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 보면, 내가 민간외교에 관심을 가지고 발을 벗고 나선 시기는 ‘양키 고 홈’이라고 하는 극단적인 반미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아 미국사람들이 매우 화가 나 있던 시절, 그러니까 미국과 우리의 관계가 가장 어려웠던 시대였다. 그런 시기에 나는 양쪽을 이해시키고 또 화해시키려 두 나라의 관계가 완만하게 이루어지는 데 일조를 하고자 직접 뛰어 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내가 이런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교육자이고 음악가였으니까 가능했다고 생각된다. 만약 내가 사업가였다면 그 효과는 훨씬 저하되었을지도 모른다. 말하자면 내가 교육자요 음악가였다는 것은 사심 없이 그들에게 접근할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무엇보다 나의 음악을 좋아했고 그리고 내가 늘 주장하는 ‘사랑의 실천’에 대하여 공감을 하였다. 내가 과거에는 세계가 양육강식의 지배 논리가 통하여 강자가 약자를 힘으로 누르는 시대였지만, 이제는 있는 사람이 없는 사람에게 배푸는 사랑의 시대, 사랑의 역사가 왔다고 외칠 때에, 미국의 종교계와 교육계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들이 나를 존경하게 되었고, 그것이 정치인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쳐서 결과적으로 한국과의 관계를 돈독하게 했다고 나는 스스로 자평하고 있다.
여기서는 주로 미국과의 관계만을 언급했지만 일본과의 관계에서도 나는 기본적으로 이런 철학을 갖고 접근하였고, 그 외에는 프랑스나 독일, 그리고 영국까지도 이런 기본 철학을 가지고 교제를 하였다. 나는 벌써 20여 년 전부터 세계가 사랑으로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굳게 믿고, 또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 말을 외치고 다녔다. 그런데 지금 세계의 곳곳을 보면 사회가 그렇게 되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변해 있는 것이 아닌가
정말 이제는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누르는 것이 아니라,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돌보고, 있는 자가 없는 자에게 자기 것을 나누어 주는 시대가 되어야 함을 절실히 느끼고 있음을 볼 때, 내 판단은 전적으로 옳았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화해와 세계를 지향하고자 하는 의지에서 나온, 나의 민간 외교활동은 매우 시의 적절한 것이었다고 생각된다. 앞으로도 우리 젊은 후세들이 이 점을 본받아 계속 이어줄 때, 우리 나라가 외국과 좋은 관계를 맺고 정치·경제·외교 등 모든 면에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