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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3.06.01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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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김성일의 소설 <제국과 천국>은 평소에 뚜렷이 드러나지 않은 채 인간의 마음 밑바닥에 잠재해 있는 무의식적 배교에 대하여 철저하게 파헤치고 있다. 우리가 작품 내의 요한처럼 자신의 욕망과 야심으로 주님을 이용하려고만 할 때 우리 역시 별 수 없는 배교자가 되고 마는 법이다. 그러나 사도 요한은 생의 막바지에 이르러 욕망과 야심과 같은 그 세속적 유혹을 극복, 참회함으로써 일체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나 홀가분한 해방감을 맛보게 되는 것이다.

 

바로 이 때문에 이 소설 속에서의 실제적 영웅은, 이런 표현이 좀 어떨는지 모르겠지만, 노사도 요한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파란만장한 일생은 가위 기독교적 영웅의 삶의 극치라고 해야만 할 것 같다. 이 작품 속에서 요한은 확실히 한 위대한 신앙의 영웅이다.

 

이 소설 속에는 가혹한 박해자들과 위대한 순교자들이 허다하게 등장하고 있다. 가히 1세기에 걸치는 장수를 누린 사도 요한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는 이상 그럴 수밖에는 없겠다. 세례 요한의 이야기, 예수의 이야기, 베드로와 바울의 순교 이야기, 열심당 지도자 기스칼라의 요한의 이야기, 안디옥 감독 이그나티우스 이야기, 그리고 서머나 감독 폴리캅의 이야기까지 등장하고 있다.

 

한편 네로 황제로부터 시작된 박해와 수난의 사화가 베스파시아누스와 티투스를 거쳐 도미티아누스에 이르고, 이어서 네르바와 트라야누스 황제에까지 이르게 되는데, 이 장기간의 박해와 교회수난의 역사가 이 소설 속에서 하나의 거대한 대하드라마로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거창한 줄거리의 전개가 하나의 추리소설적 기법의 원용으로 말미암아 독자들에게 대단한 흥미를 자아내고 있으며, 이리하여 소설 작품이 일차적으로 뛰어넘어야 하는 재미란 벽은 이 소설이 가볍게 넘었다고 하지 않을 수 없겠다. ‘재미를 동반한 어떤 의미의 추구라고 하는, 일반적으로 소설의 세계가 목표로 해야 하는 지향점을 찾음에 있어서 이 작품은 일단 득의했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이 작품이 성서 전체와 초대교회 역사에 대한 오랜 연구를 거친 사람이 아니고서는 결코 쓸 수 없는 노작임을 이 소설 스스로가 증명해 주고 있다. 작가는 성서를 평면적으로 바라보지 않고 입체적으로 구조화시켜 들여다보는 훈련을 쌓은 신자라는 사실도 알만한 독자라면 쉽게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이 작품의 입체적 구성의 독특성이 크게 드러나고 있는 편이다.

 

이 작가의 성서 해석은 기본적으로 보수적인 신앙의 바탕 위에서 이루어진 것이면서도, 그러나 최근의 성서해석법의 영향을 다분히 받으면서 그것들을 종합적으로 절충·조화시켜 보려는 건실한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이런 성서 해석, 또는 교회사 연구를 토대로 하여 작가 특유의 사회-역사적 및 문학적 상상력을 동원해, 기독교 역사물로서의 문학적 형상화를 제대로 이루어냈다는 데 대하여 격려의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같은 작가의 <땅끝> 시리즈가 독자들에게 잘 알려져 있는 작품들임도 사실이기는 하지만, 그것에 비하여 이 작품, <제국과 천국>이 훨씬 수작이란 평가에는 결코 이의가 없을 줄로 안다.

 

성서에 대한 해석과 소설 작품의 창작은 상호 별개의 사항이므로, 성서에 대하여 아무리 훌륭한 해석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구성하는 작가의 문학적 역량이 따로 없이는 역시 훌륭한 문학 작품의 생산이란 불가능한 일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이 작품, <제국과 천국>에 대한 가치 평가는 더욱 높아져야 하리라고 보는 것이다./조선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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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와 배교의 일대 서사시④-김성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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