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물일수록 잠들지 못하고
한 밤내
맑게 눈뜨고 운다.
밤이 깊어 갈수록
산 속의 냇물은
더욱 목청을 돋구어 소리친다.
아무런 바램도 없이
소리로만 살아서
밤새도록 흐느끼는
가슴의 기도.
나뭇잎들이 모두
경건히 손을 모으고, 바람도 멈추어 숨을 죽인다.
하늘이
하나의 커다란 귀가 되어
다 듣고 있다.
- 「물소리」 의 전문
유승우의 기독교시 대부분은 참신한 비유와 상징의 체계를 지니고 있다. 구태의연한 관념적 용어의 나열에서 벗어나, 개성적인 이미지들이 훌륭한 예술작품으로 승화되고 있다. 그의 시에 자주 등장하는 ‘하얗다’는 색채어는 순수 지향애의 꿈을 의미하고 있다. 또한 ‘하얀 모래섬’과 ‘흰 돛배’, 그리고 ‘귀가 밝구나’나 ‘맑디맑은 별들’ 등 순수의 세계에 집착하여 형상화했다.
이 「물소리」란 시는 ‘물소리’를 통해 ‘기도소리’를 듣는다. 즉 ‘물소리’는 ‘기도소리’이다. 물소리가 지닌 이미지는 맑은 소리이기 때문에 기도소리로 대치할 수 있다. ‘기도소리’도 구분한다면 ‘맑은 소리’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유승우의 기독교시는 기독교가 지닌 이미지를 비유와 상징의 체계로 형상화했다.
1행부터 3행까지는 자연의 현상이지만, 시적 의미를 부여했다. 밤이 깊을 수록 맑은 물소리가 들린다. 낮의 소음도 밤이 깊을 수록 잠들고, 지저귀던 새도 잠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밤에는 물소리, 그 자체로 들릴 수 밖에 없다. 깊은 밤에 ‘맑은 물’은 잠들지 못하고, 한 밤내 맑게 눈뜨고 운다. 그것은 ‘맑은 물’이란 이미지에서 비롯 되었다. 그리고 ‘눈뜨고 운다’는 것도 ‘맑은 물’이 주는 이미지이다. ‘맑은 물’이 ‘잠들지 못하고’나, ‘맑게 눈뜨고 운다‘는 것은 의인화의 기법에서 비롯된 것이다.
4행부터 6행까지도 자연의 현상을 바탕에 두고, 시적 상승작용으로 끌어올린다. 이 구절은 적막강산을 떠올린다. 밤이 깊어 갈수록 산 속의 냇물소리는 크게 들릴 수 밖에 없다. 밤이 깊어 갈수록 새소리 등 잡다한 소음은 없어지고, 냇물소리만 들리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연의 현상인 ‘냇물소리’를 ‘더욱 목청을 돋구어 소리친다’고 의인화했다. 7행부터 10행까지는 이 시의 중심이 된 부분이다. ‘물소리’가 ‘가슴의 기도’로 대치된다. ‘물소리’는 “아무런 바램도 없이/소리로만 살아서”에서, “밤새도록 흐느끼는/가슴의 기도”가 된 것이다. 물소리는 아무런 바램도 없이 들리는 소리이다. 그 소리는 살아 있다고 진술한다. 그 소리는 살아있기 때문에 밤새도록 흐느끼는 기도소리이다. 그리고 ‘가슴의 기도’도 ‘맑은 물소리’란 이미지에서 연유되었다. 그것은 ‘맑은 물소리’→‘가슴의 기도’→‘진실한 기도’로 이해할 수 있다.
11행부터 13행까지는 종교적 경건성을 승화시킨다. 이 구절은 밤의 정적을 느끼게 한다. 그 정적은 종교적 경건성으로 형상화했다. 기도소리에 나뭇잎들이 손을 모으고, 바람도 멈추고 숨을 죽인다. 기도소리에 나뭇잎과 바람도 동참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특히 기도는 경건한 모습으로 드린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드리는 기도에 모두가 함께할 수밖에 없다.
14행부터 16행까지는 하나님이 진실한 기도를 듣고 있다고 승화시켰다. 그 기도는 나뭇잎도 손을 모으고, 바람도 멈추어 숨을 죽이는 가슴의 기도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기도소리를 듣고 있다는 서술적 설명을 하늘이 하나의 커다란 귀가 되어 듣고 있다고 표현했다. 그것은 구태의연한 관념적인 용어에서 탈피해 격조높은 예술작품으로 승화된 것을 보여준다. 특히 ‘하늘’이 ‘하나의 커다란 귀’로 의인화한 것은, 성숙한 시적 재치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구절은 가슴의 기도, 즉 진실한 기도는 하나님이 어느 곳에서나 듣고 계신다.
/시인·한국기독교문인협회 전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