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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5.09.02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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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kaoTalk_20250902_082905785.jpg

 

탈무드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사람은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

 

여러분은 이런 경험 있으신가요?

정성껏 이야기를 전했는데, 상대는 딴청을 피우고 관심도 없어 보입니다.

어떨 땐 말하다 보면, 상대가 눈을 감고 조는 걸 볼 때도 있죠.

 

저는 운전하고 가던 길에 옆 사람과 대화를 하다가 갑자기 코골이 소리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옆자리 앉아서 기사가 졸지 않도록 말을 걸어 준다고 했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 때 제 마음은 어땠을까요?

 

내 이야기가 별로였나? 이건 중요한 얘기였는데...

그냥 피곤했던 걸까? 아니면 내 말에 관심이 없나?

이 사람이 많이 피곤했나?

지난 밤에 잠을 잘 못잖나?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화를 할 때 상대가 공감하고 경청해 주면 말하는 사람도 행복해 집니다. 부모는 자녀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를 많이 해 주고 싶어 합니다. 자녀들은 잔소리 같지만 부모의 금언들을 듣는 사람은 지혜를 얻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자녀들은 부모의 말에 귀를 열지 않습니다. ‘또 꼰대질 한다. 잔소리 그만 좀 하지?’

사람은 자신에게 관심이 없는 이야기가 들으면 귀를 닫아 버립니다. 먼 산을 쳐다보고 하품을 합니다.

 

여러분은 누구와 대화를 할 때 가슴이 뛰어 본 적이 있나요?

무엇을 들을 때 가슴이 뛰고, 대화가 잘 되던가요?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은 메시아를 간절히 기다리던 시대였습니다. 로마의 압제 속에서 매일의 삶이 고통이었습니다. 그들은 약속된 메시야를 간절히 소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세례요한이 광야에 나타났습니다.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며 회개를 외쳤습니다. 세례요한의 소식은 그들의 가슴을 뛰게 했습니다.

드디어 메시야가 나타난 것 아닐까?”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그는 계속 광야에 머물러 지냈습니다. 그의 메시지는 위로가 아닌 회개였습니다. 따뜻한 위로보다는 날카로운 진단이었습니다. 그들이 기대한 메시야의 모습과는 너무도 달랐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수근거렸습니다.

 

저게 뭐야! 광야에서 이상한 옷을 입고 금식이나 하고... 귀신 들린 거 아냐?”

 

그 다음 등장한 분이 바로 예수님이셨습니다. 이번엔 사람들의 시선이 예수님을 향했습니다.

예수님은 세리와 죄인들과 식탁을 나누고, 먹는 것을 즐거워하셨습니다.

그러자 또 말합니다.

 

저 사람 봐~. 먹기를 탐하는 사람이야,

가난한 사람이라 그런가, 먹는 것만 좋아하나 봐.

죄인들과 어울리는 걸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구별조차 하지 않아.’

 

예수님은 이전과 다른 새 시대를 선포하시고, 그 천국 복음을 전해 주셨습니다. 그렇지만 그 말씀은 무리들에게 귀에 스치는 바람 같았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생명이며, 사람을 살리는 말씀인데도 그들의 마음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들은 정치적인 문제를 해결해 줄 메시야를 기대했는데, 그 기대와 전혀 맞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듣고 싶은 내용이 아니였습니다. 주님이 보실 때 그들의 마음은 길가와 같고, 돌짝 밭 가고, 가시 밭과 같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17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슬피 울어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기쁨의 피리 소리를 들으면 춤을 춰야 마땅한데, 그들은 춤을 추지 않습니다. 슬피 우는 이야기를 전해 주면 가슴을 치며, 애곡해야 하는데, 그럴 마음이 아닙니다. 오히려 세례요한과 예수님을 평가하고 판단합니다. 그런 반응이 그들의 현재 마음의 상태이며, 지혜였습니다. 그들의 마음과 지혜는 예수님의 말씀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이런 그들의 모습은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고, 본문에서 그 마음을 표현하십니다.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면 천국이 임하고, 주의 구원을 경험할 것인데,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의 말씀이 마음에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주님의 말씀이 마음에 들어갈 자리가 없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그들이 듣고 싶은 내용이 아닙니다. 그들의 욕구를 해결할 내용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귀로 듣고 흘려보내고 마음에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래도 주님은 인내하시며, 또 그들에게 계속 말씀하십니다.

 

이런 영적인 현상은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욕심을 내려놓지 않으면 주님의 말씀은 마음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우리의 마음에 세상의 욕심과 생존에 본능에 집착하면 주님의 말씀은 가슴을 울리지 않습니다. 주의 말씀이 참 생명이며, 영혼을 살리고, 축복의 길로 인도하는데, 그 말씀이 땅에 떨어지고 새들이 와서 먹어 버리고 맙니다.

 

성경을 보면 주의 말씀을 간절히 받고, 정말로 그러한가 묵상하는 사람들은 그 말씀이 마음에 살아 움직였습니다(17:11). 혼과 영과 골수를 찔러 쪼개며, 살아계신 주님을 경험했습니다(4:12).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배불리 먹고 살아났습니다(5:6). 주님은 지금도 살아계시며, 닫혀 버린 우리의 마음을 노크하고 계십니다(3:20).

 

말씀이 들릴 때, 가슴을 뛰게 하며, 살아 있는 사람이 되게 합니다. 주의 말씀이 마음에 심겨지고, 마음과 생각을 인도할 때 살아 있는 사람이 됩니다. 지금도 예배하고 말씀을 볼 때 가슴이 뛰고, 눈물이 흐르는 사람은 진짜 살아 있는 사람입니다. 주님의 말씀이 내 욕망을 채워주지 않더라도, 그분의 이름 앞에 떨고, 그분의 사랑에 가슴이 뛰는 사람은 가장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신앙생활은 마음이 살아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 앞에서 가슴이 뜨겁게 반응하는 것입니다.

단지 종교적 의무가 아니라, 부르심에 가슴이 뛰고, 주님의 사랑에 감동하는 삶입니다.

그것이 살아 있는 신앙입니다.

 

이 시대에 이런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요?

 

주님은 지금은 죄인의 친구가 되시고, 구원의 일을 하고 계십니다. 주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말씀하시며, 우리를 살아나게 하십니다. 우리의 가슴이 뛰지 않을 때 주님은 애통하며 마음을 계속 두드리고 계십니다. 그 주님을 바라보시고, 주님의 사랑의 손길을 느껴보세요. 주님이 살려 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가슴은 지금도 말씀 앞에서 뛰고 있나요?

주님의 이름을 들을 때, 가슴이 반응하나요?

그분의 말씀이 심령을 울리고 있나요?

 

/오산새빛교회 김정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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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의말씀] 가슴이 뛰는 사람 (마태복음 11장 16-1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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