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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0.05.29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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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게 시작된 초기 기독교는 가장 먼저 생긴 예루살렘교회와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교회, 시리아의 안티오키아교회와 로마교회가 있었고 마지막으로 콘스탄티노플교회가 중세 천년까지의 5대 핵심 교회였다. 그런데 11세기가 되면서 상황이 바뀌게 된다. 예루살렘교회와 알렉산드리아교회, 그리고 안티오키아교회가 이슬람 세력에 의해 점령당함으로 이 지역의 교회는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게 되었고 동방에는 콘스탄티노플의 동방교회만 남게 되었다. 그러나 1054년에 교리와 교황의 수위권 등 기타 정치적인 문제로 인해 동방은 단절되면서 서방의 로마교회만 유일하게 남게 되었다. 이후 로마교회가 중심이 되어 전체 교회를 관장하게 됐다.

 

여기에 한 가지 질문을 하자. ‘2014년에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했을 때 왜 우리나라 사람들이 열광했을까?’ 우리나라 천주교엔 추기경은 있지만 교황은 없다. 그런데도 함께 기뻐할 수 있었던 것은 교황이 있는 교회를 중심으로 한 전체 교회, 즉 보편교회에 관한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가톨릭교회도 그렇지만 11세기 당시 중세 서방 교회는 ‘보편 실재론’을 선호하고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보편교회가 참된 교회라고 생각하지만 이와는 다르게 개별교회를 중시하는 사람들도 있다. 특히 전통보다는 성경의 권위를 앞세우고 있는 개신교 신자들이라면 예수님이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마태복음 18장 20절)라고 하신 만큼 개별적으로 모인 교회가 참된 교회라고 생각할 수 있다.

 

11세기에 떠오른 교회론 논쟁의 화두는 ‘보편교회’와 ‘개별교회’ 중 어느 것이 참된 교회인지 가리기 위함이었다. 보편 실재론과 반대되는 입장으론 ‘유명론’이 있다. 보편은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고작 이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유명론자들에게 정말로 중요하고 실재하는 것은 무엇일까? 개별적인 사람 또는 사물, 즉, 개체이다. 예컨대 ‘인간’이라는 보편은 없고 오직 개별적인 사람들 개체만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개체만 존재한다는 유명론의 입장을 밀고 나가면 하나님이 세 분이 되는 삼신론에 빠지고 구원의 가능성을 확보하가 어려워진다는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이렇듯 보편과 개체에 관해 계속된 논쟁을 멋지게 해결한 학자가 바로 ‘아벨라르두스’였다. 이 사람의 신학 이론은 ‘그렇다와 아니다’로 정의할 만큼 매우 독특하다. 잘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있겠지만 다음의 예를 들어 보겠다. 만일 목사의 의견과 성경의 내용이 상반된다면 어느 쪽을 따르겠는가? 당연히 성경을 따라야 한다. 그런데 성경의 내용끼리 상충된다면, 혹은 여러 교파로 갈라진 교회의 교리 간의 대립과 갈등, 분열이 일어난다면 어느 쪽이 진리라고 해야 할까? 이런 경우 쉽게 결론을 내리기 힘이 든다. 아벨라르두스는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면서도 어떤 것이 진리에 가까운지는 이성을 통해서 판단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대립되는 권위 중에서 어떤 것이 타당한 근거를 지니는가는 오직 성경과 이성적인 판단을 통해 결정할 수가 있고 그러한 작업을 통해 진리를 찾아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그 당시에 아벨라르두스의 이러한 신학 이론이 위험하게 들렸고 이른바 ‘빨간책’ 취급을 받았다. 그렇지만 ‘그렇다’와 ‘아니다’로 상반되는 답들로 정리하는 형식은 후에 토마스 아퀴나스도 받아들일 정도로 인정받았다. 현재 분열과 분파 갈등과 싸움에 몸살을 앓고 있는 한국교회에 대안적으로 적용할 필요가 있는 신학이론이라고 보인다. /두란노그리스도의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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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와 ‘아니다’ - 본문 : 야고보서 5장 1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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