개혁과 거의 일치하는 신학을 가지고 있으므로 루터와 칼빈 같은 종교개혁자들의 흠모를 받았고, 그들의 신학적인 버나드의 신학을 많이 인용하였다.

 

. 기도는 하나님과 합일을 향한 갈망이다.

 

버나드는 인간에게 가장 가치 있는 일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의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았다(1:26). 영혼이 더 높이 올라가 그를 만드신 분을 기억하고 생각하며 사랑할 수 있는 것도 그의 모양 때문이다. 우리의 영혼 속에서 하나님을 닮은 삼위일체의 형상을 발견할 수 있다. 모든 정신은 하나님의 모양인데(likeness), 기억, 이해와 의지가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 대한 기억과 이해와 의지(사랑)가 그분을 반영하도록 모든 행동을 동기(근거, 기준) 지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교부의 전통에 따라 하나님의 형상과 하나님의 모양을 구별하는 버나드는 그의 저작 은혜와 자유 선택에 관하여(On Grace and Free Choice)에서 버나드는 인간의 타락에도 불구하고, ‘불가피한 것으로부터의 자유는 그 내용이 자연 영역에 속하는 한도 내에서는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는 자유 선택에서 자유의 의미를 의지와 연결한다. 자유란 이성적 판단 때문에 어떤 강압적 구속을 받지 않고 자신의 의지에 의하여 결정을 내리는 것으로 이해한다. 이러한 스스로의 의지에서 나오는 자유로운 결정은 피조물을 의롭게 하거나 불의하게 만들고 그 결과에 따라 행복이나 불행을 가질 수 있게 한다. 이런 의미에서 자유는 의지와 연결되고, ‘선택은 이성과 관련이 있다고 버나드는 말한다. 의지는 내재적인 자유의 성격으로 인하여 어떤 힘이나 필연에 의하여 그것으로부터 반대하거나 그것에도 불구하고 동의하도록 강요될 수 없다. 의지는 피조물을 의롭거나 불의하게 만들고, 행복이나 대가를 받을 수 있게 한다. 그 스스로가 의로움이나 불의에 동의하는 한에서 그렇게 된다. 모든 판단의 행위가 의존되어있는 자발적 동의를 자유 의지라고 정의한 것이다. ‘자유는 의지를 말하는 것이고, ‘선택은 이성을 말하는 것이다. 버나드는 인간이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하는 자발적인 결단을 내리는 이성과 의지를 말한 것이다. 그러나 비록 버나드는 그것이 자유라고는 하나 이 자유는 주님의 영이 있는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고후 3:17)”는 자유는 아니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인간이 스스로 자유 의지와 이성의 힘으로는 구원의 길에 들어갈 수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어떻게 하나님에 대한 기억과 이해와 의지(사랑)가 그분을 반영하도록 모든 행동을 동기(근거, 기준) 지어질 수 있는가?

그러므로 불완전한 자유 선택이라는 인간의 기능은 그 자체가 구원을 받아야 한다고 버나드는 말한다. 구원받아야 온전한 상태에 도달하여 구원을 포함한 모든 영역에서 원래의 하나님 모양이 회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는 이러한 회복의 과정을 구원의 수단이 되는 것이다. 자유 선택이라는 인간의 역할과 하나님의 은혜, 이 두 가지가 구원을 이룬다는 것이다.

버나드의 기본적 가르침은 오직 하나님의 사랑 만이 기억, 이해, 의지가 인간의 타락한 상태를 겸손하게 인식시키는 기억과 이해를 조명하고, 그리고 마침내는 모든 의지가 사랑으로 상승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향한 갈망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과의 의지의 합일이 궁극적인 목적이다. 그러므로 버나드의 합일은 존재론적 합일이 아니고 의지적 합일이다. 버나드는 사랑(사랑의 본성은 기도이다)을 통하여 기억과 이해, 의지가 하나님의 의지와 합일하는 목표를 향하여 나가는 것이 가장 가치 있는 일이라고 하였다.

 

. 기도는 사랑의 질서를 세워가는 것이다

 

버나드는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신 것이 사랑의 질서, 사랑의 순서라는 것을 요한일서 419절에 근거하여 주장한다. 회복의 근거를 하나님의 사랑과 인간의 응답에 두었다. 인간의 타락으로 인간 내면의 질서가 파괴되었으나 먼저 사랑하시는 그 사랑에 힘입어, 인간 내면의 질서를 찾으려고 갈망하고 그 질서 세우려고 부단히 기도하는 것이다. 질서는 타락으로 불완전하게 된 인간의 의지가 하나님의 의지에 온전히 하나 되는 것을 온 마음으로 구하는 헌신적인 순종을 말하는 것이다. 버나드는 인간 내면의 회복 과정을 기도와 연결하여 3단계로 설명하였다.

 

첫째, 1단계는 육체하고만 관계가 있는 단계로 동물적 단계이다. 감각에 의해서 지배받는 삶의 형태이다. 1단계의 성장은 완전한 순종에 의해서 육체에 대한 통제력을 얻어 육체가 복종하게 됨으로써 얻어진다. ‘감각적 상태에 있는 초보자는 그리스도의 풋내기 신병으로서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가까이하시도록 자신이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것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과 관계적 존재로서 인간의 창조와 형성, 생명에 대하여 알아야 한다. 영적인 초보자가 성숙에 도달하는 것은 순간적인 사건이 아니다. 일순간의 회심이나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과제가 아니다.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강이 그리스도 안에서 마음과 생각을 지키신다는 것은 중단하지 되지 않는 감사의 기도에서 비롯된다. 항상 성령의 기쁨 속에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계속해서 감사에 몰두하게 된다. 감각적 상태의 사람 속에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 생겨난 하나님 사랑은 성경을 읽은 것에 자라가고 묵상으로 양분을 삼으며, 기도 때문에 강해지고 밝아진다.

 

둘째, 2단계는 이성적 단계이다. 영적 상태로 나아가는 가운데 감각적인상태로부터 이성적인상태로 넘어가는 것은 완전한 실재를 향한 전진이 된다. ‘감각적인상태의 영적 진보에는 외면적인 사람이 미덕 추구를 위해 준비되도록 특별한 육체의 훈련이 요구되듯이 영적인 훈련이 필요하다. 죄와 타락의 영향으로 부정적인 관계에서 발생한 악한 감정(affection)이 긍정적인 감정으로 변화되어야 한다는 것을 이성적으로 이해하며 자각하며 감정의 질서를 잡아나가는 단계이다. 이러한 상태에서는 영혼의 호기심과 영혼의 분산 부패를 조심해야 한다. 지식으로 교만한 사상에 맛을 들여서는 이루어지지 않으며, 참 만족은 하나님께 있으며, 하나님의 길을 선택하는 것이 최우선이며, 하나님의 길을 사모해야 한다는 것을 안다. 가치의 기준이 실재이신 하나님께 있으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성적 선택의 기준틀을 세워나가는 단계이다. 하나님을 이성적으로 이해하며, 가장 뛰어난 존재를 향해 손을 벌리는 것이 인생의 목적인 것을 알게 된다. 이성적인 사람은 영적 질서 속에서 가장 높은 것 즉 하나님과 하나님께 속한 것을 향해 항상 자신이 발돋움하는 것을 사랑한다.

 

셋째, 3의 단계는 영적 단계이다. 의지가 사모하는 대상이 하나님이 될 때 소원의 범위와 그 대상을 사모하는 방식을 검토하게 된다. 하나님의 사랑의 질서, 하나님께서 베푸신 사랑을 마음속 깊이 깨닫게 되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우리의 기본적 소원이 된다. 하나님의 사랑이 영혼의 합당한 근거가 될 때, 인간의 기억, 이해, 의지는 하나님의 질서 안에서 주님의 영이 있는 곳에 자유가 있는 것이라고 했다. 사랑은 피조물이 창조주 하나님께 감각과 애정을 가지고 반응을 보일 수 있는 유일한 움직임이다. 그리스도로 인하여 하나님의 아들로 부르신 것과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신 것이 하나님의 실체적 사랑이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남았던 기억, 이해, 의지는 하나님 사랑의 실체인 그리스도를 닮고자 하는 열망을 가지게 되며, 성령은 인간의 연약함 속에서도 기도와 묵상 혹은 연구를 위해 사랑을 베푸신다. 성령에 의해 하나님께 몰두하거나 그분과 연합하는 것이 최상의 기쁨이 된다. 이때 생명의 영이신 성령은 사랑으로 성령의 임재를 깨닫게 하신다. 인간의 의지는 그 자체가 사랑이 되는 단계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의 의지가 하나님의 의지에 합일될 때 인간의 기억 속에 있던 감정들이 즉 지혜로운 감정이 되어 하나님의 선한 것을 마음으로 맛보아 알게 된다. 하나님과 연합된 자는 죄악으로 인해 마음속에 잠재되었던 두려움, 죄책감, 수치심, 소외감, 슬픔, 불안의 감정들이 치유되어 온 맘 다해 하나님의 사랑에 전인격적으로 응답하는 상태가 된다는 것이다.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그들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나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 함이라”(17:26) 하신 진리의 말씀을 그 마음을 둔 사람을 위한 것이며, 감정, 이해, 의지의 하나님을 향한 진보를 가리킨다. 하나님께로의 상승은 하나님의 뜻하시는 대로 인간이 뜻하는 것이 같아지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뜻하시는 것과 존재하는 것이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하나가 된다는 표현은 실재로는 표현될 수 없는 방식으로만 관찰될 수 있기 때문에, 이것을 체험하게 될 사람들은 자기 마음을 항상 청결하도록 기도와 묵상을 해야 한다. 버나드는 영적 단계의 청결에 관하여 만일 우리가 사랑받지 말아야 할 것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만일 우리가 더 사랑받아야 할 것을 더 사랑한다면, 사랑은 깨끗해질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러한 청결한 자의 상태를 버나드 아가서의 신랑을 향한 신부의 순수하고 다른 목적이 없는 전폭적인 사모함과 애정으로 이해한다.

 

. 버나드의 사랑과 마지막 기도

 

버나드는 사랑이라는 인간의 정서가 하나님 구원 안에서 어떻게 변화하는가를 영적이고, 심리적으로 분석하고, 묘사하였다. 인간의 내면에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형상이 기억(마음), 이해(생각), 의지로 남아있어, 하나님을 사랑의 대상으로 사랑할 수 있다. 그러나 죄의 습성으로 일그러진 기억, 이해, 의지는 오히려 교제의 걸림돌이 된다는 것이다. 기억(경험)에서 비롯된 우리의 감정은 마음의 습관을 형성해서 죄악 된 생각으로 이끌며, 결국 습관적 행동(잘못된 의지) 속으로 빠지게 하기 때문이다. 현대 심리학자들과 뇌과학자들은 삶에서 여러 가지 선택, 대인관계 방식,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 일상에서 느끼는 고통스러운 감정과 그 감정에 대한 반응양식 등이 모두 마음의 습관에서 비롯한다는 것을 입증하고 감정의 치유방법을 제안하고 있다. 버나드는 성령께서 우리의 감정의 근원이 될 때 하나님과 같은 의지로, 하나님의 사랑에 연합할 수 있으며, 영혼은 하나님과 합일할 수 있음을 가르친다. 그는 이러한 과정을 성화의 과정이며, 성화의 과정을 사랑의 교제로 해석한다. 하나님께서 즐거움의 기름으로 안수한 그리스도 안에 풍성한 은혜를 구할 때 넘치는 기쁨의 주입이 있고, 인간의 힘이 아닌 성령의 은혜로 하나님의 빛과 밝아진 마음이 하나님을 닮은 사랑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버나드의 사랑개념은 관계적이고, 창조적이고 실천적이다. 하나님의 자녀가 어떻게 마음을 지키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아울러 하나님께서 사랑하신 우리의 이웃을 사랑으로 볼 수 있는 생명력 있는 갱신된 관점을 제공해 준다. 그 증거로 그의 서거 800주년이 되는 1953년에 교황 피우스 12세로부터 진정한 생명을 주는 교부로, 감미로운 박사(Doctor Mellifluous)라고 경하 받았다. 버나드의 마지막 기도문에서 볼 수 있는 그의 끊임없는 하나님 사랑에 대한 사모함과 깨끗한 마음에서 나오는 사랑의 순종이 우리의 것이 된다면, 하나님과 같은 마음과 생각과 의지를 가진 자로 감미로운 오늘의 삶을 누리게 될 것이다. 진정한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는 자의 기쁨을 이웃에게 전달하는 행복자가 될 것이다.

 

마지막 버나드의 기도문

 

그리하온즉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창조주이신 당신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살고,

아버지의 지혜이시여,

당신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구속받아 지혜롭게

살도록 인도되며,

당신, 곧 우리 사랑의 대상이시며

감정의 근원이신 성령이여.

우리는 당신 안에 거하여 더욱

그 안에서 살기를 바라보나이다.

 

영원하신 삼위일체, 한 실체,

한 하나님이여,

그로부터 우리가 존재하고

그로 인해 우리가 존재하며,

그 안에 우리가 존재하는 이시여,

죄가 우리를 당신으로부터 멀리

떠나게 하고,

죄가 우리가 지닌 당신의 형상을

일그러뜨릴지라도,

우리가 멸망하는 것은 당신은 원하지

아니하십니다.

 

시작이신 당신께 돌아가고,

모범이신 당신을 따라가며,

우리를 화해시킨 은혜이신 당신께

경배하고,

찬송하오니,

당신께 영광이 세세 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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