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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향유옥합] 스마트폰 활용능력이 곧 생존능력
        자녀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지 않는 경우 외로운 노후 상황이 가중된다. 현대인에게 자녀와 부부관계가 멀어지게 된 요인 중 하나가 인터넷의 발달이다. 한 공간에 있어도 각자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시니어들의 스마트폰 활용 능력은 곧 생존능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마트폰으로 인터넷 뱅킹을 하고, 검색과 쇼핑, 줌 미팅을 하고, 주식 및 코인 거래, 유튜브와 OTT 플랫폼에서 영상을 즐긴다. 스마트폰을 통해 사회관계망 서비스에서 비즈니스와 각종 커뮤니티가 활발해지는 만큼 가족 간 소통이 멀어지는 느낌이다.    하지만 가족채팅방을 잘 활용하면 세대 간 소통을 이어갈 수 있다. 얼마 전 우리 공동체 장로님들 부부와 식사를 하면서 근황을 나눈 적이 있다. 한 권사님이 해외에 있는 손주들에게 매일 성경 말씀과 권면을 녹음해 가족 채팅방을 활용해 전달하는데, 신앙교육과 함께 3대가 소통하는 감동적인 모습이었다. 주의 훈계와 교양으로 가르치는 것은 부모보다 조부모가 훨씬 낫다. 대개 할머니, 할아버지가 성경책을 구수한 옛날 이야기처럼 영상으로 녹화해 보낸다면 어릴 때부터 신앙교육도 되고, 가족 간 관계도 이어질 것이다. 그것도 손주들이 어릴 때부터 시작해야 효과가 있다. 더 늦기 전에 가족 간 소통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직장에서 퇴직한 고학력자들일수록 아직 일할 수 있는 나이임에도 지금까지 유지해 온 사회적 지위를 의식해 제2의 인생을 살지 못하고 집에서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경력을 바탕으로 조금만 테크닉을 배우면 노후의 스펙트럼이 넓어진다. 대기업 CEO 경력을 지녔는데 은퇴 이후 호텔 레스토랑 웨이터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한 사람, 지자체 자연사 박물관에서 해설사로 일하는 전직 아나운서, 퇴임 이후 양봉을 하면서 젊었을 때부터 지속해온 암벽타기를 하는 교장 선생님도 있다.   지금은 1인 미디어 시대다. 평생 갈고 닦은 음식 솜씨로 밑반찬 만들기 유튜브를 하거나 경로당 출근을 위한 촌스러운 화장법으로 수십만 구독자가 있는 할머니도 있다. 기본 여건만 갖춰진다면 자기가 잘하는 것, 하고 싶었던 것, 해야 하는 것들을 도전하는 세대가 시니어들이다.   예전에는 비즈니스 하는 사람들이나 사용하던 줌 미팅이 코로나19 이후 교회 순예배나 모임에 등장했다. 처음엔 누구나 헤맸지만 나이든 권사님들도 이제는 온라인 미팅에 익숙해졌다.   성경에 나오는 시니어들에게 소망을 주는 대표적인 두 인물이 모세와 갈렙이다. 이집트 왕자 모세는 40세 때 살인죄를 저지르고 도망자 신세가 되어 광야의 양치기로 40년을 살았다. 하나님은 힘과 학식으로 충만했던 그의 젊은 시절 패기를 다 빼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무력한 나이 80세에 부르셨다.   유다 지파 족장이었던 갈렙은 40세에 가데스 바네아에서 정탐꾼으로 파견되어 충성을 다했을 뿐만 아니라, 가나안 땅에 들어간 뒤 85세 나이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는 헤브론 땅의 장대한 자들 곧 아낙 자손의 산지를 솔선해 정복하고 분깃을 받음으로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어 나가는 일에 앞장선 신실한 믿음의 용사였다(수 14:13~15).   2022년 여름이 지나가고 있다. 새해에 기도하고 다짐했던 비전의 성취를 위해 기죽지 말고 약속의 땅으로 나아가는 시니어들의 발걸음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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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8-29
  • 자기희생적인 그리스도인의 표상(1)-현길언의 중편소설
      2년 전에 작고한 작가 현길언(1940-2020)은 실제로 독실한 기독교도였으면서도 구태여 그의 작품상에 기독교적 소재를 요란스럽게 반영하지 않으면서, 작품 내에 가장 기독교적 정신(주제의식)을 잘 담아낸 작가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확실히 그는 소재주의적인 면에서 기독교적인 작품을 쓰는 작가라고는 할 수 없겠다.   그가 많은 소설 작품들을 써 냈음에도 불구하고 소위 기독교적 소재를 다소나마 취급한 작품은 겨우 수편에 불과한 정도라 할 때, 그가 소재주의적 의미에서의 기독교 작가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 세계가 다분히 기독교적이라고 우리가 전제할 수 있다는 데에 그의 소설 문학의 특성이 있다고 볼 수 있겠다. 필자는 작가 현길언의 중·단편소설들 가운데서 특히 <겨울 여행>이나 <신열> 및 <사제와 제물>과 같은 작품들 속에 어느 정도의 기독교적 소재들이 반영되어 있는 것을 찾아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들조차도 다른 작가들의 작품들과 비교해 볼 때에는, 구태여 이 작품들이 기독교적 소재를 보여주고 있다고 꼭 집어 지적하기가 좀 무엇하지 않은가 하는 느낌을 다소 받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게 솔직한 표현이다. 이렇게 말하기는 하지만 조금 방향을 틀어 보자면 다른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겠다. 그의 적잖은 ‘장편소설’들 중 특히 생의 후년(90년대 후반)에 나온 작품들, 곧 <보이지 않는 얼굴>(1997)과 <벌거벗은 순례자>(1999) 등의 작품들을 보면 거기에 기독교적 소재가 많이 반영되어 있다는 사실을 수긍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결국 지금까지의 필자의 이야기는, 장편소설들을 제외하고 그의 중·단편소설들을 중심으로 살펴볼 때 기독교적 소재가 반영되어 있는 작품들이 별로 많지 않다는 이야기로 받아들이면 좋겠다는 것이다.   현길언의 기독교문학을 논의하면서 여기서 구태여 장편소설은 제외하고 중·단편소설만을 중심으로 논의하겠다고 한 것은 그만큼 현길언의 기독교 ‘장편소설’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그의 기독교적인 ‘중·단편소설’이 훨씬 더 우수하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가령 그의 장편소설 <보이지 않는 얼굴>과 같은 작품을 읽어보고 나서의 솔직한 느낌은, 한 작가의 작품이 어떻게 그 수준(완성도) 면에서 이렇게 서로 현저한 격차를 보일 수 있을까, 머리를 갸우뚱거렸었다는 사실을 여기서 밝히면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로 하련다.   엘리엇(T. S. Eliot)이 말하는바 ‘무의식적인 기독교문학’, 다시 말하자면 전혀 기독교적이 아닌 세계에 나타남으로써 그 효과를 드러내는 작품을 주로 써 왔다고 볼 수 있는 작가 현길언에게서 어느 정도 의식적인 기독교문학으로서의 의미를 띠고 나온 소설 작품이 80년대의 소산물인 <신열>과 <사제와 제물> 등의 중편소설들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그런 만큼 이 중편소설들은 기독교 사상과 정신은 물론, 기독교적 소재 역시 제법 드러나 있는 작품들이라고 보겠다.   아무래도 의식적인 기독교소설이라고 하면, 우리가 욕심을 부릴 때, 작품의 주제는 물론, 소재 면에서도 어느 정도 의식적인 배려가 있게 되기를 기대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필자는 이 두 작품들 가운데 특히 <신열> 한 작품만을 이하에서 다루어 보고자 한다.   이 작품이 비교적 주제와 소재 양면에서 그 뚜렷한 실상, 곧 기독교소설의 진면목을 드러내 준 작품이라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사제와 제물>도 문제작의 하나이기는 하지만 ‘기독교소설’이란 관점에서 볼 때는 역시 <신열>을 독자 제위께 더 추천하고픈 심정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조선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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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8-28
  • 내 사랑아
      아가서 1장 8절부터 11절에서 주님은 ‘너 여자들 중에 가장 어여쁜 자야’라고 한다. 여기 여자들 중이란 앞의 5절에서 말한 예루살렘의 딸들을 가리킨다. 그들은 육적 신앙이고 또 율법적 신앙에 속한 신자들이다. 아직도 육에 매여 살며 믿음이 아닌 자기 의와 행함을 내세우는 잘못된 신앙이다. 또한 미숙한 신앙이다.    그러나 ‘오 너 여자들 중에 가장 어여쁜 자야’는 육의 강 건넌 영적인 그리스도인이다, 오직 주 재림을 사모하는 성도로서 주님이 기뻐하는 것이다(히11:6). 네가 알지 못하겠거든 양떼의 발자취를 따라가라. 그리고 네 염소 새끼들을 먹이라고 한다. 아직도 재림 주님을 100퍼센트 깨닫지 못하는가? 아직도 신부의 신앙에 온전히 올라서지 못했는가? 그러면 먼저 그 신앙에 올라 서 있는 자들을 뒤따르라.   아울러 이미 은혜 받은 믿음의 분량대로 전도하고 말씀도 증거하라. 그리하면 재림하실 주님을 잘 알게 되리라. 결국 그분을 신랑으로 맞이할 수 있으리라. 주님은 또 ‘오 내 사랑아’라고 부른다. 너를 파라오의 병거의 준마에 비교하도다. 이는 파라오가 요셉에게 자신의 병거를 내주어 온 백성들로 환호하며 절하게 하는 병거이다(창41:43). 즉 장자의 영광을 가리킨다.   재림 주님은 파라오보다 더 영광스러운 분이다, 재림 주의 종이 됐으니 얼마나 기쁜가? 더욱이 그 영광의 재림 주님이 자기에게 줄 영광을 믿고 있으니 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 이 기쁨이 천리마 같이 뛸 수 있는 자들이 됐다면 ‘오 사랑아 네가 준마 같도다’라고 하신다. 그리고 주님은 계속하여 찬탄한다. 네 두 뺨의 보석줄과 금목걸이가 아름답다고 한다.    첫째부활의 영광의 복음과 그 진리에 너의 모든 것을 걸고 살고 있는 네 혼이 곧 금목걸이가 아름답다고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너를 위해 은장식 있는 금사슬을 만들리라고 언약한다. 세 분 하나님인 삼위일체 하나님이 우리 하나님이다.우리가 너를 거룩하게 하며 반드시 금면류관을 받을 수 있게 해주겠노라는 아주 든든한 약속이다.   마침내 너를 순교 제물 되게 해 주리라. 그리하여 금 사슬인 금면류관을 받게 해 주리라. 이런 성도와 종들의 그 믿음을 보며 내 사랑아 부르시는 주님이다./예장 진리측 총회장·주사랑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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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8-28
  • 메추라기 사건 ( 민 11:4~34 )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 섞여 살던 무리들이 있었다. 그들이 먹을 것 때문에 탐욕을 품고 회중을 부추기며 또 다시 불평을 했다.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먹여 줄까? 애굽에서는 생선을 공짜로 먹고 오이와 수박과 부추와 파와 마늘이 눈에 선하고 기억이 생생한데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이 만나밖에 없으니, 입맛이 떨어지고 기력이 다하여 힘들어 못 살겠다고 징징 우는소리를 들으며 모세는 통탄하며 주님께 여쭈었다. “어찌하여 주님의 종을 이렇게도 괴롭게 하십니까? 어찌하여 이 모든 백성을 저에게 짊어지우십니까? 이 백성을 내가 배기라도 했습니까? 내가 그들을 낳기라도 했습니까? 어찌하여 저더러,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신 땅으로, 그들을 품고 가라고 하십니까? 백성은 저를 보고 울면서 ‘우리가 먹을 수 있는 고기를 달라’ 고 외치는데, 이 모든 백성에게 줄 고기를, 내가 어디서 구할 수 있습니까? 책임이 심히 중하여 나 혼자는 이 백성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주께서 내게 은혜를 베푸사 즉시 나를 죽여주시옵소서.(민11:11~15) 만나는 깟씨 같고 모양은 진주 같았는데 일용할 양식으로 매일 내렸으나 메추라기는 성경에 3번 기록되어 있다. 여호와께서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하루, 이틀, 열흘, 스무날만이 아니라 냄새가 싫어질 때까지 한달 열흘 먹게 하리라 하시고, 바람이 바다로부터 메추라기를 몰아 이스라엘 진영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사방 하룻길의 지면위에 (하룻길 40km, 사방 하룻길은 1600㎢ 위에 약 1m 정도 높이로 메추라기들이 쏟아져 내렸는데 백성들이 이틀 동안 종일토록 적게 모은 자도 약 10가마 정도 잡았다. 그들이 자기를 위하여 그것을 말리려고 진영 주변 사방에 널어 놓았다.( 현대인의 성경 ) 고기가 아직 치아 사이에 있어 씹히기도 전에 여호와께서 진노하사 욕심을 낸 백성을 거기 장사하였고 그곳 이름을 ’탐욕의 무덤‘ 이라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규례와 법도로 기준을 정하셨으니 매일 아침. ”먹. 을. 분. 량. 만. 큼. 만...” 이다. (출16:21 )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주께서 직접 가르쳐주신 기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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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8-25
  • 행복신앙세미나 11
    (행복신앙연구소장 제임스강 목사 www.bog.or.kr) 완전하신 하나님의 완전한 행복   “사랑에는 한 가지 법칙밖에 없다.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다.”라는 프랑스 근대소설 창시자인 스탕달의 언급처럼, 사랑은 사랑하는 대상을 행복하게 만들고자 하는 속성이 있습니다. 즉, 사랑의 대상을 행복하게 만들어주고자 하는 것이 사랑의 법칙입니다.  생성되면 모두 배출해야 되는 모유와 같은 사랑을 가진 하나님은 이 사랑의 법칙을 따라 인간을 창조하시고 복을 주셨습니다. “미숙한 사랑은 ‘당신이 필요해서 당신을 사랑한다’ 고 하지만 성숙한 사랑은 ‘사랑하니까 당신이 필요하다’ 고 한다.”는 윈스턴 처칠의 언급처럼, 하나님은 사랑하기에 인간을 창조하시고 필요로 하신 것입니다.    즉,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의 대상으로 창조하시고 완전한 사랑을 통해 완전한 축복을 주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하려면 완전한 축복을 이해해야만 합니다. 당연히 하나님의 완전한 축복은 인간에게 조금도 해를 주시지 않는 것입니다. 즉, 인간의 모든 것에 유익을 주는 것이 바로 완전한 축복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살전 5:23)는 성경 구절처럼, 영과 혼과 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주의해야 될 점은, 몸과 혼과 영 이 세 가지가 서로 다르기에 이들에게 유익을 주는 복들도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마치 뇌와 심장과 간이 서로 다르기에 각자에게 필요로 하는 영양소가 다르듯이 말입니다.  어떤 약은 뇌에는 좋을지 모르지만 심장에는 영향을 주지 않듯이 하나님의 축복 중 어떤 것은 육체에는 유익하지만 혼과 영에는 별 영향을 주지 않을 수 있고, 또 어떤 축복은 영과 혼에는 유익을 주지만 육체에는 유익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온전한 축복을 이해하려면 인간을 구성하는 세 가진 요인인 몸과 혼과 영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몸에게는 몸에게 맞는 복을, 혼에게는 혼에게 맞는 복을, 영에게는 영에게 맞는 복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예일대학교의 생화학자인 헤롤드 J. 모로위츠는 인간 생명은 600만 달러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했다. 헤모글로빈은 그램당 285달러 ... 프로클랙틴은 그램당 175만 달러라는 것이다.”(한국일보, 2009.11.12) 위는 인간의 구성 중 몸에 관한 가치에 대한 기사입니다. 인간은 몸이 필요로 하는 다양한 욕구들을 추구하며, ‘등 따뜻하고 배부르면 최고다’는 말처럼 기본적인 욕구를 채워주면 쉽게 만족해합니다. 하지만 몸의 만족만으로는 온전한 행복을 누리지 못하는데, 그 이유는 인간은 혼(魂), 곧 정신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국가를 모두 넘겨주는 때에도 셰익스피어 한 명만은 못 넘긴다.”(엘리자베스 여왕 1세) “작가인 롤링은 그간 인세 수입만 11억 5,000만 달러(1조 3,100억 원)를 벌었고, 2016년 기준 해리포터 시리즈는 약 250억 달러(한화 약 28조 원)의 수익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시사저널, 2017.6.26) 위의 작가들처럼 정신은 상상력이나 창의력 등을 발휘하는데, 그 가치는 몸과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이 정신 역시 필요로 하는 여러 욕구들이 있어, 사람들은 몸의 만족이 채워지면 음악, 독서, 오락, 게임 등을 통해 혼의 만족을 추구합니다. 그런데 몸과 혼의 욕구를 채우는 것으로도 온전한 행복은 찾아오지 않습니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靈長)’이란 말처럼, 인간에게는 영(靈)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영은 영적인 세계와 접촉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에 다른 동물들과 달리 인간만 종교를 갖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이 영은 영원히 존재하기에 유한한 천하보다 더 가치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창 1:26) 위와 같이 영은, 손의 모양을 따라 장갑이 만들진 것처럼,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만들어졌기에 하나님으로 채워져야 만족하게 되어 있습니다. 영이 만족할 때 인간은 비로소 온전한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첫 사람 아담을 창조하셨을 때 몸과 혼, 그리고 영을 위한 행복을 모두 준비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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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8-23
  • 「고기를 잡는 어부」
        배정길 작가의 「고기를 잡는 어부」는 동판을 두드려 만든 공예 작품으로 망치 자국의 자연스러운 질감이 효과적으로 나타나 있다. 언뜻 보면 장난기 있는 두 어린아이의 노는 장면 인 것 같은데 이것은 성경에 나오는 한 장면이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갈릴리 해변을 지나시다가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게 된다. 그들을 보시고 예수님은 "나를 따라 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고 제자가 되었다. (마 4:18-20 ) 작품을 보면 두 사람 모두가 고기를 잡고있는 장면인데 구도나 짜임새가 매우 재미있게 표현되고있다. 결국 이 두 형제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귀한 전도자들이 되어 고기가 아닌 사람들에게 전도하여 구원시키는 귀한 사역자들이 되었다./정재규(미술평론가·대석교회 원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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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8-22
  • 옛 사람 벗어버리고 새사람을 입자
    가르치는 자를 남편, 가르침 받는 자를 거듭나야 할 아내로 들어서 제시   에베소서 첫 장 부르심의 목적부터 복음을 위한 지체로 무형의 교회와 성령과의 관계로 펼쳐지는 구속사에 관한 교훈이다. 더불어 바울 사도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추었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고 밝혔다. 이는 복음을 위해 부르심의 목적대로 성령으로 거듭나는 주의 백성화의 몫을 위함이다. 주와 이웃 사랑의 계명으로 주의 지체들을 만들어가는 섭리로 인해 주의 경륜의 이루심임을 깨닫고 이를 위한 두 계명임을 확증한다. 곧 이를 통해 주의 뜻을 이루어가며 더불어 주를 더욱 기쁘시게 하는 선함임을 확증케 한다.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는 본을 받아 자취를 좇는 견인이다. 구약 제사장의 몫을 들어 자신이 제물로써 이웃의 영혼이 죄사함을 받을 수 있도록 복음을 전하고 지키게 하는 사랑의 실천이다. 이를 위해서 바울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간구로 기도드렸다. 오직 영혼 살리는 일을 본질로 성령과 동행하여 성화되는 여정을 위함이다. 디도서 2장 14절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는 말씀에 화답을 요함이다.   곧 주의 뜻대로 거듭나게 하시어 복음으로 사람 살리는 일에 이웃 사랑의 실천이다. 이를 위해 세월을 아끼라고 명하시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고 하시어 가르치는 자를 남편으로, 듣고 거듭나야 할 자를 아내로 들었다. 가르치는 자의 복음에 가르침을 받는 자의 순복이다. 구원에 이르는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기 때문이다. 이를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 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하심이다.   로마서 13장 1절로 4절 “위에 있는 권세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 권세를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느니라”하신 말씀과의 연계이다. 권세는 거듭날 수 있는 복음이며 권세 잡은 자는 복음을 전하는 주님의 지체들이다. 오직 듣는 자들이 복음에 순복하여 거듭난 제자화를 이루도록 살리는 구속사역에 자신을 힘써 드리라고 하신 말씀이다. 듣는 자들이 말씀에 순복하여야 구원에 이르러 주의 백성이 될 수 있기에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순복하신 그 자취를 좇도록 명하셨다. 그러므로 유형의 교회에 가르치는 자를 세우심은 “복음을 듣는 자들이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도록 하여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는 한 목표로 공동체의 확장임을 확증케 한다. 오직 생명을 얻도록 신앙의 지침을 영이요 생명의 말씀으로 새겨 거듭나 무형의 교회가 확장되도록 거듭난 지체들의 이웃 사랑을 무형의 교회와 성령과의 관계로 확증하는 바이다. /오이코스대 교수·바이블아카데미 학장·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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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8-22
  • [향유옥합] 메타버스시대가 요청하는 것
      ‘역사’는 참으로 흥미로운 단어이다. 아무리 나와 멀리 떨어진 곳에서 내 손길이 닿지 않은 사건이라도 그곳에 나와 나의 사람들의 관심과 환대를 오롯이 담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는 과거의 우리와 오늘의 우리, 그리고 내일의 우리를 끈끈히 연결해 준다. 우리가 아무리 지금 어떤 일들을 잘 해내고 있다 하더라도 그 일은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꽃피워진 것들이기에. 우리가 하는 일들 역시, 미래를 더 잘 만들어내기 위한 역사의 조각들인 셈이다. 나는 그래서 역사란 단어를 무척 좋아하고, 우리가 꼭 지키고 잘 가꾸어야 할 자산이라고 생각한다.   돌이켜보면 역사는 시간의 되찾음이자, 주체를 되찾아주는 길잡이이다. 우리가 역사를 회복시키고 구축해 갈 때마다 묻혀 있었거나 배제돼 왔던 주체들이 다시 일으켜 세워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한국여신학자협의회가 투쟁해 온 걸음은 여성들을 일으키고, 하나둘씩 또 세워가면서 함께 손잡고 연대하며 커가는 자매애의 향연이 아니었나 싶다. 결코 다수가 아니었을 초창기 자매들의 용기와 인내의 순간을 상상해 본다. 황무지와 같았던 그 곳에서 온 힘을 다해 소리 내었던 선배들의 그 길이 과연 평탄했을까? 개척자의 고난을 우리는 얼마나 체현할 수 있을까?   지난 40여 년 동안, 여신협은 시대의 요청에 따라 여성의 권리와 존엄을 회복하고 사회와 교회를 평등하게 세우며, 나아가 이 땅의 정의와 평화가 인간의 삶의 자리를 넘어 지구환경에 이르기까지 넘쳐나도록 최선을 다해왔다. 처음 뿌려 눈물로 키운 씨앗이, 줄기로 실천의 틈을 잡고 잎사귀를 틔워 이론으로 견고해지는 과정을 거치면서 현재 여신협은 외면의 꽃망울을 피우는 시점을 맞이하고 있는 것 같다. 최근 회원 수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고, 실무자 중심적인 사업이 회원 중심적인 영역으로 이동하면서 각 위원회와 소속 회원들이 자치적으로 사업을 설계하는 게, 마치 지방분권제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만 같다.   지금 우리는 메타버스라는 아직은 많은 이들에게 낯선 첨단시대를 관통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는 많은 사람들에게 기술과 정보를 제공함으로 세상을 더욱 효율적이고 편리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삶의 자리를 제공해 주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지점에 돋보기를 갖다 댈 필요가 있다. 기술과 정보가 인간의 삶을 편리하고 유용하게 만들 수 있다는 현실은 그 기술과 정보를 가질 수 있는 사람만이 소유하게 되는 편리와 유용일 수 있다. 따라서 이들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은 상대적으로 기술과 정보를 가질 수 없는 이들에게 권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렇게 기울어지는 관계는 기울어진 계층을 만들고, 결국 사회적 지배체제로 정착하여, 겉으로는 단지 기술적 차원이라는 그럴듯한 이름하에 교묘하게 지배와 종속의 파급력을 견고히 할 것이다. 표면적으로 가치중립적이고 공평해 보이는 체제가 보이지 않는 지배계층을 양산해 낸 역사가 얼마나 수두룩했던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메타버스는 우리에게 시대가 흘리는 어두운 측면을 잘 보라고 요청한다. 이 시대가 부여한 특권을 가지지 못한 이들을, 그리고 그것을 알 수도 없는 자리에 있는 이들을 우리가 찾아내지 못한다면, 그들은 더욱더 소외되어 사회의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점점 더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낼 수도 없이 잊혀 가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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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8-21
  • 음악과 정신건강(1)
      우울증을 치료하는 프로작과 같은 항우울제나 전기충격요법도 뇌의 신경영양인자(BDNF) 활동을 증가시켜 해마의 위축을 막아주고 보호해 줌으로 치료효과를 높여 준다. 우리가 스트레스를 잘 이기고 오래도록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 사랑과 운동은 필수이다. 사랑과 운동은 해마의 신경영양인자를 증가시켜 스트레스를 막아주고 해마의 기능을 회복시켜주며 우울증이나 치매를 예방하고 치료하는 원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 등 많은 사람들이 외출과 모임에 대한 구속과 코로나 블루를 겪으며, 지상파 방송을 비롯한 많은 채널에서 트롯을 포함해 음악프로그램이 인기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음악을 통하여 위로를 받고 우울과 불안감을 해소하고 있는 것이다. 음악은 좌·우뇌를 사용하지만 측두엽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음악을 담당하는 뇌의 영역은 음악을 만들고 들을 때 우리는 양쪽 뇌, 즉 우뇌와 좌뇌를 모두 사용한다. 음악은 많은 기능이 상호작용하기 때문이다.   음악은 귀로 들어와서 측두엽에 있는 청각피질로 간다. 우측 측두엽은 음조, 선율, 화음 그리고 리듬에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는 부분이다. 뇌의 좌측면은 음악과 언어 모두에 대한 주파수와 강도의 변화를 듣는 데 더 탁월하고, 또한 다가오는 자료를 분석한다. 반면에 우뇌는 음악을 전체의 곡으로 함께 통합하는 것에 도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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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8-21
  • [건강교실] 뇌졸중의 재활적 치료 (하)
      뇌졸중 환자에게 집중적이고 포괄적인 재활치료를 시작하는 시기에 대해선, 48시간 이상 신경학적 진행이 더 이상 없고, 두 단계의 명령수행이 가능하면 시작할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뇌졸중 발생 후 직접적인 사망의 90% 이상이 대부분 1주 이내에 일어나고, 병변의 재발 가능성이 항상 존재하므로 적극적이고 포괄적인 재활치료의 시작은 전형적인 편마비 환자의 경우 최소 1주 경과 후가 바람직하다.   현실적으로 뇌졸중 급성기에 해당하는 1주 이내의 재활치료는 주로 신경과나 신경외과에 입원해 있는 상태에서 이뤄지고 따라서 신경학적 및 내과적 치료와 분리되기 어렵다. 따라서 이 시기의 재활치료의 목적은 침상안정 및 부동, 감각자극의 부족으로 인한 각종 합병증을 예방하는 것이다. 침상안정에서 중요한 것은 올바른 침상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다. 발바닥을 발받침대에 똑바로 붙이고, 무릎이 천장을 향할 수 있도록 대퇴골 전자 받침을 사용하고, 견관절은 외전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또한 관절 구축을 예방하기 위해서 적어도 하루에 2회 이상 수동적 관절 운동을 실시하고, 욕창예방을 위해서 적어도 2시간 간격으로 자세를 바꾸어 주며 피부를 청결한 상태로 유지해야 한다. 뇌졸중의 초기에는 많은 환자들이 삼킴 장애를 보이며 따라서 흡인성 폐렴의 위험을 지니고 있다. 기면 상태이거나 의식이 명료하지 못한 환자는 경구 식이를 허용하지 말아야 한다. 의식이 명료한 환자라도 경구 식이를 시작하기 전 삼킴능력을 세심히 평가하여 흡인의 가능성이 있으면 비디오 투시 검사를 시행해야 한다.   앞서 언급했듯 신경학적 증상이 안정되기 시작하면 가능한 빠른 시일 내에 이동을 시작해서 경사대를 이용한 서기 연습 등의 포괄적 재활치료를 시작해 심부정맥혈전증, 위식도역류, 흡인성 폐렴, 관절구축, 기립성 저혈압 등을 예방하고 심리적 이득을 얻을 수 있다. 편마비 환자의 경우 마비가 있는 어깨가 빠져 이로 인한 통증으로 재활치료를 방해할 수 있으므로, 어깨 보조기가 필요할 수 있다. 뇌졸중 후 우울증은 매우 흔하며, 회복을 지연시키고 재활치료 효과를 떨어뜨리게 되므로 정신 요법, 정신 사회적 지지, 항우울제 등을 사용하여 적극적으로 치료해야 한다.   뇌졸중 환자의 약 75-85%는 재활 치료 후에 집으로 퇴원한다. 많은 뇌졸중 환자가 치료 후 이동 능력이나 일상생활 기능을 독립적 수행할 수 있으나 사회적, 직업적 결과는 기능적 회복의 정도만큼 좋지는 않다. 따라서 환자가 퇴원하면 병원에서 의료진에 의해 하던 일을 가족이 맡게 된다. 상태에 따라 장기적인 간호가 필요하므로 의료진은 가족에게 역할 분담 등의 조언을 해주어야 한다.   또한 재활의학과 의사는 뇌졸중 후 장애가 남아있는 환자에 대해 장애인 등록이나 장애연금 등을 위한 장애를 평가하며, 사회사업가는 뇌졸중 환자의 직업, 보험, 보상을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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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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