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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극적 관심을 지향하는 삶(5) -황순원의

임영천의 한국 기독교소설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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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2.04.27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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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샤머니즘에 대하여 취한 자세를 놓고 세 등장인물들에 대해 등급(?)을 매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대결의 강도로 보면 그 순서는 민구, 준태, 성호의 역순(逆順)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즉 민구는 대결이 아니라 오히려 포용 쪽이고, 준태가 다소 중도적이라고 한다면, 성호는 그 대결의 강도가 가장 세다고 할 수 있겠다. 이렇게 볼 때 세 인물들 가운데 유랑인 근성을 제일로 대표할 사람은 민구이고, 그 다음이 준태이며, 성호만은 비유랑적인 인물로 설정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판단은 작가가 샤머니즘을 유랑성의 대표적 요인으로 설정했다는 전제를 놓고 볼 때 당연한 결론으로 보인다. 

 

그러면서도 약간 미심쩍은 것은 민구와 준태 두 사람 중에서 전자(민구)를 가장 유랑적인 인물로 잡았다는 앞서의 평가에 대한 의문이라고 생각한다. 왜냐면 얼른 보아 창애, 지연, 돌이엄마 등 세 ‘여성 편력’과 서울, 강원, 전북 등 세 ‘지역 유랑’으로 보아 가장 유랑적인 인물로 보이는 이가 준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가는 분명히 세 사람들 중 가장 유랑적인 인물로 준태가 아닌 민구를 택한 것으로 보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준태의 그러한 면은 외형적(표면적)이고 비본질적인 것임에 반하여, 민구의 그것은 내면적(심층적)이고 본질적인 유랑성이라고 할 수 있겠기 때문이다. 

 

여기까지의 논의 결과, 우리는 다음의 결론도 내릴 수 있게 된 것 같다. 성호, 준태, 민구의 이러한 서열(?)은 곧 기독교도로서의 자격(자질)의 서열과도 일치된다는 점이다. 이는 우리가 상식적으로 성호를 1번순위로 잡을 때 나머지 둘 중에 누가 더 기독교도로서의 자질(자격)을 갖추었느냐는 물음과 같다고 하겠다. 이에 대한 결론은, 민구보다는 준태가 더 앞서는 인물로 평가된다는 것이다. 비록 그가 지금 기독교를 떠났고 교회당 출석은 하지 않을 것이지만, 그래도 그에겐 아직 기독교도로서의 자질이 소멸되지는 않았다는 뜻이 되겠다. 

 

이 문제에 대해선 김병익 평론가의 해석에 귀를 기울이는 게 필요할 것이다.그는, 준태는 실상 끝까지 기독교를 버리지 못한 ‘부정적인 크리스천’이라 규정하고, 그가 아무리 자신을 무신론자라고 선언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역설적인 기독교인의 반신론적 고백’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는 “준태가 자기소멸과 에고로의 귀속을 통해 ‘부정적 기독교’를 구현했다.”고 해석한 것이다. 말하자면 이러한 준태의 기독교 부정은 곧 ‘긍정을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그런 부정적 정신의 발로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이러한 점은 그들이 베푸는 사랑의 정도(밀도)와도 비례되는 것으로 보인다. 

 

성호가 이타적 인물이란 것은 재언이 필요 없겠다. 준태 역시 그런 면이 없지 않은 인물임은 앞서 우리가 본 바이다. 그러면 두 이타적인 인물 성호와 준태 중 어느 쪽이 더 사랑의 밀도가 강한가 하는 물음이 발해질 수도 있겠다. 그 답은 이미 작품상에 드러난 셈이다. 준태는 단순히 그의 친구에게 베푼 사랑을 보인 데 불과했지만, 성호는 보다 더 사회정의의 실현이란 고차원적 사랑의 경지에 도달해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기독교인의 자질은 그들이 베푸는 사랑의 밀도에 비례하는 것이란 말이 되겠다. 윤성호의 사랑을 실증해주는 상징적 장치가 바로 돌이와 영이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즉 동거했던 무당여인이 남겨놓은 돌이마저 놔두고 준태가 죽게 되자, 지연의 손을 통해 그 아이를 건네받아 기르게 된 성호에겐 이미 그 아이보다 먼저 책임졌던 또 다른 고아 영이도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성호라고 하는 넓은 사랑의 바다는 준태의 것보다는 한 차원 높았음을 수긍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조선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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