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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4.08.07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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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식.jpg

 

 

 사람은 날마다 두 개의 손을 맞잡고 산다.한 손은 두려움의 손이고 한 손은 믿음의 손이다두려움의 손이 공포와 불안이라면 믿음의 손은 평안과 축복의 손이다이 두 가지 손은 어디를 가나 따라 붙는다두려움의 손이 이기는 순간도 있고 축복의 손이 이기는 순간도 있다여기에서 희비가 엇갈린다.

 

 문제는 내가 어느 손을 들어 일을 처리할 것인가에 있다그러나 이 이치를 모르는 사람은 가만히 있다가 뒤통수를 얻어맞고 공포와 불안에 떤다두 가지 손을 어떻게 이용해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이다내 안에서 이것의 사용법이 결정되지 않은 결과이다두려움의 정체를 명확히 알고 나면 자기 안에서 그것들이 손을 내미는 것을 차단할 줄 아는 힘이 생긴다평안과 축복의 뿌리가 어디에서 비롯되고 있는지 정확히 알고 나면 그것들에 양분을 주는 지혜가 생긴다하나님이 우리에게 선물한 낙원을 잃어버린 것도 두려움의 정체를 명확히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일어난 결과였다.

 

 작은 유혹에 쉽게 넘어가는 것도 공포의 실체를 모르고 있기 때문에 발생한다두려워해야 할 것을 가릴 줄 아는 지혜의 눈은 그래서 필요하다그러나 살아가다보면 안 보일 때가 있다어느 것이 나에게 해가 되는 독인지 나에게 이로움을 주는 약인지 가려지지 않는 것이다이 때 신중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일생 발등을 찧고 싶은 후회와 절망을 떠안게 된다이것을 식별하게 해주는 힘은 바로 말씀에서 나온다.

 

 하나님은 공평하신 분이다인간에게 가야할 길과 가서는 안 될 길을 자상하게 일러주고 계신다지혜의 눈이 말씀 속에는 들어 있다아무리 안개 속을 헤맬지라도 그 길은 언제나 그 자리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단지 인간적인 욕망이 그 길로 접어드는 것은 자꾸만 방해하는 것이다평소에 말씀을 음미하고 탐독하다보면 어떤 상황이 닥치더라도 두려움의 손을 잡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판단해야 할 뚜렷한 선을 알고 있는데 엉뚱한 길을 선택하는 어리석은 사람은 없다.

 

 알고도 선택하지 않는 것은 죄악이다하나님은 분명히 이 길을 가라고 말씀하셨는데 죽어도 저는 이 길을 가야겠습니다” 라고 고집을 피우면 하나님은 그래 네 마음대로 한 번 해봐” 라고 내버려두신다결과는 뻔하다만신창이가 되는 것이다몸도 상하고 마음도 상해 지칠 대로 지쳐서야 제가 잘못했습니다.” 하고 석고대죄 한다.

 

 믿음의 손을 내 안에서 키우는 일은 사랑을 실천하게 하는 지름길이다진리의 불은 너무 뜨거워서 데이지도 않고 너무 밝아서 눈을 멀게 하지도 않는다귓가에서 나지막하게 말해주는 세미한 음성이다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평생 말씀에 살고 말씀대로 행하다 보면 자기 안에 자라나는 것이다./예장 합동한신측 증경총회장·로고스교회 설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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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실천] 두 개의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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