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로 우로 치우침이 없는 믿음은 우리의 삶을 형통케한다. (수1:7) 북조 이스라엘은 일생을 치우친 길로 행하다 앗수르에게 멸망(BC722년)을 당한다. 남 유다에는 북 이스라엘 비하여 선한 왕이 많은 것은 사실이었다. 그것은 율법을 주관하는 제사장들의 가르침과 유다지파에 대한 하나님의 예언이 있었기 때문이다. 의심과 불평하며 믿거나 시험에 들어 죄의 유혹에 빠질 일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좌로 우로 치우침”이 없이 하나님을 믿어야 되는 일과 그 예를 찾아보고자 한다.
첫째, 하나님의 명령(신28:14)에 대한 일이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 대로 너희는 삼가 행하여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신5:32) 명령은 하나님의 권위에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누리게한다.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금하신 명령을 어긴 결과를 주목해 볼 수 있다. 에덴의 영향력을 잃어버리고 하나님의 임재를 누리지 못하는 죄인이 된다. 이러한 결과를 낳은 것은 하와의 우월성과 남편 아담에 대한 존경심을 잃어버린 치우침이 초래한 일이다.
둘째, 율법(수1:7)을 지켜 행하는 일에 관해서이다. “~크게 힘써 모세의 율법 책에 기록된 것을 다 지켜 행하라 그것을 떠나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수23:6) 율법을 주신 것은 거룩히 구별된 삶을 위한 것이다. 구별된 삶의 균형을 통해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을 드러내며 하나님 안에 거하는 길이다. 말씀이 삶을 통해 살아서 역사하게 하며 하나님의 실존을 증명하는 거룩한 길이다. 율법을 듣기만 하고 준행하지 않는 것은 이방신에게 치우침이며 오늘날 세상의 영광된 길로 가는 경우이다. 이 경계를 온전케 하기 위해 성령의 법이 오늘날 우리의 마음을 인쳐주셨다. 셋째, ~율법의 뜻대로, ~그들이 네게 보이는 판결을 어겨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 것이니라(신17:11) 또한 모든 권위자의 판결을 받아들임으로 개인적인 실리의 치우침에 대한 애매모호한 부분들을 조절하기를 원하셨다.
여기 젖 나는 소 두 마리의 순종을 본다면 믿음에 대한 각오를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젖 나는 소 두 마리는 짐승의 본능을 뛰어 넘어 새끼를 떼어놓고 번제로 드려질 자신들의 죽음을 받아들인다. 벧세메스로 하나님의 법궤를 수레에 싣고 가는 블레셋의 두 암송아지는 “~바로 행하여 대로로 가며 갈 때에 울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삼상6:12) 애매모호한 자세를 취하지 않았다.짐승도 자신의 사명을 위해 ‘울며’갈지라도 치우침이 없었다./대전반석교회 목사·수필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