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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희생적 그리스도인의 표상(1)-현길언의

임영천의 한국 기독교소설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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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2.11.25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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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현길언은 <현대문학>(11월호)에 중편소설 <사제와 제물>을 발표하였다. 앞서 중편소설 <신열>로 제5회 녹원문학상(1985)을 수상한 바 있는 현길언은 이번에는 이 <사제와 제물>로 제35회 현대문학상(1990)을 수상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작품은 <1990년 현대문학상 수상소설집> 명의로 <사제와 제물>을 표제작으로 하여 내놓은 작품집 속에 화려하게(?) 수록되었다. 왕성한 작품 활동과 일정 수준의 업적에 비할 때 그동안 별로 큰 각광을 받아 왔다고는 할 수 없는 작가 현길언에게 비로소 영광의 기회를 안겨준 작품이 이 <사제와 제물>이란 중편소설이었다.

 

<사제와 제물>은 근래 우리 산업사회에서 매우 큰 관심거리의 하나로 떠오르고 있는 노사(勞使) 간의 갈등과 투쟁을 소재로 하고 있는 작품이다. 그러나 이 작품이 발표되던 거의 비슷한 시기에 함께 선을 보였던, 방현석 작가의 <새벽 출정>(1989)이란 소설과 비교해 보았을 때, 현길언의 <사제와 제물>은 노동소설의 정석을 보여준 작품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왜냐면 방현석의 경우처럼 노동자자신들의 투쟁과 성장의 모습을 끝까지 밀고 나갔다기보다는, 오히려 노동운동 지도자의 각성과 인격의 변화 과정을 더 밀도 있게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크리스천인 우리의 처지에서 이 소설에 특히 관심을 기울이게 되는 것은, 주인공 선우백이 크리스천이라는 사실과, 그리고 노동운동 지도자로서 새로운 각성이니 양심의 회복이니 또는 지식인으로서의 책임의식이니 하는, 작품 내 현안 문제들 역시 실제로는 주인공(선우백) 자신이 처해 있는 기독교적 배경 하에서 논의하고 이해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이 소설은 40명의 노동자들이 세웅빌딩의 13층을 점거하고 일주일째 농성에 돌입해 있는 상태에서 시작한다. 세웅그룹의 노동쟁의 현장에 뛰어든 선우백은 애초에 회사 측과 농성자 측을 중재할 임무를 띠고서 개입하게 된 처지이지만, 그러나 그는 처음부터 양측의 중재자라기보다는 차라리 농성자들 편에 서서 이 사태를 해결해 보려고 하는 기본 입장을 분명히 지니고 있다.

 

그가 그 길을 택함으로써 자신을 노동쟁의 현장에 투입한 회사 측을 완전히 실망시키는 결과를 낳지만, 그가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그는 어쨌든 자신이 재야 운동가 출신이라는 점, 그렇기 때문에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말대로 역시 소외된 노동자 편에 설 수밖에 없는 체질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게다가 더 좋게 해석한다면, 그는 크리스천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약자 편을 더 생각할 수밖에 없는 그런 처지였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그의 개입과 지도로 인해 농성 현장은 활기를 찾게 되지만, 쟁의가 장기화되면서 매스컴의 관심권에서 벗어나게 되자 초조감에 조급해진 농성자 측에서 마침내 일종의 극약 처분을 내리고 만다. 농성자들 가운데 이채원이란 청년이 고층에서 아래로 투신하고 만 것이다. 이런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하고 난 뒤의 주인공 선우백의 정신적 갈등과 종교 지도자로서의 각성의 문제에 이 소설은 초점을 맞춰 나간다.

 

선우백은 자신이 은근히 죽음에 대한 유혹을 이채원에게 주었다고 하는 양심의 고통에 시달리게 된다. 그러므로 이 소설은 비유컨대 농성 노동자들을 자식으로 둔, 노동운동가인 아비의 정신적 고뇌를 밀도 있게 그려주었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이 소설은 지금까지의 노동소설과는 차원이 다른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지니는 작품이라 하겠다./조선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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