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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악한 세대의 특징(눅 11장 29절~32절)
      바울은 디모데에게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딤후3:5)하는 자들에게서 돌아서고 권면하고 있다. 본문의 무리들은 말씀을 듣는 것처럼 보이고,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여겨지지만 예수님이 단호하게 악한 세대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이는 그가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요2:25)을 정확하게 아시기 때문이다.    말씀을 통해 악한 세대의 특징을 살펴보며 시대도 악하고, 나의 믿음도 연약하지만 새롭게 각오를 세우고 결단하는 시간이 되길 축원한다.    첫째 표적을 구한다. 악한 세대라고 책망을 받는 이유는 “표적만”구하는 자세 때문이다. 예수님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을 눈으로 보고도 바알세불의 힘입은 것(15절)이라 주장하거나 의심할 여지가 없는 하늘로부터 오는 분명한 표적(16절)을 보여 달라고 요청하는 모습은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표적만을 구하기 때문에 악한 세대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없기 때문에 악한 세대이다.    예수님은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눅18:8)고 하신다. 표적을 쫓아다니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신실한 믿음을 붙들고 살아야 한다. 믿음 없이 사는 것이 악한 세대의 모습이다.     둘째 사모함이 없다. 남방 여왕은 열왕기상 10장에 솔로몬을 찾아온 스바(에티오피아)의 여왕으로 예수님이 땅 끝(31절)이라고 말씀하실 정도의 먼 곳이지만 직접 찾아올 수 있는 것은 진리에 대한 열정이 있기 때문이다. 악한 세대를 안타까워하시면서 스바 여왕을 말씀하시는 이유는 진리에 대해서는 사모함이 없고 자기 눈에 보이는 표적만을 요구하는 어리석은 모습 때문이다.    사모함은 신앙생활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자세로서 하나님은 “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심이로다”(시107:9)고 약속하셨다. 그리스도인이지만 진리에 대한 열정과 사모함 없이 예수님 주변만 얼쩡거리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지 짚어보아야 한다.    셋째 찔림이 없다. 예수님이 니느웨의 회개를 말씀하시는 이유는 항상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가르치셨을 뿐만 아니라, 귀신을 쫓아내시고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셨지만 사람들은 회개하고 돌이키기는커녕 어떻게 하면 예수님의 표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까에 혈안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엡5:15~16)고 말씀하고 있다. 악한 시대를 살기에 무엇보다 하나님의 뜻, 즉 하나님 말씀을 붙들고 살아야 한다. 악한 세대의 특징은 찔림이 없는 것이다. 찔림이 없기에 처절한 회개도 따라오지 않는다. 먼저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성도들이 되길 축원한다.      오늘 이 시대는 눈에 보이는 예수님은 없지만 보혜사 성령과 함께 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어찌 보면 예수님 시대보다 더 큰 축복을 받은 세대임이 분명하다. 베드로 사도의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깨어 근신하여 기도하라”(벧전4:7)는 선포가 악한 세대를 벗어나 선한 세대를 살고자 하는 이들의 행동 강령이 되어야 한다. 한 주간 악한 세대의 잘못된 습성들을 버리고 하나님의 자녀로 바로 서서 승리하는 시간들이 되길 축원한다. /길목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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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주의 말씀
    2022-05-18
  •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방식 (눅12:49~59)
    길목교회 주재훈목사  본문을 깊이 묵상해 보면 믿음을 가진 자의 분명하고 정확한 길을 제시해 주신다.   예수님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을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마7:13~14)고 하셨던 것처럼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좁은 길, 좁은 문을 선택하는 것이다.   말씀을 통해 겸손하게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선으로 힘들고 어려운 삶 가운데 멸망이 아닌 참 생명의 길을 선택하는 시간이 되길 축원한다.   첫째:분쟁을 인정하라(49~53)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불은 화평이 아니라 분쟁의 출발점 이였으며(51절), 마태는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마10:34)고 기록한다.   세상을 따라 살며 믿음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은 큰 성읍 소돔과 고모라에 의인 열 명이 없어 심판 받는 것처럼 불가능한 일이다.   예수님은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33)고 선포하셨다.   분쟁이 있기에 힘든 시간들을 마주하기도 하지만 분쟁이 있다는 것은 죄에 때 묻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분쟁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인정하며 그 가운데 그리스도인의 삶이되길 바란다.   둘째:어리석음을 인정하라(54~56)  시대를 분간하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님 말씀이 기준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모스는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암8:11)고 선포한다. 생명의 말씀인 예수님을 눈앞에 두고 책망 받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들도 다를 바 없이 시대를 분간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인생을 살고 있음을 보게 된다.   바울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15:10)는 고백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보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소망한다.  셋째:잘못을 인정하라(57~59)  예수님은 다른 사람에게 잘못한 것이 있어 판결을 받으러 가야 한다면 길에서라도 화해하기를 힘쓰라(58절)고 하시는데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서 용서를 구하라는 말씀이다.   베드로에서 천국의 열쇠를 주시면 무엇을 약속하셨는가?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16:19)고 하셨고, 믿음의 공동체에도 동일하게 주셨다(마18:18).   나의 실수와 잘못이 이 땅에서 당사자와 온전하게 풀어지지 않으면 그 문제는 하늘에서 묶여 있는 상태가 된다. 철저한 회개의 기도와 함께 하나님에게는 용서를 구할 수 있는 용기를 달라고 기도하고, 그 이후에 사람에게 용서를 구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성경은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3:5~6)고 말씀하신다.   그리스도인이라는 호칭은 자기 자신을 인정하는 자가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을 인정하는 사람을 부를 때 사용하는 말이다.   스스로 자기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 말은 하지만 살아가는 방식은 변함없이 세상의 방식대로 살아가고 있는 어리석은 모습을 회개하며 한 주간도 말씀 안에서 승리하는 순간들이 되길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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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주의 말씀
    2022-05-16
  • 무엇으로 채워져 있는가? (눅12:29~34)
    길모교회 주재훈 목사  성경은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4:23)이라 말씀하신다.   그리스도인인지 아닌지는 어떤 말과 행동을 하느냐가 아니라 그 마음에 무엇을 담고 사느냐에 따라 구별된다.   예수님은 온통 이 땅의 풍요로움만을 마음에 담고 살기에 믿음 없이 살 수 밖에 없음을 책망하신다.   말씀을 통해서 나의 마음은 지금 무엇으로 채워져 있는지를 점검해 보고 세상의 욕심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면 깨끗이 비우고 하나님의 나라를 채우기를 축원한다. 첫째:채우지 말아야 할 것(29~30)  이 세상의 것들로 마음을 채우면 찾아오는 것은 ‘근심’(29절)이다.   근심은 내 힘으로 살고자 할 때 찾아오는 마음이므로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잠15:13)고 성경은 말한다. 이렇듯 매일의 삶 속에서 근심의 무거운 짐에 눌려 사는 인생들에게 예수님은 너희 아버지께서 자신의 자녀들에게 있어야 할 것을 다 알고 계시기에(30절) 근심하지 말라고 하신다.   그리스도인들이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은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이 아닌 일용할 것으로 채워 주신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근심은 내 손에 들려진 것보다 남의 손에 들려진 것을 바라보기 시작할 때 생긴다. 따라서 근심은 감사가 없기에 자리 잡게 됨을 명심해야 한다.  둘째:채워야 할 것(31~32)  마음이 세상의 근심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그의 나라를 구하라”(31절)는 명령에 순종하는 삶을 살게 되면 그나마 내 손의 있는 모든 것조차 다 사라질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두려워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멀리 있는 것 같고 현실은 당장 내 눈 앞에 있으니 용기 있는 삶을 살 수 없는 것이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17:20~21)고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내 마음에 하나님의 나라를 맞아들이고 가득 채우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32절)이기에 그 어떤 것보다 가장 최우선으로 삼아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셋째:채우는 비결(33~34)  하나님의 나라를 마음에 품고 사는 자는 이 땅이 아닌 하나님의 나라에 보물을 쌓는 자이다. 나의 소유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다른 이에게 흘려보내는 것이 하늘의 보물을 쌓는 일이다.   “너는 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일곱에게나 여덟에게 나눠 줄지어다”(전11:1~2)   이것이 이 세상의 어떤 것보다 지혜로운 삶을 사는 자의 모습이다. 썩어질 것이 아니라 썩지 아니할 하늘의 것에 투자하는 인생이 되어야 한다.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지리라”(잠11:25)는 말씀에서 보듯이 나의 물질을 흘려보내는 것이 더 많은 것들을 하늘에 쌓아두는 최고의 방법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보물이 있는 곳에 너희 마음도 있으니라”(34절)는 말씀은 내 마음이 어떤 보물로 채워져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신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시면서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마12:34)고 하신다.   이 세상의 것들로 마음이 채워져 있으면 절대로 선한 것이 나올 수 없다. 이 땅의 보물이 아닌 하나님의 나라가 마음속에 차고 넘쳐서 세상에 흘려보내는 축복의 통로가 되길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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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주의 말씀
    2022-05-09
  • 의심 많은 도마(요한복음 11장 16절)
    예수님의 제자들은 나름대로 각자의 발명 혹은 즐겨 부르는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은 보아노게, 즉 “우레의 아들’ (막3.17)로 불렸고, 시몬은 예수님께서 베드로(반석)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신 후로는 베드로가 주된 이름이 되었다. 바돌로오매는 요한복음에서 나다나엘로 나타나는데 어느 것이 본명인지도 분명하지 않다. 그리고 다대오 출신의 유다는 자신의 본업인 유다보다는 그의 출신인 다대오가 오히려 그의 이름처럼 사용된 사람이다.   그리고 도마는 토마스(Thomas)라는 이름으로 ‘디두모’(쌍둥이)라는 별명이 있었는데 여기에 ‘의심이 많은 사람’이라는 비공식적인 별명까지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영어권에서는 의심이 많은 사람을 가리켜 의심하는 도마(Doubting Thomas)라고 부르기까지 gks다. 그런데 이러한 별명을 가진 제자들 가운데 조금 억울한 사람이 있다면 바로 도마”라고 할 것이다. 왜냐하면 별명이 되려면 그래도 지속적으로 어떤 특징을 나타내거나 잘못한 것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 야고보와 요한 ‘우레의 아들’이라는 별명을 가졌던 것은 그들이 노상 성격이 크고 불같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붙여 주신 이름이었다. 하지만 도마는 딱 한 번 의심했었다. 그것도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현장에 없었기 때문에 자기 눈으로 직접 보아야만 믿겠다고 말했는데, 그것이 그만 ‘도마’ 하면 ‘의심 많은 사람’이라고 낙인이 찍혀 버린 것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실 제자들치고 예수님이 부활을 믿었던 사람이 누가 있었을까! 아무도 믿지 않았다. 예수님을 직접 보고 나서야 조금씩 알게 되었던 것이다. 도마 역사도 그들 중에 한 사람이었다. 다른 모든 제자들이 보고 나서야 믿었던 것처럼, 그 또한 눈으로 직접 보아야 믿겠다고 한 것이 무슨 죄가 되느냐 하는 것이다. 그리고 직접 눈으로 보고 확인해야만 정말 확실한 사실에 입각하여 부활하신 예수님을 증거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더욱이 도마는 남에게 해 끼친 적도 없다. 베드로처럼 자기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예수님 배반하지 않겠다고 한 적도 없었고,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적도 없었다. 야고보와 요한처럼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는다고 열을 받아 ‘하늘의 불을 내려 멸해도 되겠다‘는 말을 한 적도 없었다.   게다가 성경은 도마가 매우 의협심이 강한 사람임을 알려 준다. 나사로가 병이 들었을 때 예수님께서 유대로 다시 가지고 하시니까 다른 제자들은 “유대인들이 돌로 처려 하는데 꼭 가야만 하겠습니까”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때 도마는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요11:16)고 말한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이 어떻게 의심 많은 사람이 일까?   또한 도마는 매우 솔직한 사람이었다. 처소를 예비하라 가지고 할 때에 솔직하게 주님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모르기에 그 길을 믿지 못한다고 고백했다. 도마는 말을 함부로하지 않는 진실된 사람이었던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예수님은 한 번도 도마가 의심많은 사람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이러한 별명은 교회가 도마에 대해 가르치면서 기억하기 쉽게하기 위해 사용한 말이 별명처럼 되어 버린 것임을 알 수 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목격하고 믿게 된 도마는 후에 가장 확실한 순교자로 생을 마감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부활의 주님은 우리의 연약점이 우리 인생의 전환점이 되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이러한 주님의 역사가 오늘 우리 모든 성도에게 나타나게 되기를 축복한다./대전중앙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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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5-04
  • 두려움을 만날 때(눅12:1~12)
    길목교회 주재훈 목사  두려움은 사람을 위축되게 만든다. 하지만 하나님은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41:10)고 분명하게 말씀하신다. 밀려오는 세상적인 두려움의 파도 때문에 넘어질 수는 있지만 아주 쓰러지지 않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두려움을 넘어서는 해답을 찾아야 한다.   첫째:현실을 바라보지 마라(1~4)  바리새인들의 외식에 대한 책망은 그 영향력이 예수님 주변에 모인 수만 명이나 되는 이들의 일상에 깊이 관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태어 날 때부터 앞을 볼 수 없었던 아들을 고쳐 주심에도 부모들이 침묵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누구든지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하는 자는 출교하기로 결의하였으므로 그들을 무서워 함이러라”(요9:22)이다.   종교지도자들의 눈 밖에 나는 것이 바로 예수님 당시 서민들이 마주치는 가장 큰 두려움이었다. 예수님은 지극히 현실적인 이들에게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며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2)고 말씀하심으로 눈에 보이는 현실들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지 말 것을 말씀하신다.  둘째:하나님을 바라보라(5~7)  참새 두 마리가 팔리는 것(6절), 사람의 머리털까지 세신바 되신 분(7절)이라는 의미는 모든 것을 다 아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기 시작하면 두려워할 분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크고 두려운 광야”(신1:19)를 지나게 하신 하나님이 “걸어온 길에서 너희를 안으사 이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 그는 너희보다 먼저 그 길을 가시며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너희가 갈 길을 지시하신 자이시니라”(신1:31;33)고 고백한다.   하나님은 나 보다 나를 더 잘 아시기에 두려움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지만 하나님이 계시기에 참 구원의 은총을 누릴 수 있게 됨을 명심하며 언제나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아가야 한다.  셋째:약속을 바라보라(8~12)  예수님은 부인하지 않는 자를 기억(8절)하며, 성령이 함께 하셔서 이기게 하실 것(11~12절)을 약속 하실 뿐 아니라 성령이 함께 하기에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14:27)고 하신다.   두려움은 내게 해답이 없다고 생각할 때 드는 감정이기에 극복할 수 있는 힘은 성령과 함께 함으로 누리는 평안에서 온다. 그 해답은 이미 말씀 안에서 주어져 있다. 이사야는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사40:8)고 고백하고, 예수님도 분명하게 “율법의 일점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마5:18)고 말씀하셨다.   분명한 약속이 있기에 어떤 두려움에서도 담대히 승리할 수 있는 인생이 될 수 있다.    두려움을 뛰어넘기 위해 그리스도인은 구체적으로 어떤 인생을 살아야 할까? 그것은 바로 사랑이다.   요한은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요일4:18)고 말한다.   하나님이 먼저 사랑해 주셨고, 그 사랑을 받고 사는 우리는 모든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축복을 얻게 되었다. 인생의 두려움 앞에 서게 될 때 하늘로부터 오는 사랑의 힘으로 모든 두려움들을 이겨내길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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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주의 말씀
    2022-05-02
  • 악한 세대의 특징(눅11:29~32)
    길목교회 주재훈 목사   바울은 디모데에게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딤후3:5)하는 자들에게서 돌아서고 권면하고 있다. 본문의 무리들은 말씀을 듣는 것처럼 보이고,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여겨지지만 예수님이 단호하게 악한 세대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이는 그가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요2:25)을 정확하게 아시기 때문이다.   말씀을 통해 악한 세대의 특징을 살펴보며 시대도 악하고, 나의 믿음도 연약하지만 새롭게 각오를 세우고 결단하는 시간이 되길 축원한다.     첫째:표적을 구한다(29~30) 악한 세대라고 책망을 받는 이유는 “표적만”구하는 자세 때문이다. 예수님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을 눈으로 보고도 바알세불의 힘입은 것(15절)이라 주장하거나 의심할 여지가 없는 하늘로부터 오는 분명한 표적(16절)을 보여 달라고 요청하는 모습은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표적만을 구하기 때문에 악한 세대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없기 때문에 악한 세대이다. 예수님은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눅18:8)고 하신다. 표적을 쫓아다니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신실한 믿음을 붙들고 살아야 한다. 믿음 없이 사는 것이 악한 세대의 모습이다.  둘째:사모함이 없다(31)  남방 여왕은 열왕기상 10장에 솔로몬을 찾아온 스바(에티오피아)의 여왕으로 예수님이 땅 끝(31절)이라고 말씀하실 정도의 먼 곳이지만 직접 찾아올 수 있는 것은 진리에 대한 열정이 있기 때문이다. 악한 세대를 안타까워하시면서 스바 여왕을 말씀하시는 이유는 진리에 대해서는 사모함이 없고 자기 눈에 보이는 표적만을 요구하는 어리석은 모습 때문이다.   사모함은 신앙생활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자세로서 하나님은 “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심이로다”(시107:9)고 약속하셨다. 그리스도인이지만 진리에 대한 열정과 사모함 없이 예수님 주변만 얼쩡거리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지 짚어보아야 한다.  셋째:찔림이 없다(32)  예수님이 니느웨의 회개를 말씀하시는 이유는 항상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가르치셨을 뿐만 아니라, 귀신을 쫓아내시고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셨지만 사람들은 회개하고 돌이키기는커녕 어떻게 하면 예수님의 표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까에 혈안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엡5:15~16)고 말씀하고 있다. 악한 시대를 살기에 무엇보다 하나님의 뜻, 즉 하나님 말씀을 붙들고 살아야 한다. 악한 세대의 특징은 찔림이 없는 것이다. 찔림이 없기에 처절한 회개도 따라오지 않는다. 먼저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성도들이 되길 축원한다.   오늘 이 시대는 눈에 보이는 예수님은 없지만 보혜사 성령과 함께 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어찌 보면 예수님 시대보다 더 큰 축복을 받은 세대임이 분명하다. 베드로 사도의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깨어 근신하여 기도하라”(벧전4:7)는 선포가 악한 세대를 벗어나 선한 세대를 살고자 하는 이들의 행동 강령이 되어야 한다. 한 주간 악한 세대의 잘못된 습성들을 버리고 하나님의 자녀로 바로 서서 승리하는 시간들이 되길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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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4-25
  • 부활을 준비했는가?(눅23:50~56)
    길목교회 주재훈 목사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후 육체를 입으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 하고 있는 이들의 모습을 본다. 모든 것이 끝이 났다고 느껴지는 순간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새롭게 시작하는 일에 쓰임 받음을 보게 되면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삶을 살아가면서 믿음과 용기를 잃어버리지 않으며 부활의 기쁨에 동참하는 성도들이 되길 축원한다.    첫째:기다리는 자(50~51)  아리마대 사람 요셉의 “공회 위원”직은 그의 사회적 지위를 가르쳐 주는 것이라면, “선하고 의로운 사람”(50절)은 그의 신앙적인 성품을 보여준다.   예수를 죽이고자 모의하는 순간 그 일에 찬성(51절)하지 않아서 선하고 의로운 사람이 아니라 “선하고 의롭기” 때문에 악한 일에 동참하지 않게 되는데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의 자세로 살 때 하나님에게 선하고 의로운 사람이라는 인정을 받게 된다.   예수님이 신랑을 기다리는 슬기로운 다섯 처녀의 비유(마25:1~13)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기다리며 준비하며 살아야 하는데 그것은 바로 주어진 삶을 선하고 의롭게 사는 것이다. 나는 무엇을 기다리며 살고 있는가?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며 부활의 소망을 두며 살아가길 축원한다.    둘째:행동하는 자(52~54)  아리마대 요셉은 자신이 하고 있는 일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부활을 준비하는 일들이 되고 있음을 전혀 알지 못했을 것이다. 때로는 지금 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감동으로 믿음의 행동을 할 때 그 분의 뜻을 이루게 된다.   창세기에 보면 아브라함이 나그네를 대접할 때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고, 아들 이삭을 얻는 복을 받을 뿐 아니라 소돔과 고모라에 임한 심판의 소식도 전해 듣게 되는데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창18:17)는 놀라운 신뢰까지 부어 주신다. 지금 내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가지고 주님을 위해 드리고, 행동하는 자가 될 때 부활의 참된 기쁨에 함께 할 수 있음을 명심하길 바란다.  셋째:함께하는 자(55~56)  본문의 여인들은 공생애 기간에도 함께 하며 필요한 것을 제공하였고, 고통당하시는 순간에도 지켜보며 함께 울며 아파했다. 이제는 무덤이 어디 인지를 확인하고 향품과 향유를 준비하여 예수님의 장례까지 함께 한다.   베드로조차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마26:33)고 맹세했지만 예수님의 예언처럼 저주하면서까지 세 번 부인한다. 마지막을 함께 한다는 것이 때로는 축복이 될 수 있지만 그것 때문에 엄청난 비난과 손해를 감수해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부활의 축복은 끝까지 함께 함께 하는 자에게 주시는 은혜이다.   내게 붙여 주신 이들을 돌아보며 마지막까지 함께 하기로 결단하는 것이 부활을 맞이하는 참된 그리스도의 자세가 되어야 한다.  아리마대 요셉이, 갈릴리의 여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마음 아파하며 마지막을 함께 했을 때 부활의 기쁨이 그들의 삶에 더욱 선명하게 새겨지게 될 수 있었던 것처럼 이 부활절의 아침에 나는 과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어떤 일을 하며, 무슨 준비를 하고 살고 있는지 돌아보며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준비하는 자로 참된 부활의 기쁨에 참여하는 성도들이 되길 축원한다. 
    • 교회/목회
    • 금주의 말씀
    2022-04-18
  • 부활의 권능으로 산증인 되자(누가복음 24장 44절~49절)
      성경 말씀에 보면 크고 작은 수많은 예언이 있다. 그러나 가장 크고 완벽하게 성취된 사건은 바로 부활절이다. 일찍이 기독교가 이날이 없었다면 이 땅의 기독교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특별히 기독교만을 고집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부활 때문이다. 첫째,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 모두에게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함이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네가 믿느냐”(요 11:25) 하셨다. 우리 모두는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부활의 주님을 믿기 때문에 영원한 생명을 얻으셨음을 믿어야 한다.   둘째, 성경 말씀을 이루기 위해서이다.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3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을 말씀(눅24:44.46)하셨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낮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주실 것임이니라.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호 6:1.2)고 말씀하신 주님께서는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잡혀간 여러 나라에서 인도하여 그 사방에서 모아서 그 고국 땅으로 돌아가게 하고 그 땅 이스라엘 모든 산에서 한 나라를 이루어서 한 임금이 모두 다스리시게 하리니 그들이 다시는 두 민족이 되지 아니하며 두 나라로 나뉘지 아니할지니라“(겔 37:21.22) 하셨다.   남북 우리 민족은 예수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라 하셨으며(갈 3:7, 29) 예수님께서 “친히 이스라엘의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가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 (미21:43-45) 하셨기에 남북이 6·25 이후 잿더미 속에서도 이남은 복음이 확산되어 전 세계 선교사를 가장 많이 파송하는 국가가 되었으며, 세계 10대 강국에 들어가는 나라가 되었다. 이북은 이미 1907년 동방의 예루살렘이라 칭했던 평양을 생각해 볼 때 우리 민족 남북은 영적 이스라엘이기에 죽은 것 같은 남북은 예수 부활의 권능과 예수 부활의 진리 때문에 새 소망을 갖게 되는 놀라운 은혜를 성경말씀을 통해서 확신할 수가 있다.   셋째, 부활의 권능을 받아 남북은 복음 통일로 세계 복음화를 위한 산증인 되길 위함이다. 천지를 창조하시고 모든 역사와 평화통일을 주관하신 부활의 주님께서는 하늘에 오르시면서 부탁하신 말씀“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유다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 되리라”(행 1:8-11)라고 말씀하셨다.   우리 모두는 부활의 주님께서 하늘에 오르시면서 부탁하신 말씀 성령의 권세와 능력으로 충만 받아 권세 있는 말씀을 전하며 능력이 있는 기도를 드릴 때 금년은 남북이 분단된 6.25가 일어난 지 70년이 지난해다. “토지가 황무하여 땅이 안식년을 누림같이 안식하여 70년을 지내었으니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더라”(역 하 36:21) 하셨다.   이제 만사에 주님의 때가 있기에 민족분단 70년이 지난 지금에 때에 예수님의 부활의 권능으로 우리들의 모든 기도 제목 응답받되 남북은 꿈꾸는 것 같은 평화통일의 새 시대가 열리는 이 선한 일에 우리 다 함께 부활의 권능으로 충만한 산증인들이 다 되시길 간절히 축원한다. /조국 평화통일협의회 대표회장·서광교회 목사
    • 교회/목회
    • 금주의 말씀
    2022-04-13
  • 자기 십자가(고난 주간)-(마27:24~26)
    길목교회 주재훈 목사  고난 주간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순종의 선택을 한 예수님과 이 땅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불순종을 선택한 사람들이 정면으로 부딪치는 모습들을 보여주는데, 선택에 있어 우선시 되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말씀 안에서 이 세상의 썩어 없어 없어질 것들이 아닌 부활을 향한 믿음의 선택이 되어야 하며, 그에 따르는 책임이 있음을 깨닫고 결단하기 축원한다.    첫째:선택의 동기(24a)   빌라도가 예수를 풀어 주려고 노력했지만 아무 성과도 얻지 못했는데 자신의 선택으로 유대인들의 민란이 일어나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지게 된다(24a). 흔히 죄를 짓는 것이 달콤한 유혹에 걸려 넘어져서 죄를 짓는다고 생각하지만 정말 결정적인 죄는 두려움 때문에 짓게 된다.   유혹으로 인해 짓는 죄는 은밀한 곳에서 이루어지는 반면 두려움으로 짓는 죄는 공개적인 자리에서 다른 사람들이 있는 가운데 짓는 죄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극복하는데 오랜 시간이 필요하고 완전하게 회복되기도 어렵다. 오늘 우리가 만나는 두려움은 무엇인가? 그저 내 것을 빼앗길 것 같은 인간적인 두려움 때문에 믿음을 잃어버리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기를 바란다.  둘째:책임의 회피(24b)   보이는 두려움에 굴복한 사람은 돌아보고 회개하기 보다는 자기의 책임을 회피하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24b). 손을 씻지만 죄는 씻을 수 없다. 손을 씻어서 자신이 선택한 일이 아니라 군중들이 선택한 일이라는 시각적인 명분은 가질 수 있어도 예수님의 십자가에 대해 절대 자유로울 수 없다. 그리스도인은 어느 누구보다 책임지는 삶을 살아야 한다.   하나님의 일이며, 하나님이 주시는 감동이 있음에도 모두가 손을 씻으며 뒤로 물러나는 상황 속에서 두려움에 담대히 맞서는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진다. 다음에도 기회가 있기 때문에 지금은 물러서도 된다는 말에 귀를 기울이고 손을 씻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라.     셋째:선택의 책임(25~26)   “백성이 다 담대하여 이르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25절)”   그 피가 어떤 피인가? 도대체 무슨 책임을 질 수 있다는 말인가? 자신들의 죄를 위해 오셔서 죽으시고 흘리시는 그 피를, 자신들의 죄를 덮고 가리는 일에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욕심과 잘못된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사용하고 있는 죄악의 모습을 보며 진리를 알지 못하면  엄청난 큰 죄악에 빠지게 되는지 깨닫게 된다. 자신의 만족을 위해, 성공과 육신의 정욕을 위해서라면 영혼을 사탄에게도 팔 기세로 살아가는 것이 우리들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목적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바라보라.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이루시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깨닫기를 기도하라.   삶의 자리를 통해서 고난에 동참하는 의미를 찾고자 한다면 믿음의 선택을 하며 그 선택에 책임지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내가 빠져 나갈 구멍을 찾기 보다는 내가 메워야 할 구멍이 무엇인지를 찾는 삶을 살아야 하며 그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게 될 것이며, 그와 동시에 그리스도의 부활의 영광에 동참하는 축복을 누리게 될 것이다.
    • 교회/목회
    • 금주의 말씀
    2022-04-12
  • 기뻐해야 할 이유들 (눅10:17~20)
    길목교회 주재훈 목사  70명이 둘씩 짝을 지워 전도 여행을 다녀온 후 예수님과 만나는 모습은 기쁨이 차고 넘치지만 예수님은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눅15:7)고 말씀하신 것처럼 세상과는 다른 기쁨을 바라보신다. 말씀을 통해 이 땅에서 예수님의 시선으로 참 기뻐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를 깨닫기를 바란다.    첫째:과거의 승리(17) 믿음으로 살았던 지난 시간동안 나와 함께 하시고 승리하게 하셨기 때문에 기뻐해야 한다. 70인들은 자신들이 이제껏 경험해 보지 못했던 특별한 순간들을 회고하며 기뻐한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 이같은 기쁨이 없는 이유는 말씀에 순종하여 승리해 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마리아가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눅1:38)라는 순종으로 자신에게 임한 말씀을 확신하며 살아갈 때 그에게 온 인류를 구원할 기쁨의 소식이 임하였음을 기억하자. 하나님이 감동을 주실 때 주저하거나 망설이지 말고 시도하고 도전하는 인생이 되라. 제자들의 기쁨은 이 과정을 통해서 얻은 진정한 기쁨임을 명심하라.  둘째:현재의 능력(18~19) 매일 나의 삶에 변함없이 예수 그 이름의 능력이 함께 하시기 때문에 기뻐해야 한다. 제자들은 두려워하고 예수님은 염려하셨지만 놀라운 능력이 드러난다. 예수님은 이 놀라운 역사가 일회적인 사건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이름을 힘입어 사는 동안 함께 할 것을 약속하시며 선포(19절)하시는데 이 약속은 부활하신 후에는 물론이고(막16:17~18), 승천하시면서도(행1:8) 변함없이 지속되고 있다. 오늘 우리에게도 소망이 있음은 분명한 약속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롬8:18)는 사도 바울의 고백이 오늘도 제자의 삶을 살며 드러나는 능력을 통한 기쁨의 선포가 되어야 한다.      셋째:미래의 약속(20) 이름이 하늘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로 구원을 얻었기 때문에 기뻐해야 한다. 70인을 보내실 때 그들이 전해야 할 내용도 분명하게 주셨는데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9절,11절)이다.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살아갈 때 그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다. 사도 요한은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계20:12,15)고 분명하고 말씀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의 마지막은 생명책에 기록되는 것으로 마무리 되어야 한다. 새 하늘과 새 땅의 약속이 주어졌기에 영원한 나라를 바라보며 사는 것이 오늘 우리의 기쁨이 되어야 한다.        참 기쁨은 영원하신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것 외에는 우리에게 남겨지지 않는다. 느헤미야는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느8:10) 선포하며 먹고 마시며 크게 즐거워하고 명령한다. 이 세상의 기쁨에 목을 매고 살다보니 하나님 안에서 누려야 할 기쁨을 잃어버리고 사는 나의 모습은 아닌지 돌아보며 참 기쁨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길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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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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