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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5.02.25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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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유하늘.jpg

유하늘

 

처음으로 들어 본 화가의 이름이었는데, 그의 그림이 한 눈에 쏙 들어왔다. 빛의 질감이 손으로 만져보면 느껴질 정도로 생생하게 그 현장을 그려낸 그림으로 매혹적으로 느껴졌다. 그림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내가 느끼기에는 르누아르 그림 속에서 느껴지는 따뜻한 감촉과 모네의 그림에서 느껴지는 찰나의 아름다움이 혼재되어 있는 느낌이 들었다

 

당장이라도 눈부신 햇살을 손으로 가려야 할 것처럼 반짝이며 빛나는 햇살이 아름답게 느껴졌고, 그 빛이 파도처럼 부서지고 있는 배경이 지중해라는 것을 알고 지중해를 가 본 적은 없지만, 최상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여러 그림 속에서 지중해를 걷고 있는 여인들이나 해수욕을 즐기고 있는 소년들의 얼굴이 자세히 묘사되어 있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해맑은 표정이 보이고,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착각마저 들었다. 그런데, 그의 한 그림에서는 지중해의 눈부신 바다의 아름다움이 조금은 다르게 느껴졌다.

 

바다에서 검은 옷을 입고 서 있는 한 남자, 얼굴의 표정이 괴이한 소년, 목발을 짚고 서 있는 소년. 4~50명의 소년들은 해수욕을 위한 준비를 마치고 바다로 향하는 듯 보였는데, 한 남성은 그들을 돕고 있는 듯, 지팡이에 자신의 몸을 지탱하고 있는 소년의 불편한 다리가 중심을 잃고 넘어지지 않게 팔을 잡아주고 있었다. 팔이 붙들린 아이는 그의 검은 옷자락에 얼굴이 파묻혀있다. 그 그림에서는 어떤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고, 파도도 침묵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스페인화가 호아킨 소로야의 슬픈유산이라는 이름의 작품이 있다. 매독에 걸린 부모에게서 태어나 장애를 입고 있는 소년들과 그들을 데리고 치료의 일환으로 해수욕을 시키고 있는 수사의 모습을 그린 것이었다. 그런 사실을 확인하고서 그림을 보니 아름답고 눈부시게만 느껴지던 지중해가 슬프게 보였다. 실로 소년들은 슬픈 유산을 받았다. 사람들에게는 휴식과 놀이의 장소로 여겨졌던 바다가 그들에게는 생존과 희망을 위해 몸부림치는 곳이 되었다. 그리고 그 소년들 옆에 선 사람이 누구인지는 발목까지 덮인 검은 옷이 말해주고 있었다. 그는 지중해보다 더 찬란하고 아름답게 느껴졌다.

 

5세의 아들에게 그림을 보여주니 아들은 가난한 아빠가 집에 목욕탕이 없어서 아이들을 데리고 바다로 목욕하러 온 것 같다고 말한다. 아이의 눈에도 그들이 처한 상황이 부러움이 아닌 슬픔과 가난이 묻어 있는 게 보이나 보다.

일본에 가족과 함께 온지, 4년 정도가 지났다. 아이들의 적응은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고 있다. 아이들의 필요보다는 내 시간에 맞추어 조급함으로만 바라본 것은 아닌지 내 호흡보다는 그들의 호흡에 맞추어 더 기도해 주고 응원해 주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선교의 현장에서, 굳이 그렇게 거창하게 말하지 않아도 일상의 삶 속에서 내가 누구의 팔을 붙들고 서 있어야 하는지 생각해 본다. 빛나는 바다의 아름다움이 한 존재 앞에서 그저 배경으로 느껴지는 것은 인간에 대한 사랑과 존엄의 아름다움이 파도가 되어 바다를 삼켰기 때문일 것이다. 이웃이나 자녀들에게 나는 얼마나 그들의 아픔과 회복을 위해 그 옆에 서 있었는가, 아니 얼마나 진정성을 가지고 한 사람에게 다가가 그들의 필요에 귀 기울였는가 반성해 본다

 

아직은 이 땅에 서 있는 모습이 목발을 짚고 누군가의 부축을 받아야 설 수 있는 연약한 모습이지만, 그래도 허락된 시간동안 내 아픔이 아니라 누군가의 필요와 아픔에 좀 더 손 내밀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

                                                                                                                / 일본선교사·동경지구촌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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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유옥합] 슬픈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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