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9-11(수)

인간화 지향과 기독교 신비주의(4)-박계주의

임영천의 한국 기독교소설 산책

댓글 0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밴드
  • 페이스북
  • 트위터
  • 구글플러스
기사입력 : 2022.01.26 16:16
  • 프린터
  • 이메일
  • 스크랩
  • 글자크게
  • 글자작게


스크린샷 2021-04-22 오후 12.20.20.png

 

박계주의 <순애보>에 나타난 기독교 정신은 한마디로 말해 고난과 사랑의 정신이다. 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 상당수의 인물들이 사실상 극도의 아픔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그런 고통은 마치 예수께서 커다란 아픔(고난)에 처해 있으면서도 정작 장본인인 예수는 그 아픔을 통감하지 못하는 것과도 같은 그런 성격의 것일 뿐이다.

 

객관적인 위치에 있는 제삼자(독자)의 처지에서 보면 무척 고통스러울 위치에 놓여 있는 인물들이지만, 그러나 정작 그 장본인(등장인물)들은 신비스럽다고 할 정도로 ‘태연스러운’ 것이다. 이를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순애보>의 등장인물은 일종의 ‘이용도의 분신’의 성격을 띠고 있다고 표현할 수 있겠다.

 

쫓기는 위치에 처해 있는 한준명이나 최태용, 또는 김성실과 같은 사람들(모 두 실존했던 역사적 인물들)을 멀리함으로써 지금껏 자신에게 가해져온 오해를 스스로 풀어볼 궁리는 전혀 해보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포용함으로써 그 자신이 그들과 똑같다는 평가를 받는 위치에 처해짐으로 인해 완전히 피해만 입는 이용도였지만, 그러나 그 결과에 대해 조금도 후회하거나 하지 않는 경지에 들어가 있었으니 그가 괴로울 것이 무엇이었겠는가?

마찬가지이다. <순애보>의 등장인물들은 거개가 이용도의 이러한 마음을 닮아 있다. 그러나 이용도의 그 ‘고난을 감내하는 마음’이 다른 데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바로 예수의 그 무한대한 ‘사랑’의 정신에서 나온 것이었듯이, <순애보>의 등장인물들의 그 ‘고통을 느낄 줄 모르는 마음’들도 바로 그 ‘사랑’ 때문에 있게 된 것이었다. 결국 이용도에게 있어서 ‘고난과 사랑’이 서로 떨어지려야 떨어질 수 없는 관계인 것처럼 <순애보>의 등장인물들의 그 ‘고난과 사랑’도 서로 불가분의 관계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이때의 고난과 사랑은 거의 신비적인 것이라고 표현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면 신비주의에 깊이 빠진 이용도와 같은 사람이 아니고서는 거의 견딜 수 없는 고난, 또는 그런 사람이 아니고서는 결코 실천에 옮기기 힘든 사랑, 마치 산상수훈에나 나타나는 그런 극한적인 사랑이 박계주의 <순애보>엔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작품(‘순애보’) 속에 ‘고난의 신비주의’와 ‘사랑의 신비주의’가 나타나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이들 등장인물들은 고난 속에서도 극한적인 사랑을 기울이는, 무아와 황홀의 지경에 빠져 있는 열광주의적 신앙의 소유자들이다. 그 때문에 ‘고난과 사랑의 신비주의’가 이 작품 전편을 관통하고 있는 기독교 정신이라고 표현하여 대과(大過) 없을 것이다.

 

그리고 여기 강조적으로 덧붙이지 않으면 안 될 사실은, 이용도에게 있어서 고난과 사랑의 신비주의가 결코 무슨 신학적인 이론이 아니라 그것은 언행일치의 실천 단계로 곧장 이어진 것이란 바로 그 점이었듯이, <순애보>의 등장인물들도 그 점에 있어서 동일하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주인공 최문선은 자기를 눈멀게 하고 강간 살인범으로 몰아넣은 진범(이치한)을 잘 알고 있었으면서도 그에게 원망의 감정을 품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주인공이 살인혐의를 뒤집어쓰고 투옥돼 있으면서도 진범을 고해바치지 않은 행위 속에는 거의 그리스도와의 합일의 경지에 이른 사람이 아니고서는 감당하기 힘든 아픔이 수반되고 있으며, 그의 그런 행위 속에 극한적 이웃사랑의 정신이 엿보인다 하겠으니, 이런 이상주의적이고 현실초월적인 장면 설정 속에서 우리는 예의 그 신비주의적 요소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조선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태그

전체댓글 0

  • 02516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인간화 지향과 기독교 신비주의(4)-박계주의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