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04(월)

[사랑의실천] 파주 ‘평화원’ 원장 최애도장로

고아들을 위한 헌신과 사랑을 실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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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3.03.21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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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사랑의실천.jpg

평화원은 모든 아동들이 진정한 예수님의 사랑을 먹으며 희망을 가질 수 있는 평화의 동산이 되기를 소망한다.

  

전시의 고아들과 동고동락으로 평생 헌신, 기독학교를 설립

자립지원과 교육 등 갈곳없는 아이들의 평화동산으로 추구

 

사회복지법인 평화원 원장인 최애도장로(96·사진)는 한국 사회복지계의 원로로서 한국전쟁 이후 고아들을 보살피는 일을 계기로 보육원인 평화원을 설립하고 지금까지 한길을 걸어오고 있다.

 

9-최애도2.jpg

 

최장로가 세운 평화원은 71년차 역사를 지닌 아동복지 생활시설이다. 이곳은 23명의 목사를 배출한 평화의 동산이기도 하다. 최장로는 감리신학대학교 재학 중에 한국전쟁이 발발해 1.4후퇴로 대구에 피난을 왔고, 오갈 데 없는 피난민들과 함께 지내며 고아들을 돌보기 시작했다. 1951, 감신대를 졸업한 이후에는 마산중앙교회에 전도사로 파송됐다. 최장로는 사역 중 심방을 다니면서도 깡통 든 아이들이 자꾸 눈에 아른거려 이를 견디지 못했다, “교회 일과를 마치면, 아이들이 있던 곳으로 곧장 달려가 데려다가 씻겨서 옷을 사 입히고, 가방과 책을 사서 학교에 보낸 아이들이 그때만 14명에 이르렀다고 기억했다.

 

최장로는 마산중앙교회에서 1년간 시무 후, 독립해 진주를 거쳐 창원에 정착하면서 창원교회(지금의 창원감리교회)를 세웠다. 그리고 함께 생활하던 아이들은 1년 만에 104명으로 늘었다. 당시 20대 여성이었던 최장로는 아이들을 위해 역전에서 지겟짐을 나르고, 새마을 보일러 기술자 등으로 일하며 받은 품삯으로 아이들에게 보리밥과 시래기죽을 먹였다. 그러다가 아이들을 제대로 교육시키려면 서울로 가야 한다는 생각에 평화원을 이전하기로 작정했다. 그렇게 경기 남양주에 자리잡아 논과 밭을 일구고, 각종 가축을 기르며 아이들과 자급자족 생활을 이어갔다.

 

그러던 중 1966년 파주시에 소재한 삼광보린원에 초청받아 갔다가 그곳이 집창촌 부근임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곳의 아이들을 구원하기 위해, 그리고 가난을 이유로 교육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없길 바라는 마음으로 부군이었던 고 이영순목사와 함께 기독교학교를 만들었다. 그곳이 바로 파주중과 세경고(당시 파주공고)를 포함하는 학교법인 연풍학원이다. 최장로는 파주지역의 교육기반을 조성하고 기초교육 및 산업기능인력 육성에 헌신한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 제28회 파주시문화상을 받기도 했다.

 

아이들과 옥수수.JPG

 

평화원은 아이들이 일상생활, 자기보호, 재정관리, 직장생활, 집구하기 등 퇴소 후 독립적으로 살아갈 때 필요한 능력과 기술을 길러주기 위한 자립지원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또한 원가족 복귀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부모와 아동이 모두 원하고, 재결합하는 것이 아동에게 최선이라고 판단될 경우, 원가정으로 복귀시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최장로는 일흔 무렵, 인생의 마지막 때란 생각이 들어 아이들에게 큰 선물을 주고 싶었다. 아이들은 자기를 낳아준 부모와 사는 것이 소원이다면서, “특히 원가정 복귀나, 자립지원 프로그램은 평화원에서 시작해 지금은 전국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프로그램이다고 설명했다.

 

최장로는 기억에 남는 일에 대해 의사도 어렵다고 말한 두살짜리 아이가 있었다. 밤새 열이 끓어 경기하는 아이를 살리고 싶어 혼자서 칠흑같은 어둠을 뚫고 10리길 되는 군부대 의료부대로 달려간 적이 있다면서, “의무관을 만나 사정을 하고 마침 한 알 남은 마이신을 받아내었다. 그렇게 돌아가는 길에 큰일을 당할뻔했는데, 구사일생으로 탈출하여 집에 돌아왔다. 정신없는 상태로 아이에게 약을 먹이고 아이를 품에 안고 기절하듯 잠이 들었었다. 그러나 결국 그 아이는 하늘나라로 갔었다. 그때가 내 나이 25살이었다고 회상했다.

 

끝으로 최장로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인고의 눈물로 다듬어진 71년의 흔적이 이제는 반석이 되었다. 평화원이 진정한 예수님의 사랑을 먹으며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영원한 평화의 동산이 되기를 소망한다면서, “부모에게 버림받은 아이, 학대의 상처를 안고있는 아이, 부모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아이까지, 모든 아이들을 품어주며 말이다. 이곳을 통해 천국에 이를 수 있는 비전이 있길 기원한다고 덧붙였다.

 

아이들과 화이팅.JPG

 

한편 최장로는 과거 흥인지문에 있었던 동대문교회의 회복을 위한 예배를 드리고 있다. 동대문교회는 19세기에 스크랜튼 선교사가 초대 담임목사로 있었던 감리교회로, 한국 기독교 역사에 큰 의미를 지녔다. , 항일 독립운동의 중심이자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병원 보구여관이 시작된 곳으로, 근현대사의 유·무형 문화유산과도 같다. 이처럼 역사적으로 가치가 큰 동대문교회가 서울성곽 복원계획 추진으로 인해 이전 대상에 포함되어 경기도로 이전돼 현재 산책로로만 남아있다. 최장로는 이를 회복하기 위한 농성 예배를 그 옛터 성곽 공원에서 13년째 드리고 있다, “함께 응원을 부탁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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