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에선 <에리직톤의 초상>의 그 질적 변화 문제에 대하여 논의해 보기로 하련다. 이러한 논의는 원작 중편과 개보작 장편 상호간의 비교 작업이 필수적으로 요청되는 일이다. 이에 우리는 먼저, 1981년 발표된 원작 중편이 별로 대중의 눈길을 끌지 못한 채 외면당하다시피한 그 주된 이유가 무엇이었느냐에 대하여 생각해 보아야 하리라.
한마디로 말하면, 원작 중편은 작가의 종교사상, 곧 기독교적 세계관을 피력하는 일종의 토론장의 성격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 것이어서, 관념적이고 사변적인(또는 현학적인) 소설이라는 비판을 면치 못할 그런 자리에 위치한 작품이었다. 그러므로 장편 제2부의 새로운 등장인물인 신태혁, 즉 이 소설의 ‘충격 인자’로서 출현하기 시작한 새 인물 등장 이전의, 일종의 미완성작에 해당하리라고 보이는 원작만으로써는 독자 대중의 관심도, 비평가의 호응도 기대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그래서 이 소설의 원작 중편은 마치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이 비평가들로부터 받았던 평가 그 이상을 뛰어넘기가 어려웠다고 보겠다. 아니, 일단은 스토리 전개 면에 있어서 완성품이라고 볼 수 있는 중편 <사람의 아들>보다는 중편 <에리직톤의 초상>이 스토리의 그 미완의 성격 때문에서도 비교적 더 혹독한 평가를 받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원작 중편의 ‘장편으로의 변형’은 전혀 새로운 국면으로의 진입이란 문제를 불러왔다고 생각한다. 제1부의 만연체, 화려체 중심의 문체가 제2부에 들어와서 간결체, 건조체 형식의 직설적 문체로 바뀐 것을 볼 수가 있다. 그 결과, 이런 문체의 변화로 작품내(특히 제1부)의 정태적 분위기가 후반(제2부)에 들어와 역동적인 분위기로 바뀌었다는 사실이 지적될 만하다. 물론 이를 달리 표현하자면, 제2부의 상황(장면) 변화가 결과적으로 그 문체의 변화를 동시에 초래했다고 표현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문체의 변화를 수반한 제2부의 상황 변화란 무엇을 뜻하는 말인가. 이는 바로 신태혁이란 인물의 새로운 등장에 다름 아닌 것이다. 신태혁의 새 출현으로써 이 소설의 상황은 급전한다. 제1부에 있어서의 수직·수평 관계의 종교적 논의라고 할 일종의 관념적 유희 분위기가 제2부에 이르러 실천적 참여의 방향으로 급선회하게 되는 것도 신태혁의 출현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신태혁은 이 소설에서 하나의 큰 ‘충격 인자’로서 기능하고 있다. 그가 수행한 일 가운데 가장 큰 것은, 그가 시위의 주동자로 모모 건물들에 방화를 주도하거나 노동운동가로서 일선 지휘를 맡은 일이었다기보다는, 이 소설의 중심축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女性] 정혜령을 결정적으로 변화시킨 충격 인자로서의 기능을 담당했다는 그 점일 것이다.
정상훈 교수의 딸로서 철두철미한 완고성을 지닌 보수주의적 신앙인 상을 결코 흐트러뜨리지 않았던 정혜령에게 ‘새로운 존재’(new beings)로의 변화를 가져다준 일, 이것이 곧 신태혁의 역할 가운데서는 가장 큰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하여 정혜령의 변화가 신태혁의 수평축으로 완전히 수렴된 것은 결코 아닌 채, 그녀는 그녀 나름의 제3의 길로 그 자신의 행보를 내딛게 되는 것이다.
동시에 이렇게 변화되고 있는 옛 애인 혜령을 옆에서 지켜보아야만 하는 화자 ‘나’(김병욱)의 점진적인 변화까지 예고해주고 있는 사정을 감안하면, 그런 변화를 직·간접적으로 촉진시킨 충격적 요인이 바로 신태혁이란 점에서 그의 역할은 자못 크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