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화 지향과 기독교 신비주의(3)-박계주의
임영천희 한국 기독교소설 산책
박계주의 <순애보>에 나타난 이용도의 기독교 사상을 알아보기 위해, 우선 이용도의 사상이 어떤 것인가에 대해서부터 간략하게 살펴보기로 한다. 일반적으로 논의되는 이용도 사상의 골자는 ‘고난의 신비주의’와 ‘사랑의 신비주의’이다. 먼저, 이용도의 신비주의의 특징은 ‘고난 받으시는 예수 신비주의’이다. 그의 신비주의의 목표는 십자가를 진 고난의 주를 몸소 체험하고 우리도 그리스도처럼 아픔을 체험함으로써 그리스도와 합일을 이루는 데 두고 있다.
이런 가르침을 그는 주로 요한복음을 통해 받고 있다. 예수께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말하기 시작하자 곧 그에게 죽음의 위협(고난)이 따르게 된다는 것이 요한복음의 독특한 내용 설정이라면, 예수의 고난은 숙명적이요 불가피한 것이며, 그런 예수의 고난의 길을 따라야 할 이용도나 다른 신도들의 고난도 숙명적일 수밖에 없다. 자연히 성 프란체스코처럼 가난을 거룩하게 보고 청빈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삶을 살았던 이용도는 예수의 가르침에 따른 실천적인 삶을 스스로 살았던 인물이었다고 하겠다. 이처럼 그의 고난의 신비주의 사상은 그의 그런 삶의 실천이란 방향으로 이어져 있었다.
다음 그의 고난의 신비주의는 동시에 ‘사랑의 신비주의’이기도 하다. 그에게 고난의 신비주의와 사랑의 신비주의는 불가분의 상호관계를 맺고 있는 표리일체의 관계라고 할 것이다. 이용도의 그리스도 사랑의 이해 기반에는 시무언(是無言)의 사랑, 곧 침묵의 사랑이 개입되어 있으니, 이는 곧 무차별적이며 무조건적인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구약의 아가서적 모티브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 그의 사랑의 신비주의는 그 열도가 역시 아가서의 한 구절인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다”는 정도만큼 강렬하다.
이용도의 신비주의에는 예수께서 그 중심에 있다. 이용도는 예수를 요한복음과 아가서에 기준하여 아픔(고난)과 사랑의 본질로서 이해하는 것이다. 이용도는 예수의 사랑의 지상 명령에 자기 자신을 굴복시켰지만, 그러나 그의 사랑의 신비주의는 어느 면에서 사랑의 무제약적인 면을 보이는 약점도 노출시키고 있는 게 사실이다. 국문학자 조동일이 <순애보>를 논하는 가운데 아래와 같은 해석을 내린 것이 보이는데, 이는 오히려 이용도의 기독교 사상을 이해함에 역으로 도움을 주는 것도 같다.
“주인공이 강간, 살인의 누명을 쓰게 한 원수를 너그럽게 용서하고 주인공이 사형언도를 받는다고 했다. 그런 무의미한 희생이 기독교 정신의 발로라고 하면서… 가치관의 혼란을 일으켰다.” 여기서, 물론 주인공의 그런 행위가 ‘무의미한 희생’일는지도 모르며, 어느 면에선 ‘가치관의 혼란’을 야기시켰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어떤 ‘기독교 정신’ 발로의 결과인 것만은 분명한데, 그 정신이 곧 이용도의 ‘사랑의 신비주의’인 것이다. 이렇게 설명할 때만 그 ‘사랑의 무제약적인 면’, 또는 주인공의 ‘소박한 무차별의 사랑’이 이해될 수 있다.
또한 국문학자 조동일은 이 작품이 “원수를 사랑한다는 기독교적인 사랑을 이광수 소설에서보다 더욱 강하게 역설했다.”라고 했는데, 여기 ‘이광수의 기독교적 사랑’보다 더욱 강하게 역설된 내용이란 것이 달리 말하면 곧 이용도의 ‘사랑의 신비주의’인 것이다. 이용도의 신비주의적인 사랑이 곧 이광수의 평범하고도 일반적인 사랑보다 더 강렬할 것은 당연하다. 이렇게 볼 때 평론가 홍정선이 “<순애보>의 사랑은 이광수 소설의 사랑을 그대로 베껴온 것”이란 요지로 말한 것이 실은 이용도의 신비주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이란 결론을 내릴 수 있게 한다.
/조선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