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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9.11.08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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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기천교수.jpg

 

오시는 이는 부처, 무함마드, 공자가 아니다.

 

조국 부인 정경심이 결국 구속되었다. 자신은 마무 것도 알지 못한다고 발뺌한 남편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할까? 옥중에서 메시아를 기다리던 세례 요한이 제자들을 보내서 예수께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요한이 그의 제자들을 보내었다. 그에게 말하기를, 당신이 오시는 이입니까? 아니면 우리가 다른 이를 기대해야 합니까?” 요한의 측면에서 보면, 답답한 것이 한둘이 아니다. 이미 헤롯의 칼날이 그의 목을 겨누고 있고, 기다리던 메시아는 오시지 않고, 제자들은 요한의 임박한 죽음에 흔들리고 있으니 요한은 마냥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던 차에 궁금해 하는 제자들을 보내서 예수에게 질문을 던진다. 여기서 핵심적인 내용은 예수께서 ‘오시는 이’인가이다. 많은 학자가 예수말씀에 메시아라는 단어가 나오지 않으므로 예수를 단지 지상의 인물로만 이해하고 있지만, 이는 예수말씀을 깊이 이해하지 못하는 오해이다. 오시는 이는 예수말씀의 종말론적 차원에서 메시아를 대신하는 단어이다. 누가복음 7장 18절과 마찬가지로 13장 35절도 오시는 이를 메시아로 고백하며,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는 복되시다”고 선언한다. 특히 이 말씀은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면서 하신 말씀이기 때문에, 메시아로 오시는 이를 강조한다.

 

누가복음 3장 16절에서 세례 요한은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벗겨 드리는 것도 감당하지 못하겠다.”라고 설교한다. 이 설교는 요한이 메시아로 오신 예수에게 드린 초기 그리스도교의 신앙고백이다. 이 구절에서 오시는 이는 앞뒤에 연결된 서술어를 따로 떼어 놓고 보면, 그 신앙고백에 아주 깊이가 있다. 곧 ‘오시는 이’ 앞에 ‘내 뒤에 있는 이’가 있고, 그 뒤에 ‘능력이 많으신 이’가 있다. 이는 요한이 원시적인 언어로 투박하게 예수에게 드린 최초의 신앙고백이다. 샌드위치가 두 개의 빵으로 잼을 감싸고 있듯이, 두 개의 신앙고백인 내 뒤에 있는 이와 능력이 많으신 이가 가운데에 있는 오시는 이를 앞뒤에서 호위하고 있다. 이는 마치 어린아이가 아버지를 의식하면 모든 두려움을 떨쳐버린 것과 같이 요한은 메시아의 임재를 오시는 이로 고대하며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능력이 많으신 이라고 고백한다.

 

정작에 나에게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로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누구인가? 많은 이가 이 구절을 읽으면서 세례 요한과 똑같은 질문을 던진다. 과연 예수께서 정녕 오시는 이인가? 아니면 다른 이를 기다려야 하는가? 이런 질문은 지난 2천 년 동안 수많은 이단과 사이비 교주를 배출시켰다. 이들은 적그리스도로 모두 자신을 재림 주요 보혜사요 신으로 둔갑시켜서 사람들 앞에 군림하였다. 그러나 요한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메시아로 오시는 예수의 신을 감히 들고 그 신발 끈을 풀기도 스스로 감당치 못한다고 겸손해하면서 단지 신랑의 들러리로 누리는 기쁨에 불과하다고 자신을 한없이 낮추었다. 요한은 메시아의 길을 준비하고 그 지름길을 평탄하게 하는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에 불과하다고 자신을 철저하게 인식하였다.

 

예수말씀에 나오는 오시는 이와 관련된 세 구절은 모두 메시아의 위엄보다는 오시는 이를 고대하는 사람의 마음가짐에 초점을 두고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의 모습에서 겸손과 평화의 메시아를 보여주려고 한다는 사실이다. 지금 우리에게 오시는 이는 갈등과 싸움이 가득한 세상에 평화를 가져오시는 겸손한 이시다. 이미 이런 평화를 가져오시는 이를 알고 있던 요한은 옥중에서 겸손하게 평생 메시아를 위한 소리꾼으로 살았던 자신의 모습에 조금도 흩트림 없이 제자들을 보내서 그들에게 예수가 메시아로 오시는 이라고 분명히 확인하게 한다.

 

과연 나는 부처, 무함마드, 공자, 아니 그 누구도 아니고 오직 예수만 메시아로 오시는 이로 믿는가? 많은 이가  우상에 이 땅에서 예수 이외에 오시는 이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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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신학동향 - 성서신학] 예수말씀 연구(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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