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세가 아닌 출애굽을 통해 미래를 열라.
전철을 탔다. 주변을 둘러보니 전부 스마트폰에 빠져 있다. 독서하는 이가 없다. 나이가 어릴수록 릴스, 틱톡, 쇼츠에 빠져 있다. 주로 아주 짧은 시간의 영상이다. 재미위주다. 흥미를 자극한다. 호기심을 자극한다. 충동적이다. 나이가 많으신 분들을 보니 유튜브를 보고 듣는다. 그런데 알고리즘에 의해서 점점 알고리즘이 이끄는 좁은 세계 속으로 들어간다. 특히 정치적인 유튜브를 많이 볼수록 자녀들과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 말다툼이 일어난다. 스마트폰이 가져 온 불화다. 알고리즘에 의해 포위될수록 극단으로 치닫는다. 그때 일어나는 현상은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 대화와 토론은 사라지는 것이다. 고집과 아집만 남는다. 흑백논리에 빠져 내 생각과 다름을 틀림으로 해석한다. 그러니 서로 소외감을 느낀다.
정치와 이념만 그런 것이 아니다. 나이에 관계없이 스마트폰에 빠지면서 대화가 단절된다. 관계를 통해서 배우려 하기 보다는 검색을 통해서 배우려 한다. 스마트폰과 더 가까울수록 사람과 덜 가까워지고 사람사이의 간격은 더 멀어진다. 점점 혼술을 한다. 그래서 20대 알콜 중독 현상이 심각해진다. 식사도 혼밥을 한다. 그래서 배달을 시키다보니 집안에 음식물을 포장한 쓰레기로 가득하다. 그것을 치우지 않고 쌓아두다가 집이 쓰레기장처럼 변해버린 청년층이 늘어간다. 소통해야 할 인간관계가 소외로 흘러간다.
오늘 소외로 가득한 우리 시대의 자화상을 본다. 개인적이다. 이기적이다. 계산적이다. 정욕적이다. 탐심이 가득하다. 나만 중요하게 생각한다. 자기중심적이다. 자기 생각에 좋을 대로 행한다. 이것이 과연 정상적인가? 비정상적이다. 이러한 소외 현상을 넘어서려면 어둠에서 빛으로 나아가야 한다. 경건의 모양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소외를 넘어 친밀감을 경험하는 경건의 능력을 추구해야 한다. 그 시작이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회개다. 회개란 죄와 악으로부터 떠나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다. 생각이 아니라 행동이다. 명사가 아니라 동사다. 회개한다고 말은 하지만 행동이 없으면 가짜다. 회개가 말로만 그치면 말장난에 불과하다. 언어유희를 즐기는 것으로 끝난다. 회개는 행동으로 나타난다. 삶으로 드러난다. 그리스도인은 온갖 부정, 부패, 타락한 현실을 보면서 시대 유감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하신 세상을 꿈꾸며 죄악에서 떠나 하나님의 뜻을 추구해야 한다.
바로 그 삶을 살았던 모세를 만난다. 모세는 애굽의 왕자의 신분으로 살았다. 보장된 삶이다. 편안한 삶이다. 스펙이 화려하다. 부, 명예, 권력, 인기까지 갖추었다. 그 속에서 살아갔다면 왕궁의 삶을 누렸을 것이다. 그러나 모세는 그렇게 살지 못했다. 왜일까? 그는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졌기 때문이다. 애굽에 살면서도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졌기 때문이다. “나이가 사십이 되매 그 형제 이스라엘 자손을 돌볼 생각이 나더니” (행7:23)모세는 민족을 생각했다. 그 결과는 광야 40년의 고난, 고통, 고독의 삶을 살았다. 왕궁이 아닌 광야의 사람으로 살았다. 출세하는 삶이 아닌 출애굽하는 삶을 살았다. 자기만 위하는 삶이 아닌 민족을 위한 삶을 살았다. 그래서 유대민족은 출애굽을 통해 자유를 얻었다. 민족의 미래를 열었다.
지금 우리 시대는 모세처럼 민족을 돌볼 생각이 나는 그런 사람들이 절실히 필요하다. 우리 민족도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이 독립을 위하여, 자유를 위하여, 민주화를 위하여 헌신했다. 희생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광야의 시대를 살았다. 이제 우리에게 바톤이 넘겨졌다. 우리도 우리 시대에 모세처럼 출세가 아닌 출애굽을 통해 민족의 미래를 열자. 출세만을 위해 달려가는 시대 속에 살지라도 출애굽의 영성으로 하나님과 함께 미래를 열자.
/이상갑목사 (산본교회 담임,청년사역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