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향유옥합] 메타버스시대가 요청하는 것

진미리(한국여신학자협의회 공동대표)

댓글 0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밴드
  • 페이스북
  • 트위터
  • 구글플러스
기사입력 : 2022.08.21 18:59
  • 프린터
  • 이메일
  • 스크랩
  • 글자크게
  • 글자작게

10-진미리.png

 

역사는 참으로 흥미로운 단어이다. 아무리 나와 멀리 떨어진 곳에서 내 손길이 닿지 않은 사건이라도 그곳에 나와 나의 사람들의 관심과 환대를 오롯이 담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는 과거의 우리와 오늘의 우리, 그리고 내일의 우리를 끈끈히 연결해 준다. 우리가 아무리 지금 어떤 일들을 잘 해내고 있다 하더라도 그 일은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꽃피워진 것들이기에. 우리가 하는 일들 역시, 미래를 더 잘 만들어내기 위한 역사의 조각들인 셈이다. 나는 그래서 역사란 단어를 무척 좋아하고, 우리가 꼭 지키고 잘 가꾸어야 할 자산이라고 생각한다.

 

돌이켜보면 역사는 시간의 되찾음이자, 주체를 되찾아주는 길잡이이다. 우리가 역사를 회복시키고 구축해 갈 때마다 묻혀 있었거나 배제돼 왔던 주체들이 다시 일으켜 세워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한국여신학자협의회가 투쟁해 온 걸음은 여성들을 일으키고, 하나둘씩 또 세워가면서 함께 손잡고 연대하며 커가는 자매애의 향연이 아니었나 싶다. 결코 다수가 아니었을 초창기 자매들의 용기와 인내의 순간을 상상해 본다. 황무지와 같았던 그 곳에서 온 힘을 다해 소리 내었던 선배들의 그 길이 과연 평탄했을까? 개척자의 고난을 우리는 얼마나 체현할 수 있을까?

 

지난 40여 년 동안, 여신협은 시대의 요청에 따라 여성의 권리와 존엄을 회복하고 사회와 교회를 평등하게 세우며, 나아가 이 땅의 정의와 평화가 인간의 삶의 자리를 넘어 지구환경에 이르기까지 넘쳐나도록 최선을 다해왔다. 처음 뿌려 눈물로 키운 씨앗이, 줄기로 실천의 틈을 잡고 잎사귀를 틔워 이론으로 견고해지는 과정을 거치면서 현재 여신협은 외면의 꽃망울을 피우는 시점을 맞이하고 있는 것 같다. 최근 회원 수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고, 실무자 중심적인 사업이 회원 중심적인 영역으로 이동하면서 각 위원회와 소속 회원들이 자치적으로 사업을 설계하는 게, 마치 지방분권제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만 같다.

 

지금 우리는 메타버스라는 아직은 많은 이들에게 낯선 첨단시대를 관통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는 많은 사람들에게 기술과 정보를 제공함으로 세상을 더욱 효율적이고 편리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삶의 자리를 제공해 주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지점에 돋보기를 갖다 댈 필요가 있다. 기술과 정보가 인간의 삶을 편리하고 유용하게 만들 수 있다는 현실은 그 기술과 정보를 가질 수 있는 사람만이 소유하게 되는 편리와 유용일 수 있다. 따라서 이들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은 상대적으로 기술과 정보를 가질 수 없는 이들에게 권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렇게 기울어지는 관계는 기울어진 계층을 만들고, 결국 사회적 지배체제로 정착하여, 겉으로는 단지 기술적 차원이라는 그럴듯한 이름하에 교묘하게 지배와 종속의 파급력을 견고히 할 것이다. 표면적으로 가치중립적이고 공평해 보이는 체제가 보이지 않는 지배계층을 양산해 낸 역사가 얼마나 수두룩했던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메타버스는 우리에게 시대가 흘리는 어두운 측면을 잘 보라고 요청한다. 이 시대가 부여한 특권을 가지지 못한 이들을, 그리고 그것을 알 수도 없는 자리에 있는 이들을 우리가 찾아내지 못한다면, 그들은 더욱더 소외되어 사회의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점점 더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낼 수도 없이 잊혀 가게 될지도 모른다

 

 

전체댓글 0

  • 74626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향유옥합] 메타버스시대가 요청하는 것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