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29(수)

[해설] ‘모든 지체를 끌어안는’ 교회공동체 다짐

우리나라는 등록장애인 265만명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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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4.04.22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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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협 장애인주일예배에 이정훈목사가 설교하고 있다.

 

오늘날 20명 중 1명은 장애인, 이중 90% 후천적 장애

이들의 눈, , 다리, 팔이 돼주는 것이 선교이고 봉사

 

약자에 대한 배려의 정도가 그 사회의 수준을 반영한다고 한다. 장애인의 권리에 둔감한 사회일수록 비장애인의 권리에도 소홀하기 쉽다. 우리나라에 등록 장애인 수는 265만명을 넘는다. 전체 인구의 약 5.2%, 20명 중에 1명은 장애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는 말이다. 그 장애가 심하든 심하지 않든 간에 말이다. 장애는 특별한 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동안 경험할 수 있는 것이며 일시적이든, 장기적이든, 지속적이든 차이가 있지만 누구도 한평생 아무런 장애 없이 살아갈 수 없다. 하지만 여전히 장애에 대한 차별적인 시선과 더불어, 이들의 이동권조차 보장되어 있지 않는 교회들이 많다.

 

오늘날 장애인 10명 중 9명이 후천적으로 장애를 얻는다그 원인의 56%는 질병이고, 32.1%는 질병이다누구든 질병이나 사고로 장애를 입을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통계이다수많은 장애인들도 한때는 비장애인이었듯이장애는 멀리 있지 않다이번 장애인주일은 우리 모두가 예비 장애인으로서 장애인에 대한 우리 사회와 교회의 인식그리고 처우와 현실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번 교회협 장애인주일 예배에는 장애인소위원회 서기인 이정훈목사가 설교를 전했다. 이목사는 미가서 46,7절을 본문으로 사회 한가운데로의 초대란 제목의 설교를 전했다. 그는 세상 끝날에 하나님이 약속하신 내용을 강조하며, 교회 공동체가 모든 지체를 끌어안는 공동체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목사는 그 옛날에도 장애인들은 장애를 전쟁에서 얻었든 사회의 부작용이든, 사회 한 가운데 있지 못했을 것이다. 장애인은 예나 지금이나 숨어지낸다면서, “그러나 본문에서 하나님은 세상 끝날에 어떤 세상을 이룰지에 대해 영원한 약속을 하셨다. 심판의 때에 하나님의 성전이 가장 높이 세워지고, 법과 말씀이 들려지고, 이스라엘은 이제 실패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것이다. 특히하나님은 이 장애인들이 새 이스라엘의 주축이 되게 하겠다고 선포하셨다. ‘저는 자가 남은 백성이 되게 하고, ‘멀리 쫓겨났던 자로 강한 나라를 세우겠다고 하셨다고 말했다.

 

또한 이목사는 이는 새롭게 세우실 이스라엘 사람들의 특성이다. 오히려 이들이 사회의 중심에 서있다. 지금과는 비교된다. 여전히 장애인들은 이동할 때 목숨을 걸어야 한다. 교회는 모든 지체를 끌어안는 공동체여야 한다. 교회가 이를 위해 앞장서야 한다. 교회는 장애인들을 불러 모으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고 말했다.

 

또한 이목사 나는 첫돌이 지나고 갑자기 걷지 못하게 되었다. 갖은 방법을 다 썼으나 소용이 없었다. 언제는 외출을 하는데 집에 있지 왜 힘들게 밖에 나오느냐고 말씀하시는 한 시민을 보고 이것이 대다수 사람들의 생각인가 하는 생각도 했었다고 고백했다.

 

예배 이후 김종생총무(교회협)예배에 참석하면서 부끄러움을 느꼈다. 걸을 수 있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죄송스럽게 느껴졌다면서, 한 일화를 전했다. 김총무는 루마니아 시골에 있는 교회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유화가 한 점 걸려 있었는데 예수님이 양팔과 다리가 없고 눈이 감겨있는 장애인 예수의 모습이었다. ‘왜 장애인 예수를 걸어놓으셨냐여쭤보니, 목사님은 우리가 저러한 마음이어야 한다고 답변하셨다면서, “우리는 이웃들의 눈이 되어야 하고, 입이 되어야 하고, 팔이 되고, 다리가 돼야 한다. ‘이것이 선교구나하는 깨달음과 봉사가 이런 것이 돼야 한다는 울림이 있었다. 보지 못하는 우리 형제자매의 눈, , 다리, 팔이 되면 좋겠다. 우리가 가진 것을 감사하는 것도 좋지만, 그것을 갖지 못한 이들이 덜 불편하도록 도와주면 좋겠다. 이것이 장애인주일예배의 의미가 아닐까 한다. 조금의 불편함과 시간을 내주는 것이다. 이로써 우리 사회 약자들이 힘을 얻어가길 바란다고 격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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