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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시간 사랑의 실천 기사

  • 본지 창업자 고 김연준박사의 어록
    ▲ 김연준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들어온 역사를 살펴보면, 가톨릭의 경우 이승훈이 연경에서 세례 받은 때인 정조 7년(1783)이며, 개신교의 역사로는 갑신정변이 일어난 다음 해(1885)이다. 이는 짧다면 짧은 기간일지 모르나 기독교가 우리 역사와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점은 결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 기간 동안 기독교는 창조자의 피조물로서 모든 개체 인간의 평등성과 존엄성을 기본 정신으로 하는 근대 사조를 교도들의 힘으로 실천에 옮겨 봉건적 계층 사회의 혁신에 공헌했다. 세워진 교회와 학교들은 귀한 자와 천한 자,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에게 차별 없이 문을 크게 열었고, 남자와 여자에게 다 같이 신앙과 교육의 기회를 제공했다. 일부일처를 원칙으로 하는 새로운 가정 제도의 확립과 모든 사람에게 의료의 기회를 제공하는 박애 정신도 인간 평등의 새 규범을 세우는 데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그들은 또한 우리 민족의 보배요, 귀중한 자산인 한글이 오랫동안 흙속에 묻혔던 것을 파내고 그 진가를 다시 찾아 성서와 찬송가와 신문과 잡지를 순전히 한글로 발간함으로써 세종대왕의 위업을 재확인케 하였다.  역사적 경험이 기독교인의 잠재 능력을 뒷받침하는 것이며, 흩어짐에 치우친 우리 현실에서 국력의 조직화가 요청된다고 할 때 가장 힘찬 조직력을 자랑할 수 있는 자가 곧 기독교인일 것이다. 구성원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힘, 개별 교회가 모여서 이룩하게 되는 기관 조직과 이를 민주적으로 운영하는 수법의 체득, 그리고 교육과 의료와 사회봉사 및 자선 사업들에 대한 남다른 의욕과 자진 참여의 전통, 또한 가장 중요한 실천적인 사람으로서의 사명감과 생활 규범 등은 모든 현대종교가 지향하는 바이거니와, 그것은 특히 기독교와 기독교인들에게서 가장 강력하게 이루어진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오늘의 전 인류 사회의 근본적인 병폐는 사랑의 결핍에 있으며 그것은 한국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이때야말로 기독교인들이 앞장서서 참다운 사랑의 실천으로 우리나라와 사회뿐 아니라 나아가서 인류 사회 전체까지도 사랑으로 충만하게 만들어야 할 좋은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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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의 실천
    2018-06-27
  • 먼저 가서 화해하라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서 한반도에 새로운 화해와 평화의 길이 열리고 있다. 하나님은 먼저 우리를 찾아오셨고 먼저 사랑하셨고 먼저 용서하셨다. 믿음 없이는 십자가를 짊어지고 화해하기는 불가능하며 원수까지 사랑할 수가 없다.    사람은 죄인이기에 그 누구도 죄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느끼지 않는 사람이 없다. 그것은 바로 죄 값을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죄의 값은 사망이다. 아무도 죄에서 벗어날 수 없듯이 아무도 사망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와 같이 죽음의 운명 속에 갇힌 인간을 위해 하나님은 대속의 제물을 마련하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 이스라엘 사람들은 동물의 희생제물을 드림으로 죄사함의 은총을 받았다. 그러나 이제는 그 실물 되시는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희생이 되시므로 더 이상의 제물은 필요 없다. 그리스도의 제물이면 족하다. 이것을 하나님 앞에 드리는 자는 모든 죄에서 자유함을 얻게 된다는 약속하신 것이다. 제물을 드리는 사람에게 우선되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형제와 이웃과 먼저 화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과 화해하고자 하는 자는 먼저 형제와 이웃과 화해를 해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하셨듯이 우리도 형제를 용서해야 한다. 이와 같이 화해에는 두 가지 자세가 필요하다. 첫째는 내가 가야한다는 것이다. 마음속으로만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앉아서 대충 얼버무리는 것이 아니라, 가서 용서하고 또 용서받을 것은 받고 화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내가 먼저 가야 한다. 화해는 내 마음이 먼저 열려있어야 한다. 내가 먼저 시작하고 내가 먼저 뜨거운 심정으로 일어나야 한다. 내가 먼저 가라는 말씀은 예수님을 본받아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만 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요 본질이다.   먼저 가서 화해하라는 말씀은 오늘날 우리에게 주시는 절대적인 명령이요 이 땅에 수없이 일어나는 불화와 갈등은 나 때문이고 그리스도인들의 죄임을 깨달아야 한다. 회개하고 화해에 앞장을 서도록 하자. /예장 합동한신 증경총회장·목포중부교회 목사 p.p1 {margin: 0.0px 0.0px 0.0px 0.0px; text-align: justify; font: 12.0px '.Apple SD Gothic NeoI'; color: #454545} p.p2 {margin: 0.0px 0.0px 0.0px 0.0px; text-align: justify; font: 12.0px 'Helvetica Neue'; color: #454545} p.p3 {margin: 0.0px 0.0px 0.0px 0.0px; text-align: right; font: 12.0px '.Apple SD Gothic NeoI'; color: #454545} span.s1 {font: 12.0px 'Helvetica Ne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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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의 실천
    2018-06-20
  • 참된 지도자
    ▲ 이홍렬목사   지방자치 단체의 지도자를 뽑는 선거가 끝났다. 선거 홍보물을 보면 모두가 훌륭하고 위대한 지도자감이다. 후회없는 선거가 되었기를 기대해본다. 교회고 사회고 국가이고 지도자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좋은 지도자를 만나는 것을 그 공동체의 크나큰 축복이다.    그렇다면 좋은 지도자란 누구인가? 성경에서 예수님은 자신과 자신의 백성을 양떼와 목자로 비유하신다. 여기서 목자가 바로 지도자이다. 그런데 목자중에는 좋은 목자와 삯군 목자가 있다는 것이다. 좋은 목자, 곧 좋은 지도자의 결론적 조건은 하나이다. 바로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목자가 좋은 목자라는 것이다. 양떼의 아픔을 헤아리고 밤낮으로 양떼를 돌보며 양떼의 이름을 불러주고 양떼를 앞서나가며 양떼가 풍성한 생명을 얻도록 하기 위하여 모든 것을 바치는 목자가 참된 목자요 지도자라고 말씀한다.   이 말씀을 오늘 우리 교회와 사회 국가에 대입해보자. 교회로 말하면 성도가 양떼요, 국가로 비유하면 백성이 양떼이다. 참된 지도자는 바로 그 양떼와 아픔을 공유하며 양떼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목사님들에게 질문을 해보았다. 헌금이 많이 들어와야 좋은가? 적게 들어와야 좋은가? 거의 대부분의 목사님들이 헌금은 많이 들어와야 한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나의 생각은 다르다. 정답은 ‘알맞게 들어와야 한다.’이다. 왜 그런가? 젖을 짜내는 양떼의 아픔을 헤아려야 하기 때문이다.    삯군 목자는 자신의 이익이 먼저이다. 참 목자는 양떼의 유익이 우선이다. 삯군 목자는 양을 죽여 자신이 살려고 한다. 참 목자는 자신을 죽여 양떼를 살리려고 한다. 삯군 목자는 양떼를 단지 젖과 털과 고기를 얻는 대상으로 보지만 참 목자는 양떼를 자신의 생명을 바칠 헌신의 대상으로 본다. 삯군 목자는 양을 죽여 내가 사는 목자이지만 참 목자는 나를 죽여 양을 살리는 목자이다. 한국 교회 안에 그리고 우리나라 안에 먼저 양떼의 고통과 아픔을 헤아리며 자신의 생명을 내놓은 참 지도자들이 많이 나타나기를 기대해본다.  /기독교한국루터회 증경 총회장·새길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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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의 실천
    2018-06-12
  • 사랑이 있는 삶
    ▲ 장차남목사   언제부터인가 한국교회는 외형의 덩치와 요란한 울림에 비하여 그 소리가 공허하고 그 모양이 왜소한 느낌이다. 왜 그럴까 생각해 보니 사랑을 잃었기 때문이다. 성경에 사랑이 없으면 교훈과 언변, 지식과 능력, 봉사와 희생이 있어도 아무 유익이 없다 하였고 그것을 회복하지 않으면 교회의 촛대를 옮길 것이라고 하였다.   사랑의 실천을 위하여는 첫째, 타인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해야 한다. 둘째, 타인에게 베풀고 서로 나누어야 한다. 셋째, 타인을 위하여 자기를 희생해야 한다. 한국교회가 이런 신앙을 가지고 성경의 가르침대로 사랑이 있는 삶을 보여 준다면 우리 사회의 교회에 대한 신뢰와 존경이 되살아나고 급기야 세상의 빛이 되고 향도자가 될 줄 믿는다. 그래서 가족과 이웃을 위하여 사랑의 본을 보여준 두 가지 실화를 여기에 소개 하려고 한다.   먼저 가족사랑의 경우로서 미국 프린스톤 신학교에 벤자민 B. 워필드라는 뛰어난 변증 신학자가 있었다. 이 분은 화란의 카이퍼와 바빙크로 더불어 19-20세기 세계 3대 칼빈주의자로 일컬어 질 만큼 탁월한 신학자이다.    워필드는 그의 신학도 훌륭하지만 그의 삶이 참으로 훌륭했다. 그는 25세에 결혼하여 독일로 신혼여행을 가다가 폭풍우 속에서 벼락을 맞아 영구 불구자가 된 아내를 그녀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39년간 수발들고 간병했다. 이런 헌신적이고 희생적 삶이 그의 신앙과 신학과 삶을 일체화시켜 그를 위대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한 것이다. 이런 분이야말로 말과 삶, 학문과 인격이 하나로 승화된 성도이다.   다음 이웃사랑의 경우로서 미국 유학에서 돌아온 한경직 목사가 평양에서 잠시 교편을 잡다가 신의주 제2교회에 가서 목회하면서 보린원이란 고아원을 세웠으며 그 후 일제의 탄압으로 교회를 사임케 된 한 목사님은 보린원 일만 전념타가 해방을 맞았다.   그런데 그가 신변의 위험때문에 1945년 월남할 때 복순이를 데려오지 못한 것을 늘 마음에 걸려했다. 그래서 언젠가 최창근 장로가 한 목사님에게 ‘통일되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게 뭐입니까?’ 하니 그의 답변은 ‘이북의 보린원에 두고 온 소녀가 있어, 이름은 김복순이라고, 살았다면 60넘은 할머니가 되었을거야. 피난 올 때 몸이 불구여서 데리고 나오지 못했어. 그 때 함께 피난오지 못한 것이 늘 가슴아파’ 라고 하더란다.   여기 한 신학자와 한 목회자의 사랑이 있는 삶은 이 분들의 신학과 설교를 숨쉬게 했다. 예수께서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눅10:37) 하신대로 가족과 이웃의 따뜻한 친구였기 때문이다.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요일 3:18) /예장 합동측 증경총회장·온천제일교회 원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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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의 실천
    2018-06-07
  • 터치전도 2018, 전국 무료 컨퍼런스 성황
    ▲ 김준행선교사   한국교회의 체질을 바꾸고 있는 터치전도코리아(본부장=김준행선교사·사진)는 2018년 전국 1일 무료 컨퍼런스를 열고, 전도의 확실한 열매를 얻을 수 있는 자료를 제시한다.   터치전도는 단순히 전도방법을 제시하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실제적이며 구체적이라는 것이 그동안 터치전도를 진행하며 성장한 교회들의 한결 같은 이야기다.   이에 대해 터치전도코리아 본부장 김준행선교사는 “터치전도는 전교인이 함께하는 전도 운동으로 교회 전체를 전도하는 체질로 바꾸어 나가는 것”이라며 “교회운영 전반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한 김 본부장은 “특히 복음으로 하나 되는 교회는 먼저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가 서는 놀라운 변화를 알 수 있는데 첫째로 회개가 일어나며, 둘째로 주님의 사랑이 넘쳐나며, 셋째로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는데 이는 곧 살리는 신앙, 행복한 교회로 성령의 열매를 맺어가는 전도가 바로 터치전도”라고 했다. 교회부흥은 숫자가 아니라 내적 부흥이 진정한 열매다.     교회부흥을 숫자로 말하지 않는다는 김본부장은 내가 먼저 영적으로 변화를 받으면 내적 부흥으로 이어져 반드시 구원의 열매를 맺게 된다는 것이 복음의 진정한 원리처럼, 터치전도 또한, 영혼 구원을 기본으로 하고 있으며, 그 결과는 교회부흥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교회 대다수는 이 목표의 우선순위가 다 바뀌어 있기 때문에 먼저 숫자로 판단하고 평가를 받기에 교회는 숫자적 부흥에만 목표를 갖고 있다고 전하는 김본부장은 복음은 생명의 말씀을 전파하는 것으로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하면 그 결과는 성령께서 역사하신다는 것을 믿고 천하보다 귀한 한 영혼을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고 강조한다. 터치전도는 교회 규모나 지역과 관계없이 실행한다.   살리는 신앙, 행복한 교회를 만들어가는 터치전도는 교회의 규모나 지역과 관계없이 생명이 있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며 실행할 수 있다는 김본부장은 ‘1년에 1명 이상 세례교인 세우기 전교인 전도 운동’으로 진행되는 터치전도는 전교인이 100% 전도하고, 정착과 양육을 함께 하는 시스템이 구체적으로 적용된다고 전한다. 특히 터치전도는 행사가 아니라며, 내가 받은 구원의 축복을 전하며 행복을 나누는 것으로 지금 내 안에 구원의 확신이 있다면 복음을 전하고, 만약 구원의 확신이 없다면 다시 한 번 복음 앞에 설 수 있는 터치전도를 통하여 신앙생활의 실제를 이루어 가기를 바란다고 했다. 터치전도는 1회성 전도가 아니라 매년 주제가 새롭다.   터치전도는 현재 1,200여 교회가 정회원 교회로 2박 3일 정기세미나를 통해 교육을 받고, 700여 교회가 실행하여 열매 맺는 교회로 귀한 복음을 전하며 성장해가고 있다고 전하는 김본부장은 터치전도에 참여하는 모든 강사진은 터치전도를 실제로 적용하여 나타난 결과를 갖고 강의를 한다는 것과 1회성 전도가 아니기 때문에 매년 주제를 새롭게 하여 업데이트되는 신규 교재를 제공하는 것이 최고의 장점이며 자랑이라고 했다.   현재 무료 컨퍼런스는 5월 24일 대구를 비롯해 25일 통영, 28일 대전, 31일 전주, 6월 1일 서울, 5일 당진, 7일 광주, 8일 여수에서 순차적으로 열린다.  또한 터치전도는 일 년에 한번 6월 셋째 주 지난 월~수에 정기세미나를 개최한다. (터치전도코리아 본부장 김준행 선교사 010-4430-0691, 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 www.goodtouch.net 전화 02-764-7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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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의 실천
    2018-05-23
  • 평화와 통일로 가능 멀고도 험한 길
    ▲ 김국경목사   우리가 그토록 열망하는 평화와 통일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을 체결하고 남북이 쌍방 간에 휴전선에 흉측 한 가시 철책을 설치한 후 65년에 세월이 흘렀다. 정전협정 후 반세기가 넘도록 간헐적인 북한의 도발로 또다시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고, 남북의 정치적 대립은 물론 사상적인 대결구도는 끊임없이 계속되어 왔다. 사상과 이념의  갈등으로 남한 내에서도 보수와 진보, 좌파 우파로 분열되어 국민 간에, 그리고 계층과 세대 간에, 심지어 가족 간에도 갈등을 느끼고 있다.    지난 4·27 남북정상회담에서 「판문점 선언」이 선포되자 우리국민들이 열망하던 평화와 통일의 전망이 눈앞에 다가온 듯 환호하며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북한이 일방적으로 고위급 회담을 무산시키고 북미정상회담도 줄다리기에 들어감으로 평화조약마저도 불투명한 상태이다.    한편 북핵문제가 해결된다면 그동안 유엔과 미국이 북한에 취했던 경제제제조치를 풀고 미국을 비롯한 각국의 투자와 경제 지원을 시행함으로 북한이 경제 강국이 될 것이며, 이에 따라 북한은 정권과 체제유지를 위해 주민들과 북한을 왕래하는 외국인들에게도 더 철저한 감시와 강압정치를 써서 현재보다 인권유린문제가 강화될 수 있고 통일은 더 요원해진다는 우려도 있다. 북한의 인권문제는 핵무기 다음으로 심각한 사안이기 때문에 인권문제를 정상회담에 의제로 삼아 협상하고 북핵문제와 동시에 풀어가야 한다.    인권 운동을 위해 헌신한 역사적인 인물로 미국의 아브라함 링컨, 마틴 루터 킹 목사, 남아공의 넬슨 만델라, 중국의 류사오보(劉燒波) 등은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헌신한 아프리카의 성자 슈바이쳐 박사와 인도의 성녀 테레사 여사, 1천여 명의 유대인들을 나치로부터 구출한 오스카 쉰들러, 한국의 성자 장기려 박사 등과 더불어 위대한 인물로 추앙을 받고 있다.    인권문제를 우선시하는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정상회담에 앞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지난 5월 9일 평양을 방문해서 협상 끝에 북한에 억류된 한국계 미국인 3명을 구출해냈다. 심지어 미국정부는 6·25전쟁에 참전해서 전사당한 미군의 유해를 발굴 송환하기 위해 막대한 예산을 들여 남한과 북한 땅에서 탐색 발굴 작업을 시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정부는 북한에 억류된 6명에 대하여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못하고 있다.    비록 남한과 북한 두 개의 체제가 어느 때 까지 유지되고 언제 통일의 날이 올지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만 아시는 사안이지만, 북한의 사회주의 체제가 속히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전환되고 우선 신앙과 사상이 통일되어 인도주의 차원에서 자유와 평화를 마음껏 누리는 대한민국(남북)이 되기를 기대한다.  /예장 합동선목측 총회장·목양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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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의 실천
    2018-05-23
  • 저울대 위에 올려진 인간 실존
    ▲ 김 진 하   고대는 신이 만물의 척도였다. 그래서 고대 그리스에서는 모든 사물에도 신의 이름을 붙였다. 신에 대해서 알아보기 위하여서는 그리스와 로마 신들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는 대표적인 12신이 있었는데 그들 외에 수많은 님프라 불리는 요정들이 있었다.   고대가 신이 만물의 척도였다면 현대는 인간이 만물의 척도가 되었다. 본 훼퍼는 말하기를 ‘현대는 무종교의 시대’라고 했고 니체는 한 술 더 떠서 ‘신은 죽었다’, 칼 막스는 ‘신은 없다’ 싸르트르는 ‘신은 부재중’이라고 하며 웃어넘겼다. 그러나 성경은 이런 사람들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어리석은 사람은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은 없다 하도다’ (시 14:1)  지금부터 2600년 전인 기원 전 6세기에 바벨로니아 나라에 벨사살 왕이 하루는 대규모의 잔치를 열었다. 잔치가 무르익어 흥이 돋우어질 무렵 왕은 예루살렘의 성전에서 탈취해온 성전 그릇들을 창고에서 꺼내오게 명한 후에 그 그릇에 술을 따라 마시게 했다.  이때 왕의 맞은편 벽에 사람의 손가락이 나타나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 이것을 본 왕의 온몸은 사시나무 떨듯이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고 벽에 씌어진 그 글씨를 해석하려 했으나 해석하는 자가 없었다. 이때 다니엘이 그 글씨를 읽고 해석을 하였는데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 ‘왕을 저울에 달아보니 부족함이 보였다는 뜻’ 이라고 했다. 그날 밤으로 벨사살 왕의 생애는 끝났고 바벨론이란 나라는 분열되어 페르샤에 합병되고 말았다.  주님은 오늘날도 우리를 저울에 달아보시고 함량을 저울질하실 것이다. 유명세를 떨치던 목사도, 장로도, 성도들도, 돈 많은 사람도, 가난한 사람도 모두 그 저울 위에 겸손히 설 날이 올 것이다.   요즘처럼 목사된 것이 부끄러운 적이 없다. 한 치 오차도 없는 하나님의 공의의 저울이 예비 되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기나 하는지…. 하나님의 추는 정확하고 오차가 없어 자기가 믿은 대로, 자기가 행한 대로, 자기가 심은 그대로 거두게 될 것이다.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 /예장 합동 평양노회 증경노회장·예수사랑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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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의 실천
    2018-05-16
  • 실패 속에서 성공을 주시는 하나님
    김 진 하   성경 중엔 성공했던 사람들의 기록보다는 실패한 사람의 기록이 더 많이 있다. 아브라함, 야곱, 요셉, 모세, 삼손, 다윗, 베드로, 바울…. 대부분 실패를 거듭하다가 성공적인 삶으로 거듭난 사람들이다. 실패는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천재도 실패하고, 교수도 실패하고, 지식인도, 부자도 실패한다. 그러나 아이러니 하게도 성공하는 사람은 실패를 통해서 실패의 교훈을 깨닫고, 그 고난을 딛고 일어서는 사람이다. 그 값비싼 실패의 교훈을 배우는 사람이 참으로 성공하는 사람이다.   커널 선더스(Colonel Harland Sanders) 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열심히 노력하였지만 하는 일마다 실패하였다. 결국 60세 때에 수십억의 빚을 진채 파산하였다. 그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면서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하다가 한 작은 예배당에서 들려온 찬송소리를 듣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통곡하며 기도하던 중에 하나님을 만났다. 하나님을 만났을 때 그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평안과 기쁨과 용기가 생겼다. 그는 다시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였다.  그렇게 해서 생겨난 기업이 켄터키 후라이드 치킨(KFC)이다. 미국 전역에 수천 개의 매장이 생겨났고 오늘날은 전 세계의 KFC 매장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탄탄대로로 시속 150km로 달리는 것만 성공이 아니다. 고속도로만 우리를 성공의 길로 안내하는 것은 아니다. 때론 돌아가고, 쉬었다가고, 넘어지고, 사고로 주저앉고, 방해로 멈추었다 다시 출발한다 해도 하나님이 도와주시면 그 길이 성공의 길이다.   그러나 실패를 통해 교훈하시고, 그 실패 속에서 성공의 열쇠를 주시는 하나님의 오묘하고 놀라운 손길을 만나기만 한다면 그 사람이 바로 성공하는 사람이요, 정상에 서는 사람이다. 한 번도 안 넘어지는 사람이 위대한 사람이 아니고 수 없이 넘어져도 넘어질 때마다. 넘어짐 속에서 속삭이시는 하나님의 지혜를 깨달아 아는 사람이 큰 사람이다. 이스라엘의 성군 다윗은  말했다.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모든 자를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대상29:12).   /예장합동 평양노회 증경노회장·예수사랑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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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의 실천
    2018-04-11
  • 소수종족 언어 담는 ‘한글’이 되게 하자
    ▲ 이철재목사   강자의 언어적 횡포로 사라져가는 소수종족의 언어를 구하자. 지금은 국경이 필요가 없는 정보화 사회의 신유목민 시대다. 따라서 언어와 문자만이 그 종족의 문화와 정체성을 지켜줄 수가 있다. 서구문명의 근원이 되는 그리스는 BC 146년 고린도 전쟁 때 로마에 패망해 외국의 지배를 받는 운명 속에 들어갔다. 1829년 독립전쟁에서 승리해 오스만 터키의 지배에서 벗어날 때까지 2000년 가까이 타국의 지배하에 있었다. 20세기 초반에도 이탈리아의 통치아래 고통 받다가 제2차 세계대전 후 1952년 비로소 국가 헌법을 제정하고 독립국가가 되었다. 이는 BC 9세기에 제정된 그리스 문자를 지속적으로 사용하면서 그리스어와 문자, 그리고 전통과 문화를 지켜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언어는 인간의 영혼을 담고 있는 매체이자 그 영을 교감하게 하는 끈이다. 지구상에는 7000개의 언어가 있다고 한다. 그 중에 3500개는 조만간 소멸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세계인구의 80%는 7000개 언어 중 83개의 언어만을 쓰고 있으며 600개 이상의 언어는 100명이 안 되는 극소수 원주민이 쓰고 있고 그 수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반면 10개의 강자의 언어는 날로 번창하여 세계인구의 절반 이상이 사용하고 있다. 이 소수종족의 약점은 언어를 담아낼 그릇인 문자가 없다는 점이다. 한글은 표음문자다. 웬만한 언어는 한글로 표기가 가능하다. 그리고 한글은 배우기가 쉽고 과학적이다. 게다가 “훈민정음 해례본”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이는 한글이 인류 보편적 가치와 자산으로 인정받고 있다는 명분이 있다.   한국교회가 이 한글을 문자가 없는 소수종족에게 전해주자. 그리고 1938년 한글로 성서가 번역되면서 일제의 조선어 말살 정책 하에서도 한글을 지켜낼 수 있던 원동력이 된 것처럼 소수 종족들에게 한글로 그들 언어의 성서를 번역해 준다면 그들의 전통문화와 정체성도 지켜주면서 복음을 전할 수 있을 것이다. 교회가 ‘세종학당’과 연합하여 청년들을 전문직 한국어교사로 양성하자. 그리고 소수 종족의 언어와 문화지킴이로 파송하자. 가자 세계로! 도전하자 미래로! /한국오순절교회협의회 명예회장, 서울성서교회 원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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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의 실천
    2018-04-04
  • 당신은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는가?
      김 진 하  스토코프스키(Stokovsky)는 런던 출생의 폴란드계 교향악단 지휘자로 유명하다. 그는 1905년 미국으로 건너가 교향악단을 지휘했고 1912년~1936년 까지 필라델피아 상임 지휘자로 활동했다. 그가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를 지휘할 때 있었던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그가 어느 날 베토벤의 오버츄어(overture)란 곡을 연주하게 되었다. 이 곡은 연주 도중에 무대에서가 아니라 관중석 뒤쪽에서 트럼펫 솔로 연주가 나오게 되어 있다. 일종에 깜짝 연주인 것이다.  그런데 트럼펫 연주자는 약속 장소로 나오지 못하고 엉뚱한 봉변을 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전에 연락이 되지 않아서였는지 그 내용을 전혀 모르고 있던 수위가 트럼펫을 들고 관객석 뒤로 올라가는 연주자의 팔을 뒤로 비틀어 꼼짝도 못하게 하면서 의기양양해 있었다. 수위는 자기 나름대로 필라델피아 교향악단을 위해 큰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실은 그날의 연주를 망쳐버린 장본인은 바로 그 수위였던 것이다.  마태복음 16장을 보면 예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를 지나시다가 제자들에게 질문을 하셨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더냐?” 베드로의 대답은 명쾌했다. “예,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베드로의 대답이었다.   그리고 이 사건 후에 곧바로 예수께서 비로서 예루살렘에 올라가 고난을 당하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야 할 것을 예고하셨다. 그러자 이에 조금 전에 분에 넘치는 칭찬을 들었던 베드로가 주님께 말하기를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님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그러자 주님은 그런 베드로를 향하여 심하게 꾸짖으시며 말씀하시기를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라고 책망하셨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일은 무엇이고, 사람의 일은 무엇인가? 베드로는 순간적으로 그것을 분간하지 못했다. 주님을 감동시킨 탁월한 신앙고백으로 반석이라는 분에 넘치는 칭찬을 들었던 베드로가 순간 사단의 일을 하는 사람으로 전락했던 것을 보게 된다. 하나님의 일과 사람의 일은 사실 종이 한 장 차이처럼 가깝다.  /예장합동 평양노회 증경노회장·예수사랑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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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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