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 (12) 극작가 이반의 분단극과 종교극
한국 현대문학 산책 (37)
황광은 목사는 ”너희들의 가슴에 한 개씩 가진 거문고를 내가 울려 주려 한다.“라고 말하였다.
호언한 대로 몹시도 추웠던 영하의 도시 대학로 공연장에서 관객들에게 다가와서 저마다 숨어 있던 가슴속의 거문고를 울려 주었다.
1951년 8월 12일 소년시, 소년공화국은 창설되었다. 지금은 서울시 마포구였으나 당시는 서대문구에 속하는 수색에서 서남방 2Km지점, 한강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는 108만 평의 섬이 난지도이다.
그중 12만 평의 YMCA 소유의 토지에 삼동 소년시가 기공되었다. 56년 전,허허벌판에 포플러나무만이 쓸쓸히 서있던 땅, 황폐했던 그 땅에 소년들의 마을 ‘Boys Tdwn’ 간판이 올라가고 그 옆에 ”과거는 묻지 말아 주십시오. 우리는 희망에 살고 있습니다.“ 라는 슬로건이 적혀 있었다.
6.25 한국전쟁으로 부모를 잃고 절망에 빠진 전쟁고아들, 허물어진 거리를 목적도 방황도 없이 헤매던 200여 명의 소년들이 세운 자치시가 세워지게 되었다.
소년들의 유토피아 소년시는 1920년대 미국 네브라스카에 살고 있던 아나주란 사람이 유랑 소년들을 모아서 소년시를 형성한 것이 시초이다. 그 후 세계 각국에서 네브라스카의 소년시를 본떠 소년시들이 많이 생겼다.
한국전쟁으로 많은 고아들과 유랑아들이 생겼다. 육영사업으로 각지에 고아원이 있었다. 그중에 특수한 육영체로서의 소년시가 부산 가덕도와 서울의 난지도이다. 6.25동란이 나기 전부터 YMCA에서 소년시 창설에 대하여 논의가 있었으나 자금난으로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동란 이후 이런 사정을 들은 미군 제5독립연대 장병들의 성금 2만 여 달러로 소년시 건설을 착수한 것이다.
황광은 목사와 훗날 그의 아내가 된 이화여대 약대를 졸업한 김유선과 이창선, 현동완 등의 의지가 수도 경찰청의 허가를 받아 내어 삼동소년시를 세웠다. “민주시민은 민주적인 생활환경에서 성장해야 가능하다.”는 것이 그들의 철학이었지만 중공군의 참전으로 전쟁이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는 전선과 가까운 난지도는 불가하다는 것이 경찰청장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끈질긴 설득에 타협안으로 전쟁고아만 수용할 것이 아니라 감화원 출신과 불량행위로 경찰서 유치장에 보호 중에 있는 소년들을 함께 수용하는 조건으로 허락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