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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의식탁

정광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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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4.11.25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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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광야가 같은 세상에 늘 방황할 때에~”

 

 찬송가 ‘십자가 그늘 아래’(415장)에 나오는 가사로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광야로 표현하고 있다. 광야가 뭔지도 모르고 광야에 가 본 적도 없는 어린 시절부터 이 노래를 따라 불렀다. 물론 구약 성경을 배우고 출애굽기와 민수기를 공부하면서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에서 40년 동안의 역사를 알게 되었으나 광야를 내 삶의 현실과 일치시키는 일은 없었다. 시대가 바뀌어 이제는 광야나 사막을 관광 스케줄의 하나로 삼을 만큼 우리 경제생활은 부요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예배를 드리며 ‘이 광야 같은 세상’이라고 찬양을 부른다. 광야를 과거 어느 나라 어느 특정한 지역에 국한 하지 않고 일반적인 우리네 삶의 상징어로 일컫는다는 뜻일 게다.

 

 한때 젊은이들의 입가를 떠나지 않았던 싯귀가 있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이 시는 러시아 사람들로부터 가장 사랑을 받는 시인 <푸쉬킨>이 시베리아 유형지에서 처형당한 친구들을 생각하며 썼다고 한다. 나이를 먹을수록 인생이 자신의 뜻대로만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미래보다 과거를 회상하는 날이 더 많아지는 나이일수록 지나간 삶이 내가 스스로 만들거나 이미 잘 만들어진 길을 걸었던 때 보다는 길이 막혀 더 이상 한 발도 내 디딜 수 없을 때의 기억이 더 생생하게 떠오른다. 캄캄하던 그때, 뜻밖의 길이 생겨나고 그래서 광야의 구름 기둥과 불기둥 같은 일이 내게도 일어났었다는 간증을 하게 되는 것이 아닐는지. 고속도로 인생이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오솔 길, 굽은 길, 절벽 길 또는 그야말로 ‘길 없는 길’을 오직 믿음만으로 걸었던 기억을 뒤늦게라도 하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이 모든 일을 곡조에 담아 노래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 우리는 오늘도 시편 78편 기자와 함께 광야에서의 힘들고 아프고 쓰렸던 기억의 반찬들을 ‘광야의 식탁’(19절)에 올리며 읊조리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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