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정의, 그 변증법적 통일의 명제(2)-이청준의
임영천의 한국 기독교소설 산책
그런데 실제로 이 소설작품이 우리에게 보여준 결과는 기독교적 낙원(천국)의 개념에서 그리 멀지 않은 세계를 보여주고(지향하고) 있으므로 작가의 이 소설은 어떻게 보면 결국 무의식적으로 기독교적인 작품이 됐다고 볼수 있다.
그리고 만일 이 소설에 기독교적인 것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진보적인 신학의 관점에서 볼수 있는 그것일 터이다. 특히 진보적 신학에서의 천국관이 ‘현실’세계를 그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관점에 서게 될 때 더욱 그러하다고 볼수 있겠다(즉 보수적 신앙의 처지에서 말하는 ‘천당’의 개념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는 말이다).
<당신들의 천국>엔 70년대적 의미의 한국적 현실이 어떤 형식으로든 반영되어 있다. 비록 우화적인 의미에서의 반영이라고 할수밖에 없다고 치더라도 말이다. 우리가 1976년 이전의 한국의 정치적 현실이 어떠했던가를 회상해 본다면 이 작품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얻게 될 것이다.
군사 쿠데타로 세워진 박정희 독재정권이 지난 15년 동안 장기집권을 하고 있었던 때가 바로 이 작품이 탄생한 시기이고, 동시에 유신헌법이 위력을 떨치고 대통령 긴급조치법이 하늘에 날아다니던 새도 떨어뜨릴 수 있었던 때이기도 했다.
이 시기는 소위 유신헌법(1972. 10)의 철폐와, 김대중 씨 납치사건(1973. 8)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데모가 대학가에 번져나가기 시작하면서 전국의 학원가가 온통 시위와 맹휴, 연좌농성, 단식투쟁, 시험거부 등의 사태로 정신이 없고, 정부는 에너지 절약을 구실로 조기방학을 단행하던 그런 시기로부터 문제의 대통령 긴급조치 1, 4호(1974)와 9호(1975) 등이 발동되던 시기 이후까지에 해당한다.
기관원의 노골적인 학원 사찰이 학생들의 격분을 불러일으키기에 족하였으며, 유신헌법을 개헌해야 한다는 청원운동(이른바 백만인 서명운동)이 장준하 씨 등을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었던 그런 때였다(이 서명을 주도하던 장준하 씨는 1975년 8월, 등산 행로 중 의문의 실족사를 했다).
때문에 이 시기는 ‘폭력’의 문제에 대한 알레고리 형식의 문학 작품들이 많이 태동하던 때이기도 했다. 예를 들어 조해일의 <심리학자들>이나 <무쇠탈>과 같은 작품들, 그리고 김원일의 <침묵>과 같은 작품들이 나온 시기였다. 이들 모두가 폭력을 우의적으로 고발하는 형식의 작품들이었다.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 역시 위의 경우와 같은 선상에서 고찰할 수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특별히 상기 중·단편소설들처럼 폭력의 문제만을 집중적으로 고발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청준의 이 소설은 당대 군사독재 정권의 허구적 이데올로기를 우의적으로 고발하는, 상징성이 매우 강한, 웅대한 스케일을 지닌 장편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작품 속의 5.16 군사 쿠데타 직후 군사정권이 소록도로 파견한 현역의 의무장교 조백헌 대령은 당대의 최고 권력자의 상을 부분적으로나마 드러내 준다고 볼 수 있겠으며, 또한 나환자 수용소라는 특수한 공간은 당대의 한국적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하나의 마이크로코즘일 수 있는 것이다.
동시에 과거의 비극적 지도자 주정수 원장은 우리의 역사와 관련시켜 볼 때, 그 위치가 자유당 정권 시절의 이 박사쯤에나 해당된다고 할 것이다. 지난 주정수 원장은 원생에 의해 살해당했는데, 이 박사가 축출당한 상태로 본의 아니게 이국땅에서 죽게 된 것과 우회적으로 연관된다고 하겠다(곧 이 두 사람, 곧 주 원장과 이 박사는 순리적인 임종을 맞이한 인물들이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조선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