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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든 피조물을 향한 희망의 비전
    “…그러나 소망은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곧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어서, 하나님의 자녀가 누릴 영광된 자유를 얻으리라는 것입니다. 모든 피조물이 이제까지 함께 신음하며, 함께 해산의 고통을 겪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롬8:20~22)   최근 들려오는 기후 위기에 관한 각종 지표와 현상들이 우리를 숨 막히게 한다. 기후 위기가 우리의 현재는 물론 미래를 장담할 수 없는 세계, 커다란 위기의 풍랑 위로 몰아넣고 있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이미 오래전에 지구가 뜨거워지고 있다고 경고해왔다. 그러나 우리는 외면해 왔다. 그로 인해 전 세계는 폭염뿐 아니라 이상 기상 현상과 그로 말미암은 식량 위기, 경제 위기, 안보 위기, 양극화 심화 등의 문제를 경고가 아닌 현실로 겪고 있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2030~2050년 사이면 기후재난이 우연히 벌어지는 게 아니라 일상화될 것이라고 한다. 온실가스를 줄이더라도 이 같은 기후재난은 피할 수 없을 것이란 비관적 지적이다.   그래서 아직 희망은 있는가 하는 질문을 자주 한다. 절망적 위기 가운데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희망은 있는가?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며 하나님의 부르심을 기억해본다.    “내가 이제 새 일을 하려고 한다. 이 일이 이미 드러나고 있는데,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내가 광야에 길을 내겠으며, 사막에 강을 내겠다”(사 43:19).    위기의 시기마다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지금 무엇을 행하고 계실까, 그 표징을 우리는 보고 있는가? 이미 우리 안에는 새로운 미래를 꿈꾸고 그 미래를 현실화하는 데 필요한 지혜가 있다. 화석연료를 대신할 풍력과 태양 에너지, 새로운 방식의 운송수단, 녹색 일자리,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다양한 방법 등 우리 안에는 이미 조용히 그러나 지속적이고 근원적인 실천을 하고 있는 이들이 있다. 새로운 희망이 필요하다. 바울은 모든 피조물을 향한 영광의 비전으로서의 희망을 말한다.    우리가 이제서야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절망을 느끼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고통의 현장에는 파괴만 있는 것이 아니다. 여전히 버티고 있고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일들도 행하여지고 있다. 무관심한 이들뿐인 듯하나, 의로운 분노와 거룩한 불만족, 가능성에 대한 열정이 곳곳에 있다.    기독교인은 모든 피조물을 향한 하나님의 비전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그저 자리에 없는 주인을 대신하는 관리인이 아니다.  눈을 뜨고 마음을 열어 주변을 둘러본다면, 하나님의 영이 우리를 통해 역사하시며 세상에 새 숨을 불어넣으시도록 해드릴 수 있다. 부서지기 쉽고 의존적이며 서로 연결되어 있는 우리 피조물들을 보며, 서로에 대해 생각하고, 관찰하고, 그들의 소리에 귀 기울이면 날마다 조금씩 희망이 자라날 것이다. 오늘 나의 희망은 오늘 무엇으로 채워가고 있는가?    가만히 머물러 하나님의 하나님 됨을 느껴 보자. 하나님의 영으로 자라는 희망의 씨앗들이 있다. 그것으로 인해 “곧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어서, 하나님의 자녀가 누릴 영광된 자유를”(롬 8:21, 22) 얻게 될 것을 믿으며 기도한다.    “주님, 우리가 눈을 뜨고 행하시는 새 일에 참여할 수 있게 도우소서. 그 일이 우리 안의 희망을 자라게 하는 일이 되게 도우소서.”/기독교환경교육센터 살림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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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1-29
  • 겨울철 알레르기성 비염 퇴치법 (하)
      비염은 특히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질환이다. 비염은 그 성격과 원인에 따라 직업성 비염, 임신성 비염, 약물성 비염, 노인성 비염 등으로 나뉘며, 여러 가지 원인들이 코 점막을 힘들게 한다. 이러한 것들은 대개 환자들의 병력과 진찰을 해 보면 알 수가 있고, 각 병명에 따른 치료가 가능하다.   다음은 비염인지, 부비동염인지 판별하는 방법이다. 이비인후과를 내원하는 대부분 환자들의 공통된 질문은 비염인지 부비동염인지를 모르겠다는 것이다. 어디를 가 봐도 속 시원하게 답해주는 곳이 없다고들 호소한다. 그 증상이 유사하고 일반인들은 그 차이점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진단에 따라서 항생제 등 처방이 달라지기 때문에 정확한 진단을 받은 것이 중요하다. 노란 콧물이 주된 경우, 양측이 아니라 어느 한 쪽이 더 심한 경우, 목 뒤로 코가 자주 넘어가는 경우, 얼굴에 통증이 있는 경우는 부비동염을 의심할 수 있는 증상이라 하겠다. 자세한 검사를 위해서는 내시경검사 및 CT 촬영이 필수적이다. 정밀검진을 통해 정확한 원인과 병명을 파악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리고 비염 환자 중에 코가 막혀서 못살겠다고 불편감을 토로하는 환자가 종종 있다. 코막힘은 알레르기비염 증상 중에 하나이지만 가장 흔한 원인은 아니다. 코막힘의 가장 흔한 원인은 비중격만곡증으로 알려져 있다. 알레르기비염이 있으면서 유독 어느 한 쪽이 더 심한 경우에는 비중격만곡증이 동반되어 있을 수 있다. 그런 경우에는 다른 알레르기비염 환자보다 증상이 더 심해진다. 비중격만곡증은 수술적 치료를 필요로 하며, 비교적 좋은 예후를 보인다. 비염이 심해지면 결국 만성 비염으로 발전을 하는데, 이런 경우에는 다른 증상보다 코막힘이 주된 증상으로 나타난다. 주로는 점막형 비염이지만 간혹 골형 비염이 있을 수 있고, 양상에 맞는 수술법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개는 비중격만곡증과 만성 비염이 병발하는 경우가 많고, 원인에 맞는 수술을 받는 경우 예후가 양호하다.   지금까지 겨울철 알레르기비염과 그 외 비염에 대해 알아보았다. 비염을 완화 혹은 예방하기 위해선 다른 여러 생활요령보다 실내환기가 우선이다. 창문을 열고 집안의 먼지와 진드기 항원을 모두 밖으로 날려 버리자. 그리고 앞서 얘기한대로 침구류, 의류, 카펫, 면 소재 소파 등을 청결히 관리하자. 알레르기비염으로 고생하는 가족들을 밖으로 이끌고 집먼지 진드기로부터 자유롭게 하자.   알레르기비염이든 아니든 사람은 코로 숨을 쉬게 되어 있고, 코로 숨을 자연스럽게 쉴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비염 및 부비동염 환자들이 잘 알고 있다. 소중한 내 코. 나의 폐와 건강을 지켜주는 코에 불편함이 있다면 이를 더 이상 방치하지 말자. 문제가 있으면 먼저 원인을 정확하게 찾아내자. 그리고, 그 원인에 맞는 가장 좋은 치료법을 찾아내자. 그것은 환자와 의사가 서로 신뢰를 갖고, 충분한 대화를 통해서 가능할 것이다. /한양대학교 이비인후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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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1-28
  • 뇌 건강의 길은 음악
      변연계의 뇌는 기억을 유발하면서 음악의 정서적 면을 또한 처리하고, 음악은 정서를 유발하고 정서는 기억을 유발한다. 노래와 음악은 지식과 창조성, 또 정서와 기억과 연결되어 있다.   음악은 우측 측두엽에서 처리되고 뇌에서 현재 신의 지점으로 언급되고 있는 영역이다. 그래서 음악은 영적 경험을 향상시킨다. 영성과 관련된 우측 측두엽의 활동을 증가시킨다. 악기를 배우는 것도 뇌기능을 향상시킨다. 악기를 배우는 것은 측두엽, 뉴런을 발달시키고 활성화시키는 데 도움을 준다. 측두엽이 효과적으로 활성화될 때 뇌 기능을 개선시킨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는 음악을 활용한다. 명상도 좌측 두정엽의 활성 감소, 전전두엽의 활성 증가를 보인다.   그러나 수면부족은 뇌를 손상시키고 학습과 기억과 관련된 측두엽의 활동을 낮게 함으로써 문제를 일으킨다. 수면은 식욕과 관련된 렙틴과 그렐린 두 가지 호르몬을 조절하여 기능을 한다. 만약 수면이 부족하면 렙틴 수치가 낮아지고 그렐린 수치가 높아져 비만하게 된다. 성인은 적어도 7~8시간 자려고 노력해야 한다. 수면부족은 자율신경 실조증을 일으켜 두통, 손발 저림, 가슴이 뛰는 등 신체적 이상을 나타내 보이고 우울증, 불안감과 같은 정서적 문제까지 나타난다. 자기 전에 니코틴이나 카페인은 먹지 말고 운동은 5시간 전에 하는 생활습관을 갖도록 한다. /경기대 뇌·심리전문연구원·한국상담개발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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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1-28
  • 우리가 메시아를 만났다 (요1:41)
        세례요한을 따르는 두 제자가 있었다. “세상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이로다.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그가 성령으로 세례를 베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성령께서 알려주셨다”(요1:33~34) 세례요한의 확신있는 증언을 듣고 두 제자는 예수님의 첫 번째 제자가 됐다. 예수님의 첫 질문 “너희가 무엇을 구하느냐?” 두 제자가 이르되 “선생님 어디 계시나이까?” 예수님의 대답 “와서 보라!” 그들이 예수님 거하시는 곳에 아침에 가서 하루종일 말씀을 들었는데 “때가 열시쯤 되었더라”. 지금 시간으로 오후 4시경이었다. 두 제자 중 한 사람인 안드레는 즉시 베드로에게 달려갔다. “형! 우리가 메시아를 만났어~!” 베드로는 안드레를 따라나섰고 예수님은 첫 만남에서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구나. 장차 게바라 하리라. 번역하면 베드로(반석)라” 두 제자 중 한 제자는 언제나 자신의 이름을 말하지 않고 ”주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라고 말하는 요한복음의 저자 요한이다.   메시야(Messiah)는 히브리어로 제사장이나 왕으로 즉위하기 위해 기름 부음을 받은 자(출30:30, 삼상16:13)이며, 선지자들에 의해 약속된 장차 오실 왕(사9:6~7)이시며, 구약의 약속을 이루실 구원자(미5:2)이시다. 전 세계로 흩어진 유대인 디아스포라를 위하여(우리도 해외교포자녀들이 현지 언어를 생활화함으로 모국어를 잊게 되는 것처럼) 히브리어를 잊어가게 되자 BC 300년, 히브리어 구약성경을 당시 세계공통어인 헬라어로 번역이 시작돼 BC 132년경 오늘날 사용되는 구약 성서가 모두 번역됐다고 한다. 우리 예수님도 이 성경을 보셨고 인용하셨다. 이 과정에서 히브리어 ‘메시야’는 대부분 헬라어 ‘그리스도’로 번역됐는데 오직 요한복음 두 곳에서(요1:41, 4:25) 히브리 원어 그대로 기록됐다.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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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1-28
  • 자기희생적 그리스도인의 표상(2)-현길언의
      중편소설 <사제와 제물>은 그 제목(표제)만으로도 종교적인 분위기를 다분히 느끼게 해 주는 작품이다. 그러나 이 소설의 주인공이 어떤 종교적 계율에 따른 무슨 의식(儀式)을 실제로 교회 안에서 보여주고 있느냐 하면 그런 것은 아니다. 이 작품이 소재 면에서 기독교 문제와 연결되고 있는 점은 단지 주인공 선우백이 기독교 신자이며, 그 때문에 그가 가끔씩 성경책을 펼쳐 보는 데에서 확인할 수 있는 정도라고나 할 수 있겠다.   앞서 이미 살펴본바 중편소설 <신열>의 주인공 강성수 목사는 일선 현장목회에 몸담으면서 수난을 겪게 되므로 교회공동체의 문제가 실제로 제기되는 상황이었지만, 이 <사제와 제물>의 주인공 선우백은 실제로 교회에서 활동하는 게 아니라 세속적인 노동쟁의 현장에서 활동하기 때문에 좁은 의미의 교회공동체의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다고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여기서 교회공동체 여부 문제는 실상 재고를 요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선우백이 기독교도이기는 하나 그러한 자신의 종교적 신분과는 무관하게 노동 현장에 개인 자격으로 참여해 있는 처지라면 모를 일이지만, 그러나 그는 단순히 개인적 이유로 지금 이 자리에 위치해 있는 게 아니라 분명히 ‘선교’의 목적으로 그 자리에 처해 있는 특수한 신분이라는 것이다. 이럴 때의 그 선교란 일종의 ‘산업 선교’ 형태일지 모른다.   그러므로 선우백은 쟁의 현장에서 농성자들을 지도하면서 전적으로 성경에 의지하는 입장이다. 선우백은 자신의 뜻만으로 그들을 지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인도하려고 애쓰는 처지인 것이다. 그는 세속적 용어를 빌려 표현하자면 재야 노동운동가이고, 달리 종교적 의미를 부여해 표현해 보자면 ‘산업 선교사’인 셈이다. 이 경우 만일 우리가 후자를 택해도 좋다고 한다면, 이러한 산업 선교사로서 노동쟁의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선우백의 그 선교 현장은 의심 없이 교회공동체가 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대표 기도를 인도하기도 하고, 성경책을 편 다음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썩으면 많은 열매를 맺나니…”라는 구절을 두 차례나 반복해서 읽은 뒤 일장 설교를 하기도 한다. 이러는 선우백의 능력과 언변에 감화를 받은 노동자(농성자) 이채원이 실제로 농성 현장인 13층 건물에서 땅 아래로 몸을 던진 일을 전후로 하여 고뇌와 갈등에 휩싸이게 된 선우백은, 자신이 남을 제물로 삼을 줄만 알지 자기 스스로 희생제물이 되지는 못해온 사실을 부끄럽게 여기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자아의 내면세계에 그가 눈을 뜨게 된 데에는 같은 처지의 청년 노동자 강철규의 자극적(충격적) 발언이 크게 주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과거 한때, 참 사제라면 자기 스스로 제물이 되어야 하는 법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던 선우백은 강철규의 ‘참 사제론’ 앞에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없었다. 강철규는 선우백 앞에서, 예수처럼 자신을 희생시켜야 참 사제가 될 수 있다고 외쳤던 것이다.   지금껏 남을 제물로 삼아 자신의 제사 의식만을 치러 왔던 노동 사제(산업 선교사) 선우백은 이제 새로운 각성과 자각으로 자기 스스로가 희생 제물이 되기를 다짐한다. 그리하여 그는 농성 현장에 뛰어든 진압 부대가 농성자들을 완전히 포위하고 있었을 때, 그 자신은 거의 그들의 손길이 미칠 수 없는 창가에 밀착해 있을 수 있었다. 즉 형편과 사정 여하에 따라서는 그 자신이 고층에서 아래로 몸을 던져 희생 제물이 될 수도 있는 자리에 스스로 위치해 있었다는 말이다. 과연 그는 투신을 결행할 것인가?/조선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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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1-25
  • 나의 신부야
      아가서 4장 6절에서 8절까지 주님이 최초로 “나의 신부야”라고 호칭하신다. ‘내 사랑’에서부터 출발해서(아1:9), 2장에서는 “나의 사랑 나의 어여뿐 자야”로 호칭이 달라지면서 우리 신앙의 모습도 달라져 간다. 드디어 4장에 와서 “나의 신부야”라고 부르신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 중에서 이 주님의 신부로 불릴 수 있는 신앙의 수준이 되어진 자를 가리켜 “나의 신부야”라고 부르신다고 본다. 이렇게 우리가 이 자리에 다 들 수 있기를 사모해야 될 것이다. 먼저 “날이 기울고 그림자가 사라지면 몰약산, 유향의 작은 산으로 가리이다”라고 말씀하신다.   이는 낮같은 은혜시대가 다 끝나 가는 때요, 어두움의 권세의 때, 즉 대환란이 가까워 오는 이때에 우리는 유향의 산인 주님 가신 겟세마네에 함께 가서 최후의 기도를 하자. 또 몰약산 같은 주님 십자가 달려 대속제물 되신 갈보리 산으로 함께 가자는 말씀이다.   유향산 같은 겟세마네에서 우리가 주님같이 비장한 기도를 할 때가 오리라. 바로 목전에 큰 고난과 순교의 죽음을 감지하면서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기도할 때가 오리라. “아버지여, 아버지 뜻대로 이 순교의 잔을 잘 마시게 하옵소서”라고 하면서 말이다. 그다음은 당연히 몰약산이 따르게 될 것이다. 주님 가신 그 코스 그대로 가게 될 것이다.   이 때 주님은 “내 사랑아, 너는 어여쁘고 흠이 없구나”라고 하십니다. 오직 주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의 선상에 올라 선 그 영적 모습이 곧 모두에게 어여쁘다. 또 주님을 신랑으로 맞이할 수 있는 심령 성전이 완공되었으니 곧 “흠이 없이 온전하구나”라고 주님이 칭찬 하시는 것이다.   나의 신부야 함께 가자. 레바논의 헤르몬 정상으로, 그리고 그 정상에서 사자굴과 표범산을 바라보아라. 그러면 사자굴, 즉 음녀 바빌론의 정확한 분별과 대처할 길, 또 표범산, 즉 적그리스도의 등장과 그의 궤계 등을 분별함과 대처할 길 등이 보이리라. 즉 제일 높은 고도의 영적 분별하는 수준으로 가자는 신랑 예수님이시다.    또 아가 4장 1절에서 5절의 신앙 모습이 이뤄진 자임을 가리킨다. 그의 장성함의 계시인 “튼튼한 이와 두 가슴”, 또 일사각오의 영적 목숨으로 살고 있는 그 망대 같은 “목”은 그리스도의 신부의 자리에 서 있는 것을 가리킨다. 할렐루야./예장 진리측 총회장·주사랑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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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1-25
  • 자기희생적 그리스도인의 표상(1)-현길언의
      1989년 현길언은 <현대문학>지(11월호)에 중편소설 <사제와 제물>을 발표하였다. 앞서 중편소설 <신열>로 제5회 녹원문학상(1985)을 수상한 바 있는 현길언은 이번에는 이 <사제와 제물>로 제35회 현대문학상(1990)을 수상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작품은 <1990년 현대문학상 수상소설집> 명의로 <사제와 제물>을 표제작으로 하여 내놓은 작품집 속에 화려하게(?) 수록되었다. 왕성한 작품 활동과 일정 수준의 업적에 비할 때 그동안 별로 큰 각광을 받아 왔다고는 할 수 없는 작가 현길언에게 비로소 영광의 기회를 안겨준 작품이 이 <사제와 제물>이란 중편소설이었다.   <사제와 제물>은 근래 우리 산업사회에서 매우 큰 관심거리의 하나로 떠오르고 있는 노사(勞使) 간의 갈등과 투쟁을 소재로 하고 있는 작품이다. 그러나 이 작품이 발표되던 거의 비슷한 시기에 함께 선을 보였던, 방현석 작가의 <새벽 출정>(1989)이란 소설과 비교해 보았을 때, 현길언의 <사제와 제물>은 노동소설의 정석을 보여준 작품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왜냐면 방현석의 경우처럼 ‘노동자’ 자신들의 투쟁과 성장의 모습을 끝까지 밀고 나갔다기보다는, 오히려 노동운동 ‘지도자’의 각성과 인격의 변화 과정을 더 밀도 있게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크리스천인 우리의 처지에서 이 소설에 특히 관심을 기울이게 되는 것은, 주인공 선우백이 크리스천이라는 사실과, 그리고 노동운동 지도자로서 새로운 각성이니 양심의 회복이니 또는 지식인으로서의 책임의식이니 하는, 작품 내 현안 문제들 역시 실제로는 주인공(선우백) 자신이 처해 있는 기독교적 배경 하에서 논의하고 이해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이 소설은 40명의 노동자들이 세웅빌딩의 13층을 점거하고 일주일째 농성에 돌입해 있는 상태에서 시작한다. 세웅그룹의 노동쟁의 현장에 뛰어든 선우백은 애초에 회사 측과 농성자 측을 중재할 임무를 띠고서 개입하게 된 처지이지만, 그러나 그는 처음부터 양측의 중재자라기보다는 차라리 농성자들 편에 서서 이 사태를 해결해 보려고 하는 기본 입장을 분명히 지니고 있다.   그가 그 길을 택함으로써 자신을 노동쟁의 현장에 투입한 회사 측을 완전히 실망시키는 결과를 낳지만, 그가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그는 어쨌든 자신이 재야 운동가 출신이라는 점, 그렇기 때문에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말대로 역시 소외된 노동자 편에 설 수밖에 없는 체질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게다가 더 좋게 해석한다면, 그는 크리스천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약자 편을 더 생각할 수밖에 없는 그런 처지였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그의 개입과 지도로 인해 농성 현장은 활기를 찾게 되지만, 쟁의가 장기화되면서 매스컴의 관심권에서 벗어나게 되자 초조감에 조급해진 농성자 측에서 마침내 일종의 극약 처분을 내리고 만다. 농성자들 가운데 이채원이란 청년이 고층에서 아래로 투신하고 만 것이다. 이런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하고 난 뒤의 주인공 선우백의 정신적 갈등과 종교 지도자로서의 각성의 문제에 이 소설은 초점을 맞춰 나간다.   선우백은 자신이 은근히 죽음에 대한 유혹을 이채원에게 주었다고 하는 양심의 고통에 시달리게 된다. 그러므로 이 소설은 비유컨대 농성 노동자들을 ‘자식’으로 둔, 노동운동가인 ‘아비’의 정신적 고뇌를 밀도 있게 그려주었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이 소설은 지금까지의 노동소설과는 차원이 다른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지니는 작품이라 하겠다./조선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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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1-25
  • 행복신앙세미나 23
    (행복신앙연구소장 제임스강 목사 www.bog.or.kr)  행복을 위한 고귀한 희생       “제목 ‘모스트’는 체코어로 다리(The Bridge)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완전히 떨어져 있는 대상 사이를 하나로 이어주는 ‘다리’는 이 영화의 중요한 배경이며 그 속에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이어주는 중요한 사건을 비유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복음기도신문, 2012.3.25)   영화 《모스트(Most)》는 체코에서 2003년에 제작된 단편 영화로 제76회 아카데미 시상식 단편 영화 작품상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었습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는데, 줄거리는 아래와 같습니다.   어느 강에 설치된 아래 위로 움직이는 개폐식 다리를 관리하며 배와 기차의 운행을 조정하는 아버지에게 어린 아들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늘 따라오고 싶어하는 아들을 데리고 가서 강 아래에서 낚시를 하게 하고 아버지는 기계실에서 일했습니다. 잠시 후 배가 접근한다는 신호가 오자 아버지는 레버를 조작해 다리를 들어 올립니다.   그리고 다른 일에 몰두하는데, 정지 신호를 발견하지 못한 기관사의 실수로 기차가 빠른 속도로 달려오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흰 연기와 함께 달려오는 기차를 발견한 아들이 아버지에게 눈을 돌리니 아버지는 등을 진 채 일에 몰두하고 있었습니다. 아들은 놀라서 아버지를 불렀지만, 기계실 소음 때문에 아버지는 듣지 못했습니다.   결국, 아들은 다리 위로 올라가 위험을 막으려고 했지만, 잘못해서 다리 사이에 끼이게 됩니다. 뒤늦게 위험을 발견한 기관사가 기적을 크게 울리자 그제서야 아버지도 위험을 인지하고는 급히 레버를 움직이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곧 다리 사이에 끼인 아들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라며 극심한 갈등에 처합니다.   아들을 살리기 위해 다리를 내리지 않으면 수많은 승객들이 죽게 되고, 승객들을 살리려고 하면 아들은 비참하게 죽어야만 하는 것이었습니다. 짧은 순간 갈등 속에서 크게 울부짖던 아버지는 결국 다리를 내려 아들을 희생시키면서 승객들을 살립니다. 이처럼 예수님도 인류의 행복을 위해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고 희생을 당하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지르시되 ...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막 15:34)   “형제의 사랑을 그린 드라마로 인해 모든 관객을 한없이 울게 했던 연극 의(衣)가 돌아온다. 연극 의(衣)는 ... 전석 매진의 기록을 달성하며 흥행하였고 관객들의 앵콜 요청에 의해 ... 공연될 예정이다.”(머니투데이, 2010.3.26)   중국에서 일어난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는 극단 아트리의 연극 ‘의(衣)’는, 형제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부모의 비극적 죽음과 힘겨운 성장 과정으로 인해 신(神)에 대한 뿌리 깊은 적개심을 품은 동생 윤재는, 독실한 신자인 형 윤호의 기도와 사랑에도 불구하고 마땅한 직업도 없이 체육관 등을 전전하며 반항적이고 회의적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전셋값을 지불하지 않으면 쫓아내겠다는 집주인의 압력에 윤재는 돈을 구하기 위해 고교 동창을 따라 폭력단체의 대표 진만을 만납니다. 진만은 윤재의 사소한 몇 마디에 기분이 거슬려, 수주받은 철거민 시위 관련 건에 윤재를 희생양으로 만들고자 비열한 계획을 꾸밉니다. 이를 알 리 없는 윤재는 진만이 의도적으로 접근시킨 희숙과 사랑에 빠지고 장밋빛 미래를 기대했지만, 철거민 시위가 있던 현장에서 전경을 죽이고 나서야 자신이 진만이 쳐 놓은 덫에 빠진 것을 깨닫게 됩니다.   경찰을 피해 도주하던 윤재는 진만의 사무실에서 진만과 희숙을 발견하고는 분을 이기지 못한 채 그들까지 살해하고 맙니다. 그때 도망간 윤재를 뒤쫓아 온 형 윤호는 살해 현장에서 패닉 상태에 빠져 있는 동생을 발견하고는 동생의 피 묻은 옷과 자신의 옷을 바꿔 입고는 동생 대신 경찰에 체포됩니다. 결국, 동생의 죄를 대신하여 윤호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던 그 시각, 동생 윤재에게 “나는 너의 옷을 입고 너 대신 죽는다. 너는 내 옷을 입고 나 대신 살아다오.”라는 편지가 배달됩니다.   동생의 죄로 인해 형이 대신 형벌을 받았다면 동생의 죄와 형벌은 사라진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형벌을 대신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우리의 죄와 형벌이 사라졌다는 소식이 복음, 곧 행복의 메시지입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히 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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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1-25
  • [‘그 사랑’ 율법의 요구 7화] 주의 말씀은 기쁨과 힘이며 소망임
        정체성 회복하여 구속사역에 동참은 최고의 기쁨과 행복한 새 가치관   복 있는 자는 주야로 말씀을 묵상하는 자로서 말씀이 빛이 되고 등불이 된다고 하였다. 또 악인의 꾀에 빠지지 않고 말씀을 바로 지켜 영생에 이르게 되는 복임을 깨닫게 한다. 더불어 주께서 요한복음 15장 10~11절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하셨다. 계명을 지키는 일은 주님의 기쁨이 우리 안에 충만케 되는 비결임을 찾는다. 현실에서 행복하게 전도의 일을 기쁘게 할 수 있는 힘의 새 가치관 증거이다. 세상 사람들은 유물사관적인 것에 의한 기쁨이다. 하지만 크리스챤들은 전도하여 보이지 아니하는 영혼구원에 기쁨이며 힘이 되는 말씀이 실체이다. 곧 이웃 사랑의 실천은 주의 기쁨이며, 주와 내가 한 영을 이루었기에 하나 된 기쁨의 목표임을 알 수 있다. 전도로 구원에 이르게 하는 일을 할 때 주의 기쁨이 자신 안에 충만케 되는 새 가치관의 정립이다. 다시말해서 주를 경외하여 그 명령을 좇는 일은 말씀에 순복하는 존재의 목적을 바로 하는 행복임을 일깨워준다. 자신의 정체성을 회복하여 구속사역에 동참할 때 최고의 기쁨과 행복이라는 새 가치관이다. 요한이서 4절에서도 “너의 자녀들 중에 우리가 아버지께 받은 계명대로 진리를 행하는 자를 내가 보니 심히 기쁘도다” 하시어 이를 확증해 준다. 또한 요한삼서 3절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언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하셨다. 곧 말씀 안에 거하여 주를 사랑한 결과 성령과 동행으로 이웃 사랑에 아름다운 열매를 맺히게 되는 주 안의 희락이다. 또한 이 기쁨은 주님의 말씀에 충성할 수 있는 힘이 되며 어느 상황에서도 자족할 수 있는 비결이다.   디도서 2장 11~14절과 요한복음 10장 9~10절은 풍성한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한 사랑과 연계이다. 선한 열매를 많이 맺히게 하시려고 깨끗케 하심이며 양육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임을 증거 하신다. 이로인해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게 되리라는 시편23편의 소망을 갖는다. 결국 땅 위의 수고를 마치고 우리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주님 품에 안기게 될 영적 새 예루살렘에서 영원히 거하게 될 확증이다. 곧 주님과 더불어 영생을 누리며 안식에 이르게 될 주의 경륜의 섭리이다. 그런즉 주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길 소원하며 이를 위해 사랑을 실천하는 자에게 충만한 기쁨을 주심이다. 더 나아가 새 생명을 얻은 자가 새 피조물로써 주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이웃 사랑의 실천을 하는 힘으로 작용이다. 그리하여 성령의 동행으로 나타나는 인자하심과 선하심의 결과 큰 기쁨의 제자화로 확장이다. 이 일을 할 때 주의 기쁨이 우리 안에 넘칠 것이며 산 자로서 온전케 되는 삶으로 양육해 가시는 주의 은혜임을 확증하는 바이다.   그러므로 영적 주의 전으로써 사람에게 생명을 얻게 하는 전도는 기쁨과 힘의 비결로써 존재의 목적이다. 나지 아니할까 염려치 않고 주의 영광을 위한 존재들이 말씀에 순복하여 이루어가는 온전한 기쁨의 행위이다.     즉 계명을 지키라고 하심은 마땅한 수고의 댓가로 주시는 행복한 기쁨과 힘이 되기 때문에 주의 은혜로 하는 주의 일을 더욱 견고케 한다. 주께서 동행 하시는 구속사역에 참여는 기쁨의 충만이며 더 견고한 믿음 위에 공동체가 날로 더해지는 주의 은혜이다. 우리 안에 주신 주의 기쁨은 주와 영원토록 함께 거하게 될 소망을 하늘에 둔 복 있는 자에게 힘과 성화의 비결임을 확증케 한다./오이코스대 교수·바이블아카데미 학장·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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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1-22
  • [‘그 사랑’ 율법의 요구 6화] 주의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견인
    긍휼 베푸심을 담은 계시의 말씀, 지혜로 찾은 존재의 목적과 새 가치관     성경은 위로 가운데 인내로 소망을 준다. 시편 23편4절은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며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주님이심을 증거 한다.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어 하나님의 십자가 군병으로 쓰신다는 것이다. 곧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는 말씀과 연계이다. 사람 살리는 구속사역에 열심하는 하나님의 친 백성이 되게 하려고 거듭나게 하셨다는 말씀이다. 이 일은 주님과 동행하여 보람되고 행복한 삶으로 최고의 기쁨을 누리게 하시는 은혜이다. 주의 의로 쓰시기 위한 거듭남이기에 영적 성전의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주의 영으로 순복하게 하는 견인이다. 곧 주의 영이 있으면 주의 마음을 알게 된다. 그리하여 주님의 뜻대로 순복하여 주의 일에 존재의 목적을 삼게 된다. 주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기에 이를 위한 새 가치관의 존재 목적이다. 주께서 대속제물이 되어주심이 우리를 위할 뿐 아니라 온 세상의 죄를 위함이라고 하신 사랑을 지혜로 알게 하셨다. 아담과 같은 죄를 범치 아니한 자들 위에도 죄가 왕노릇 하게 되었음을 찾게 하심이다.   그러기에 거듭나게 하심은 죄인들을 주의 자녀로 회복하는 일에 쓰시기 위한 주의 섭리이다. 곧 그리스도의 사신이 되어 주님을 경외하는 이웃 사랑으로 주의 나라 확장이다. ‘금도 내 것이요 은도 내 것이라’ 하신 말씀에 담긴 영적 의미와 같다. 다시 말해서 새 언약대로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을 통해 이루실 죄인들의 영혼구원이다. 주의 백성으로 회복하실 주의 뜻이기에 성전재건을 원하신 계시임을 지혜로 찾는다. 곧 성전 재건은 영적 주님의 백성들로 회복하는 예언이 들어 있음을 깨달을 수 있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헬라인들이 영혼구원을 받아 주의 백성으로 회복하는 주의 뜻이다. 온 세상 사람들이 주의 자녀로 회복됨을 원하시기 때문에 성전 재건의 영적 의미는 잃어버린 자녀들을 찾게 하는예표와 계시라 할 수 있다. 즉영적 성전의 주인이신 그리스도를 통한 죄사함의 사역에 거듭난 주의 자녀들을 축복의 통로로 쓰시는 예언이다. 이 일에 주께서 오시어 본을 보이셨고 그 자취를 좇게 하셨다.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게 하신 아버지의 뜻이다. 오직 모든 사람들이 예수의 하나님 되심을 믿고 그 교훈을 좇아 생명에 이르도록 화답하게 하는 십자가 사역이다. 또 죄인들과 주님의 관계에 화평케 하는 몫임을 찾는다. 호세아 선지자에게 음란한 창녀를 아내로 삼으라고 하신 말씀에서도 같은 이유와 목적을 찾게 하신다. 죄인들을 돌이켜 주님의 신부가 되게 하는 일에 거룩한 십자가를 지게 하는 주의 일임을 발견케 한다. 이 일이 거듭난 사람의 본분이며 주의 명령이다. 곧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을 지킬지어다’ 라고 하신 전도서12장13절 일의 결국에 증거이다.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우리의 영혼을 거듭나게 하신 이유와 목적에 대한 지혜의 결론이다. 주의 영으로 거듭나 주의 뜻대로 온 세상의 죄인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도록 달란트를 남기는 본분이다. 또한 거룩한 주께서 오신 목적과 성령으로 견인하시는 이유임을 찾게 하셨다.     그러므로 거룩함을 덧입은 자들은 하나님의 자녀로 그 몫이 이방인들을 살리는 영적 구속사역에 성령과 동행임을 확증케 한다. 화평케 하는 복음으로 이웃 사랑의 몫이다. 곧 이 일이 주의 뜻대로 이웃들이 생명 얻게 되는 주의 섭리임을 확증하는 바이다. 말씀으로 주님과 하나 되게 하신 선하심에 지혜로써.../오이코스대 교수·바이블아카데미 학장·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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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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