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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4.07.05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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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송아.jpeg

 

나는 오른 눈이 보이지 않는 경도 시각장애인이다. 시각장애인이라는 이미지를 떠올리면 두 눈 모두 빛도 보이지 않는 전맹 상태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시각장애인의 스펙트럼은 매우 넓다. 두 눈의 시력이 다 없다 해도 빛은 보이거나, 색은 보이기도 한다. 나의 시력없는 오른 눈도 빛과 색은 구분할 수 있다. 하지만 오른 쪽이 제대로 보이지 않다보니 공간감각이 현저히 떨어진다.

 얼마 전 세 번째 중고차를 뽑았다. 오른 눈 때문에 자꾸만 여기저기를 긁는 사고를 내는 바람에 두 번째 차도 몰고 다니기엔 오른쪽 부분이 너무나 성치 않아졌기 때문이다. 다행히 아직 사람을 다치게 한 적은 없지만 집 주차장, 어딘가의 기둥에 차를 긁어 내 마음이 많이 다쳤다. 얼마 전 려나씨와 함께 차를 탔다. 나는 운전석에, 그녀는 오른쪽에 앉아 가다가 차들이 많은 좁은 골목에서 차를 꺾어야 하는 순간이 왔다. 오른 편 차들이 너무 가까이 있는 것 같아 커브를 틀다 또 사고를 낼 것 같았다. 겁에 질린 나는 한껏 차를 왼쪽으로 붙였다.

 “려나야, 오른 쪽 괜찮아? 부딪칠 것 같지?” 려나씨가 여유롭게 웃으며 말했다. “언니, 1미터는 남았어요! 괜찮아요!”

순간 웃음이 터져버려 긴장을 풀고 핸들을 확 꺾어 여유롭게 코너를 빠져나왔다.

며칠 후 함께 장애인의 날 행사를 하기 위해 무대에 선 날, 공연 직전 려나씨가 내게 물병을 내밀며 말했다.

“언니, 나 물 좀 열어줘요.” 늘 하던대로 병뚜껑을 열어 려나씨 옆에 두었다.

나에게는 려나씨가 오른 눈이, 려나씨에겐 내가 손이 되어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 순간 서로가 존재한다면 장애인(disabled)이 아닌 뭐든 할 수 있는(able) 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음을 경험했다. 이런 일은 비단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모든 인간은 완전할 수 없으니 말이다.

 내 옆에 려나씨가 있으면 나는 걱정 없이 운전하면서 자신있게 코너를 돌 수 있다. 내가 옆에 있으면 려나씨는 아무런 주저함 없이 내게 물병을 내어 밀고 언제든 편히 물을 마실 수 있다.

우리 모두 서로가 서로의 부족한 점을 채운다면 우리는 진정한 무장애구역(Barrie-free Zone)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장애가 선물로 여겨진다는 건, 불편한 것이 좋아서가 아니다. 고난을 축복으로 받아들이는 정신승리도 아니다. 누군가 불편할 수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는 것, 나도 도움을 받으면 순간 오른 눈이 있는 사람처럼 살아지기에 누군가에게 그런 역할을 하고 싶은 마음이 장착되는 것. 그것을 두고 선물이라 부를 수 있는 거 아닐까? 

 서로 짐을 지며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며 살아갈 수 있는 그 날을 소망한다.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갈라디아서 6장 2절)

/아신대학교 교육복지대학원 초빙교수, 늘함께교회 전도사 박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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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유옥합]기적,서로를 부축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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