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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정이녹의 에벤에셀(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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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2.10.1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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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정이녹.JPG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24:15)

 

가나안 정복 후 여호수아는 고별 설교를 한 후 이스라엘에게 결단할 것을 요구한다.

-거룩한 여호와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니 이제 정하라.

-우리가 결단코 여호와를 섬기리니 그는 우리 하나님이시다.

-너희가 여호와를 택하였고 스스로 증인이 되었나니 너희의 마음을 여호와 하나님께로 향하라(24:19~23).

자신이 먼저 모범적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그의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만을 섬기도록 강권했다.

 

신앙은 반드시 스스로 결단할 때가 온다.

화가의 꿈을 품고 동경미술학교(1931~1935)에 유학하시던 큰 아버님은 일본 하숙집 주인의 전도로 예수님을 믿게 되셨다.

귀국 후 이성봉 목사님의 설교로 중생을 체험하시고 1940년 경성 신학교를 마치시고 이성봉 목사님과 함께 만주 심양 북릉 교회를 개척하시던 중, 1945년 해방이 되었다. 중국 공산화 정세에서 미국의 주선으로 귀국선을 지정받았다. 이성봉 목사님의 권면에도 자신의 배편을 양보한 교인 편에 서신을 보내셨다.

만주는 공산 치하에서 지납니다. 교회마다 2~3인 남아서 예배를 보는데 목자가 없으니 제가 바랭이 걸머지고 전 만주 각 교회를 순회 목양합니다. 개인의 편리와 안일을 위해 이리저리 좌우하는 것은 인생의 가치가 없습니다. 의무와 사명과 책임을 위하여 죽음의 문이라도 돌파하는 것이 주의 종된 자의 최고의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운학 목사는 13년간 우리 집에 함께 동거하면서 한국과 만주에서 같이 전도한 신앙의 동지였다. 그 후로 소식 두절이다. 진충을 잃어버린 기독도 모양으로 외롭기 짝이 없다.”(이성봉 목사 자서전 <말로 못하면 죽음으로> 216p )

 

형님이신 정운학 목사의 단호한 신앙의 결단을 전해 듣고

그 뜻을 이어가시겠다고 정운상 목사님,

나의 아버님은 1949년 신학을 하시게 되었다.

 

대나무는 고난을 견디고 마디를 만들어 폭풍을 이겨낸다

 

/한강교회 권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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