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3-03-30(목)
댓글 0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밴드
  • 페이스북
  • 트위터
  • 구글플러스
기사입력 : 2023.02.03 09:53
  • 프린터
  • 이메일
  • 스크랩
  • 글자크게
  • 글자작게

10-손은정.jpg


새해 설 연휴가 끝나는 수요일, 나는 막 원고 하나를 끝내고 있었다. 이때 전화가 울렸고, 번호를 확인하는 순간 부고라는 직감이 왔다. “어머니가 오늘 새벽에 돌아가셨어요.” 부고를 알린 이는 조지송목사의 따님이었다. 나는 곧 조지송목사기념사업회에 고 박길순님의 부고를 알리고, 가족들과 함께 3일장을 동행했다. 박길순님은 이 땅에서 90세를 사시는 동안, 영등포산업선교회 초대 목회자인 조지송목사의 아내이자 두 자녀의 어머니로 늘 미소를 잃지 않으셨던 분이다.

 

조지송 목사님은 자신이 가장 잘했다고 생각한 것 두 가지가 있는데, 한가지는 산업선교를 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 아내를 만난 것이라고 했다. 사모님도 숨을 거두기 전까지 연신 여보, 여보하며 남편을 불렀다고 하니, 두 분의 사랑은 특심했다.

 

20191월 남편이 돌아가시고, 당시 박길순사모는 그해 5월 말 영등포산업선교회의 경제협동운동 다람쥐회 박회장에게 5천만원 기금 전달 의사를 표했다. 나는 박회장과 함께 기금 전달의 뜻을 듣기 위해 방문했다. 기금은 돌아가신 남편의 뜻이라 했다. 어려운 조합원과 노동자들을 위해 사용해달라고 했다. 우리는 근 10여년을 함께 조목사님댁을 방문하며 경제협동조합운동의 어려움을 자주 하소연했고, 박회장이 집에도 가지 못하고 사무실에서 지내며 일했던 것을 조목사님은 가만히 들으시곤 했다. 당시 목사님과 사모님은 그저 이야기를 듣고만 계시는 줄 알았는데, 돌아가시기 전에 이렇게 기금을 남기셨다니 우린 숙연해지고 말았다.

 

당시 사모님은 거동이 쉽지 않은 상태였다. 앞으로 생활비와 의료비가 적잖이 필요한 상황에서 재차 만류도 드렸다. 그러나 사모님은 얼른 가져가 주세요. 마음이 바뀌기 전에요. 내가 이 기금을 전해야 천국에서 목사님 기쁘게 만날 수 있어요하시며 아이처럼 재촉하셨다.

 

그렇다. 계산기를 두드려 보면 이것은 철회해야 할 결정이었다. 검약하게 살아오신 분들이라 정말 큰 금액이고, 실제로 목사님은 50세 이후엔 월급 받는 일을 하지 않으셨으니 이 기금은 사모님께서 마련하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모님께서는 현실적으로 계산할 줄 몰라서가 아니라, 계산하지 않기 위해 더욱 재촉하신다는 느낌을 받았다. 박길순사모의 결심은 향유옥합을 예수님께 부어드린 마리아의 모습과 퍽 닮았다. 마리아는 사랑하는 예수님의 죽음을 직감하고, 무엇을 해드릴 수 있는지 궁리했다. 입술이 타고 마음이 바짝바짝 타들어가는 시간에 문득 떠오른 것이 그 향유였다. 마리아는 겁도 없이 일 년 치 연봉에 해당하는 향유 옥합을 깨어 예수님께 드렸다. 옆에 있던 제자들은 가난한 이들을 구제하는 데 쓰지 않고 낭비했다며 냉철한 비평들만 늘어놓았다, 다가올 스승의 죽음은 생각도, 수용할 준비도 돼 있지 않았던 듯하다. 그러니 옥합을 깨기 전에, 마리아에게 무슨 마음이 있었는진 모르지 않았을까?

 

예수 곁에는 참 좋은 여성들이 있었다. 낳고 기르신 어머니 마리아, 부활의 첫 목격자가 된 마리아, 당신의 말씀을 깊이 청종하며 곁에서 힘을 드렸던 마리아, 십자가를 앞둔 외롭고 어두운 시간에 향유를 부은 마리아! 이 여성들의 뒤를 잇는 여성 제자들 중에 박길순님이 계신다. 내어놓음의 본을 실행에 옮긴 분으로, 우리를 다시 불러 모아 우리도 가진 향유를 내어놓을 수 있도록 촉진하는 분으로 말이다. /목사·영등포산업선교회 총무

전체댓글 0

  • 70625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향유옥합] 향유옥합을 깨기 전엔 무슨 마음이었을까?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