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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2.05.30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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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김성철.jpg

 

이타주의는 프랑스의 철학자 꽁트(A. Comte)가 사용하기 시작한 용어로서 애타주의라고 하며 도덕의 기초는 인애, 동정심이라고 하여 타인의 행복이나 복리를 행위의 목적으로 한다는 사회적 공리설이다. 즉 그에 의하면 이타주의란 사랑을 주의(ism)로 하고 질서를 기초로 하여 진보를 목적으로 하는 주의라고 한다.

 

이타적 성향을 지닌 사람은 자신의 이익이나 복지보다는 타인을 먼저 고려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지며 자기 자신은 그러한 행동으로 인한 불이익을 감수하기도 한다. ‘이타주의사상은 인류 역사가 시작되면서 사회가 존속하는데 커다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윤리적 입장에서 본 이타주의는 타인의 선(good)을 이루는데 그 목적을 둔다. 이는 자신보다는 타인을 먼저 생각하는 사상이다.

 

유관순열사는 하나님 안에서 훈련을 받아 이 나라에 독립을 위해서 순교한 한국의 에스더이다. 신사참배하는 미신의 나라인 일본으로부터 나라를 빼앗긴 상황 속에서 오로지 하나님의 능력만 믿고 목숨을 바쳐서 독립운동을 한 것을 보면, 그 어린 18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어린 나이에 나오는 열정과 자신감은 바로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191931일 정오, 탑골 공원을 시작으로 독립 만세 운동이 일어나자 유관순열사는 친구들과 함께 거리로 뛰쳐나가 덕수궁앞에서 만세를 불렀다. 그리고 유관순열사는 음력 31일 아오내장날을 기하여 만세시위를 전개할 것을 추진하였다. 이날 수천명의 군중을 모아 독립만세를 선창하며 격렬한 독립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 시위 전개에서 잔인한 일본헌병의 총칼로 아버지와 어머니가 피살당하고 자신은 아오내 만세시위 주동자로 잡혀 일제의 무자비한 고문을 받았으나 끝내 굴하지 않았다. 유관순열사는 재판에서 "나는 조선 사람이다. 너희들이 우리 땅에 와서 죄없는 우리 동포를 수 없이 죽였으니, 죄인은 내가 아니라 바로 너희들이다. 그런 너희가 어찌 재판을 하겠단 말이냐? 당치도 않은 수작은 집어 치워라!" 하고 일제법관에게 재판받음이 부당함을 역설하다가 법정모욕의 죄까지 가산되어 징역 7년형을 언도받았다.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 중에도 틈만 있으면 독립만세를 고창하였고, 그때마다 형무관에게 끌려가 모진 악형을 받았다. 불굴의 투혼으로 계속 옥중항쟁을 전개하다가 192017세의 나이로 끝내 서대문형무소에서 옥사하였다.

 

 

 

이처럼 일제는 어린 학생뿐만 아니라 평화적으로 진행되는 만세 운동을 총칼로 진압하여 수 만 명을 죽이고, 10여만명의 부상자를 내었으며, 재판을 받은 사람도 만 명이 넘을 정도로 무자비한 폭력을 휘둘렀다. 시위 군중에 대한 학살뿐만 아니라 체포된 사람에 대한 고문 또한 잔인하기 그지 없었으며, 무고한 양민을 학살하기도 하였다. 3.1운동은 교회를 중심으로 터졌던 민족운동의 거대한 흐름이었고 거국적인 만세운동이 일어난 것은 교인들과 학생들의 동원이 가능하여 전국 조직망을 통한 의사소통과 연락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3.1운동은 기독교의 애국운동이며 신앙운동이었다. 유관순열사는 여자의 몸이고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3.1운동에 앞장서는 용맹함과 이타주의적인 마음으로 자신의 목숨을 버려가면서 '대한민국 독립'을 외쳤던 유관순의 애국심과 이타주의 사상을 본받아야 한다./ 백석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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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관순열사의 민족정신과 이타주의의 필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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