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신학동향 - 성서신학] 예수말씀 연구(20)
2019/07/19 11:53 입력
트위터로 기사전송 페이스북으로 기사전송 구글+로 기사전송 C로그로 기사전송
소기천교수.jpg
 
예수말씀은 “왜 너는 네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어떻게 네 형제에게, ‘나로 네 눈에서 티를 빼게 하라’하고 말할 수 있겠느냐? 보아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다. 위선자들아! 먼저 너의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 후에 너는 네 형제의 눈…에 있는… 티를 빼기 위하여 밝히 볼 수 있을 것이다”라고 티와 들보를 대조한다. 자신에게는 관대하고 남에게는 엄격한 위선적인 인간의 모습을 빗대어 교훈하고 있는 말씀이다. 예수말씀은 부끄럽게 할 만큼 직설적이고 거침이 없다. 우리말에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물한다’는 식으로, 철면피한 인간의 모습을 꼬집는 말씀이다.

이 말씀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1인칭의 ‘나’는 단 한 번 나오지만, 2인칭의 ‘너’는 무려 아홉 번이나 나온다. 이런 압도적인 숫자가 말해주는 것처럼 인간은 남에게 책임을 돌리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는 위선적인 존재이다. 예수께서는 “위선자들아! 먼저 너의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고 그 안타까움을 호소하신다. 예수말씀은 위선자들이 남에게 티를 들이대는 것이 아니라 들보를 들이댄다고 하시면서 이는 단순한 위선을 넘어서 엄청난 폭력을 남에게 가는 행위라고 강조하신다.

2017년 부활절 아침 예배를 겨냥하여 스리랑카에서 동시다발적인 자폭테러로 600여 명이 순교하고, 수천 명이 부상을 당했다. 그 배후로 이슬람국가 IS가 자신의 소행이라고 밝혔다. 무고한 어린이와 아기가 수백 명이나 포함된 끔찍한 살육으로 인해 이슬람의 폭력성과 잔혹함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있다.

왜 이슬람은 이런 폭력을 자행하는가? 무슬림이 말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이교도의 목을 치라”는 쿠란의 한 구절을 밥 먹듯이 반복한다. 여기서 이교도는 복음서에 나오는 이방인이 아니라 기독교인을 가리킨다. 제 눈에 들보가 박힌 줄을 모르는 이슬람의 눈으로 볼 때, 기독교인은 목을 쳐서 죽여야 하는 티끌과 같은 존재에 불과한가?

2020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한국이슬람중앙회는 포교 50주년을 기념하여 한반도를 거점으로 전 세계를 이슬람화하려는 의도를 드러내 보인 적이 있다. 이슬람은 제 눈에 있는 들보를 보지 못하고, 한반도에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기독교인의 티를 공격하려는 폭력적인 집단이다. 한국교회는 2007년 SBS의 ‘신의 길, 인간의 길’이란 4부작 이후에 이슬람이 치밀하게 언론을 장악하고 기독교의 교리를 모독하는 일을 서슴지 않는 행동을 넘어서 제주 난민사태도 보여주듯이 한국사회를 공격하는 일까지 심화하고 있는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이슬람의 공격성은 지하드라는 성전 개념에서 출발한다. 제 눈에 들보와 같은 잘못된 지하드 신앙은 기독교를 공격하라고 무슬림을 부추긴다. 물론 한국교회는 티와 같은 사소한 잘못도 낱낱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용서를 구해야 한다. 그러나 이슬람의 폭력적인 전략을 수수방관해서는 안 된다. 요한계시록 1장을 읽어보라. 큰 음녀와 같은 바벨론이 무너졌듯이 1,500년 동안 지속된 이슬람의 폭력성도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잘못된 신앙을 심어주는 이슬람의 샤리아 법은 무너뜨려야 하지만, 무고한 무슬림은 품고 사랑해야 한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사랑해야 하기 때문이다. 제 눈에 들보를 깨닫지 못하는 이슬람의 폭력성을 용납해서는 안 되지만, 티와 같은 허물이 있는 무슬림이 복음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기독교로 개종하는 것 자체를 막고 있는 명예살인과 같은 이슬람의 악법을 저지해야 한다. 하나님은 의로우신 분이시고, 동시에 사랑이시다.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news3684@naver.com
기독교신문(www.gdknews.kr) - copyright ⓒ 사랑의 실천 - 기독교신문.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