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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기독교시 다시 읽기 24] 신앙의 삶을 위한 길 - 최은하의 '비추사이다'
    ▲ 시인 최규창   비추사이다 비추사이다 열린 돌문 안으로 가득 넘쳐드는 빛살 빛살의 소리 소리의 빛보라로 비추사이다. 죽어도 영영 죽지 않고 죽어서 다시 사는 법을 이르시며 보이신 이여. 내 떠도는 죽음의 골짜기에 한줄기 꽃바람으로든지, 지금도 역력한 우리 어머니 마지막 손실로든지 눈부셔 캄캄하더라도 속속들이 비추사이다 비추사이다. 사위거나 그림자지지 않을 그 빛살 속에서 스스로를 이겨내게 하소서 웃으며 버리는 법을 익히게 하소서 다시 사는 법 안에서 어제보다 오늘을 오늘보다 내일을 참으로 참으로만 살게 하소서 죽음의 고통을 넘어서서 빛으로 살게 하소서 빛살이게만 하소서.              - '비추사이다' 전문 이 시의 제목인 '비추사이다'는 그 자체가 신앙인의 삶을 형상화했다. '비추사이다'는 ‘비추게 해주십시오’로 이해할 수 있다. 타동사인 ‘비추사’에 존칭인 ‘-사이다’란 어미를 삽입함으로써, 신앙의 섭리에 순응하는 자세를 내포시키고 있다. 이러한 것은 ‘비취다’는 옛말인 ‘비치다’로 빛을 보내어 밝게 만들다는 뜻을 지닌다. 즉 ‘비추이다’의 피동사로 비췸을 받는다는 의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 시는 ‘빛’을 형상화했다. 그 빛은 ‘빛살’과 ‘빛보라’, ‘꽃바람’으로 추구하고 있다. 그리고 그 ‘빛’은 ‘비추사이다’로 빛의 생명성을 드러내고 있다. 빛은 일상의 빛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지닌 ‘빛’으로 환원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빛’은 ‘가르침’이나 ‘삶의 표상’으로 환원된 것이다. 기독교란 종교의 특징을 빛으로 함축하고, 신앙인의 삶으로 환원되어 나타나고 있다. 바로 이 시의 문학적 성취인 것이다. 제1연은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인 부활신앙을 표현했다.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한 무덤의 돌문 안에는 ‘빛’이 가득 넘친다. 그 빛은 빛살로 가득 넘쳐들고, 그 소리의 빛보라로 비친다. 특히 ‘빛살’은 비쳐나가는 빛의 가닥이며, ‘소리’를 지닌 ‘빛살’은 생명성을 지닌다. 첫 행의 ‘비추사이다’를 반복하는 것은, ‘빛’에 대한 강조로 기독교의 영원성을 드러낸다. 제2연은 기독교의 영원성을 노래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와서 죽어서도 다시 사는 삶을 가르쳐 주었다. 그것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후 3일만에 부활로 보여준 것이다. 부활신앙은 기독교의 핵심이다. 제3연은 그 빛이 세속의 삶 속에 비추어 달라고 간구한다. 그 빛은 “한줄기 꽃바람으로든지”나, “지금도 역력한 우리 어머니 마지막 손길로든지”로 비추어 달라는 것이다. 그것은 ‘…꽃바람으로든지’나 ‘…손길로든지’, ‘…하더라도’는 간구의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떠도는 죽음의 골짜기에”는 세속적인 삶의 현장을 함축시킨다. ‘죽음의 골짜기’와 ‘빛’, 즉 기독교의 영원성을 대비함으로써 신앙의 삶을 추구한다. 스스로를 죽음의 골짜기인 세속적인 삶의 현장에서 떠돈다고 직시하고, 그 빛이 눈 부셔 캄캄하더라도 속속들이 비추어 달라고 간구한 것이다. 특히 그 빛은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다. 제4연은 신앙인의 바른 삶에 대한 길을 제시한다. 신앙의 빛 속에서 스스로를 이겨내게 하고, 웃으며 사는 법과 버리는 법, 그리고 다시 사는 법으로 신앙의 삶을 영위하도록 간구한다. ‘웃으며 버리는 법’은 신앙인이 지향해야 할 삶에 대한 총체적 표현이다. 또한 ‘다시 사는 법’은 기독교신앙의 집약된 표현이다. 그리고 마지막 행인 “빛살이게만 하소서”에서 ‘…만’이란 어미를 붙임으로써 신앙인의 소박한 삶을 보여주고, 기독교신앙으로만 삶을 영하도록 간구한 것이다.  /시인·한국기독교문인협회 전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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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6-04
  • [한국 기독교시 다시 읽기 23] 하늘나라로 가는 아름다운 마음 - 천상병의 「귀천」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 「귀천」의 전문  천상병(千祥炳)은 누구보다도 고통스런 삶을 살았지만, 아름다운 영혼이 깃들인 맑은 시들을 남겼다. 1967년 7월 동백림(東伯林)사건에 연류되어 6개월이나 갖은 고문에 시달렸다. 그는 “전기 고문이 너무너무 무서웠다”라고 말하면서도, 오히려 이 세상의 모든 이기심과 악을 뛰어넘는 정제된 깨끗함을 보여주었다. 전쟁과 고문, 그리고 가난 등 현실의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 ‘하늘나라’를 꿈꾸므로써 맑은 시심(詩心)을 키운 것이다.   그의 행적 속에서 신앙적인 삶을 지닌 흔적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는 한때에 성당에도 나가고, 한때는 교회도 다녔다. 1981년에는 서울 종로 5가 기독교회관 옆 연동교회를 출석하기도 했다. 그 당시 연동교회 김형태목사의 설교에 매료되기도 했었다.  좥귀천좦은 천상병의 신앙적인 삶의 모습이 용해되어 나타나고 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는 ‘죽는다’의 뜻이지만, 신앙인들이 말하는 ‘하늘나라’를 연상시키고 있다. 또한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이나,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는 신앙인의 심성을 그대로 반영시키고 있다. 그것은 신앙인의 덕목인 ‘감사의 삶’에서 비롯된 것이다. 일상생활 속에서의 가난과 아픔의 삶을 ‘감사의 삶’으로 영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 시는 기독교신앙이 육화된 삶에서 형상화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 시는 죽음을 바라보면서 지난 삶을 아름다움으로 노래했다. 이 시에는 짙은 우수가 깔려 있으면서도, 절제된 목소리로 삶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맑은 심성을 엿볼 수 있다. 그것은 이 세상의 삶을 끝내고, 하늘나라로 돌아가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형상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전혀 나타나지 않은 것도, 신앙인의 삶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 시는 3연 9행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연에서 하늘로 돌아갈 때에 동반하는 것은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 이슬”이다. 그리고 둘째 연의 ‘노을빛’이다. 이 세상의 소유물들에 대해 별로 미련이 없고, 자연현상 속에서의 ‘떠남’을 자연스럽게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라며 노래한다. 둘째 연도 노을빛 함께 단 둘이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이 손짓하면 돌아가겠다는 것이다. ‘구름의 손짓’은 하늘로 돌아가라는 부름이다. 이 첫째 연과 둘째 연은 하늘로 돌아가는 상황을 표현했다.  셋째 연은 이 세상의 삶을 ‘아름다운 소풍’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기 때문에 하늘로 돌아가서 이 세상의 삶을 아름다웠다고 말하겠다고 고백한다. 어느 누가 죽음 앞에서 지금까지의 살아온 날을 ‘아름다운 소풍’으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전형적인 신앙인의 삶이 아니면, 그렇게 표현할 수 없다. 바로 이 시가 감동을 주는 것은, 이 세상의 삶을 ‘아름다운 소풍’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천상병은 1993년 4월 28일 63세로 이 세상을 떠난 ‘천상(天上)의 시인’이었다. 누구보다도 고통스런 삶을 살았지만, 맑은 시심을 지닌 소유자였다. ‘초탈’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는 그의 시들은, 오늘의 찌든 삶에서 한 발짝 떨어져 넉넉하고 여유있는 인격자의 모습으로 승화시켰다. 특히 1971년 가을에는 동백림사건의 고문 후유증과 심한 영양실조로 서울시립정신병원에 수용되기도 했었다. /시인·한국기독교문인협회 전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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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5-22
  • [한국 기독교시 다시 읽기 22] 맑고 깨끗한 순결의 눈물 - 김현승의 「눈물」
    ▲ 시인 최규창  더러는 옥토에 떨어지는 작은 생명이고저…… 흠도 티도, 금가지 않은 나의 전체는 오직 이뿐! 더욱 값진 것으로 드리라 하올 제, 나의 가장 나중 지니인 것도 오직 이뿐! 아름다운 나무의 꽃이 시듦을 보시고 열매를 맺게 하신 당신은, 나의 웃음을 만드신 후에 새로이 나의 눈물을 지어주시다.       -「눈물」의 전문 이 시는 김현승 자신이 말하는 그의 대표작이다. 6·25 전쟁후 서정주시인이 광주에서 발간한 〈시정신(詩精神)〉 창간호에 발표되었다. 그의 시작품중에서도 자신의 마음에 드는 것은, 「눈물」일 것 같다고 겸손하게 말하기도 했다. (산문집 〈고독과 시〉 -「고요한 면을 지닌 눈물」- 나의 처녀작과 대표작). 이 「눈물」은 짙고 견고한 기독교정신을 형상화한 시로 평가되고 있다. 이 시는 〈예레미야 애가〉를 연상시키고 있다. 예레미야는 눈물의 선지자였으며, 사역을 감당하는 동안 눈물이 마를 날이 없는 사람이었다. 예레미야는 “내 눈에 흐르는 눈물이 그치지 아니하고 쉬지 아니함이여,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살피시고 돌아 보실 때까지니라”(3장 49절~50절)처럼, 눈물의 선지자였기 때문이다. 이 시의 ‘눈물’은 〈예레미야 애가〉의 죄지은 자의 눈물이 아니라, 현세적 고뇌를 신앙적 시련으로 받아들이는 성숙한 신앙인의 모습을 담고 있다. 김현승은 산문집 〈고독과 시〉에서 “이 시의 기저에는 기독교정신이 깔려 있다. 이 시는 내가 그렇게도 아끼던 나의 어린 아들을 잃고 나서 애통해 하던 중 어느날 문득 얻어진 시다. 나는 내 가슴의 상처를 믿음으로 달래려고 하였었고, 그러한 심정으로 이 시를 썼었다. 「인간이 신 앞에 드릴 것이 있다면 그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변하기 쉬운 웃음이 아니다. 이 지상에 오직 썩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신 앞에서 흘리는 눈물뿐일 것이다」라는 것이 이 시의 주제라고 할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시는 눈물을 좋아하는 나의 타고난 기질에도 잘 맞는다”(「굽이쳐가는 물굽이 같이-나의 시, 그 변모의 과정」에서)라고 적고 있다. 이 시의 ‘눈물’은 김현승 자신의 비애의 심정으로 축출된 맑고 깨끗한 산물이다. 사랑하는 자식을 잃은 슬픔에서 얻은 ‘눈물’을, 맑고 깨끗한 ‘생명의 눈물’로 창조한 것이다. ‘눈물’은 생명 혹은 거듭남의 삶을 상징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신앙의 힘이다. 현세적 삶을 신앙의 힘으로 극복한 거듭난 자의 삶이다. 슬픔과 분노와 좌절의 눈물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리는 순결의 눈물로 승화시켰다. 신앙의 윤리적 삶에서 비롯된 거듭난 자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어린 자식의 죽음을 자신에게 내려지는 형벌로 순종하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의 눈물을 드리는 고백적 기도이다. 이 시는 순결을 지향하는 참회의 심정을 노래했다. 이 시의 바탕에는 깨끗하고 맑은 신앙의 마음이 승화된 고요한 정서를 담고 있다. 하나님께 가장 깨끗한 것을 드리고자 하는 신앙의 정성이 형상화되었다. 이러한 이 시는 제1연과 2연은 ‘눈물’에 대한 가치성을 부여하고 있다. 제1연은 옥토에 떨어지는 작은 생명의 씨앗으로 표현하고, 제2연은 흠도 티도 없고, 금가지도 않는 가장 깨끗한 것이라고 말한다. 제3연과 4, 5연은 하나님께 드리는 ‘눈물’에 대한 설명이다. 제3연과 4연 1행은 하나님께서 더욱 값진 것을 요구해도 ‘눈물’뿐임을 고백한 것이다. 제4연 2행과 3행, 그리고 제5연은 하나님의 섭리, 즉 창조성에 대한 신앙이다. 특히 마지막 행인 “새로이 나의 눈물을 지어 주시다”는 하나님 앞에서 참회할 수 있는 자각에 대한 ‘눈물’이며, 부활의 정신을 상징한 생명성을 부여했다.   /시인·한국기독교문인협회 전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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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5-20
  • [한국 기독교시 다시 읽기 21] 신앙인의 바른 삶과 실천의지 - 윤동주의 「서시」
    ▲ 시인 최규창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 「서시」의 전문 이 시는 해방 후에 출간된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서문을 대신하여 쓴 「서시(序詩)」이다. 시집에 수록된 맨 첫 작품이며, 1941년 11월 20일에 쓴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1941년은 윤동주가 북간도에서 서울로 유학을 와서 연희전문의 졸업을 앞두고 있을 때였다. 이때는 일제말 수난기에 해당되며, 〈문장(文章)〉 등의 문예지가 폐간되고, 무수한 지식인을 예비검속 및 투옥되었던 암흑기이었다.  이 시는 우주적 교감으로 삶의 비약과 희망을 형상화시키고, 꿈과 삶의 정직성을 보여 준다. 그것은 기독교신앙으로 비롯되고 있으며, 기독교신앙의 경건과 진솔성을 함축시켰다. 이러한 시는 기독교신앙에 대한 신념의 바탕 위에서 출발했다고 볼 수 있다. 「서시」는 2연 9행으로 되어 있다. 구성상 모두 세 단락으로 나눌 수 있다면, 첫 번째의 단락은 4행까지이며, 두 번째 단락은 5행부터 8행, 그리고 세 번째 단락은 2연의 1행이다. 이 시를 기독교신앙의 측면에서 분석하면 하나님 앞에서의 기도이다. 이 기도는 속죄와 회개, 찬양, 그리고 십자가의 가르침과 십자가의 사명으로 세분하여 분류할 수 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 한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 나는 괴로워했다”는 속죄와 회개의 모습이다. 1행과 2행은 신앙에 의한 도덕적 결백성을 나타내고 있다. 3행과 4행은 바른 신앙에서 비롯된 윤리적 삶이다. ‘하늘’과 ‘바람’은 절대자, 즉 하나님의 영역이고, ‘부끄러움’과 ‘괴로움’은 세속적 인간의 관습이다. 특히 이 시에서 ‘바람’은 과거의 갈등으로 표현되고 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죽는 날까지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기도하고,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는 신앙적 도덕성을 나타내고 있다. 이 4행까지는 삶의 신앙적 자세로 신앙의 지조를 지켜 가려는 의지를 담고 있다.  두 번째 단락인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 걸어가야겠다”는 찬양과 십자가의 가르침, 십자가의 사명으로 분석할 수 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는 별을 노래하는 마음의 자세로 하나님을 향한 찬양이나, 신앙의 경건함을 지니겠다는 의지이다. 그리고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 위에서 보여준 가르침을 본받아 살겠다는 결심이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 즉 하나님을 향한 마음으로 예수의 가르침을 지니고 살겠다는 의지를 나타냈다. 7행과 8행인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 걸어가야겠다”는 십자가의 사명을 실천하겠다는 결심이다. ‘나한테 주어진 길’이란 십자가의 길이며, ‘걸어가야겠다’는 십자가의 사명에 대한 실천으로 해석할 수 있다. 세 번째 단락인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는 시대적 상황을 표현하고 있으며, 이를 극복하려는 의지가 담겨있다. 윤동주는 그의 시에서 일제 식민지시대를 어둠의 역사로 규정했으며, ‘오늘밤’은 식민지 상황을 암시하고 있다. 특히 이 구절을 하나의 행으로 처리함으로써 새로운 결의를 다지고 있다.  이러한 「서시」는 윤동주의 좌우명이며, 오늘의 기독교인들에게 신앙적 삶의 길을 제시해 주고 있다. 부끄러움이 없는 삶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는 삶의 길을 가르쳐주고 있다.  /시인·한국기독교문인협회 전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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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5-08
  • [한국 기독교시 다시 읽기 20] ‘꽃’의 ‘창조과정’을 형상화 - 유재하의 「꽃의 사명」
    ▲ 시인 최규창   p.p1 {margin: 0.0px 0.0px 0.0px 0.0px; text-align: justify; font: 12.0px Helvetica} p.p2 {margin: 0.0px 0.0px 0.0px 0.0px; text-align: justify; font: 12.0px Helvetica; min-height: 14.0px} 이 세상 고운 빛깔 모두 모아 하나님은 꽃을 만들었습니다. 그토록 많은 빛깔 중에서 진달래에게 진분홍빛을 개나리에게 노란빛을 벚나무에게 흰빛을 예쁘고 샘이 많은 장미에겐 가지와 함께 빨강, 노랑, 하얀, 분홍 까망…. 원하는 대로 다 주었습니다 그리고 꽃들마다 향주머니 하나씩 안겨 주었습니다 그래서 꽃은 제각기 다른 빛깔로 제각기 다른 향기로 세상을 아름답게 가꾸며 열심히 사는 것입니다      - 「꽃의 사명」의 전문 이 시는 유재하(한국기독교총연합회 전 총무·원로목사)의 제2동시집인 <꿈꾸는 반달>(아동문학사 펴냄, 2001년)에 수록된 동시로, 하나님의 창조와 그 창조의 아름다움을 추구했다. 이 세상의 고운 빛깔만을 모아 꽃을 만드셨던 하나님의 창조와 그 창조된 빛깔과 향기로 세상을 아름답게 가꾸어 주는 사명을 감당하고 있다고 일깨워 준다.  꽃은 하나님이 고운 빛깔만을 모아 만들었지만, 꽃의 종류에 따라 다른 빛깔로 만들었다. 특히 장미는 가시와 함께 여러가지의 빛깔로 꽃을 만든 것이다. 이 꽃마다 향기를 주는 향주머니를 안겨 준 것도 하나님의 창조행위임을 일깨워 주는 시이다. 하나님이 창조한 꽃을 통한 기발한 발상과 구성, 꽃이 주는 이미지를 극대화시킨 가운데 재치있는 전개는 유재하의 문학적인 원숙한 역량에 기인한다.  이 시의 ‘꽃’은 하나님의 창조에 따라 아름다운 꽃으로 지금까지 존재해 왔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처럼, 모든 인간들이 보기에 아름다운 것이 꽃이다. 아름다움의 상징이 꽃이기 때문이다. 첫 연부터 4연까지는 하나님이 꽃을 창조한 과정을 섬세하게 표현했다. 하나님은 셋째 날에 식물을 만들었지만, 구체적으로 꽃의 창조과정에 대한 기록은 찾아 볼 수 없다. 하나님이 창조한 식물 중에 꽃이 들어 있으며, 그 꽃에 대한 섬세한 부분은 시인의 상상력에 의한 하나님의 창조행위를 대변한 것이다. 마지막 연인 꽃의 사명도 마찬가지이다. 시인의 깊은 성찰에 연유한 결과이다. 꽃의 빛깔과 향기가 세상을 아름답게 가꾸는 사명으로 인식했기 때문에 꽃의 사명으로 전개한 것도 시인적인 감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첫 연은 하나님이 이 세상의 고운 빛깔만을 모아 꽃을 만들었다고 단정했다. 꽃이 주는 이미지를 그대로 표현한 것이다. 시인적인 기발한 발상이다. 꽃을 꽃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 고운 빛깔 / 모두 모아”란 구절처럼 의미를 부여했다. 그래서 “하나님은 꽃을 만들었습니다”고 하나님의 창조행위를 표현했다. 제2연부터 4연까지도 마찬가지이다. 3연은 장미꽃이 예쁘고 샘이 많아 가지와 함께 빨강꽃을 비롯한 노랑꽃, 하얀꽃, 분홍꽃, 까망꽃 등 원하는 대로 주었다. 장미꽃의 가지에 가시와 한가지 빛깔이 아닌 여러가지 빛깔을 지닌 꽃을 피우기에 샘이 많다고 표현했다. 4연은 꽃들마다 향기를 담은 향주머니를 안겨 주었다. 이러한 것은 인간적인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에서 비롯되었음을 일깨워 준다.  제5연은 꽃마다 다른 빛깔과 향기로 이 세상을 아름답게 가꾸어 준다. “제각기 다른 빛깔”과 “제각기 다른 향기”로 꽃의 사명인 아름다움의 역할을 감당한 것이다. “열심히 사는 것입니다”란 구절은 의인화된 표현으로 ‘피어난다’는 의미의 진행형이다. 꽃이 피어나기 때문에 열심히 사는 것으로 전개한 것이다. 이 시는 ‘꽃’을 ‘꽃’으로 인식하지 않고, ‘꽃’의 탄생과 존재에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꽃’이 태어난 과정과 ‘꽃’의 존재의미를 구체화시켰다. 어린이들의 동심 속에 꽃을 통한 ‘하나님의 창조’ 섭리와 꽃마다 이 세상을 아름답게 가꾸기 위한 사명으로 피어나고 있다고 일깨워 준다.  /시인·한국기독교문인협회 전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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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5-03
  • [한국 기독교시 다시 읽기 18] 부활의 아침 - 이 수 영
    ▲ 시인 최규창   몸이 향기로운 꽃봉오리였을 때 그 꽃이파리 낱장으로 흩어져 떨어지는 일 상상도 못했습니다 몸이 타오르는 불꽃이었을 때 그 심지 다하도록 흘리는 눈물의 태산 생각도 못해 봤습니다 사망을 걸어 잠근 돌문이 열리듯 이제 진흙덩어리 이 몸 부수겠습니다 저의 손바닥에도 굵은 대못을 박아 주십시오 못자국 선명한 이 두 손으로 주님의 잔에 붉은 포도주를 딸아 올리겠습니다. 예수의 ‘죽음’과 ‘부활’통해 ‘신앙의 삶’에 대한 성찰로 깨닫는 길 이 시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신앙의 삶을 성찰한 고백이다. 예수가 부활한 아침에 그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화자인 스스로의 신앙에 대한 돌아봄과 새롭게 태어나는 삶을 보여 준다. 화자인 스스로의 신앙의 삶을 돌아보며 예수의 죽음과 우리를 위해 희생한 생애를 깨닫도록 한다. 또한 예수가 부활한 것처럼 화자인 스스로도 돌문이 열리듯 진흙덩어리인 이 몸을 부수겠다고 다짐한다. 그리고 예수가 십자가에서의 고통과 아픔에 동참하고, 승리의 부활에 대한 경배와 기쁨을 형상화했다.  첫 연은 죽음과 희생을 떠올려 준다. “몸이 향기로운 꽃봉오리였을 때 / 그 꽃이파리 / 낱장으로 흩어져 떨어지는 일 / 상상도 못했습니다”란 구절은 예수의 생애와 죽음을 연상시킨다. 그의 생애 자체가 “향기로운 꽃봉오리”로 함축했고, “낱장으로 흩어져 떨어지는 일”은 십자가 위에서의 죽음을 형상화했다. 그의 생애는 오늘의 모두에게 신앙의 대상이고, 온 인류를 구원해 주는 구주이기 때문에 십자가 위에서의 고난과 처절한 죽음은 “상상도 못했습니다”고 놀라움을 표현했다 누구나가 예수의 죽음은 놀라움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몸이 타오르는 불꽃이었을 때 / 그 심지 다하도록 / 흘리는 눈물의 태산 / 생각도 못해 봤습니다“란 구절은 예수의 사랑과 희생, 눈물을 떠올려 준다. 어둠 속에서 촛불이 스스로의 몸을 태워가며 밝음을 주는 것은, 촛불의 희생에서 비롯된 것이다. 예수의 생애도 동일한 선상에서 이해해야 한다. 그의 개인적인 삶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온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희생했기 때문이다. 눈물도 마찬가지이다. 온 인류를 위해 흘린 안타까움의 눈물인 것이다. 둘째 연은 예수가 부활하듯이 화자인 스스로가 새롭게 태어나기 위해 스스로를 부수겠다는 신앙의 의지에 대한 표현이다. 예수의 무덤을 걸어 잠근 돌문이 열리고, 그 부활의 깊은 의미를 묵상하며 새롭게 거듭 태어나는 삶을 결단한다. “돌문이 열리듯”이나 “부수겠습니다”란 표현은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예수가 돌문을 열고 부활한 것처럼, 화자도 “진흙덩어리 이 몸”을 부수겠다는 것은, 새롭게 태어나겠다고 다짐하기 때문이다. 특히 “진흙덩어리 이 몸”은 창세기 2장 7절인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성령이 되니라”란 구절을 떠올린다. 진흙덩어리로 만들어진 이 몸을 부수겠다는 것은, 걸어 잠근 돌문을 열고 부활한 예수처럼 새롭게 태어나겠다는 결의를 보여 준다.  셋째 연은 십자가에 두 팔과 두 발이 대못으로 박힌 예수의 고통과 아픔에 동참한 자세로 부활의 예수를 경배하는 결연한 신앙을 형상화했다. 화자가 “굵은 대못을 박아 주십시오”라고 간구한 것이나, “못자국 선명한 / 이 두 손”은 예수의 고통과 아픔에 동참한 자세이다. “굵은 대못”과 “못자국 선명한”이란 표현으로 그 고통과 아픔의 깊이를 극대화시켜 준다. 그 두 손으로 “주님의 잔에 / 붉은 포도주를 딸아 올리겠습니다”는 것은 부활승리에 대한 기쁨과 경배의 의미를 담고 있다. 포도주는 신앙생활의 기쁨(사사기 55:1)으로 상징했기 때문이다.  이 시에서 첫연의 “못했습니다”는 돌아봄, 그리고 “못해 봤습니다”는 깨달음에서 비롯된다. 또한 둘째연의 “부수겠습니다”와 셋째연의 “박아 주십시오”는 결단의 자세, “올리겠습니다”는 경배의 모습이다. 화자의 순수한 신앙에 의한 고백적인 자세를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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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4-19
  • [한국 기독교시 다시 읽기 17] 비신앙적인 삶을 향한 메시지 - 김 석의 「말씀·6」
    ▲ 시인 최규창   다 이루었다 알파와 오메가 너희들이 잠잠하면 저 돌들로 외치게 하리라 다 이루었도다      - 「말씀 · 6」의 전문 김 석의 「말씀 · 6」은 십자가 위에서 죽음을 앞두고, 모진 수난을 당하는 예수의 초췌한 모습을 떠올린다. 그 고통 속에서도 오늘의 우리를 위한 “다 이루었다”란 말씀에 대해 지그시 눈 감아 묵상하도록 한다. 죽음 직전에 “다 이루었다”란 말씀을 통해 오늘의 비신앙적인 삶을 향한 메시지를 형상화했다. 지금도 예수의 수난과 죽음으로 성취된 구속사역이 계속 진행되고 있음을 일깨워 준다.  이 시는 성경구절을 적절하게 구성함으로써 구속사역에 대한 메시지를 승화시켰다. “다 이루었다”란 구절은 요한복음 19장 30절, “나는 알파와 오메가”란 구절은 요한계시록 22장 13절, “너희들이 잠잠하면 / 저 돌들로 외치게 하리라”란 구절은 누가복음 19장 40절에서 인용했다. “다 이루었다”란 예수의 말씀을 전제한 후, 이 성경구절을 통해 구속사역의 성취에 대한 의미를 전개했다. 이러한 시적인 영감과 기발한 발상, 재치있는 기교와 치밀한 구성은, 김 석의 원숙한 시작(詩作)에서 연유한 것이다. 특히 예수는 죽기 직전인 십자가 위에서 “내가 목마르다”(요한복음 19장 28절)와 “다 이루었다”란 두 마디의 말씀을 하셨다. 그것은 자신의 십자가죽음이 하나님의 구속사역에 대한 성취임을 이미 알고 있었다. 이 구절은 십자가에 달리는 것이 구속계획의 성취임을 예수 자신이 인지하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이처럼 예수는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구속사역을 이해하고 있었으며, 그것이 온전히 성취될 때까지 모든 육체적인 고통을 참고 순종했다. 십자가죽음의 직전에 최후의 절규인 “다 이루었다”란 말씀은, 죄로 인해 단절되었던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화목하게 하였다.  첫 행인 “다 이루었다”란 구절은 예수의 가상칠언(架上七言) 중 여섯 번째로 온갖 방해에도 지상사역을 완수하셨음을 선포한 것이다. 죽음 직전에 “다 이루었다”는 이 한 마디는 십자가의 죽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었다는 뜻이다. 예수의 선언은 예수 자신에 의하여 마지막 예언이 성취되었음을 의미한다. 이 짧으면서도 장엄한 한 마디는 십자가 위에서의 예수의 죽음이 인류의 모든 희망의 근거라는 사실을 온 세상에 천명한 것이다. 제2행인 “나는 알파와 오메가”란 구절은 예수 자신이 ‘알파와 오메가’란 뜻이다. 이 구절은 요한계시록 22장 13절에 의한 것이다. ‘알파와 오메가’와 ‘처음과 마지막’, 그리고 ‘시작과 마침’은 관용적 표현으로서 모두 동일한 의미를 지닌 말이다. 이는 예수가 하나님과 마찬가지로 영원토록 존재하고 우주 만물의 창조자이며, 이를 심판하는 최후 심판자이라는 사실을 나타내 준다. 제 3행과 4행인 “너희들이 잠잠하면 / 저 돌들도 외치게 하리라”란 구절은 누가복음 27장 40절에서 연유한 것이다. 특히 “저 돌들로 외치게 하리라”란 구절은 피조물들이 찬양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들이 찬양하지 않으면 흔히 볼 수 있는 하나님의 피조물인 돌들이 찬양한다는 것은, 사람들의 비신앙적인 행위를 비판하는 표현이다. 마지막 행인 “다 이루었도다”란 구절은 첫 행인 “다 이루었다”를 강조함으로써 구속사역의 성취를 새롭게 일깨워 준다. 이러한 이 시는 오늘의 모두에게 주는 사랑의 메시지이다. 예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고, 스스로를 자각할 수 있도록 일깨워 준다. 신앙적이지 못한 삶을 영위하는 현대인에게 바른 신앙의 길로 인도한다. 그것은 십자가 위에서 모진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통해 구원의 길을 인도해 주기 때문이다. /시인·한국기독교문인 협회 전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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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4-10
  • [한국 기독교시 다시 읽기 16] 낮은 자세로 하나님과의 만남 - 홍금자의 「오늘밤은」
    ▲ 시인 최규창   출렁이는 바다 위를 걸은 후에만 닿을 수 있는 주님의 땅 몇 번이고 절망의 눈물을 넘어서야 잡을 수 있는 옷자락 사랑, 또 사랑 맨발로 서야만 만날 수 있는 이시여 오늘밤 내 폐허의 땅에서 당신의 이마에 겸손히 입술을 댑니다. - 「오늘밤은」의 전문 홍금자의 「오늘밤은」이란 시는 일상의 생활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과정을 형상화했다. 출렁이는 바다 위를 걷는 듯한 힘겨운 세상살이 속에서 절망의 눈물을 딛고 일어서야만 주님의 곁에 갈수 있음을 깨달도록 한다. 하나님을 향한 불타는 사랑의 마음을 지니고, 맨발인 낮은 자세, 그리고 참회의 기도로 세상의 모든 것을 버리고, 간구의 기도로 만날 수 있음을 일깨워 준다. 하나님을 만나기 위한 단계적인 과정을 치밀하게 구성했다. “출렁이는 바다 위를 걸은 후”에 “닿을 수 있는 주님의 땅”은, “몇 번이고 절망의 / 눈물을 넘어서야”만 주님의 옷자락을 잡을 수 있고, “사랑, 또 사랑 / 맨발로 서야만” 만날 수가 있다. 또한 “내 폐허의 땅에서” 만난 주님의 이마에 입술을 댈 수 있음을 보여 준다. 그것은 ‘출렁이는 바다 위를 걸은 후에만’ →  ‘몇 번이고 절망의 / 눈물을 넘어서야’ → ‘사랑, 또 사랑 / 맨발로 서야만’ → ‘내 폐허의 땅에서’ → ‘당신의 이마에 / 겸손히 입술을 댑니다’고 주님을 만나기 위한 과정을 보여 준다. 시적인 가치성을 획득하기 위한 상승작용의 결과로 볼수 있다. 첫 연은 대부분 사람들이 고난과 역경의 생활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삶을 형상화했다. 힘겨운 생활 속에서 하나님을 찾게 되고, 하나님을 의지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의미를 지닌다. “출렁이는 바다”란 순탄한 세상이 아니라, 험한 세상에 대한 은유적인 표현이다. “바다 위를 걸은”이란 험한 세상살이를 함축한 것이다. “출렁이는 바다 위를 걸은” 삶이란  힘겨운 세상살이다. 고난과 역경 속의 삶이다. 그리고 “닿을 수 있는 주님의 땅”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고백한 것이다. 제2연은 절망의 눈물을 딛고 일어서야만 하나님의 옷자락을 잡을 수가 있고, 사랑의 마음으로 모든 것을 내려 놓아야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고 일깨워 준다. 첫 연의 “출렁이는 바다 위를” 걷는 삶이란 절망적일 수도 있다. 이 절망을 넘는다는 자체가 신앙의 행위이다. “몇 번이고 절망의 / 눈물을 넘어서야 / 잡을 수 있는 옷자락”이란 구절의 ‘옷’은 성경에서 구원의 상징이다(이사야 61장 10절). “사랑, 또 사랑 / 맨발로 서야만”이란 구절은 이러한 성경적인 의미인 낮은 자세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고 일깨워 준다. 제3연 세상적인 모든 것을 버린 화자는 하나님께 사랑의 표시인 이마에 입술를 대는 것은 존경의 인사이다. “오늘밤”이란 구절은 ‘기도의 시간’이 함축되어 있다. 밤에 ‘참회’와 ‘간구’의 기도로 하나님과의 만남을 표현했다. 참회의 기도로 “페허의 땅”을 지닐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의 비신앙적인 모든 것을 버렸기 때문에 세상적인 관점에서 보면 ‘폐허의 땅’일 수밖에 없다. 신앙적으로 보면 참회를 했기 때문에 용서를 받은 것이다. 그리고 “당신의 이마에 / 겸손히 입술을 댑니다”란 구절은 사랑과 존경의 표시이다. 이러한 이 시는 은유적인 기법으로 구성했다. “출렁이는 바다 위를 걷는 후에만”이나, “닿을 수 있는 주님의 땅”, 그리고 “몇 번이고 절망의 / 눈물을 넘어서야”나 “사랑, 또 사랑 / 맨발로 서야만”, “내 폐허의 땅에서” 등의 구절은 이 시가 추구하는 주제를 적절한 표현으로 형상화했다. 절제된 시어선택으로 군더더기가 전혀 없다. 이러한 것은 원숙한 시작(詩作)에서 비롯된 결과이다.  /시인·한국기독교문인 협회 전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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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4-03
  • [한국 기독교시 다시 읽기 15] 행복한 삶위한 하나님의 축복 - 이해경의 「선물의 향기」
    ▲ 시인 최규창   오늘도 당신은 나에게 변치 않는 믿음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오늘도 당신은 나에게 뜻이 있는 소망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오늘도 당신은 나에게 깊은 사랑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오늘도 당신은 나에게 넘치는 기쁨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오늘도 당신은 나에게 바다같은 평안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오늘의 나의 정원에는 당신이 주신 선물의 향기로 가득히 피어오르고 있습니다 - 「선물의 향기」의 전문 이 시는 지난 날부터 지금까지 날마다 하나님의 섭리로 행복한 삶을 영위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하나님은 믿음과 소망, 사랑과 기쁨, 평안을 선물로 주시고, 그 선물을 받아 일상의 생활 속에서 삶을 영위한다. 하나님의 축복에 의한 무조건적인 사랑에서 비롯된 삶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이 선물들은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위한 절대적으로 필요한 요소들이다.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축복의 선물이기 때문이다. 각 연마다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은 행복한 삶을 위한 것이다. 그것은 누구나 하나님나라에 참여하면 받을 수 있고, 행복한 삶을 위한 요소들이다. 이 풍성한 선물들로 행복한 삶을 누릴 수가 있다. 이러한 행복한 삶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으로 주어지는 즐겁고 복된 상태를 가리킨다(신명기 10장 13절). 건강을 비롯한 성공, 생명, 많은 자손, 안전, 풍성함 등은 하나님의 선물로 주어지는 행복의 내용들이다. 첫 연은 하나님께서 오늘도 “변치 않은 믿음”을 선물로 주셨다. 하나님을 향한 변함없는 신앙의 행위를 지닐 수 있도록 섭리해 주심이다. 성경은 믿음을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라고 일컫는다(에베소서 2장9절). 신앙의 대상인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의 계시를 진리로 받아들이며, 미래를 위해 그를 전적으로 의뢰하는 삶을 영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2연은 하나님께서 오늘도 “뜻이 있는 소망”을 선물로 주셨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장래에 실현될 것에 대한 기대를 지닐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제3연은 하나님께서 오늘도 “깊은 사랑”을 선물로 주셨다. 그 사랑은 한 마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상에서 보여 주신 신적(神的)인 사랑이며, 자기를 돌보지 않고 이웃을 위해 자기 목숨까지도 버릴 수 있는 아가페적인 사랑이다(요한1서 4장 10절). 무조건적인 사랑을 의미한다. 제4연은 하나님께서 오늘도 “넘치는 기쁨”을 선물로 주셨다. 이 기쁨은 주 안에서 거듭난 하나님의 백성들만이 누릴 수 있는 기쁨이다. 이런 기쁨은 하나님의 속성이자(시편 104편 31절), 하나님께서 믿는 자에게 주시는 ‘성령의 열매’이다.(갈라디아서 5장 22절~23절). 제5연은 오늘도 하나님께서 “바다같은 평안”을 선물로 주셨다. 사랑의 하나님과 함께 함으로써 마음에 걱정이 없음을 표현했다. 하나님은 마음과 생각을 지켜 늘 평안하게 해주시기기 때문이다(빌립보서 4장 7절) 제6연은 화자의 가정이나 삶 속에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의 향기가 가득히 피어오르고 있다. 행복한 가정과 삶임을 고백한 것이다. “나의 정원”이란 화자의 삶이나 가정으로 볼수 있기 때문이다. “변치 않는 믿음”을 비롯한 “뜻이 있는 소망”, “깊은 사랑”, “넘치는 기쁨”. “바다같은 평안”이 가득한 가정이나 삶은 ‘행복한 가정’과 ‘행복한 삶’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이 시는 “변치 않는 믿음”과 “뜻이 있는 소망”, “깊은 사랑”, “넘치는 기쁨”, “바다같은 평안”은, 하나님의 자녀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풍성한 선물임을 인식시켜 준다. 하나님의 자녀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임을 보여 준다.  /시인·한국기독교문인 협회 전 회장
    • 출판/문화
    • 문학
    2019-03-26
  • [한국 기독교시 다시 읽기 14] 하나님 앞에 간구와 그 응답 - 윤병춘의 「기도할 때에」
    ▲ 시인 최규창   기도는 어둠의 골짜기로 서성이는 검은 그림자를 지워 버린다 기도는 하와를 꾀이던 유혹의 혀를 어둠 속에 가두어 버린다 기도는 봄날의 꽃향기처럼 높은 곳에서 은총의 선물을 내려 보낸다 기도는 어둠의 소리들을 샘물같은 언어로 바꾸어 주신다 기도는 잠든 영혼의 숨결을 푸른 종소리로 기지개를 켜게 하고 먼 곳을 보여 주신다   -「기도할 때에」의 전문 이 시는 일상의 생활 속에서 하나님 앞에 간구와 하나님의 응답을 형상화했다. 신앙적이지 못한 주위의 환경과 그 환경 속에서의 삶을 간구하고, 하나님의 응답을 통해 섭리하심과 바른 신앙의 삶을 위한 길로 인도해 주심을 표현했다. 바른 신앙의 삶을 위한 기도생활의 결과이다. 첫 연은 기도를 통해 잘못된 생활을 간구하고, 그 삶을 청산한 하나님의 응답이다. “어둠의 골짜기로 서성이는 / 검은 그림자”란 구절은 비신앙적인 삶이며, 잘못된 생활을 상징한다. “어둠의 골짜기”란 신앙적이지 못한 세상적인 삶의 테두리를 의미하고, “검은 그림자”는 기도를 드리기 전인 주변의 생활에 대한 환경이다. 이러한 삶은 하나님 앞에 기도로 회개함으로써 새로운 삶을 획득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검은 그림자를 / 지워 버린다”는 것은, 잘못된 삶을 청산한 기도의 응답이기 때문이다. 제2연은 불순종의 삶을 회개하고, 순종의 삶에 대한 응답이다. “하와를 꾀이던 / 유혹의 혀”는 창세기 3장 4절의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란 구절에서 하와를 유혹하는 ‘뱀의 혀’를 떠올린다. 뱀의 꼬임으로 하나님 앞에 불순종한 삶을 의미한다. 일상의 생활 속에서 “하와를 꾀이던 / 유혹의 혀”인 ‘유혹의 혀’를 회개함으로써, “어둠 속에 / 가두어 버린다”란 구절처럼 ‘유혹의 혀’로 상징된 불순종의 비신앙적인 언어를 어둠 속에 가두워 버린다. ‘유혹의 혀’를 버렸다는 의미이다.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응답으로 비롯된 것이다. 그것은 일상의 생활 속에서 ‘불순종의 삶’을 ‘순종의 삶’으로의 전환이다. 제3연은 기도의 응답인 “은총의 선물”을 표현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총의 선물”은 “높은 곳”인 하늘나라에서 봄날의 꽃향기처럼 내려 보내 주신다. “봄닐의 꽃향기”는 꽃나무에서 내려온다. 봄날의 꽃나무에서 풍겨오는 꽃향기처럼 “은총의 선물”도 하늘나라의 하나님께서 내려 주시기 때문이다. 하나님 앞에 간구하면, 하나님은 은총의 선물을 주신다. 바른 신앙의 삶에서 비롯된 기도에 대한 결과이다. 제4연은 기도를 통해 비신앙적인 언어들을 신앙적인 언어로 바꾸어 주신다. “어둠의 소리”는 긍정적이지 못한 부정적인 언어이며, 타인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는 상처의 언어로 상징된다. 하나님은 그 언어를 “샘물같은 언어”로 바꾸어 준다. 그것은 하나님의 응답이다. “샘물같은 언어”란 신앙적인 언어로 때가 묻지 않은 맑은 언어이고, 희망의 언어이며 축복의 언어이다. “어둠의 언어”에 대한 반대 개념은 “샘물같은 언어”인 “빛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제5연은 기도를 통해 하나님은 구원의 길로 인도하신다. “잠든 영혼의 숨결”은 하나님을 믿지 않은 불신자이다. 그 구절은 구원의 길에 들어서지 못한 자들을 표현하고, “푸른 종소리”는 하나님의 말씀인 복음을 의미한다. “기지개를 켜게 하고”란 구절은 “잠든 영혼의 숨결”이 “푸른 종소리”인 복음으로 “잠든 영혼의 숨결”이 깨어난다는 의미이다. 하나님은 그 깨어난 영혼에게 “먼 곳”인 하늘나라를 향한 구원의 길을 보여 준다. 불신자를 전도하기 위해 하나님 앞에 기도로 간구하고, 그 결과는 “푸른 종소리로/기지개를 켜게 하고/먼 곳을 보여 주신다”고 표현했다.  /시인·한국기독교문인 협회 전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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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
    2019-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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