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에 아름다운 대한민국 나의 조국…” 한국에서 자란 기간보다 미국에서 살아 낸 세월이 훨씬 길건만, 요즘도 가끔 ‘조국 찬가’를 흥얼거리면, 애국 향수가 가슴에서 울컥 솟아 오른다. 조국을 떠나면 애국자가 된다는 어느 이민 선배의 말씀이 맞는가 보다.
아름다운 대한민국의 사회 현상에 대해 얼마 전부터 내가 관심을 더 갖게 된 것은 한국의 이민 상황 때문이다. 외국인들의 유입과 다문화 가정이라고 불리는 소수자들의 ‘한국인화’를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아니다. 지금의 현상이 미래의 한국 사회를 낯설지 않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한국의 이민 정책은 외국인을 유입시켜 인구 감소 문제를 그나마 완화해 보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보인다.
이주민 정책의 현실
유능한 인력의 유입은 국가와 그 사회와 국민에게 유익하다. 이전에 거주하던 사회에서 능력을 나타내지 못 했던 사람들도 새로운 이민 사회에서 새로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신비한 효과를 기대 할 수 있다. 그러나 자신들의 발전을 위한 노력을 거부하며, 새로운 사회에서의 ‘공생’보다 ‘이기적인 혜택’만 계속 추구하고, 국가에 누가 되는 이들이 많아진다면, 그 인구가 늘어날수록 대한민국의 미래에는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다.
어느 국가라도 이민자들을 유입하는 목적이 단순히 인구 유지와 인본주의적 지원을 위한 것만은 아닐 것이다. 이민자들이 새 나라에서 새 국민으로 원주민들과 함께 더불어 잘 사는 ‘공생’을 위해선, 정착과 안정 위에 ‘건강한 정서’와 ‘시민 의식’을 갖는 것이 너무나 중요하다.
지난 몇 개월 간, 서울과 평택, 용인, 안산 등의 다문화 행정 기관, 가족 센터와 외국인 선교회, 그리고, 다문화가족 교회 등을 방문하여 담당자들을 만나 본 결과, 대부분의 이민자들이 현실 생활과 생업에 급박한 처지임을 알 수 있었다. 한국 정부는 그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많은 재정을 투자하며, 직접 혹은 종교기관 등을 통해서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각각 운영하는 프로그램들을 살펴보니, 거의 대부분 언어교육과 문화 체험, 자녀 교육, 생활 보조에 치중돼 있었다.
환원정신의 대표적 사례
나도 미국 이민 초기에 도움을 받아 혜택을 누린 경험들이 있다. 미국에도 이민자와 소수자, 저소득 층주민들을 위한 혜택이 많다. 영어 공부를 하면서 기본 임금을 받았던 ‘CETA 프로그램’(Comprehensive Employment and Training Act)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신생아의 우유를 보조해 준 ‘WIC 프로그램’(Women, Infants, and Children), 대학 과정에 감면 받은 학비와 보조 프로그램(Financial Aid), 그리고 대학원 시절에는 학업에 필요한 일체의 재정 지원을 받기도 했다. 이들은 내가 미국 사회에서 적응하고 발전하는 데 고마운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내 자녀의 치아에 문제가 생겼지만 보험이 없어서 전전긍긍할 때, 무료로 치료를 해 준 의사 한 분이 계셨다. 어느 날, 나는 그동안 누린 은혜들을 상기하며, 그 혜택들의 의미를 실감할 수 있었다. “Somebody had to pay for it!” 내가 모르는 누군가가 그 모르는 누군가를 위해 기부한다는 앞 세대의 ‘환원 정신’이었다. 시민 정신을 터득한 것이다. 앞으로 그 혜택을 계속 구하며 수혜자로 계속 살 수도 있고, 기여자로 살 수도 있다는 선택의 자유가 나를 압박했다. 아무도 그 선택을 위해 무어라 강요하지 않았지만, 그 배움이 삶이 되기를 바랐다.
고민 끝에 장시간 운전해 당시 아이를 수술해 주었던 의사를 찾아 가서 감사를 표한 후, 자신의 부와 전문성을 환원하는 그의 생각에 대해 들었다. 나도 편하게 마음을 나눴고, 감동과 격려를 서로 간직하고 돌아왔다. 이후, 나는 출신대학교와 대학원의 후배 그 누군가를 위하여 도움이 되고자, 적은 수입을 쪼개어 학교로 매월 송금하기 시작했다.
건강한 공생을 위한 길
사회 소수자들이 변두리의 수혜자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정서와 정체성, 권리와 의무 등 건강한 시민 의식을 갖도록 돕는 학습과 체험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지금의 국가적 정책 집행, 이민자의 노력과 시민의 협력이 미래의 수혜자와 기여자를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민자와 후손이 건전한 시민이 되어 사회에 기여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 이민 1세의 부모 세대가 열심히 살아낸 사회 저변에서 자녀들이 훌륭하게 성장해, 사회 중심에 우뚝 서서 기여하는 모습들이 너무 아름답다. 그러나 혜택만이 삶의 수단이 되거나, 심지어는 그 수혜자의 자격을 유지하기 위한 형편을 위장하는 사람들도 보았다. 그들도 각기 사정이 있겠지만 이런 경우가 많다 보니, 미국의 옛 인구 구조는 중산층이 가장 많았던 다이아몬드 형이었는데, 이제 저소득층이 가장 많은 세모 꼴로 변해버렸다. 가장 많았던 납세자들보다 수혜자가 많아지니 어려운 사회가 된 것이다.
3,000년 전, 유다의 솔로몬왕이 남겨 준 말을 음미할 때 흐뭇하다. “너는 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전도서 11:1). 누군가가 이 전에 이 사회에 나누려고 던진 ‘빵’들을 나도 누렸다. 지금도, 앞으로도, 누군가를 위해 나누는 시민과 그것을 누리며 사는 누군가가 한 사회에서 공존하고 있다. 미래의 대한민국이 지금의 그 누군가들에게 달려 있다. 250만 이민자들과 사회의 소수자들은 앞으로 어떤 시민이 될 것인가? 단순히 인구수에 기여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나눈 것을 누림으로 발전하여, 다시 나누는 좋은 국민들이 더 많이 공존하는 새 조국이 되기를 축원한다. “…자유 대한- 나의 조국- 길이- 빛나리라-” /목사·새빛다문화센터장
*김윤곤목사는 프린스턴 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 석사(구약 및 상담학) 학위를 받고, 앵커리지 한인장로교회 담임목사로 17년 시무했다. 미국장로교 대서양한미노회 노회장 등을 역임하고, 아프리카 케냐에서 다종족 주민 협력 프로젝트 등을 위해 7년간 선교사로 지냈다. 김목사는 그간의 경험을 토대로 목양적 단상과 영감을 이민자·목회자·선교사·다문화 사역자의 관점에서 나눌 예정이다. (격주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