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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9.08.27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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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김연준-이것만사용.jpg
 
인간이 하나님을 찾아 올라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을 찾아 내려온 종교가 기독교이다. 인간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떠나 탕자와 같이 자기 중심적인 생활에 몰두하며 살았지만 그런 인간을 참되게 하기 위해 세상에 와서 진력하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라고 한다.

다른 것은 다 그만두고 그리스도만을 생각해 봐도 그렇다. 그리스도는 인간을 찾아온 도의 화신이라고 요한은 증언했다. 또한 그리스도 자신의 말에 의하면 그는 인간 중에서도 버림받고 소외된 인간들을 찾아왔다는 것이다. 그가 환자·병자·빈자·창기·죄인·세금원 등 세간의 혐오와 지탄의 대상이 되어 있는 사람들의 친구가 되었을 때, 그 당시의 종교인들은 그가 종교 교사로서의 체면 유지도 못 한다고 비판했었다. 그때 그는 ‘성한 사람에게는 의원이 필요 없으나 병자에게는 의사가 필요한 것이 아니냐. 나는 죄인을 부르려고 세상에 왔노라’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그는 어느 누구에게도 무관심할 수 없었지만, 자칭 ‘의인’이라고 자만하는 사람들만은 구태여 찾아다닐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고 한다.

기원 313년 이후 기독교가 로마 제국의 국교가 되고 교회 국가가 권력 구조의 주요한 부분이 되면서부터 이 방향은 흐려지고 스스로 귀족화하는 경향이 늘어 갔다. 그러나 바라건대 기독교회가 그 안에서 그리스도의 몸으로 봉사하는 것을 사명으로 삼는다면 반드시 그리스도의 방향을 되찾아 이에 충실해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와 우리 국민은 얼마나 답답하고 어려우며 또 얼마나 소외되고 위축되어 있는가. 살아야 하고 살고 싶어 발버둥치면서도 스스로 죽지 않을 수 없을 만큼 고통이 극에 이른 사람들이 그 얼마나 많은가. 그럼에도 그들을 한번 찾아 주지도 못하고 위로하지도 못하고 그 고통의 얼마라도 분담하겠다는 마음도 없이 교회당 안에서 스스로 거룩하고 고고한 체하며 방관만 하고 있다면 그것은 누구를 위한 종교인가.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광명을, 눌린 자에게 해방을! 이 기쁜 소식을 전파하기 위하여 나는 왔노라’고 그리스도 자신이 나사렛 회에서 첫 증언을 외쳤던 것을 모두 잊어버리고 있단 말인가.

우리가 진정 그리스도의 길을 걷는다면 기독교 무용론이 나올 까닭이 있을 리가 없다. 뿐만 아니라 종교에 무관심할 인사도 없을 것임이 분명하다.

기독교가 진실로 세상을 구한다는 근본적인 뜻을 갖고 있다면, 구세주의 길을 역행하는 어리석음을 떠나 바른 방향을 걸어가야 할 것이다. 그것만이 세간의 의혹과 방관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이요, 우리 기독교인이 걸어가야 할 방향이라고 믿는다. 
/본지 전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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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 창업자 고 김연준박사 어록] 기독교가 나아가야 할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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