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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2.12.13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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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에서 정교회의 성탄 예전에 참여한 경험이 있다. 이콘으로 가득한 성당은 촛불로 밝혀졌고, 처음 맡아보는 향기로 채워져 있었다. 오감을 통해 오직 예수의 생애에 집중하게 돕는 낯설고 아름다운 예배는 온몸을 전율케했다. 성호를 긋고 예를 갖추는 5시간의 서서 드리는 예배는 모태 신앙인으로 살아온 삶을 통틀어 가장 감동적인 예배였고, 이 경험은 이후 안식년을 그리스 정교회 예배에 참여하도록 이끌었다. 말씀을 귀로만 듣는 수동적 신앙이 아니라 촛불을 켜고, 이콘을 보고, 무반주에 가까운 악보없는 찬양을 귀로 익혀 부르며, 향내를 맡고, 정교회인이 아닌 예비신자에게 선물로 주는 거친 빵의 담백함을 느끼며 온몸으로 능동적이며 풍성한 예전을 맛봤다.

 

대림절의 시기 정교회 예배의 감격을 회상하며 베들레헴 마굿간을 그려본다. 강보에 싸인 아기와 이제 막 엄마가 된 마리아를 어떻게 만나야할까. 별을 따라 온 동방박사들이 준비한 황금과 유향, 몰약은 값비싼 물질의 상징만이 아니라, 치료제의 기능을 지닌다. 유향과 몰약은 향기 나는 오일(Anointing oil)이며, 그 효과는 고대로부터 알려져 여성 교회박사 빙엔의 힐데가르트에 의해 대체 의학으로 보급돼 아로마 테라피에 사용되고 있다.

 

그리스도의 의미가 기름부음 받은 자이며, 신약에서 예수님께 기름을 부은 이들이 모두 여성이었음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아기 예수를 감싼 ‘강보’는 한 장의 천이 아닌 붕대처럼 얇고 긴 천으로 탯줄을 자른 뒤 소금으로 씻고, 기름을 몸에 바른 아기를 둘러싸는 형태다. 이는 아이를 따뜻하게 보호하고 몸이 바르게 자라도록 돕는 하나님의 돌보심, 즉 ‘품’을 상징한다. 에스겔 16장 4절에서 이스라엘을 ‘강보’가 풀린 상태, 즉 버림받음을 상징하며 사용된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소망은 하나님의 품인 예수 그리스도의 안에(in Christ) 머무는 것이다. ‘강보에 싸여있다’는 것은 이렇게 중요한 의미를 내포한다. 연약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허물을 씻겨주시고, 몸과 마음의 상처를 치료하고 위로해주시며 강보에 감싸 덮어주신 그 사랑을 떠올리니 가슴이 따스해진다.

 

어린 시절부터 향유 옥합에 담긴 ‘순전한 나드’의 향이 궁금했다. 우연한 기회에 아토스 성산의 수도사들이 만든 나드향 향료를 갖게 되었다. 산스크리트어로 ‘향기를 발하다’는 뜻의 나드는 히말라야 고산의 풀에서 채취되는 유향의 한 종류다. 때로 예수님의 위로가 필요한 순간에 나드향을 맡곤한다. 성서 속 장면과 향이 함께 작용하기 때문일까 늘 큰 위로를 받는다. ‘마리아는 이렇게 좋은 향을 예수님께 드렸구나. 나는 무엇을 드려야할까.’

 

목사이며 신학자이기 이전에 여자며 엄마이기에 오래 기다려온 예수의 탄생의 기쁨 이면에 감추어진, 엄마 마리아의 산고를 기억하고 그녀를 먼저 안아주고 싶다. 출산은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두렵고 떨리는 순간이다. 마리아에게도 향기로운 기름이 그녀를 위로해 주는 치료제로 사용되었기를 바란다. 또한 한파 속에서 환대받지 못한채 홀로 생명을 맞이하는 소녀 마리아가 있지 않는지… 교회 담장 넘어 시선이 닿지않는 곳을 살피고 따스한 하나님의 품을 느끼게 해주는 향기가 우리의 몸짓에서 배어나오길 소망한다.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요12:3)  /여성영성연구소 'The품' 대표 ·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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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유옥합] 순전한 나드 향의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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