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고 나는
정작 자유롭지 못하옵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란
그 말씀만은 자유이옵니다
오늘도 나는 그 자유가 그리워
알맞게 세상을 떠도는 눈먼 하루살이이옵니다.
- 「황혼에 서서」 전문
- 「황혼에 서서」 전문
이 시는 「황혼에 서서」란 제목 자체가 암시하듯이, 하나님 앞에서 지금까지의 삶과 오늘의 삶을 반추(反芻)한 것이다. 그것은 “정작 자유롭지 못하옵니다”나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가 자유롭게 하리란/그 말씀만은 자유이옵니다”란 구절의 두갈래인 삶의 현장에서 ‘자유’에 대한 고뇌의 명상으로 전개했다. 그 자유는 일상의 삶인 세속적인 세상살이의 ‘자유’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획득할 수 있는 ‘자유’에 대한 의미를 새롭게 일깨워 준다. 하나님의 말씀, 즉 진리를 통해 일상의 생활 속에서 자유롭게 하는 자유에 대한 의미를 사유하도록 한다. 일상의 생활 속에서의 자유는 자유롭지 못한 삶임을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유를 찾아 나서는 삶의 행적에 대한 고백이다.
이 시에서의 ‘자유’와 ‘진리’는 사전적인 의미 속에 성경적인 의미가 부여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의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자유’란 세속적인 삶의 현장에서의 ‘자유’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한 ‘자유’로 분류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남에게 얽매이거나 구속받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는 일, 또는 법률이 정한 범위 안에서 자기 뜻대로 할 수 있는 행위를 말한다. 성경적으로는 출애굽을 통해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노예상태에서 자유롭게 해주셨듯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영적인 권세, 죄와 죽음, 율법의 속박으로 부터 자유롭게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언제고 나는 / 정작 자유롭지 못하옵니다”란 구절은, 하나님을 떠난 ‘자유’는 자유롭지 못한 삶임을 깨닫게 한다. 누구나가 세상 속에서 누리는 자유란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에서 벗어난 자유이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이 없는 자유는 자유가 아닌 “자유롭지 못하옵니다”고 고백할 수 밖에 없다. 특히 “언제고 나는”이란 구절은 언제나 일상의 생활 속에서는 자유롭지 못함을 암시해 준다. 그것은 일상의 생활 속에서 모든 것이 자유롭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일 수도 있다. 지금까지 지켜 왔던 관습이나 생활습관 등의 비신앙적인 행위들이 신앙의 삶을 침해하기 때문이다. 신앙적인 자유의 삶을 향한 고뇌가 함축되어 있는 구절이다. 그러나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란 / 그 말씀만은 자유이옵니다”란 구절은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가 자유롭게 하는 그 자유만이 자유인 것을 천명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유’의 의미를 일깨워 준다. “언제고 나는 / 정작 자유롭지 못하옵니다”란 구절의 자유가 아니라, 요한복음 8장 32절의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란 구절의 진리에 의한 자유만이 자유인 것이다.
“오늘도 나는 그 자유가 그리워 / 알맞게 세상을 떠도는 눈 먼 하루살이이옵니다”란 구절은, 하나님이 주신 자유를 누리기 위해 그리워하고, 그 자유를 찾아 나선 삶임을 고백한 것이다. “정작 자유롭지 못합니다”란 구절의 자유란 세속적인 자유이기 때문에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란 / 그 말씀만은 자유이옵니다”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유를 그리워한다. “정작 자유롭지 못합니다”나 “알맞게 세상을 떠도는 눈먼 하루살이이옵니다”란 구절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깊은 고뇌 속에서 하나님을 찾아 나선 삶임을 역설적으로 표현했다. 그것은 ‘알맞게 세상을 떠도는’ 삶이거나 ‘눈먼 하루살이’란 표현은 자유를 향한 고뇌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시인·한국기독교문인협회 전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