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서 보라 (요1:39)
정이녹의 겟세마네(6)
우리는 보는 것으로 체험을 확신한다.
바라본다, 맡아본다, 먹어본다, 들어본다, 느껴본다.
눈으로 직접 보는 것이 최고의 학습으로, 오감 뒤에 ‘본다’를 넣어 확실히 알게 된다.
예수님의 첫 번째 제자가 된 안드레와 요한에게 예수님의 첫 수업제목은 “와서 보아라!”이다.
안드레와 요한은 예수님 계신 곳을 가서 보았고 함께 거하며 메시야임을 알아보고 믿었다.
이튿날 예수께서 빌립을 만나 나를 따르라 하시고 제자 삼으셨으며, 빌립은 즉시 나다나엘을 찾아가 모세가 율법에 기록했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바로 그 사람 메시야를 만났으니
“와서 보라!”고 전했다. 예수님의 교육 방법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존경하는 스승께 배우고 그의 제자가 되려면 그의 문하생이 되어 함께 기거하며 정신과 기술을 연마·전수하는 것이다.
나사렛에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는 나다나엘에게 예수님께서 이렇게 반문 하셨다.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 내가 너를 보았다”
나다나엘은 무화과나무 아래서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즉각적인 그의 대답 속에 그의 고백이 들어 있다.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이스라엘의 임금이십니다”
아마도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약속하신 구세주 메시야가 오시기를 진심으로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으리라.
그리고 그는 주님으로부터 최고의 칭찬을 들었다.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백번 듣는 것 보다 한번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우리의 몸을 값으로 환산해 만냥이라 한다면, 그중에 눈은 구천냥이란 속담이 있다.
눈은 마음의 창이다.
와서 보라~! 그리고 확신을 가지고 결단하라.
/한강교회 권사·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