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으로 하여금 이집트의 노예 생활에서 구출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도록 하기 위한 여정은 광야였다. 광야는 길이었고 삶이었고 훈련이었고 깨달음이었다. 광야 생활 40년은 이스라엘 공동체가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 온 세상에 그분의 뜻을 펼치도록 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테스트 기간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한 과정에서 하나님은 그 연단의 터전을 광야로 삼으셨다. 수르 광야, 신 광야, 시내 광야, 바란 광야가 바로 그러한 장소였다. 광야를 히브리어로는 ‘미드바르’(מדבר)라고 하는데 이 단어는 ‘말씀’을 뜻하는 ‘다바르’(דבר)와 어원을 같이 한다. 신명기 1장은 이렇게 시작 한다.
“이는 모세가 요단 저쪽 숩 맞은 편의 아라바 광야 곧 바란과 도벨과 라반과 하세롯과 디사합 사이에서 이스라엘 무리에게 선포한 말씀이니라.”
이 한 구절에는 광야(미드바르)와 말씀(다바르)이 함께 나온다. 해석하면 하나님은 광야에 있는 이들에게 말씀하시는 분이라는 뜻이 된다. 달리말해서 광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말씀의 지성소이다. (*참고로 지성소를 ‘드비르’(דביר)라고 한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귀를 갖도록 하시는데 그 장소를 광야로 택하시는 것이다.
광야는 ‘있음’과 ‘없음‘의 구별이 뚜렷한 곳이다. 즉 존재와 무의 개념이 확연하게 드러나는 곳이다. 그분은 ‘없음’을 통하여 ‘있음’을 가능케 하시는 분이다. 무엇이 있으며 무엇이 없는가? 하나님은 광야에서 우리의 눈을 감게 하시고 우리의 입을 닫게 하시고 그 대신 우리의 귀를 열게 하신다.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듣게 하기 위함이다.
광야는 길 없는 길이며, 길 아닌 길이다. 그리고 광야는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는 그런 길이다. /가락재 영성원 원장·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