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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2.07.01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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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김동리작가가 그의 전작(前作) 단편소설 <무녀도>(1947)를 확대 개작해서 내어놓은 <을화>(1978)란 장편소설에 대하여 고찰해 보려고 하면서, 먼저 이 작품의 줄거리(스토리)를 독자 제위께 소개할 필요를 느끼게 되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장편소설 <을화>란 작품에 대한 평설에 있어서 독자들의 이해를 크게 도울 수 있겠기 때문이다.

 

여주인공 옥선이(을화)는 역졸 집안의 후손인 아버지와 함께 역촌마을에서 살았는데, 아버지는 생업(농사)보다는 노름판을 더 밝히는 자로 옥선이 세 살 때 노름방에서 칼을 맞고 죽는다. 그 뒤 홀어미 밑에서 자란 옥선이는 열여섯 살 때 이웃집 총각 이성출과 눈이 맞아 처녀의 몸으로 아이를 배게 된다

 

살던 마을에서 쫓겨난 옥선이는 뒤에 사생아(영술이)를 낳는다. 옥선이는 영술이를 홀어미에게 맡기고 열아홉 살 때 50대의 중늙은이에게 후실로 들어갔으나, 3년 후 남편인 그 중늙은이가 병으로 죽고 만다. 그리고 석 달 뒤엔 홀어미마저 복국을 잘못 먹고 갑자기 죽어버렸다.

 

홀로 남게 된 옥선이는 어린 영술이를 데리고 살아가게 되지만, 영술이가 마마에 걸리자 며칠 간호하다가 효험이 없으므로 결국 을홧골 서낭당엘 찾아가 빌게 된다. 거기서 빡지무당을 만나게 되고 굿을 해 영술이는 낫게 되지만 오히려 옥선이 자신이 심하게 앓게 된다.

 

이러는 가운데 옥선이에게 신이 내렸기 때문에 내림굿을 한 뒤 스물한 살의 그녀는 무당으로 태어나게 된다. 빡지무당이 옥선이에게 을화라는 무녀 이름을 달아 주었는데, 이는 옥선이가 을홧골(서낭당)에서 영험을 받았다는 뜻에서였다.

 

을화(옥선이)는 점차 영험을 내는 무녀로 이름이 나게 되면서 빡지무당의 작은 박수 성도령(방돌)과 관계해 딸 월희를 낳게 된다. 얼마 동안 오라비 영술이와 동생 월희는 한 지붕 아래서 같이 살아가지만, 얼마 뒤 둘은 서로 헤어지게 된다. 영술이는 더 많이 배우기 위해 어머니(을화) 곁을 떠나 기림사란 절로 보내어진다. (절에서만은 반상의 차이가 없을 것이므로 제대로 배울 수 있으리라고 을화와 방돌이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을화의 굿은 점점 영험을 내고, 그녀와 남편(방돌) 사이도 좋았었지만, 성 밖 동네의 태주할미집으로 이사 가고 난 뒤부터 을화의 행실로 인해 두 사람 사이는 벌어지게 된다. 을화는 술집을 자주 찾았는데, 거기서 설화랑과 소장수 사이를 왔다갔다 하며 염문을 뿌리고 다녔고, 그 일로 인해 설화랑과 소장수 상호간에도 대판 싸움이 벌어지곤 하였다

 

말려도 그녀가 버릇을 못 고치자 남편 성방돌이 집을 나가버렸으나, 을화는 여전히 그를 남편이라고 내세우면서 월희와 함께 살아간다. 그동안 기림사로 보내어졌던 영술이는 절에 실망하고서 평양으로 가더니 거기서 기독교에 입교해 예수교 신자가 되었다. (어미 을화의 처지에서 보자면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었다.)

 

아들 영술이 평양에서 귀향을 하던 그 전야에 어미 을화가 꿈을 꾸었는데, 큰 뿔 달린 몽달귀에 관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날 실제로 그 몽달귀에 해당하는 예수교도(아들 영술이)가 그 마을로 찾아들었던 것이다. 어렸을 때 기림사란 절로 보내졌던 아들 영술이 장성한 청년으로, 그것도 기독청년으로 변모해 어머니 을화 앞에 나타난 것이니, 이제 무교와 기독교 간의 긴장과 갈등이 예감되는 일이 닥쳐오고야 말았다. 이때 을화는 무당으로서의 영험이 최고조에 달해 있었고, 또 영술은 영술이대로 기독교도로서의 사명감이 절정에 달해 있었으니 양자 간의 충돌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조선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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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샤머니즘, 그 대립과 갈등(1) -김동리의 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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