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화장
김영임
아이를 출산하고 나서는 화장하기를 멈추었다. 아이가 엄마를 맘껏 만지게 해 주고 싶었고,
아이와 맘껏 얼굴을 비비고 싶어서였다.
첫째 아이 하늘이가 초등학교 입학하기 며칠 전, 나는 화장품 세트를 새로 구입했다.
첫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이라 드디어 나도 학부모가 된다는 기대와 설렘이 마음에 가득했다.
주변에 초등학교에 아이를 입학시킨 선배 엄마들 얘기를 들으니 같은 반 학부모들끼리 한 달에 한 번씩
'반 모임'을 한다고 했다.
결혼과 출산이 30대 초에 시작된 터라 마흔 살 가까운 나이에 처음 학부모가 되는 나로서는
젊은 엄마들 사이에서 어느 정도 분위기는 맞춰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드디어 하늘이의 초등학교 입학식 날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 화장을 하고 최대한 단정하게 옷을 입었다.
거울을 보고 또 보며 학교를 향해 출발하려는데 여덟 살 아들 하늘이가 정곡을 찌르는 말을 했다.
"엄마! 얼굴이 왜 그래?"
임신, 출산, 육아를 계속하며 화장을 한 적이 몇 번이 안되다 보니 하늘이는 화장한 엄마 얼굴이 너무 낯설었나보다.
사실 화장한 얼굴이 어색하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애써 태연한 척하며 나 딴엔 처음 학부모가 된다는 설렘과 기대로 나름 심혈을 기울여 찍어 바르고
꾸민다고 꾸몄건만...
이 충격적인 말을 듣고도 나는 간단히 화장을 지우려 했지만 시간이 없어 바로 입학식에 참석했다.
입학식 내내 다시는 화장을 하지 않겠다고 마음 먹었다. 후에 준비한 화장품세트는 언니에게 무료나눔을 했다.
행사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와 화장을 지우며, 이제는 '얼굴화장' 대신 ‘마음화장’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흔히들 사회생활에서 여자가 화장을 하는 건 ‘기본예의’라고 말한다.
얼굴을 예쁘게 꾸미고 예쁜 옷을 입고 말도 행동도 품위 있게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마음 안에 미운 생각과
미운 말로 가득 차 다른 사람의 얼굴을 찌푸리게 한다면 참 안타까운 일 아닌가.
그날 이후로 나는 접착식 거울을 사서 내가 하루의 많은 시간을 보내는 씽크대 앞에 붙여두었다.
식사 준비를 하다가도, 과일을 씻다가도, 설거지를 하다가도 고개를 들어 거울을 보곤 한다.
환하게 웃는 연습도 해보고, 재밌는 표정도 지어보고, 가장 편안해 보이는 표정이 뭘까 생각도 해봤다.
무엇보다 씽크대 앞에 붙여둔 거울을 보며 나의 마음을 들여다본다. 매일 반복되는 분주한 일상 속에
나의 표정이 어느새 굳어져 있지는 않은지, 때때로 나의 불편한 감정 때문에 가족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 차 한잔하고 싶다며 별안간 찾아온 손님이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라는
하나님의 말씀처럼 이제는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함으로, 겸손함으로,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으로 채워가야겠다.
쉽게 드러나지 않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아름다움이 더해가는, '마음화장'을 해야겠다.
/ 서예가, 춘천벧엘교회 사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